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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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영지는 마차로 3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서 일행들은 느긋하게 마차를 몰았다.

발터가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모틸라가 자신들이 있으면 웬만한 몬스터들은 다가오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자 경계를 그만두었다.

마부석에 다 탈 수는 없어서 모틸라와 발터는 마차 안에, 로나와 모나한의 마부석에 타 있었다.

마차를 몰 줄 아는 이가 모나한밖에 없어서였다.

로나는 아침에 구운 쿠키를 마차를 모는 모나한의 입에 하나씩 넣어주며 주위를 구경했다.

그래 봤자 시골길에다가 아직 잎도 나지 않은 겨울나무들 뿐이었지만, 뱀파이어의 좋은 시력은 그 겨울나무 가지 끝의 연둣빛과 아직 터지지 않은 꽃망울의 여린 솜털을 구경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인간이었을 때보다 더 섬세하게 보이는 세상은 로나에게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엄청난 화질의 카메라로 찍은 근접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는 기분.”

로나가 중얼거리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모나한이었지만, 그녀가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라서 모나한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화질이나 카메라 같은 들은 적 없는 단어의 뜻을 물어봤다.

로나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면, 모나한이 이 세계의 비슷한 것을 말하는 것은 그들의 대화에 오랫동안 해 온 패턴이었다.

눈이 녹아서 질척거리는 길이긴 했지만, 추운 날씨에 풀들이 죽어 진흙 빼고는 마차 바퀴를 걸리적거리게 하는 건 없었다.

봄이 가까워졌다고 해도 아직은 겨울이라서 해는 빠르게 땅 아래로 사라졌다.

일행들은 완전히 밤이 찾아오기 전에 그나마 마른 땅을 골라 야영할 준비를 했다.

“발터 씨와 모틸라 씨가 마차에서 주무세요. 저랑 모나한이 밖에서 잘게요.”

“다 같이 안에서 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직 밤에는 추운데.”

“저희는 추위를 안 타거든요.”

“그럼 발터만 안에서 편하게 자는 게 좋지 않아?”

모틸라가 주워 온 장작을 모닥불 옆에 내려놓으며 하는 말에 대화를 나누고 있던 로나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커플 사이에 끼여서 주무시고 싶으신지?”

“아니, 마차 안에서 잘래.”

“그래요.”

모틸라는 로나의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마차 안에서 자겠다고 말했다.

“저녁을 먹고, 각자 잠자리로 헤어지죠. 내일도 해가 뜨자마자 출발해야 하니까.”

“좋아. 저녁은 뭐야?”

“고기 꼬치라도 만들어 볼까 하는데요. 이왕이면 대파도 구워 먹고. 가래떡도 구워 먹고.”

“가래떡이라면 저번에 쌀로 만든 그거 말하는 거지? 그거 진짜 이상한 식감이더라.”

“떡을 처음 먹어 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고 하더라고요. 구워 먹으면 속은 촉촉하고 겉은 바삭해서 맛있어요.”

“로나 네 능력은 평소에도 최고지만 여행할 때 정말 최고다. 어디서든 신선한 재료를 얻을 수 있다니.”

“모나한도 그런 말 하더라고요. 심지어 물도 나오니까 더 최고라고.”

“맞아!”

모틸라가 매우 동감한다고 말하며 모닥불 옆에 놓아둔 돌 위의 먼지를 대충 털어 버리고는 앉았다.

모닥불 주위에 요리하기 위한 화덕을 만들고 있던 모나한이 그런 모틸라의 모습을 보며 비웃더니 아공간에서 작은 나무 의자를 꺼내어 내려놓았다.

“로나, 여기 앉으세요.”

“헐. 내 것은?”

“‘로나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하나만 준비했다’라고 하고 싶긴 하지만, 전 알고 있죠.”

“뭘?”

“숫자대로 준비하는 것이 더 높은 점수를 따리란 걸.”

모나한이 아공간에서 사람 수대로 준비한 나무 의자를 나눠 주었다.

모나한이 자신의 의자만 꺼낸 것에 당황하던 로나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고는 모나한이 내려놓은 의자에 앉아 상점창에서 여러 요리재료를 결재해 꺼내었다.

