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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틸라는 그 시선이 멋쩍다는 듯이 어깨를 움츠리다가 말했다.
“아니, 내가 눈이 뒤집혀서 와이번을 쫓아갔잖아.”
“그랬지. 앞뒤 안 가리고 달려갔지.”
“……도적들 다 죽인 걸 알고 간 거거든?”
“수습도 안 하고 가서 내가 다 했지. 발터 씨도 널 쫓아가 버리고 말이야.”
모나한이 양심이 있으면 아파하라는 얼굴로 말하자 모틸라가 눈을 데굴 굴리며 모른 척하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안 그래도 발터가 쫓아온 것 때문에 놀랐다니까. 막 사냥하고 있는데, 풀숲 사이로 발터가 말을 타고 튀어나온 거야.”
“갑자기 튀어 나가셨으니까 걱정이 돼서…….”
“난 너 쫓아오는지도 모르고 달려갔었거든. 그래서 너한테 사냥하는 모습 들키는 순간 엄청나게 걱정했잖아. 보통 인간들은 그런 모습 보면 깜짝 놀라잖아. 몬스터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피에 젖은 뱀파이어…….”
당신 이빨로 물어뜯었어? 진짜 눈이 뒤집혀서 사냥하러 갔구나?
로나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자 모틸라가 ‘그래, 그런 반응이지’라면서 볼을 긁적였다.
“보통 기겁하고 도망가거나 신관한테 신고해서 성 기사가 달려오죠.”
성 기사 뒤에는 횃불과 쇠스랑이나 낫을 든 농부들이 같이 몰려오고.
모나한이 알 만하다는 듯이 중얼거렸고, 모틸라가 몇 번 겪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게다가 발터는 기사잖아. 그래서 좀 걱정하고 있었는데……. 발터도 막 충격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단 말이야.”
“그래서요?”
로나는 모틸라의 말에 결말을 예상하며 걱정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뱀파이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충격받았겠어?
아니지, 발터가 진짜 충격받아서 뭐라 했으면 모틸라가 이렇게 환한 얼굴로 오지 않겠지.
충격받아도 다른 걸로 충격받았겠지.
“응, 얼굴에 칠칠하지 못하게 묻히고 먹지 말래.”
“아, 역시.”
“나이가 몇 살인데 옷 앞섬까지 다 젖을 정도로 묻히고 먹냐고 하더라……. 혼났어어…….”
“그래요. 적당히 칼이나 마법 같은 걸로 잡아도 되잖아요. 왜 이빨로 잡고 그래요.”
“흥분해 가지고……. 그리고 막 살아 있는 생물에 이빨 박고 꿀꺽꿀꺽 마시면 더 맛있는……. 로나야, 그렇게 싫어하지 말아 줄래? 발터 너도 은근슬쩍 몸 뒤로 빼지 말고.”
그렇지만 모틸라 언니, 너무 야만적인걸.
“우리에겐 포크와 나이프, 컵과 접시라는 문물이 있잖아요.”
“아니, 모나한이 그렇게 먹어 보라고 안 했어? 저렇게 먹는 거랑은 맛이 다르다니까, 맛이!”
“전 그런 야만적인 짓 하지 않습니다.”
모나한이 방긋 웃으며 말하자, 모틸라가 ‘너 이 새끼. 배신자 새끼’라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모나한은 더더욱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휠 뿐이었다.
“아무튼, 충격받은 발터 표정 보고 순간 도망갈까 고민도 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까 발터는 내가 뱀파이어인 거 이미 알고 있잖아. 와이번에서 피 뽑을 동안 다른 사람 오지 않게 망도 봐줬고.”
참 자상하기도 하지!
모틸라가 사랑에 빠진 얼굴로 발터를 보며 말하자, 발터가 멋쩍다는 듯이 귀를 붉혔다.
로나와 모나한은 그 모습을 짜게 식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모나한이 로나에게 연애질하려고 할 때마다 하던 모틸라의 표정과 똑같았지만, 모나한은 자신이 했던 말을 신경도 쓰지 않고 ‘징그럽다’라는 표정을 했다.
로나는 모틸라에게 그런 말 한 적 없었으니 그냥 맘 편히 ‘꼭 나에게 보여 줘야 해?’라는 얼굴을 했고.
