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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진한 갈색 곱슬머리를 대충 한 손으로 모아 쥐고는 머리끈을 찾아서 가방을 뒤졌다.
기분 내 보겠다고 풀었던 머리카락이 영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모나한이 어디선가 머리끈을 찾아 부드러운 손길로 로나의 갈색 머리카락을 쥐었다.
그리고 섬세하고도 익숙하게 로나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틀어 올려 묶었다.
로나도 모나한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에 익숙해진 지 오래라서 가만히 서서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가는 차가운 손길을 느낄 뿐이었다.
머리카락을 말의 꼬리처럼 올려 묶자, 뽀얗다기보단 창백해 보이는 목이 전등 불빛 아래 드러났다.
로나가 제 머리 묶은 모양을 가늠하려고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흔들자, 모나한의 시야에서 가는 목선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모나한은 그 아슬아슬함을 즐기다가 고개를 내려 창백한 목선에 부드럽게 입술을 눌렀다.
은근슬쩍 허리에 감은 손이 함께였다.
모나한에게 익숙해진 지 오래인 로나는 덤덤한 얼굴로 모나한이 묶어 준 제 머리끝을 만지작거리다가 침대로 갈 생각인지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 품에 안겨 제멋대로 움직이는 로나에게 익숙한 모나한이 발이 걸리지 않도록 박자에 맞춰 같이 걸어 나갔다.
로나가 침대에 다리가 닫자 온몸에 힘을 빼 버렸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침대에 풀썩 눕고 싶었지만, 모나한은 놓아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결국 로나는 모나한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모나한이 그 모습을 보고 키득거리면서 웃더니 그대로 같이 침대에 엎어졌다.
로나는 등 뒤에 느껴지는 모나한의 무게에 손바닥을 파닥거리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어차피 한두 번 있던 일도 아니고, 쉽게 떨어져 나갈 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쉽게 포기해 버린 게 재밌는 건지, 모나한이 등 뒤에서 키득거리며 웃고 있는 게 느껴졌다.
로나는 뭐라 하기도 귀찮아서 모나한에게 깔린 그대로 꾸물꾸물 움직여 몸을 뒤집었다.
모나한이 로나가 쉽게 움직이도록 몸을 살짝 일으켰다가 로나가 다 뒤집자 다시 온몸에 힘을 뺐다.
로나는 제 목덜미에 아직도 웃고 있는 모나한의 숨소리를 들으며 가벼운 한숨을 내뱉고는 손을 올려 모나한의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천장의 전등이 작게 흔들리는 것을 보며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꼬았다가, 머리카락과 목의 경계선을 만지작거렸다가, 목을 주무르기도 한참.
로나는 조금 불편해져서 자세를 바꾸려다가 모나한의 주머니에서 걸리적거리는 것을 느끼고 손을 움직였다.
모나한이 딱히 피하지 않아서 로나는 손쉽게 모나한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냈다.
“……이거.”
“체력 증진, 체력 회복 속도 강화, 피로감 감소 3세트면 어떤 밤도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자식이?”
“제국에 도착할 때까지 3일 남았다는데, 3일 동안 침대 위에서만 있어 보는 건 어떨까요?”
“못하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어요?”
“……로나, 뭔가 제가 엄청나게 밝히는 것처럼 말하는데요.”
“……? 사실이잖아요.”
로나가 한 번도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얼굴로 말하자, 모나한은 순간 반박하려다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사실이긴 사실이지만요.”
“네. 혹시 싫어한다고 생각할까 봐 말하는데, 전 싫지 않아요.”
“……네?”
“모나한이 밝히는 거 좋아한다고요. 가끔 힘들긴 한데, 그건 힘든 거지 싫은 게 아니잖아요?”
“……그, 그렇죠.”
“네, 그래요. 싫지 않다고요. 하던 말 계속해요.”
로나가 넘어가라는 듯이 손을 흔들거리고는 모나한의 주머니에서 꺼낸 아티팩트들을 구경하며 말했다.
모나한은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라는 아리송한 얼굴을 했다가, 그냥 고개를 내리고 로나의 옆얼굴을 구경하며 말을 계속했다.