“소고기랑 돼지, 닭고기 있어요. 여기 파랑, 가래떡은 아공간에 넣어놨었고. 발터 씨, 파 좀 잘라 주실래요?”

“예, 제가 하겠습니다.”

“꼬챙이에 고기 끼우는 건 내가 할래!”

“양이 많으니까 같이 해요.”

네 명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느긋하게 수다를 떨면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어느새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발터와 모틸라는 잘 자라고 말하며 마차 안으로 사라졌다.

로나가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며 마시고 있던 따뜻한 레몬차를 홀짝였다.

공해 없는 세계답게 별이 한가득 뜬 하늘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았다.

로나가 차를 마시며 별을 구경하는 동안 모나한이 남은 장작을 모닥불에 집어넣었다.

“이 정도면 밤 동안 꺼지지 않을 거예요.”

“이젠 추위 안 타는데.”

“불 보고 있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며 의자를 다시 아공간으로 집어넣고 지푸라기를 꺼내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두꺼운 천을 깔아 푹신한 간이 침상을 만들었다.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완성된 잠자리에 로나는 입을 쩍 벌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건 또 언제 준비한 거래……?”

“로나에게 사랑받기 위해 철저한 준비와 노력을 아끼지 않거든요.”

“이쯤 되니까 좀 무서운데요.”

“무서워도 편하면 좋다고 생각하시잖아요.”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며 침상 위로 올라가 여기 안기라며 양팔을 벌렸다.

두꺼운 겨울 망토 안으로 모나한이 입은 셔츠가 보였다.

로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다 마신 찻잔을 내려놓고 모나한의 망토 안으로 풀썩 주저앉아 모나한의 가슴에 등을 기댔다. 모나한이 로나가 품속으로 들어오자마자 망토를 여미며 로나를 꼭 끌어안았다.

“음, 하나도 안 따뜻하군.”

“뱀파이어라서 어쩔 수 없네요. 다음엔 따뜻한 물주머니라도 미리 안고 있어야겠어요.”

“괜찮아요, 이제 추위 안 타니까.”

로나는 그렇게 말하며 온몸에 힘을 풀었다.

부드럽지도 폭신하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딱딱하고 차가운 데다가 은근슬쩍 손을 잡으려 하는 음흉함이 가득한 품이었다.

“로나는 어떻게 뱀파이어가 돼서도 손이 따뜻해요?”

모나한이 제 욕심대로 로나의 손을 잡고 그녀의 옆머리에 볼을 비비며 물었다.

로나는 그 물음에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금까지 따뜻한 찻잔을 들고 있었으니까요.”

“이럴 수가! 최고의 손난로를 가진 기분인걸? 어떻게 이렇게 따뜻하지?”

“따뜻한 차를 마셨으니까요.”

“정말 신기하다!”

이 자식. 그냥 따뜻하다는 핑계로 손을 만지고 싶은 것뿐이지?

로나는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리다 못해 제 볼로 가져가서 비벼 대는 모나한의 모습에 떨떠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니지만 당할 때마다 황당하고 오글거렸다.

“버터에 소금 좀 쳐요. 짠맛이 부족한 것 같으니까.”

“망토 벗어 주면요.”

“네?”

로나의 물음에 모나한은 그녀가 입고 있는 두꺼운 갈색 망토를 톡톡 건드렸다. 상당히 두껍고 무거운 재질인데도 뱀파이어가 돼서 별 불편함을 못 느끼고 있는지, 로나는 꽁꽁 싸맨 그대로였다.

“로나하고 닿아 있는 면적이 부족해요. 로나가 잘 느껴지지 않아요.”

“뭐라는 거야.”

로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모나한의 망토 안에서 꼬물거리며 자신의 망토를 벗었다. 의식하지 않을 때는 몰랐는데, 의식하고 보니 꽤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모나한은 자신의 망토 안에서 움직이는 로나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몸을 몇 번 움찔거렸다.

망토를 벗느라 스치는 신체가 셔츠 한 장을 경계로 아주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음, 안에 얇은 옷을 입은 자신을 칭찬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후회해야 하는 건지.”

“왜요?”

“얇은 셔츠 위로 로나가 잘 느껴져서요.”

로나가 그 말에 망토 사이로 모나한의 하얀 셔츠를 내려다보았다.

모나한은 자신의 배를 바라보는 로나의 시선을 느끼다가, 문득 떠오른 기억에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만져 볼래요?”