모틸라가 둘의 그런 얼굴을 보고 콧방귀를 뀌며 무시하고는 발터의 빨개진 귀를 만지작거리며 둘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로나는 그 모습에서 고개를 돌려 피를 홀짝이면서 모나한에게 입을 열었다.
“저거 이벤트 아니에요?”
“네?”
“원래라면 발터 씨가 모틸라가 뱀파이어인 걸 몰랐겠죠. 발터 씨는 충격을 받고, 모틸라는 그 표정에 도망을 가고. 오해와 삽질과 와장창이 함께하고.”
모나한이 그 말에 크게 깨달았는지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가, 마시던 컵을 내려놓고 로나의 손을 양손으로 꼬옥 잡은 채 말했다.
“……로나,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부탁드립니다.”
“네?”
“답답한 전개 따위 전부 파괴하고 시원한 전개로 밀고 나가 주세요.”
“아, 네. 그럴게요.”
“또 도망갔을 거 찾으러 갈 생각하니……. 어휴.”
여러 번 잡으러 다녔더니 갈수록 잔머리만 늘어서 찾기도 점점 힘들어지던데.
모나한이 머리가 조금 커져서 요령을 피우기 시작한 일곱 살짜리를 보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모틸라 앞으로 지금처럼 로나 말 잘 들어요. 알겠죠?”
“으응? 나는 누구 말도 안 들어! 나는 나의 말만 듣는-”
“로나가 말 잘 들으면 맛있는 거 줄 거예요.”
“잘 들을게.”
“좋아요.”
발터의 귀를 만지작거리던 모틸라가 멍청한 얼굴로 대답했고, 모나한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둘만 붙어 있으면 아주 개그 콤비가 따로 없다니까.
로나는 주섬주섬 아공간에서 쿠키를 꺼내 건네며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점점 손주 남매를 돌보는 할머니가 돼 가고 있는 것 같아.
으음, 반짝이는 눈으로 맛있게 먹는 걸 보니 뿌듯하구먼.
어쩜 저리 복스럽게 먹는지, 흡족하기도 하지.
로나는 흡족함을 넘어 모틸라의 머리를 토닥이고 싶어 하는 손을 가만히 두려고 노력했다.
모나한에게 빵을 왕창 먹일 때도 잘 먹는 모습에 내심 만족스러웠는데, 이제 잘 먹는 이가 둘이라니 만족스러움이 두 배! 경험치와 빵 코인도 두 배!
“자자, 더 먹어요. 많이 먹어요.”
“……내가 뱀파이어가 아니면 살이 뒤룩뒤룩 쪘을 거야.”
“뱀파이어니까 괜찮잖아요. 그거 다 먹으면 더 줄게요.”
모틸라가 도적들 해치우는 동안 많이 만들었어요.
로나가 뿌듯하다는 얼굴로 앞에 쌓아 주는 빵의 산에 모틸라의 입술이 살짝 파래졌다.
안제가 왔던 날의 악몽이 떠오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공간을 넘어 목 끝까지 빵으로 차올랐던 그날.
“……내가 말을 잘못한 게 아니었을까?”
“제빵의 악마님께는 혀를 조심히 놀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으응. 조심할게.”
발터가 하는 말에 모틸라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로나는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 있나?’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그래도 모틸라는 혀를 조심할 필요가 있지’라고 생각해서 조용히 침묵했다.
로나의 옆에서 모나한이 ‘저 모틸라가 혀를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다니!’라는 표정으로 놀라다가 로나를 존경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로나는 모나한의 표정을 읽고 저게 칭찬인지 잠깐 고민했다가, 그래도 존경이니 받을 수 있을 때 받자는 생각에 자신감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뭐, 어때. 식욕의 노예들을 아우를 수 있는 제빵사인데.
로나는 다 마신 컵 속을 보며 아쉽다는 얼굴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혀에 묻은 피 한 방울까지 싹싹 핥아먹고 싶은데, 그건 좀 추잡해 보일 것 같았다.
혼자 있으면 진짜 바닥까지 핥아먹었을 거야.
로나는 결국 아쉬움의 한숨을 푹 내쉬고 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던 모나한도 같은 느낌이었는지, 짧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띠링-.
