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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한이 담장을 넘어오는 모습에 도적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모습에 마법사와 헷갈렸는지 반사적으로 방패를 드는 이들도 있었지만, 모나한의 손에 든 검을 보고 오히려 비웃으며 다가오려는 이들이 더 많았다.
모나한은 그런 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목표한 로날드만 보며 고개를 꺾으며 어깨를 풀었다.
로브에 눌린 회색 머리카락 사이의 선홍색 눈동자를 발견한 용병대장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며칠 전 마주친 마법사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는 무언가 안 좋은 감을 느꼈는지 은근슬쩍 뒤로 물러나려 했다.
정작 목표한 로날드라는 놈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시시덕거리고 있는데 말이다.
모나한은 그래도 그가 용병대장을 단 만큼 눈치는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발끝에 힘을 주었다.
그가 앞으로 달려 나감과 동시에 등 뒤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담장 너머에서 모틸라가 만든 불화살이 하늘을 붉게 수놓으며 도적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붉은빛이 넘실대 모나한의 회색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기겁하는 도적들의 얼굴도 붉게 물들였다.
그는 딱히 등 뒤의 열기에도, 눈앞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도적들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은 채 목표한 것을 향해 달렸다.
로나는 이런 일에는 자신의 말을 잘 지키는 편이니, 그가 무엇을 죽이는지 모르리라.
하긴, 알아도 손뼉을 치면 쳤지, 말리진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끄아아아악-!”
그는 익숙해진 지 오래인, 설탕이 타오르는 냄새를 맡았다.
인간이 불타오를 때 나는 냄새는 언제나 달콤해서 역겹다고 생각하며, 눈앞에서 타오르고 있는 도적을 가볍게 지나쳤다.
모틸라가 자신을 배려했는지, 용병들이 있는 곳에는 불화살을 맞은 이가 없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도망가려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든 용병대장의 목을 쳐 버리는 데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몸과 머리가 분리되고 솟구치는 붉은 피 사이로 로날드의 푸른색 눈동자와 모나한의 선홍색 눈동자가 마주쳤다.
모나한이 선홍색 눈동자를 휘며 웃자, 로날드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다가 넘어졌다.
모나한이 검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어 버리며 다가가자 로날드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는지, 넘어진 채로 검을 들고 외쳤다.
“나, 난 로나의 친구야!”
“오.”
모나한은 자신과 검도 제대로 쥐지 못해 덜덜 떨면서 소리치는 로날드의 모습에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다 못해 쓰레기만 가득 찬 것 같은 놈이었는 데, 쓰레기보다는 에멘탈 치즈에 가까워 보였다.
뇌에 구멍이 뻥뻥 뚫려서 오히려 목숨을 줄이는 말만 뱉어 내는 거지.
모나한은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신경을 콕콕 건드리는 신박한 놈이라 생각하며 오히려 눈을 더욱 휘며 웃었다.
“맞아요. 당신은 로나와 아는 사이였죠?”
“그, 그래! 그러니까 난 살려 줘!”
“좋아요.”
“어, 어?”
“다른 놈들 좀 다 죽일 때까진 살려 줄게요.”
“……어?”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까.
모나한이 샐쭉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로날드가 들고 있던 검까지 떨어트렸다.
모나한이 그 한심한 모습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가 알 만하다며 비웃음을 지었다.
썩은 피 냄새가 하나도 안 나는 놈이라고 생각했더니, 용병대에 들어가긴 했지만, 아직 칼질은 한 번도 안 해 본 것 같았다.
그런 놈이 정상적인 용병 일도 아니고 도적질을 하면서 시시덕거린다라. 로나가 질색해할 만한 이였다.
모나한은 로나가 로날드를 싫어한다는 것에, 예전부터 거슬리던 놈을 죽일 수 있다는 것에 흡족하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느꼈다.
로나에게 절대 보여 주고 싶지 않은 표정이라서 그는 칼을 들지 않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가, 그만두었다.
뭐 괜찮겠지. 여기 로나는 없으니까. 그녀 앞에선 절대 보여 주지 않을 표정이니까.
그 정도의 철저함은 가지게 된 지 오래였다.
그래서 모나한은 그냥 그 섬뜩하게 웃는 얼굴로 넘어진 로날드에게 천천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사실 널 아주 오래전부터 죽여 버리고 싶었는데.”
네가 로나 고향의 빵집에서 그녀에게 추근거릴 때부터 말이야.
로나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절대 내지 않았던 목소리가 붉은 입술 사이로 넘실대며 흘러나왔다.
“그때는 그냥 내가 내 전용 제빵사로 만들고 싶은 이에게 접근해서 그런 거였지만-”
저번에 말이야. 네가 로나에게 친한 척하면서 달라붙으려 했을 때.
“정말로 죽여 버리고 싶어졌거든.”
비웃음과 서늘함이 섞인, 듣는 누구라도 위험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였다.
로날드도 그것을 느꼈는지, 발로 땅바닥을 밀며 그에게서 멀어지려 했다.
주위에 있던 용병들도 아무도 그에게 덤빌 생각을 못 한 채 도망갈 타이밍만 노리며 눈을 굴리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겁을 가득 먹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그럼 이놈을 넘기겠습니다!”
“음?”
모나한이 허리를 살짝 들며 그를 바라보자, 그는 잘됐다는 듯이 로날드를 가리키며 외쳤다.
“이놈을 죽이고 싶으신 거 같은데, 저희는 그냥 이대로 물러날 테니 실컷 즐기십쇼!”
“형, 형님들! 어떻게 그런-”
“그래.”
“뭐, 뭐?”
