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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른 곳보다 좀 더 우아한 장식이 있는 방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모틸라가 ‘이 위치면 가주의 방인데……?’라는 생각을 할 즈음,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방 안을 보았을 때, 모틸라는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곳에 멈춰 섰다.
그녀와 반대로 발터는 문앞에서 했던 머뭇거림이 마지막 망설임이라도 되는 듯이, 한 번의 멈칫거림도 없이 움직였다.
그는 방 한가운데에 화려한 샹들리에 밑에 길게 늘어진 줄.
그 끝에 매달려 있는, 그러니까.
보름달은 밝기만 해서, 방 가운데 커다란 창으로 그 차가운 빛을 남김없이 들여보냈다. 방 안은 푸르게 빛났고, 그 한가운데 목매단 이가 끼익거리며, 바람에 얕게 흔들렸다.
죽어 버린 시체는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어서 제 몸 안에 있던 모든 걸 쏟아 내기에, 지린내가 방 안에 낮게 깔려 있었고. 차갑게 식어 버린 다리를 따라 방바닥으로 똑, 또옥.
모틸라가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었을 때 발터는 그저 움직였다. 밖에서 사람들을 구하면서 수십 번도 수백 번도 생각했던 동선대로.
자신의 아버지.
인디고 호튼을 드디어 줄에서 내리고, 바닥에 눕혀 드렸다.
그는 침대에 있던 화려한 이불을 가져와 그 시체 위에 덮었다.
모틸라는 시체가 이불 안에 잠든 그 순간이 와서야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살한 제 아버지의 시체를 내린 청년을 보았다.
그 화려한 이불 옆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는. 낮고, 낮고, 낮은 남색 눈.
그 순간 모틸라는 여기 꽤 오래 머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예전이나 지금에나, 저런 눈에 하여금 약해지곤 했던 것이다.
* * *
마을은 전부 자신의 비극에 잡아먹힌 사람들밖에 없었으므로, 발터 또한 자신의 비극을 자신의 손으로 치워야 했다.
발터는 그대로 화려한 이불에 싸인 아버지의 시체를 들어, 그를 화려한 침대에 눕혀 주었다.
그가 살아 있던 시절 잠들었던 그 모습 그대로.
시체의 창백한 냄새와 지린내가 풍기는 방에서 청년은, 어디선가 닦을 것들을 가져와 제 아비의 분비물들을 조용히 치웠다.
날씨는 겨울에 가까워져 가고 있어서 다행히도, 시체는 느리게 썩었고.
불행히도, 그만큼 차가운 온도가 방 안을 채웠다.
딱, 외로움만큼.
모틸라는 그 모습을 모두 보고 있었다. 그저 모른 척 복도 어딘가의 깨끗한 방에서 잠들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제가 가 버리면 청년은 이 차가운 온도에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체만큼 차가운 방은, 딱 그만큼 죽어 있는 듯했다. 그리고 청년 또한.
제가 사라지면 그도 그렇게 시체 같아 보일 듯해, 모틸라는 문가에 기댄 채로 발터가 하는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발터는 조금도 망설이거나 쉬지 않고 모든 행위를 끝냈다. 그는 마을에서 사람들을 구하면서도 이 장면만을 수십, 수백 번은 생각한 것처럼 움직였다. 감정이 아니라 방법을 생각하고 그저 행위를 생각한 사람처럼.
어떻게 제 아버지를 내릴 것인지, 어떻게 이불로 덮고 어떻게 눕힐 것인지.
어디서 걸레를 찾고, 가져와서 닦을 것인지.
방법만을 생각하고 동선만을 생각한 사람처럼,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다.
그리고 모든 행위가 끝나 제 아비가 침대 위에 잠들고 방이 깨끗해졌을 때야 발터는 길게 한숨 쉬었다. 시체가 있는 싸늘한 방에서 가라앉은 눈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긴 한숨이었다.
모틸라는 그게 꼭 죽기 전 마지막 숨만 같아서 부러 가벼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다 끝났어?”
“……아직도 거기 계셨습니까?”
“응. 이만큼 기다려 줬으니까, 따뜻한 물 정도는 제공하겠지?”
발터는 그 말에 모틸라를 쳐다보았다.
그 얼굴은 슬픔이나 우울 따위 없이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짙게 내려앉은 분위기만은 숨 막힌 우울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틸라는 그 표정에도 가벼운 얼굴을 하고 그를 재촉했다.
“뻔뻔하단 소리 들어 보신 적 없으십니까?”
“괜찮아. 난 예쁘니까.”
모틸라는 제 풍성한 흑발을 뒤로 휙 넘기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녀의 얼굴엔 제 외모에 대한 자부심만 가득했다.
발터가 모틸라의 얼굴을 살폈을 때, 모틸라의 얼굴엔 발터의 행위에 대한 평가나 감정 같은 것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가벼운 얼굴이라서 발터는 겨우 입을 열었다.
“……시종들이 다 도망을 가서 제가 직접 데워 드려야 합니다만.”
“응. 직접 해.”
“뻔뻔하시네요.”
“너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그대로 어디 가서 뛰어내릴 얼굴이거든. 일을 주는 내게 감사하라고? 내 물 준비하는 김에 네 것도 준비해. 뜨거운 물에 몸이나 담그고 나서 자라고.”
모틸라의 목소리는 이 앞의 상황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목소리여서, 발터는 자신도 모르게 빠르게 반박했다.
“자고 나면 뭐가 달라집니까.”
“해가 뜨고 내일이 시작되겠지 뭐. 보아하니 네 아버지도 마을 사람들도 어딘가에 묻어야 할 텐데. 얼기 시작한 땅도 파야 하고 시체 분리에, 마을 사람들 분리에. 할 것 많겠다?”
“…….”
