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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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저택을 넘어 사람들이 싸우는 곳으로 날아가는 거대한 생명체에 기겁했다.

저게 말로만 듣던 괴수인 것 같았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기껏해야 본 몬스터가 고블린 정도였던 로나에게 거대한 와이번은 무서움을 느끼기 충분한 존재였다.

그녀는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모나한과 모틸라, 발터가 있을 곳을 바라보았다.

무슨 짓을 했는지, 온통 불타오르고 설탕이 타는 냄새가 가득했다.

집중하니 회색 머리를 가진 모나한이 불이 붙은 곳 한가운데에서 무언가 하고 있었다.

“담장 안에서 석궁이나 쏠 줄 알았더니, 위험하게 무슨 짓이야!”

도적들 따위로 위험해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걱정된다고!

아니, 그보다 저 위에 날아가는 괴수가 더 위험한 것 아닌가? 당장 피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뭐라도- 뭐라도 해야-.

“아, 도망가네.”

안 해도 되겠네.

로나는 순식간에 방향을 트는 괴수의 모습에 뻘쭘함을 느끼며 볼을 긁적였다.

방금까지 느꼈던 불안과 공포가 부끄럽기까지 했다.

뱀파이어가 생각보다 강한가 봐. 난 도저히 이길 것 같다는 생각 안 드는데 신기할 정도네.

모나한이랑 모틸라가 강한 건가? 하긴 오래 살았다니까 그럴 수도 있지.

로나는 혼자 알아서 납득하며, 모나한이 오면 봐 버렸다고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다들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는데, 모나한은 자신에게 그의 거칠거나 잔인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침 자신도 보고 싶지 않으니 딱 좋았다.

“어차피 멀고 모나한이 뒤돌아 있어서 잘 안 보였는걸.”

그보다는 날아간 괴수가 신경 쓰여서 자세히 보지도 못했-.

“뭐야? 왜 갑자기 모틸라가 달려가? 응? 발터도 쫓아가네.”

설마 모나한도 가는 건- 아니군. 터덜거리며 돌아오는군. 음, 마을 사람들에게 뭔가 명령하고, 수습하는 중이군.

“……도와주러 가면 싫어하겠지.”

내려가서 열심히 고소한 거나 만들어야겠다. 사람의 피는 단 냄새 라더니 온통 단내가 가득해서 오히려 질리네.

달고나를 만들어 볼까 고민하는 중이었는데, 그만둬야겠다.

로나는 혼자 머쓱해하며 부엌으로 돌아갔다.

새삼 자신이 어울리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강한 이들인지 느껴졌다. 무섭기보다 안심이 되는 것은 지금까지 봐 온 것이 있어서 일 것이다.

“그리고 다들 식욕의 노예들이고.”

자신은 그들의 식욕을 지배하는 제빵사이고.

“모른 척하고 빵이나 만들어야겠다.”

소보로빵 만들까? 막 만든 소보로빵 진짜 맛있는데.

왠지 아몬드 우유가 먹고 싶군. 가서 아몬드 좀 갈까.

* * *

“로나아! 이것 봐!”

로나는 막 구워진 소보로빵을 오븐에서 꺼내다가 부엌문을 거세게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뒤돌았다.

거기엔 한껏 상기된 얼굴의 모틸라가 붉은 액체가 가득 담긴 유리병을 들고 있었다.

뭘 하고 온 건지 검은색 머리카락이 잔뜩 부풀어 올라가 있다.

마치 세렝게티의 사자가 사냥에 성공하고 구해 온 먹잇감을 자랑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거 완전 맛있는 거! 엄청나게 맛있는 거!”

“맛있는 거요?”

“와이번의 피야!”

그 하늘을 날아가던 거대한 괴수가 말로만 듣던 와이번이었던 모양이다.

로나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얼굴 앞에서 모틸라가 방방 뛰며 외쳤다.

“이거 진짜 맛있어! 천상의 맛! 천상의 맛!”

