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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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손목 밑에 거슬리는 팔찌를 짜증 난다는 듯이 벗어 버리려다가 말리는 모나한의 손길에 그만두었다.

눌려서 빨개진 자국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과 찌푸려진 미간에 입 맞추는 입술에 찡그리고 있던 것도 그만둬 버렸다.

“불편해요?”

“안, 하던 게, 읏- 갑자기 있으니까.”

로나의 말이 끊기려 하자, 모나한이 움직이던 몸을 멈추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로나는 흐린 눈으로 멈춘 모나한을 올려다보고 나직이 한숨 쉬었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변태예요?”

“왜요?”

“제 몸에 걸쳐진 게 액세서리뿐이라서.”

로나가 이것 보라며 손도 한번 흔들고, 목걸이도 한번 들었다가, 발찌를 보여 주려 다리를 들어 올리려다가 포기하고 툭- 내려놓았다.

평소 액세서리를 잘 하지 않는 만큼 갑자기 생긴 것들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옷 말고 그것들만 끼고 있는 것도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모나한은 예쁘다며 칭찬했지만, 로나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손만 몇 번 휘적거렸다.

“으읏-”

“발목 좀 볼게요. 좀 눌린 것 같은데.”

갑자기 몸을 움직이는 모나한 때문에 로나가 옅게 신음하자, 그가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몸을 돌렸다.

손목에 눌려서 빨갛게 된 자국이 신경 쓰였는지, 모나한이 로나의 발목에도 눌린 자국이 있을까 살펴보았다.

복숭아뼈 주위가 눌려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모나한은 발찌를 조심스레 벗기고, 눌린 부분을 나긋하게 매만졌다.

“그냥 둬요. 어차피 금방 회복될 텐데.”

“그래도 마음이 아픈걸요.”

“뭐라는 거야. 다친 것도 아닌데.”

“빨개졌어요.”

“내 몸에 당신이 만든 빨간 게 더 많아요.”

그 말에 모나한은 할 말이 없는지 로나의 눈을 피해 시선을 돌렸다.

로나의 말대로 온몸에 모나한의 입술이 닿았던 자국이 한껏 피어올라 있었으니까.

“이거랑은 경우가 다르죠.”

“야한 짓 하려고 달아 놓은 액세서리에 눌린 자국이나, 하면서 만들어진 자국이나- 그게 그거지.”

“이건 제가 직접 만든 건걸요. 나 말고 다른 게 로나의 몸에 자국을 남기다니.”

“이상한 집착 하지 마요.”

로나의 말에 모나한이 키득거리며 웃고는 로나의 귓가에 잘게 입 맞췄다.

양쪽 귀 중 특히 한쪽에만 집중적으로 다가오는 입술에 로나가 이해가 안 된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꼭 그쪽에 입술을 가져다 대더라.”

“양쪽 귀 중 이쪽 귀가 더 예민하시더라고요.”

“목적이 있었구나? 음흉해라.”

“당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모나한의 대답에 로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모나한은 로나가 그런 표정을 할 줄 알고 뱉은 말이라 뻔뻔하게 입가를 올릴 뿐이었다.

수없이 많이 본 표정이라 로나는 찡끗거리는 코끝을 한 번 건드리고는 그만두었다.

저 표정을 하면 꼭 코끝을 찡그리는데, 이상하게도 그 부분을 한 번 검지로 건드려야 직성이 풀렸다.

모나한 덕분에 이상한 버릇이 생긴 것 같았다.

로나는 제 손길에 따라 뻔뻔한 표정을 푸는 모나한의 얼굴을 보았다가, 눈을 감고 말했다.

“졸려요.”

“두 번만 더 하고요.”

“미쳤나 봐.”

“아직 창밖이 검은걸요.”

“밤에 시작해 해가 떴고, 다시 졌으니까요.”

“제국에 도착하려면 해가 두 번은 더 떠야 해요.”