“네? 뭘요?”

“복근요, 예쁘게 갈라져 있는데.”

로나는 그 말에 반사적으로 미간을 와락 구겼다가 “아!” 하고 알아차렸다는 얼굴을 했다.

“이 대화 예전에도 한 적 있죠?”

“그때는 ‘보여 줄까요?’라고 물었지만요.”

“만지는 걸로 진화한 거예요?”

“우린 관계가 깊어진 만큼 진화한 거죠.”

로나는 모나한의 말에 “흠.” 하고 짧게 소리를 내며 모나한을 바라보다가 사양하지 않고 그의 셔츠 위에 손을 ‘턱!’ 올렸다.

“딱딱하고 울퉁불퉁.”

“셔츠 안으로 만져도 되는데.”

“……됐어요.”

“말이 나오기 전의 시간을 보니 망설임이 좀 있었나 보죠?”

“조금? 그보다 지금까지 그 대화를 기억하는 게 신기한데요? 전 모나한이 그 말을 할 때까지 잊고 있었는데.”

“그러게요.”

모나한이 로나의 말에 턱을 괴며 과거를 돌아보는 표정을 하더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신기하긴 해요. 로나를 만난 지 이제 2년 조금 넘었는데.”

“와, 그거밖에 안 됐나? 한 60년은 같이 산 거 같은데.”

“저도 그래요. 그 오랜 세월 동안 쌓은 기억보다 로나랑 쌓은 기억이 더 많은 거 같을 정도예요.”

잊어버린 것이 많아서 더 많은 게 정말일 수도 있고요.

“로나와의 기억은 잊어버릴 수 없는 것만 많아서, 사라지지 않고 쌓이기만 하네요.”

그리고 전 그게 정말 좋아요.

모나한이 아주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큼 감미로운 웃음도 함께였다.

로나는 그 웃음을 마주 보다가 느리게 다가오는 모나한의 휘어진 선홍색 눈동자에 천천히 눈을 감고 입술을-.

“튀김 냄새.”

“음.”

로나가 하는 말에 모나한이 다가오던 몸을 멈췄다. 로나가 눈을 뜨자 순식간에 처량하고 슬픈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그러나 로나는 그런 모나한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튀김 냄새가 났던 쪽을 바라보았다.

“그냥 튀김 냄새도 아니고 한 3일 실온에 놔둔 튀김 냄새가 나요.”

눅눅해지다 못해 밀가루하고 기름은 분리되고 안의 고기는 말라붙은 끔찍한 튀김 냄새가 맡아져서 로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거랑 싸구려 초콜릿?”

초등학교 앞에서 파는 100원짜리 초콜릿. 화약 약품 냄새가 심하게 나서 한 번 먹으면 두 번 다시 먹고 싶지 않아지는 초콜릿의 냄새가 났다.

모나한은 온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킁킁거리는 로나의 주름진 콧잔등을 톡톡 건드리며 한숨 쉬고는 했다.

“저에게는 뒷골목 노점에서 파는 시궁쥐 구이 냄새랑 싸구려 설탕 냄새네요.”

“으음.”

“이러면 보통 고블린이랑 인간의 피 냄새예요. 가까운 곳에 싸움이 있었나 보죠.”

모나한이 아쉬움과 방해한 자들을 향한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을 힐끗 바라보았다가 마차 안의 모틸라가 나오려고 하는 소리에 몸을 움직였다.

모나한의 아랫입술을 살짝 핥고 장난스럽게 이로 깨물어 당겼다. 그러고는 재빠르게 떨어져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애들아! 피 냄새 맡았어?”

그러고는 모틸라가 마차에서 나오면서 하는 말에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와……. 로나.”

모나한이 물렸던 입술을 손으로 가리고 작게 로나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입맞춤에 부끄러워했던 사람은 어디 가고, 유혹 스킬을 쓰는 것 같은 이만 남았다.

“로나, 제가 유혹 스킬 쓰지 말랬죠.”

“정말요?”

“아뇨. 다음에도 꼭 써 주세요.”

“그래요.”

로나가 입꼬리를 늘려 잔망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모틸라에게 걸어갔다. 그 뒤를 비실거리는 입가를 손으로 가린 모나한이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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