“생각할 시간에 몸이나 움직이지? 내가 양심이 있어서 맛있는 거 해 오란 소리는 안 할 테니까. 따뜻한 물.”
“양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만.”
“아니. 난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끝내주고 심성도 고와.”
발터는 뭔가 더 반박하고 싶었는지 입을 다시 열었다가, 모틸라의 뻔뻔한 표정을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물을 데우러 사용인들이 일했던 곳으로 향했다.
그 뒤를 모틸라가 살랑거리며 따라갔다.
“어디까지 따라오실 생각이십니까.”
“남색 머리 꼬마가 자살할까 봐 감시 중인데?”
“자살할 생각 없습니다.”
“응. 다음 거짓말.”
“……제 영지를 두고 죽을 생각 없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어, 안 믿어.”
제 눈동자나 거울에 비춰 보고 헛소리하지 그래?
모틸라는 오래 살아온 만큼 저런 눈동자도 많이 보아 왔다.
언제 죽어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눈들.
발터는 모틸라의 말에 그 가라앉은 남색 눈으로 잠깐 바닥으로 보고는 다시 등을 돌려 어두운 복도를 걸어갔다.
모틸라는 그 넓고 굳은 어깨를 빤히 보다가 또 살랑거리며 뒤따랐다.
복도의 넓은 창은 보름달의 창백한 달빛을 충분히 들여보냈다.
복도의 창으로 남색 머리 청년과 검은색 머리 여자가 창백한 빛 아래 걷고 있는 것이 어떠한 장면처럼 비치는 밤.
청년은 한 번도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는지, 방의 불을 켜는 것도 물을 담을 만한 용기를 찾는 것도 물을 받는 것도 물을 데우는 것도 전부 헤매었다.
제 아비의 사체를 치우던 것과는 달리 허둥지둥거리는 모양새였다.
물론 그 성격 때문인지 지금의 감정 때문인지 그 당황한 행동도 묘하게 침착했지만.
모틸라는 이번에도 그를 조금도 도와주지 않은 채 문에 기대 빤히 보고만 있었다.
발터가 겨우겨우 통 안에 뜨거운 물을 채웠을 때 즈음에는 방 안은 습한 수증기로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그 따뜻한 습기는 방 안의 온도뿐만 아니라 청년의 피부도 데워서 발터의 피부는 조금 전과 다르게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발터는 이마의 땀을 닦고는 뒤를 돌아 모틸라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그는 살아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방까지 옮겨 줘야지?”
“그냥 여기서 씻으시죠?”
“알았어! 나가.”
“……젠장.”
“같이 씻을 거야? 난 상관없는데.”
“나갈 겁니다!”
모틸라가 입고 있던 여행자 로브를 벗으면서 말하자, 발터가 놀라 소리치며 방문 밖으로 나갔다.
이내 방 밖에서 복도를 걸어 어디론가 사라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모틸라는 머리카락을 검지로 몇 번 꼬면서 손장난을 치고서는 옷을 벗고 물통 안으로 들어갔다.
섬세함은 없는지 목욕하기에는 너무나 뜨거운 물이었지만, 뱀파이어의 피부에는 딱히 상관없는 온도이기는 했다.
“뭐야! 너무 뜨겁잖아-! 센스 없긴.”
물론 반사적으로 투덜거리긴 했지만.
모틸라는 첨벙거리며 물장구를 몇 번 치고, 창밖의 보름달을 바라보며 고개를 몇 번 갸웃거렸다.
그 움직임에 따라 검은 머리카락이 물에 풀려 출렁거리고, 창백하고 하얀 피부가 빛나고, 선홍색 눈동자를 가린 속눈썹에서 물 한 방울이 똑- 떨어져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어떻게 할까?”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고혹적인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인디고, 인디고, 인디고-”
발터에게 그 성을 바로 물어보았던 것은, 그것이 바로 그녀가 지어 준 성이기 때문이었다.
아주 먼 과거, 마도 시대가 막 끝날 즈음에 전장에서 도망쳤던 모틸라가 제일 처음 갔던 곳.
전쟁으로 피난길에 오르기 전까지 살았던 저의 고향.
오렌지 나무가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는 하던, 작은 집.
따스하던 부모님과 즐거웠던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지겨워했지만, 지나 보니 마치 꿈결 같기만 했던 기억.
모틸라는 그걸 잊지 못하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고향으로 돌아왔었다.
그곳이 전쟁으로 전부 망가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추억을 잊지 못해서.
그리고 그 추억 때문에 망가진 곳을 떠나지도 못하고 머무르며, 하나하나 손으로 세웠더란다.
그리고 그때, 자신을 도왔던 이가 바로 남색 머리카락에 남색 눈동자를 가진 이였다.
지금 발터와 똑 닮은 눈을 가졌던 친구. 제가 떠나가기 전에 성을 지어 주었던, 이젠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다만 기억하는 것은, 그 색들과 낮게 가라앉았던 눈의 온도, 웃음 몇 조각.
그리고 자신이 지어 주었던 성.
“인디고.”
새벽을 시작하는 남색.
모틸라는 눈을 깜박이며 그 색을 잠깐 생각하다가, 물이 식기 전에 몸을 씻고 통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더러워진 옷을 보고 마음에 드는 옷 하나 버렸다며 툴툴거리다가, 아공간에서 새 옷을 꺼내 입고는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통의 더러워진 물을 쏟아 버리고 새로 뜨거운 물을 채웠다. 그리고 뽀송뽀송한 수건을 걸어 주고 주위를 뒤져 좋은 향이 나는 입욕제도 하나 투하해 준다.
이왕이면 플로럴 계열로!
하나도 안 어울리는 걸로 넣는 것은 작은 심술이다.
그녀는 방문을 열고 나가 발터가 사라졌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