“로나가 중간에 졸려서 자 버리거나, 잠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가짜예요.”
“네?”
“인간이던 시절에 버릇과 그때 정해 놓은 한계로 인해서 그렇게 느낄 뿐이라고요.”
실제로는 일주일 즈음 안 잤을 때 슬슬 졸린 게 정상이죠.
모나한은 전등 빛이 보석의 표면에 반사되어 로나의 얼굴에 깨져 반짝이는 것을 감상하며 말했다.
“그 증거로, 로나는 아직도 밤에 졸리다고 하죠.”
“……그때 졸리니까요.”
“뱀파이어는 야행성이에요. 원래는 낮에 더 몸이 처지고, 밤에 더 활기차죠.”
모나한이 손을 들어 로나의 볼에 묻은 빛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로나는 모나한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낮에 잠이 부족하고 피곤하다고 느끼는 것도, 사실은 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냥-”
“낮이라서? 야행성인데 낮에 활동하고 있어서?”
“그렇죠.”
모나한이 조각난 빛을 만지려던 것을 그만두고, 로나가 들고 있던 아티팩트를 가져가며 말했다.
“사실 이런 체력 관련된 아티팩트들도 별 소용이 없긴 하지만요.”
“그럼 왜 산 거예요?”
“우선 예쁘고, 로나랑 잘 어울리고, 이런 걸 하면- 그런 기분이 되니까?”
“……야한 기분?”
로나가 모나한이 제 쇄골에 살짝 놓아주는 아티팩트에서 느끼지는 마나 특유의 시원한 느낌을 느끼며 말했다.
모나한은 로나의 말에 바람 소리를 내며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체력이 강해진 느낌요. 피곤하지 않은 느낌, 체력이 빠르게 회복되는 느낌.”
“플라시보 효과를 노리고 있었군요.”
“네?”
“가짜 약인데도 진짜 약이라고 알고 먹으면 효과가 나는 거요.”
“아, 사기 칠 때 써먹던 그거.”
“……당신 알면 알수록 과거가 휘황찬란해?”
“오래 살았으니 어쩔 수 없죠.”
그의 뻔뻔하게 으쓱하는 어깨를 로나가 손끝으로 툭툭 때리다가 그만두었다.
“평소엔 빵집 일을 해야 하니까 저도 그냥 물러났던 거죠. 이젠 일찍 일어나서 빵을 구울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들을 만날 필요도 없고.”
“음…….”
“저희 둘뿐이고, 여기서 3일 동안 나가지 않아도 건들 사람 하나 없고.”
“으으음…….”
“그리고 저희 신혼여행 중이잖아요.”
로나가 말했던, 전생에 있었다는 그거요.
막 부부가 된 사람들이 같이 여행하는 거요.
“사랑이 가득한 신혼여행 어떨까요?”
“이중적인 의미로?”
“이중적인 의미로.”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모나한이 애교라도 부리는 듯이 로나의 턱 끝에 잘게 입 맞추며 말했다.
모나한의 능글거리는 말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로나는 우선 코웃음부터 쳤다.
그리고 모나한이 목걸이형 아티팩트를 걸어 주려는 것에 협조하며 머리를 살짝 들었다.
목에서 푸른색 보석이 전등 빛에 반짝거렸다.
그 이후에도 모나한은 부드러우면서도 야릇한 손길로 로나의 팔에 팔찌를, 발에는 발찌를 걸었다.
녹색, 노란색, 파란색과 붉은색.
에메랄드, 토파즈, 사파이어와 루비.
그것을 장식하는 은과 금.
로나는 한평생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들을 전등 빛에 이리저리 비추어 보았다.
아름다운 여왕이나 고귀한 신분의 여성이 된 것보다는 던전의 보물상자가 된 기분에 가까웠다.
“기쁘지 않아요?”
로나의 관심 없어 보이는 표정에 모나한이 로나의 가슴 즈음에서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모나한은 맛있는 빵과 이 보석 중에 고르라고 하면-”
“빵을 고르죠.”
“네. 제가 그런 기분이네요.”
“……보통은 좋아하던데.”
