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 (112/154)

112

부엌에서 차를 타고 있던 모나한도 도적이 쳐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응접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나한 님.”

그들의 대화에 로나는 자신도 담 뒤에서 활이라도 쏴야 하나 고민했다. 모나한이 로나의 표정을 보고 눈치챘는지 고개를 저었다.

“로나는 여기 계세요.”

“……그러는 게 좋을까요?”

“익숙하지 않은 사람 데려갈 생각 없어.”

로나의 물음에 오히려 모틸라가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 하나만 가도 도적 같은 건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어. 모나한까지 가면 학살도 가능할걸?”

모틸라가 로나의 근심 가득한 표정을 보고 단호했던 목소리를 밝게 바꾸며 말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이런 건 익숙해지지 않는 게 좋아.”

“…….”

“이런 건 나서지도 말고, 보지도 마.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멀리하는 게 좋아.”

두꺼운 로브를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며 그렇게 말하는 모틸라의 표정은 오래 산 자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로나는 아주 오랜만에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어 울상지었다.

모틸라가 그 표정을 보고 로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신경 쓰이면 우리가 돌아올 때 먹을 수 있게 맛있는 거나 준비해 줘.”

“……그럴게요.”

로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틸라가 기대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모나한도 어느새 꺼낸 로브를 뒤집어쓰고 로나에게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괜히 밖을 보지 말고 부엌에 계세요. 나쁜 짓 하고 와서 예쁜 얼굴로 방긋방긋 웃을 거니까, 기다리고 있고요.”

모나한은 예전에 로나가 했던 말을 하며 씨익 웃었다.

로나는 모나한의 말에도 긴장이 풀렸지만, 그보다는 모틸라의 표정에 긴장이 풀리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모나한이 말하는 것을 보며 입을 쩍 벌리고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걸 봤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틸라가 로나의 웃음을 보고 모나한을 흘겨보며 말했다.

“와. 네가 한 말이 얼마나 최악이면 로나도 웃냐?”

“하……. 둘만의 공간에 끼어들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여기 둘이 아니라 넷이 있거든? 너만 연애해?”

“그럼 너도 연애하든가? 내가 아주 자세히 봐 주마.”

“됐거든? 지금 그럴 때니? 가자, 발터.”

모틸라가 발터를 데리고 나가는 뒤로, 모나한이 로나의 볼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다녀오겠다고 속삭였다.

그러고는 응접실을 나가며 모틸라에게 다시 빈정거리는 어조로 말을 걸었다.

로나는 응접실을 나가면서도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에 키득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왔던 발터도 그들의 대화에 긴장이 좀 풀렸는지, 조금 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급한 상황인 건 기억하는지 세 사람은 빠른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로나는 그들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모틸라의 말대로 부엌으로 들어가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마을을 두르고 있는 돌과 나무로 된 담은 평소라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집중하면 큰 소리는 들을 수 있는 거리이기도 했다.

그래서 로나는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어렵고, 손이 많이 가는 레시피들을 골라서 만들었다.

자신이 괜히 날카로운 소리나 비명, 옅게 맡아지는 싸구려 설탕 냄새 같은 것을 신경 쓰는 것은, 그리고 혹시나 그사이 피비린내가 날까 걱정하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로나는 그냥 그들이 말한 대로 응접실 책상에 한가득 맛있는 것들을 쌓아 놓기로 했다.

얼마나 그렇게 빵의 산을 제조하고 있었을까.

로나는 갑자기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사람들의 고함이나 비명이 훅 줄어든 것을 느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한 번씩 들려오던 소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기보다는 어떤 커다란 소리에 묻혀서 사그라든 것이었다.

지금 저택 위로 거대한 것이 날아가는 소리에 묻혀서.

로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쿠키 반죽을 밀던 밀대를 든 채로 고민했다.

이 세계에 비행기가 있을 리도 없었고, 비행기보다는 아주 커다란 새가 날갯짓을 하는 소리에 가까웠다.

모나한은 밖을 보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경우이지 않은가.

로나는 몰려오는 불안에 결국 밀대를 내려놓은 체, 반죽이 묻는 손을 씻을 생각도 못 하고 부엌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한눈에 모든 광경이 잘 보이는 곳은 역시 가장 높은 곳이리라.

그녀는 저택의 가장 높은 층, 한가운데 있는 테라스를 향해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닫혀 있는 유리문을 열고 난간에 몸을 기대자, 거친 바람이 로나의 머리카락과 치마를 휘감아 날렸다.

로나는 그런 것들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거대한 소리의 주인을 찾으려고 눈을 빠르게 돌렸다.

그리고 새파란 하늘 위, 사람들이 싸우는 곳을 향해 날아가는 커다란 생명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난간을 잡은 손 아래에서 씻지 못한 반죽이 기분 나쁘게 뭉개졌다.

* * *

모나한은 두꺼운 갈색 로브를 머리끝까지 써서 얼굴을 가린 채 빠르게 달렸다. 옆에서 자신과 똑같이 로브를 뒤집어쓴 모틸라가 보였다.

두꺼운 로브는 마법사의 표식이나 마찬가지였었으므로 정체를 숨겨야 하는 이종족들이 자주 사용하는 것이었다.

담장에 도착하자 모나한은 아공간에서 석궁을 꺼냈고, 모틸라는 화려한 스태프를 꺼내 손에 쥐었다.

“혹시 위험할까 봐 일찍 왔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네.”

“무슨 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하지 마.”

모틸라가 스태프를 붕붕 휘두르며 하는 말에 모나한이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어느 순간부턴 그거랑 다를 바 없이 느껴지던데.”