“미쳤나 봐.”

그녀의 말에 모나한이 웃으며 입 맞추려 하자, 로나가 고개를 피했다.

그러다가 모나한에게 자신의 더 예민하다는 귀가 보여지자 아차 했는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나한은 한껏 웃으며 그쪽 귀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그렇다고 이쪽이 예민하지 않다는 말은 아닌데.”

“으아아-”

“힘들긴 했나 봐요? 목덜미가 촉촉하네요. 땀 좀 닦아 줄까요?”

“모나한도 목덜미가 촉촉하다 못해 축축한 것 같은데요. 목에 머리카락이 다 달라붙었네.”

“제가 더 움직이니까요.”

“으아아-”

“그런 의미에서 또 움직여도 될까요?”

“……하지 말라고 하면?”

모나한은 로나의 말에 예쁘게 웃는 얼굴로 거절했다.

로나는 그 얼굴에 “왜 물어본 거야…….”라고 중얼거리고는 턱에 힘을 빼고 머리를 베개에 비볐다.

조금 전까지는 몰랐지만, 모나한의 말을 듣자 축축한 목덜미가 신경 쓰였다.

“닦을 것 좀 주세요. 땀이 신경 쓰이네.”

“여기 손수건 있어요. 닦아 드릴까요?”

“그냥 내놔요.”

로나의 말에 모나한이 순순히 복종하며 손수건을 넘겼다.

로나는 대충 목덜미를 한번 훔치고, 이마도 닦아 내고는 모나한을 올려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입꼬리를 올리는 모나한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쉰 로나가 손을 올려 모나한의 목덜미의 땀을 닦아 냈다.

모나한이 감동했다는 표정을 하자, 로나는 콧방귀를 한 번 뀌고는 젖은 회색 앞머리를 넘겨 모나한의 이마를 톡톡 닦아 냈다.

그 아래 톡 튀어나온 눈썹뼈와, 높은 콧대를 따라서도 부드럽게.

한창 흔들리던 도중 등허리에 떨어지던 물방울을 기억하고 있어서였다.

로나는 손수건을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모나한의 턱을 감싸 쥐고는 고개를 들어 올려 짧게 입 맞추었다.

입술에도, 코끝에도, 눈가에도 한 번. 그리도 다시 입에.

로나가 고개를 다시 내리자, 모나한의 입술이 따라 내려왔다.

로나는 그에 화답하듯 입을 열고, 혀를 한번 섞었다가 떨어졌다.

모나한이 다시 몸을 일으키고, 로나의 무릎 뒤에 팔을 넣었다.

“하…….”

로나가 길게 숨을 내쉬고, 모나한이 무릎에 입을 느리게 맞추고는 다시 움직였다.

시야가 천천히 흔들리다가 점점 빨라졌다.

잠시 또렷해졌던 시야가 다시 흐릿해지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 * *

로나는 입 밖에 옅게 흘러나오는 욕설을 그대로 내뱉었다.

잠깐 잠들었다 일어나니 보이는 게 모나한의 가슴이었고, 제가 누워 있는 자세가 모나한 위에 엎드린 자세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3일……. 3일은 지났겠지.”

로나는 중얼거리면서도 해가 지고 뜨는 걸 두 번밖에 보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 창밖에 떠오르고 있는 태양이 두 번째라는 거였다.

아냐, 내가 정신을 잃었다든가, 전등불을 잘못 봤다거나, 모나한이 은근슬쩍 커튼을 닫아 버렸다든가 그럴 거야.

이제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을 리가 없어.

“계산, 계산을 다르게 해야……. 제국에 언제 도착한댔지?”

“오늘 밤에요.”

“난 죽을 거야.”

“뱀파이어를 그렇게 약한 생물로 보면 안 되죠.”

“난 죽고 말 거야.”

“잠깐 자게 해 줬잖아요.”

“드디어 사망이야.”

