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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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이라…….”

“로나, 로날드. 이름도 비슷하잖아요. 그렇지, 로나?”

죽이고 싶다.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죽이고 싶다. 친히, 손수, 온 마음을 다해 사망 선고를 내려 주고 싶다.

지금까지 훈련해 왔던 건 이때를 위함이 아니었을까? 모나한에게 배운 궁술이 지금 쓰라고 한 거였던 거지. 저 거지 같은 입에 화살을 박아 넣으라고!

“로나 너 설마…….”

모틸라가 충격을 넘어 경악하는 얼굴로 자신을 보며 중얼거리는 말에 로나가 ‘어디서 그런 쓰레기 같은 오해를 하는 거죠?’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험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빵 그만 먹고 싶어요?”

“잘못했어!”

모틸라가 머리를 필사적으로 저으며 대답했다.

떨어져 있어 그 말을 못 들은 용병대장이 잘됐다는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저희가 다음 마을까지 호위해 드리겠습니다. 고향 사람들끼리 할 이야기도 많을 것 같고요.”

“좋은 생각입니다, 대장. 안 그래도, 로나- 널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았어. 내가 마을에서 나올 때까지 너희 부모님에 네 걱정을 하고 있더라.”

로날드가 그 걱정에 참 마음이 아팠다며 가슴에 손을 올리고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팔자로 올리며 말했다. 여전히 눈썹이 신기할 정도로 잘 돌아가는 놈이었다.

“너희 언니들도 참 슬퍼해서……. 내가 많이 위로해 줬어.”

뭐, 시발? 너 우리 언니들한테 접근했냐? 아냐 아냐, 설마 그럴 리가. 내가 언니들한테 네가 얼마나 진상이였는지 수없이 말했는데. 그리고 언니들 다 결혼했잖아! 애까지 있잖아! 내가 조카가 몇 명인데!

그리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편지를 보냈는데, 뭔 헛소리야! 그걸 위해 박쥐가 아니라 새를 패밀리어로 만들려고 낑낑댔는데! 하다가 안 돼서 모나한이 새로운 패밀리어를 만들어서 도와주기까지 했는데!

“편지에 그런 내용 하나도 없었는데요?”

“……로나 네가 걱정할까 봐 그랬겠지. 그런 이야기는……. 뭐랄까, 나처럼 친한 사이와만 할 수 있잖아.”

그럴 리가. 언니들이 너랑 친해졌을 리가. 내가 너 욕을 얼마나 했는데, 너에게 내 이야기를 할 리가.

“그리고 너랑 내가 친했던 만큼, 나에게 하고 싶던 이야기가 많았던 거겠지. 우리- 그런 이야기 하면서 같이 차라도 마실까?”

마침 모닥불이 피운 것 같은데, 저기서 말이야. 혹시 밤이 무섭다면- 내가 지켜줄게.

“뭐 이 시발아?”

앗, 입 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결국 욕하고 말았어!

“로, 로나?”

“오-”

다행히 짓씹듯이 말해서인지 로날드는 여전히 잘생긴 척 웃고 있었지만, 옆에서 들은 모틸라가 눈을 거세게 깜박이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모나한은 속 시원하다는 듯이 감탄사를 뱉었고.

로나는 오랜만에 뱉은 욕설에 “착한 말, 고운 말, 따뜻한 말.”이라고 중얼거리며 반성하려 했지만, 사그라지지 않는 분노에 눈을 감고 겨우겨우 심호흡했다.

히히 후- 히히 후- 아, 잠깐. 이건 아기 낳을 때 하는 호흡 같은데? 아니? 아기가 아니라 분노가 튀어나올 것 같은데!?

아냐, 저딴 놈한테는 분노도 아까워!

“우선 모틸라.”

“으응?”

“친하지 않아요, 안 깊어요, 친구도 아니에요.”

“어어, 알겠어.”

“한 번만 더 그런 오해를 하면, 알죠? 두 번 다시-”

“빵이 없다! 응! 오해 안 할게!”