로나는 느껴지는 동질감에 웃으며 그를 바라보려다가 귓가에 울리는 소리에 흠칫- 굳었다.
어떤 이벤트가 끝나고 울리는 알림음이라니.
로나는 떨떠름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상태창을 불러 알림을 확인했다.
-축하합니다. ‘가지 말아요, 그대여’가 끝났습니다. 이제 ‘가지 말아요, 그대여’의 주인공과 남주인공에게 얻는 경험치와 빵 코인이 정상화됩니다.
방금까지 빵 코인 두 배라고 좋아했는데…….
로나는 눈을 깜박이며 상태창을 보다가 피식 웃어 버렸다.
그리고 그다음에 떠오르는 안내 문구에 눈을 깜박거렸다.
-보상으로 후라이드 치킨 레시피를 드립니다. 아래 안내문에서 원하는 브랜드를 골라 주세요.
뭐시라!?
너 이 사랑스러운 자식! 사랑스러운 상태창!
로나는 감격해 어쩔 줄 몰라 하며 선택 창을 미친 듯이 내렸다.
가나다순으로 정렬된 선택 창에서 맨 마지막! 맨 마지막을 보자! 황금 어쩌구 치킨이 먹고 싶으시다! 황금을 원한다!
로나는 결국 원하던 레시피를 선택하고 양손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려 만세를 외쳤다.
현생에서 치킨을 만들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소금, 밀가루, 달걀, 닭 등등 분명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거였다.
자본주의의 맛이 안 났다.
수없이 많은 후라이드 치킨 중에서 소비자들의 냉혹한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기업들이 연구해 만든 그 맛!
자본주의의 냉철한 맛!
“로, 로나……? 왜 그래?”
모틸라가 동공을 흔들며 로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로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치킨이었으니까!
모나한은 로나가 저렇게 행동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나한은 말했다.
“무엇을 준비할까요, 로나?”
“지금 당장 부엌으로 가죠! 치킨을 만들어야겠어요!”
“발터 씨, 혹시 저택에 맥주가 있나요?”
“아, 술 창고에 조금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것 좀 준비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시원하게 말이죠.”
“음, 가능할 것 같습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곤 부엌으로 사라지는 로나의 뒤를 따라갔다.
“새로운 한식 레시피가 나온 거예요?”
“네!”
로나는 가볍고 빠른 발걸음으로 부엌으로 가다가, 들리는 질문에 모나한을 뒤돌아보며 대답했다.
“이야기가 끝나서 보상으로 받았어요!”
“……벌써요?”
“그러게요.”
“……이번엔 많이 힘들어하시진 않네요. 다행이에요.”
로나는 모나한의 말을 듣고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배시시 웃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 모나한의 말이 맞았다.
아실라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세상이 뒤바뀌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모틸라의 이야기가 끝났다는 안내문에는 그냥 조금 웃길 뿐이었다.
이야기가 끝났다고 무언가 바뀌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 버려서인지도 몰랐다.
아실라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제 삶이 드디어 현실이라도 된 듯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어떠한 이야기에 들어갔더라도,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자신의 삶일 뿐이란 걸 알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냥 해와 함께 일어나, 반죽을 만들고, 빵을 굽고, 팔고, 밥을 먹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되는 것이다.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아니까요.”
“그래요?”
“네. 어차피 난 또 빵을 구워야 할 테니까요.”
이야기가 시작되더라도, 끝나더라도. 아무런 이야기도 없더라도.
“지금은 우선 치킨을 튀겨야 하겠지만요.”
“당연하죠! 지금은 빵이 아니라 그게 가장 중요해요! 자본주의의 치킨!”
모나한이 안도하며 하는 농담에 로나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답했다.
그런 로나의 모습에 모나한의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옆으로 와 나란히 걸었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의 모습을 올려다보고 웃고는, 자신이 만들 치킨에 관해 설명했다.
속살이 얼마나 부드럽고 촉촉한지, 껍질이 얼마나 고소하고 바삭거리는지.
둘은 복도를 지나 부엌문을 열었다.
어떤 것이 끼어들어도 달라지지 않을 발걸음과 맞잡은 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