로나가 제 말에 웃느니라 들썩이는 모나한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철썩철썩 쳐 댔다.

새벽의 습한 공기 덕분인가 소리가 아주 찰졌다.

벗은 몸이 닿아 있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적도 있던 것 같은데, 이젠 그 부끄러움이 사라진 지도 오래였다.

그보다는 피곤해! 힘들어! 복상사할 것 같아!

“3일은 무리인 걸로.”

“피곤하다고 생각해서 피곤한 거예요. 의지의 문제인 거죠.”

“무슨 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중간중간 쉬게 해 줄게요.”

“지금 쉬게 해 줘요.”

“그래요. 좀 더 자요.”

“정말요?”

모나한이 봐주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나는 그 표정이 괘씸해 한 대 때려 줄까 고민하다가 이 자비를 얌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녀는 그대로 모나한의 가슴 위에 누워 느리게 숨을 골랐다.

뱀파이어의 체온은 차가운 편이라 몸에 닿는 체온이 시원해서 잠이 솔솔 올 것 같았다.

로나는 다시 잠들기 전 멍한 눈빛으로 느리게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거나 어떤 생각을 하기보다는 머릿속에서 멋대로 흘러가는 생각들에 떠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모나한이 먼저 잠든 건지, 머리 위에는 어느새 느려진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이 느리게 새하얀 침대 위를 차지해 들어왔다.

네모나게 빛나는 범위가 점점 다가와 모나한의 손에 닿았다.

안 그래도 하얀 피부였는데, 햇빛과 만난 그의 손은 빛나 보일 정도였다.

공중에서 내려앉는 먼지와 솜털, 손톱 끝의 반달까지 새하얗고 따뜻해 보였다.

로나는 멍한 기분으로 손을 들어 모나한의 손목 즈음에 있는 빛의 경계선을 만지작거렸다.

튀어나온 근육을 지나 힘이 풀린 힘줄, 살짝 올라가면 조그맣게 뛰고 있는 맥박.

생명선과 움푹 파인 손바닥, 엄지와 검지 사이의 부드러운 살결.

모나한이 간지러웠는지 손을 움찔, 떨었다.

로나는 만지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의 손가락을 모나한의 손가락과 엮었다.

엮자마자 붙잡아 오는 것은 모나한의 손가락이었고, 그에 화답하듯 오므리는 것이 자신의 손가락이었다.

로나가 몇 번 장난치듯이 손가락을 오므렸다, 펴다가를 반복하는 동안, 모나한은 그저 그녀의 손을 꼭 잡고만 있었다.

살짝 빨라졌던 숨이 다시 느릿해지고, 모나한이 다시 잠들자 잡았던 손이 조금 풀렸다.

그러나 절대 놓지는 않았다.

로나는 그 손을 바라만 보고 있다가 무거워진 눈꺼풀을 천천히 내렸다.

마음에 든다.

맞잡은 손도, 햇빛 아래서 반짝이는 것도, 자신이 장난치는 동안 놓지 않던 손길도.

영원히 그럴 것만 같았다.

로나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영원이라는 단어를 잘 쓰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소리 없이 입술 모양만 한번 움직여 보았다.

영원.

전생에서도 쓰지 않았고, 현생에서는 더더욱 저 멀리 있던 단어.

신경도 쓰지 않고, 원하지도 않았고.

평범이랑은 가장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평범에 영원이 어디 있어.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지는 것, 없어지는 것 또한 평범인데.

그러나 로나는 드디어 그걸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원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누구나 원할 텐데.

영원한 삶, 영원한 사랑, 영원한 행복.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원하지 않을 뿐이지.

하지만 모나한이 말한 대로, 그가 맹세한 대로.

수십, 수백, 어쩌면 천년을 넘게.

그리고 그 이후를 떠나서도.

영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빵집은 무슨 죄냐?’의 빵집 주인입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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