아름다운 보석들, 올려다보는 순종적인 눈, 존경을 담은 것 같은 몸짓, 절박함을 담은 표정 같은 것.
“싫어하진 않아요. 하지만-”
“하지만?”
로나는 상체를 약간 세우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나한의 턱을 두 손으로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 약한 힘으로 그를 당겨 올려, 눈높이를 맞추며 속삭였다.
“이게 더 좋아요. 이렇게 마주치고 있는 거요.”
코끝이 닿는 거리였다.
그걸로는 모자랐는지, 로나는 닿은 코끝을 살짝 움직여 모나한을 간지럽혔다.
모나한의 마주친 선홍색 눈동자가 느리게 몇 번 깜박이더니,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이마가 닿았다.
모나한 그대로 상체를 더더욱 기울이고, 로나는 그의 무게만큼 넘어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로나의 머리가 침대에 닿는 것과 동시에 모나한이 입을 맞추었다.
로나는 턱을 살짝 들고 입을 벌리고, 익숙한 침입자를 맞이했다.
길면서도 느린 입맞춤에 나른한 숨이 함께였다.
로나는 그 숨이 끊길 즈음에, 입술이 닿은 상태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해 봐요.”
“어떤걸요?”
“제국에 닿는 3일 동안 잠들지 않는 거.”
모나한의 턱에 올렸던 양손은 어느새, 목덜미를 넘어 목의 옷깃 사이로 파고들었다.
차가운 피부에 섬세한 목선을 따라 움직였다가, 척추 하나하나를 가늠하듯 느리게 훑어 내리고.
모나한은 로나를 배려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건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제 셔츠의 단추를 풀어 내렸다.
로나가 그 모습을 보며 잘게 웃었다가, 다시 제 턱 끝과 목선에 입 맞추는 모나한의 행동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올라온 입술이 귀에 닿아, 그가 달아 준 에메랄드 귀걸이가 달린 귓불을 물었다가, 귀 뒤를 간지럽혔다.
로나가 그 간지러움인지 쾌락인지 구별할 수 없는 느낌에 피하려고 하자, 어느새 올라온 모나한의 손이 로나의 턱을 부여잡았다.
로나는 피하지도 못해 원망 섞인 얼굴로 모나한을 보았다가, 마주친 눈이 휘어지는 것을 보고 포기했다.
턱을 잡았던 커다란 손이 목을 타고 내려가 쇄골에 닿고, 목걸이를 가지고 잘게 장난치다가 더 내려가 가슴께의 단추를 풀어낸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손놀림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게 어디 있을까.
이미 이런 분위기, 오가는 말, 눈빛, 손 같은 것들은.
닿아 오는 숨결과 속삭임, 피부 결 같은 것들, 체온 같은 건.
“너무, 흣- 익숙해졌어.”
“제가요?”
“네, 당신요. 당신이 너무 익숙해졌어요.”
“저도 그래요.”
로나는 모나한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낮은지, 거칠어졌는지, 습한 건지, 뜨거운 건지. 구별되지 않았지만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 하나만큼은 선명했다.
눈빛도 저럴 테고, 표정도 저럴 테지.
그것도 익숙해진 지, 오래였고.
그 모든 것들 중 닿아 오는 손길만이 지독히 부드러운 것도.
“당신이 없는 시간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그건 이미 진작에 그러지 않았어요?”
“오, 로나. 난 이제 몇 초만 당신을 보지 않아도 외로워지는걸요.”
“집착하지 마요.”
“하게 해 주세요.”
“난 혼자 알아서 잘할 거야.”
“전 로나 옆에서 잘할게요.”
새빨개진 얼굴을 팔로 가리며 투덜거리는 로나의 말을 들으며 모나한이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조차 평소와 달랐다.
낮고, 진득하고, 욕망이 섞여서 거칠고.
로나는 옷자락 사이로 파고드는 차가운 손을 느끼며 3일이라고 말한 것을 후회하기로 했다.
청혼 후 거의 모든 밤의 어느 순간에 후회가 찾아왔다가, 또다시 해가 지고, 침대에 누울 때 결국 가 버릴 가벼운 후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