“좋아요.”

로나는 모틸라가 각 잡힌 모습으로 대답하는 걸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직도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로날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선 로날드 씨. 오랜만에 만나서 안 반갑고요.”

“……응?”

“근데 저희는 고향 친구도, 좋은 사이도 아니고, 그냥 빵집 사장과 손님이었을 뿐이었죠.”

“…….”

“제 가족들이랑 친한 건 믿기지도 않아요. 며칠 전까지 편지했는데, 당신의 이야기는 조금도 없었거든요.”

로나는 앞으로 한 발짝 나가서 단호한 얼굴로 말하고 모나한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오해받을 만한 말은 그만둬 주시겠어요? 여기 이 사람이 제 남편이라서, 괜한 오해는 받고 싶지 않네요.”

“아, 아니. 그-”

“그리고 호위는 필요 없고요, 보다시피 마법사가 둘에 이분은 기사님이라서.”

로나가 발터를 손짓하며 하는 말에, 발터가 허리춤의 검을 한번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움찔한 로날드가 옆에서 인상을 완전히 구긴 용병대장의 눈치를 보며 다시 뭐라도 말을 붙이려고 입을 열었지만, 용병대장은 그를 말리며 말했다.

“기사님도 계신다면야 저희는 물러나 보겠습니다. 저희가 고블린 무리를 쫓아내긴 했는데, 다시 나타날지 모르니 조심하십쇼.”

그는 걱정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비굴하게 말하고는 꾸벅꾸벅 인사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로날드는 그의 눈치를 보면서도 미련이 남았는지 마지막까지 느끼한 목소리로 로나에게 말을 걸었다.

“로나- 만약 마을에 돌아갈 일이 있으면 날 불러 줘. 난 이 주위에서 용병 일을 하고 있으니까.”

로나는 그 말에 로날드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표정을 찌푸리고 있었다.

저놈을 부르느니 차라리 마을까지 맨발로 걸어가겠다. 도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그것도 기사가 된다고 소리치던 놈이 용병? 지루한 시골, 별 볼 일 없는 마을 어쩌고 하더니 결국 뛰쳐나왔나?

남편이 있다는데도 왜 저따위로 행동하는지, 참. 아, 그러고 보니 고향에서 돈 많은 유부녀한테도 찝쩍거렸던가?

로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상점창에서 소금을 결제해 로날드가 서 있던 곳에 휙휙 뿌려 댔다.

“뭐 하는 거예요?”

“제가 살던 곳에서는 진상을 만나면 이렇게 했어요. 다시는 오지 말라는 뜻이죠.”

“……저도 한주먹 주세요. 뿌려야겠어.”

궁금한 얼굴로 다가왔던 모나한이 로나의 말에 손을 내밀며 말했고, 로나는 ‘너도 힘들었구나?’라는 표정으로 소금을 한 주먹 쥐여 주었다.

모나한은 온 정성을 다하는 표정으로 소금을 뿌려 댔다. 그걸로는 모자랐는지 손을 모으고 기도까지 했다.

“후. 제가 웬만해선 신관으로 있었던 적의 기도문을 꺼내지 않는데 말이죠.”

“저도 그 기도문 알려 줘요.”

“좋아요.”

로나는 모나한과 같이 진심을 가득 담아 기도문을 외우고 단호하게 돌아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모틸라가 ‘소금을 뿌릴 정도면 얼마나 부자였던 거야?’라고 물었지만, 로나는 알면 다친다고 말하며 넘어갔다.

그 말에 조금 시무룩한 얼굴을 하던 모틸라는 로나가 이걸로 넘어가자며 내미는 모카 쿠키에 환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어요?”

로나는 모틸라가 환한 얼굴로 쿠키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옆에 서 있는 발터가 뭔가 고민하는 얼굴을 하는 걸 발견하고 물었다.

“음, 이 주위에 용병이 할 일이 뭐가 있나 해서요.”