모틸라가 잔뜩 흥분해 커다란 유리병을 조리대 위에 내려놓는데, 그 뒤를 따라온 모나한이 온 얼굴을 구기면서 모틸라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너 제정신이야?”

“왜? 로나에게 맛있는 거 먹여 주려는데!”

“피에 젖은 게 씻지도 않고 부엌에 들어와!?”

로나는 모나한의 그 말에야 눈을 깜박이며 그들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돌아보았다.

모틸라의 부푼 검은색 머리카락이 너무 시선 강탈이라 다른 곳을 못 봤지 뭐야.

모틸라는 모나한의 말대로 로브에 새빨간 피를 덕지덕지 묻힌 채였다.

단내가 아닌 걸 보면 인간의 피는 아닌 것 같았고, 모틸라가 소리친 대로 와이번의 피인 것 같았다.

모틸라에 비해 모나한은 아주 깔끔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자신도 씻고 오겠다며 모틸라를 그대로 끌고 갔다.

그들 뒤에 가려져 있었는지, 둘이 사라지자 마주친 발터가 눈을 깜박이다가 멋쩍다는 웃음을 지은 채 꾸벅 인사하고는 씻으러 사라졌다.

로나는 폭풍이라도 지나간 기분에 볼을 긁적이려다가 아직까지 소보로빵이 든 쟁반을 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슬쩍 내려놓았다.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붕붕 휘두르던 로나는 바로 밑에서 느껴지는 소보로빵 냄새 사이로 맡아지는 엄청나게 유혹적인 냄새에 휘두르던 고개를 멈추었다.

로나의 시선을 완전히 빼앗아 버린 것은 모틸라가 가져온 유리병이었다.

정확히는 유리병에 찍힌 모틸라의 손자국 모양의 피.

그 피에서 나는 향은 로나가 코를 킁킁거리는 것을 멈추지 못할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춘장?”

춘장 냄새가 나. 짜장면 냄새 말이지.

로나는 분명히 배고프지 않은 시간대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허기지는 위장을 부여잡았다.

배가 고픈지 모르고 엄청 열심히 일하다가 갑자기 맛있는 냄새를 딱 맡음과 동시에 배 속이 허하고 꼬르륵 소리가 들리고 내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뱀파이어가 식욕의 노예라더니 이런 기분이었나.

내 빵에 온 세상을 바칠 것 같이 굴더니 이런 충동이었나.

“안 되겠다. 손자국이라도 좀 닦아 놔야지.”

이러다가 다른 사람 오기도 전에 마셔 버리겠어.

로나는 적당한 천을 가져와 유리병을 닦아 내며 다들 빨리 씻고 왔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맛있지가 더 궁금하네.”

로나는 핏자국을 다 닦아 낸 것도 모자라, 그 천을 비눗물에 헹궈 버리고 나서도 못 참겠어서 막 만든 소보로를 뜯어 먹었다.

“내가 제빵사라서 다행이야. 실력이 좋아서 다행이야. 상태창이 있어서 다행이야.”

맛있는 걸 먹으니까 눈앞의 유혹이 좀 사그라드는 기분이야. 허기는 사라지지 않지만 좀 더 인내심이 생긴 것 같아.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아주 잠깐이었지만 배고픔으로 인해 한세월같이 느껴졌던 시간이 지나고, 모나한과 모틸라도 배고팠는지 빠른 속도로 부엌으로 달려왔다.

뻘쭘한 표정으로 그들 뒤에서 걸어오는 발터 앞에는 소보로를 가득 쌓아 주고, 남은 세 명의 뱀파이어들이 유리병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저 지금 뱀파이어의 배고픔을 확실히 느끼고 있어요.”

“나 저 소보로도 먹고 싶어.”

“어, 먹어요. 전 이 피 먹고 싶어요.”

“응. 먹어도 돼.”

모틸라는 자신은 이미 실컷 먹었다면서 양보하겠다며 모나한과 로나 앞으로 유리병을 밀어 주었다.