“어차피 배신 어쩌고, 지금까지 친했던 건 뭐였냐 저쩌고 하는 대사는 딱히 듣고 싶지도 않아. 뻔하디뻔하잖아. 이놈만 남기고 도망갈 놈들은 도망가 봐.”
“가, 감사합니다!”
모나한은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로날드만 남기고 도망가는 이들을 힐끗 바라봤다가 신경을 껐다.
발터가 이들을 몰살하기를 바라긴 했지만, 자신은 들어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을 잘 들어줄 모틸라가 자신이 있는 곳을 빼고 전부 불바다로 만들기도 했고.
“예전부터 불 마법을 선호하긴 했지. 성격과 아주 잘 어울리게 말이야.”
“뭐, 뭐 뭐-”
“담장 너머에 있는 마법사 말하는 거야. 넌 신경 쓸 필요 없어.”
헛소리하는 혀부터 자르고 시작하자.
모나한이 어떻게든 그와 멀어지려고 발을 밀어 대는 로날드의 빛바랜 금발을 잡으며 말했다.
숙인 얼굴에 그늘지고 가라앉은 선홍색 눈동자가 붉은 불빛과 함께 넘실거렸다.
“로나, 로나가 슬퍼할 거야! 날 죽이면-!”
“오, 그녀가 그럴 정도로 널 신경 쓰고 있다면…….”
“그래! 로나가 날 소중히-”
“더 죽이고 싶어지는걸.”
상황 파악도 못 하고 헛소리만 하는 혀를 가졌구나?
“네, 네가 이런 놈이란 걸 알면-”
“하하하. 걱정하지 마. 나쁜 짓 하고 나서 예쁘게 방긋방긋 웃을 거거든.”
그리고, 이 나쁜 짓은 들키지도 않을 거야.
모나한은 로나에게 보여 줄 웃음을 미리 지어 보는 듯이 부드럽게 웃고는, 로날드의 입 안으로 검을 욱여넣었다.
로날드가 비명을 지르며 검날을 피하려 혀를 움츠렸다.
모나한은 그 모습을 보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가 혀 말고 다른 곳이 다친다? 우리 빨리 끝내자. 길게 하지 않을게.”
너에게 그럴 만한 가치도 없고, 무엇보다 로나가 보고 싶으니까.
“몇 분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벌써 보고 싶다니. 나도 참 중증이야. 그렇지?”
“우, 우으읍-!”
“오, 이런. 내가 말했지, 움직이지 말라고. 볼도 잘라 버렸잖아. ……으음. 네 피 냄새는 반쯤 썩어 버린 바나나 냄새네.”
잘 어울린다. 원숭이 같고, 쓰레기 같고.
“파리도 많이 꼬일 것 같고.”
모나한은 피거품이 그르륵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검을 점점 더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인간이 아닌 힘으로 입천장의 뼈가 부서지고, 검의 끝이 뇌를 파고드는 느낌이 적나라하게 손을 타고 느껴졌다.
꺼윽거리며 숨이 넘어가는 소리와 어떻게든 밀어내려고 들어오는 검날을 붙잡은 손에서 나는 피와, 잘린 혀가 기도를 막았는지, 아니면 기도로 피가 넘어간 건지 점점 뒤집히는 눈을 모나한은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죽기 직전 경련하는 팔다리는 익숙한 모양새였고, 결국엔 가라앉아버리는 심장 소리도 그랬다.
그는 코끝을 한 번 찡긋하며 인상을 구기는 것을 마지막으로, 죽은 로날드의 입에서 검을 빼냈다.
그리고 그는 가볍게 묻은 피를 털어 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봐. 도망 못 친다니까.”
모틸라가 얼마나 집요한데.
그는 주위에 불타 버린 이들은 한번 훑어보고는 그보다는 훨씬 세심한 눈으로 자신의 몸에 묻은 피가 없는지 살폈다.
로나에게 돌아갈 건데 피 묻은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모나한은 신발 끝에 묻은 피를 짜증 난다는 듯이 문대다가, 커다란 것이 날갯짓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모틸라도 들은 건지, 미친 듯이 쏟아지던 불화살이 멈춰 있었다.
언덕 너머, 저택 뒤에서 커다란 와이번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영지민들도 그걸 보았는지, 겁에 질린 목소리나 들이마시는 숨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지만 모나한은 무심한 눈으로 날아오는 괴수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아직 먼 거리였지만, 와이번도 뱀파이어도 인간은 아닌지라 눈이 마주치기는 충분했다.
그리고 상위 포식자가 있는 걸 알아챘는지, 와이번이 급격히 방향을 틀어 날아가려 했다.
와이번이 도망칠 것을 예상한 모나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담장 안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또 다른 뱀파이어는 생각이 달랐다.
“모틸라?”
모틸라가 담장을 넘어 달려왔다.
“뭐야? 왜?”
“저거 완전 맛있잖아!”
모나한은 자신을 지나쳐 달려가는 모틸라의 말에 질색하는 얼굴로 귀찮다는 듯이 목덜미를 긁적였다.
남은 시체들이랑 도적들 처리를 어떻게 하려고! 맛있는 거만 보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버릇 좀 고쳐야 하는데. 아니지, 이제 곧 죽는데 고치는 건 무리인가.
모나한은 꼼짝없이 모틸라 몫까지 뒤처리하게 될 것 같아 한숨 쉬며 담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누군가가 급하게 말을 타고 모틸라를 쫓아가는 것을 보았다.
굳이 추측할 필요도 없이 짧은 남색 머리를 휘날리고 있는 인디고 발터였다.
“……내가 다 수습해야 해?”
모나한은 담장 너머에서 당황해 자신을 바라보는 영지민들을 보며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로나를 만나러 갈 시간이 늦어질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