“말한 대로 고블린이라도 토벌하러 온 거 아닐까요?”

“봄이잖아요. 몬스터가 활동할 시기기도 하지만, 마을에 돈이 가장 없을 시기이기도 하죠.”

“음.”

“저들을 고용할 만한 돈이 있는 마을은 이 주위에 별로 없을 텐데.”

발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뚜렷한 이유를 찾진 못했는지 결국 볼을 긁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떠돌이일 수도 있으니까요. 몬스터를 잡아 파는 이들일 수도 있고.”

그는 자신이 괜한 것까지 고민한 것 같다며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했다. 로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모틸라가 쿠키 하나만 더 달라고 조르는 말에 넘어갔다.

“발터 씨는 이만 주무시는 게 좋겠어요. 어쩌다 보니 자는 시간을 훌쩍 넘겼네요.”

“저도 기사라서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저흰 뱀파이어라서 더더욱 괜찮아요. 가서 주무세요. 모틸라.”

“응?”

“이거 줄 테니까 발터 데리고 마차에 들어가요.”

“오, 딸기잼 쿠키! 알겠어! 발터, 가자!”

모틸라가 신나서 쿠키를 받고 발터를 데리고 마차로 들어갔다. 발터는 모틸라의 힘에 순종적으로 끌려가며 “안녕히 주무십시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손을 휙휙 흔들던 로나가 그들이 마차로 들어가자마자 자신이 덮고 있는 망토로 저를 휘감는 모나한의 행동에 고개만 들어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모나한이 그런 로나의 눈을 바라보며 웃다가 그녀의 이마에 작게 입 맞추고는 물었다.

“기분 괜찮아요?”

“으음…….”

“못생긴 데다가 이상하고 느끼한 걸 봤잖아요. 헛소리도 들었고요.”

로날드를 계속 못생겼다고 말하는 모나한의 말에 로나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모나한에게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솔직히 로날드의 얼굴은 수도에서도 통할 만큼 잘생긴 얼굴이었으니까.

“질투하는 거예요?”

“로나가 그놈에게 넘어갈까 하는 의심은 실낱만큼도 들지 않지만…….”

“않지만?”

“이상한 말을 하잖아요. 로나 기분 나빠지게. 내가 방금까지 열심히 기분 좋게 만들어 놓은 로나인데.”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억울하다는 듯이 로나의 머리에 제 이마를 비볐다.

로나는 언제나 제 기분을 살펴주는 모나한의 행동에 행복한 기분이 되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모나한에게 푹 기댔다.

“저기 모나한이 만들어 놓은 푹신한 곳으로 가요.”

“네?”

“그리고 수다도 떨고, 손장난도 하고, 불구경도 해요.”

로나가 꼼지락거리던 발끝을 박자에 맞춰 까닥거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모나한에게 안긴 채로 앞으로 걸었다.

“그러고 보니 복근 만지다 말았잖아? 그거 만지는 것도 다시 해야겠어요.”

“……얼마든지요.”

모나한이 로나를 폭 안은 채로 발맞춰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나쁠 때마다 만져도 돼요.”

“어…….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싶지만, 해도 된다면 사양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군요.”

“저도 기분 나쁠 때마다 로나의 볼을 만져도 될까요?”

“보통 가슴이지 않아요?”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싶지만, 해도 된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모나한이 ‘이게 웬 횡재지?’라는 목소리로 빠르게 대답했다.

로나는 그 빨라진 말투에 키득거리며 웃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뭐. 서로 물물교환한 걸로 치죠.”

로나는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모나한에게 안긴 채로 발맞추어 만들어 놨던 침상으로 걸어갔다.

발을 맞추어 침상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로나의 기분은 좋아진 지 오래였다. 모나한은 그녀를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내였으므로.

그도 그것을 눈치챘음에도 모나한은 로나가 말했던 것처럼 수다를 떨고, 손장난을 치고, 모닥불을 구경했다.

온밤 내내, 로나가 잠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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