귀족들이 하는 사냥 게임이랑 다를 바 없지. 여기저기 동물 풀어놓고 휙휙.

모틸라가 무심한 낯으로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래서 익숙해지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던 거야.”

“우린 너무 익숙해졌지.”

모틸라는 모나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석궁에 화살을 매는 것을 곁눈질했다.

“로브를 입고 석궁이라니, 이상하잖아.”

“실력이 좀 떨어지는 마법사인가 하겠지.”

“네가 마법 실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긴 하지.”

모틸라가 장난스럽게 빈정거리는 말을 모나한은 익숙하게 넘겼다. 아주 예전, 전쟁 중에 수도 없이 합을 맞춰 본지라 서로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 후 같이 싸운 적은 없었지만, 굳이 신경 써야 할 정도로 대단한 적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발터 씨.”

“네?”

“원래 저번에 쳐들어온 도적도 이렇게 수가 많았습니까? 작은 마을을 습격하는 것에 비해 수가 좀 많은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번에 왔던 이들보다 수가 훨씬 늘어서…….”

“저거 아냐?”

발터와 모나한은 모틸라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묘하게 낯익은 사내가 검을 허공에 붕붕 흔들며 영지민들을 위협하려고 하고 있었다.

“저거 그 용병 대장 아닙니까?”

“그렇지? 저기 로널드인가 로날드인가 하는 놈도 있다.”

모틸라의 말대로 빛바랜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이가 용병대장 뒤에서 검을 들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 그거였지? 로나와 닮은 로날드.”

“한 번만 더 그따위로 말하면 싸우자는 의미로 알겠어.”

모틸라는 모나한이 온 인상을 찌푸리며 하는 말에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다.

“나도 하도 어이없어서 기억하는 거거든?”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정말 죽여 버리고 싶어져서 기억하거든.”

“오.”

모틸라는 알 만하다는 듯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산적들이 용병을 고용한 걸까요?”

“그보다는 그냥 합류한 거 아냐? 이 주위는 작은 마을뿐이고, 이른 봄이라 먹을 것도 없는데 용병을 고용할 이들은 더더욱 없을 거고.”

“용병 일로 벌이가 안 되면 도적으로 변하는 놈들은 흔하죠.”

“저 정도 머릿수가 모이면 마을 몇 개는 더 털 수 있을 테고 말이야.”

“애초에 우리랑 길에서 만났을 때도 도적질하려고 다가왔던 것 같았고.”

모나한과 모틸라가 발터의 질문에 서로 말을 덧붙이며 대답했다.

발터는 그 대화를 들으며 미간을 구기다 못해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문질렀다.

“우리가 있으니까 딱히 걱정 안 해도 되잖아?”

“두 분 어느 정도로 강하신 건지……?”

“몰살을 원하는지, 그냥 쫓아내길 원하는지 물어볼 정도로?”

“……몰살이 좋겠습니다. 여기서 쫓아내면 다른 마을에 가서 도적질하겠죠.”

“뭐 그렇지. 저런 놈들이 행동하는 건 다 똑같으니까.”

모틸라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며 바닥에 마법진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모나한이 그 행동에 방해되지 않게 옆으로 물러나며 미간을 찌푸렸다.

“또 무슨 이상한 걸 배워 온 거야?”

“예전에 실리 만나서 배웠지. 이 마법진 위에 서서 발동시키면 불화살이 계속 나가. 장판 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멈춰 버리지만, 그 정도야 단점도 아니지!”

“……괜찮네.”

“배울래?”

“음, 알아 두긴 할게.”

“넌 옛날부터 마법 쓰는 거 별로 안 좋아하더라? 편한데.”

“마나 나가는 느낌이 싫어.”

“난 땀나는 게 더 싫어.”

모틸라가 하는 말에 모나한은 각자 취향이라고 말하고는 영지민들에게 안심하라는 이야기를 해 놓겠다며 사라지는 발터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네가 대량 학살해.”

“그렇게 말하니까 떨떠름해진다.”

“어쩌라고. 나는 지금 딱 한 놈을 죽이고 싶거든.”

“아하. 이해했어.”

모틸라는 아공간에서 꺼냈던 석궁을 넣고 검을 꺼내며 하는 모나한의 말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직접 칼질하려고?”

“원래는 담 너머에서 화살이나 좀 쏠 생각이었지만……. 직접 혀를 잘라 주고 싶은 놈이 있어서 말이야.”

“너무 잔인하게 하면 로나가 싫어할걸?”

“안 보여 줄 자신 있어서 괜찮아.”

“왜 이딴 놈을-”

“그 말 그대로 넘겨주기 전에 닥치지?”

모나한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담을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모틸라가 눈을 데굴 굴리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긴, 이만큼 오래 산 놈 중에 내숭을 안 떠는 놈이 어디 있고, 연기를 안 하는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특히 뱀파이어란 놈들은 내숭, 유혹, 기만 같은 것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써먹는 놈들 뿐인데.

모틸라는 굴리던 눈의 시선을 옆으로 옮겨 열심히 움직이는 발터의 모습을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진심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제 마음에 있는 연정이 사실이었으니.

그녀는 담을 넘어 도적들에게 다가가는 모나한을 보며 발밑에 그린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마법진이 붉은색으로 빛나며 타오르고, 두꺼운 로브와 모자 사이로 빠져나온 검은 머리카락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모틸라는 이런 괜한 보이기식 효과는 왜 넣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래도 역시 이 위에서 내 미모는 더 끝내줄 거라고 자화자찬하며 마법진을 가동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