그리고 발터의 앞에 가득 쌓여 있던 소보로빵을 한 개씩 빼서 양손에 쥐었다.

발터가 그 모습을 보다 편하게 드시라며 모틸라의 앞으로 쟁반을 밀어 주었다.

로나와 모나한은 그런 둘의 모습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눈앞의 와이번의 피가 담긴 유리병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솔직히 모틸라가 앞뒤 안 보고 쫓아가길래 한심하게 보긴 했는데, 직접 피 냄새를 맡으니 좀 미칠 것 같네요.”

“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진짜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유리병을 닦았는데도, 닫아 놓은 뚜껑 사이로 물씬 피어오르는 피 냄새가 로나와 모나한의 허기를 부추겼다.

둘은 그 이상 참지 않고, 사이 좋게 딱 반반씩 마시기로 했다.

다행히 모틸라가 한가득 가져와 실컷 마실 만한 양이었다.

“최고급 올리브유로 만든 알리오 스파게티 냄새가 나네요.”

모나한이 앞에 따라진 피의 냄새를 눈을 감고 음미하며 황홀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래전에 문을 닫은 가게라서 이젠 먹을 수 없는 맛이죠.”

“그래요? 저는 옛날에 먹었던 짜장면 냄새가 나요.”

막 만든 짜장면. 그것도 고기를 듬뿍 넣은 짜장면에 고춧가루 팍팍 넣고 젓가락으로 막 비빌 때 나는 냄새가 나.

모틸라가 로나와 모나한의 말을 듣고 소보로를 꿀꺽 삼키고 말했다.

“나는 항구에서 막 잡은 신선한 해산물로 만든 봉골레 파스타 향이나!”

“……어, 저는 그냥 피 냄새가 납니다.”

자신도 뭐라도 말해야겠다는 표정의 발터를 뒤로 로나는 “와이번의 피는 면 요리 맛인가…….”라고 중얼거렸다.

“맞아! 와이번은 면 요리 맛이지. 어떤 놈을 잡느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긴 하지만, 다들 면 요리 맛이 나!”

정답이었나 보다.

모나한이 커다란 유리병에 담긴 피를 마시기 좋게 컵에 따르자 로나는 더욱 진하게 퍼지는 냄새에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리고 모나한이 컵을 내밀자마자 받아 가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모나한은 순간 그녀에게 처음 피를 줄 때 거부하는 모습을 상상했던 자신에게 허망함을 느꼈다가, ‘잘 먹으면 오히려 좋지’라는 얼굴이 되어 뿌듯하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의 시선도 모른 채, 와이번의 피를 목 뒤로 꿀떡꿀떡 넘겼다.

이, 이 맛은!

고등학교 졸업식 날 먹었던 중식 레스토랑의 짜장면의 맛!

원반을 휙휙 돌리며 먹었던 내 인생의 가장 맛있었던 쟁반짜장의 맛!

“와……. 진짜 추억의 맛이다.”

“로나의 맛이 궁금하네요. 다른 이들 건 거기에 가서 먹어 보면 되지만 로나 것은 힘들잖아요.”

“언젠가 스스로 만들어 볼 수 있겠죠.”

“저도 주실 거죠?”

“그럼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맛으로 줄게요.”

“나도!”

“…….”

모나한이 ‘꼭 그렇게 끼어들어야겠냐’라는 눈으로 모틸라를 바라보았지만, 모틸라는 뻔뻔한 얼굴로 로나를 보며 말했다.

“나도 먹어 보고 싶어!”

“……어, 그래요. 만들 수 있게 되면요.”

“아싸!”

“……빨리 여기서 떠나고 싶네요. 모틸라가 아니라 제가 도망가고 싶어요. 아주, 많이, 애타게.”

“나 도망 안 갔거든? ……아까 조금 생각하기는 했지만.”

“……뭐?”

“네?”

“예?”

모틸라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세 명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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