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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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모나한의 박력에 흠칫대며 그만하라는 말도 못 하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제일 화가 나는 건 뭔지 아십니까!?”

“아, 아뇨?”

“모틸라에 대한 모든 뱀파이어들의 반응입니다! 모틸라가 사고치고 울상이 돼서 오면, 다들 반응이 이겁니다! ‘우쭈쭈, 우리 모틸라 그랬쪙?!’”

“아…….”

로나는 물음표에 분노를 담아 소리치는 모나한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모나한은 생각만 해도 화가 난다는 듯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모틸라는 아주 고혹적이고, 우아하며, 도도한 절벽 위의 꽃 같은-”

어라, 칭찬?

“척하는 멍청이일 뿐입니다!”

응, 아니구나.

“다들 모틸라만 보면 명절에 손주 보는 노인네들처럼 군다고요!”

어어, 그러니까 모나한 너 그거구나. 둘째 오라버니. 둘째 오빠.

“그러니까 얘가 버릇이 나빠지지!!”

모나한은 그렇게 외치고는 진정하려는 듯이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모틸라를 첫 왕으로 추대할 때 있던 뱀파이어의 숫자는 열 명을 겨우 넘겼습니다. 처음엔 괜찮았지만, 점점 무리수가 늘어가면서 일의 양도 많아졌죠. 그리고 모틸라는 도망가기 시작했어요.”

무리도 통솔해야 하는데, 자기는 그런 거 싫다고 도망만 다니고…….

서류 처리 하기 싫다고 창문을 뛰어넘고, 몰래 남의 책상에 올려놨다가 들키고…….

“근데 그때도 다들 모틸라를 우쭈쭈하니라 바빴어요! 그리고 그놈들이 이제 원로가 됐지!”

거긴 모일 때마다 모틸라 둥기둥기밖에 안 해!

“그러니까 얘가 거기만 갔다 오면 떼쓰고 난리지!”

으응. 그거지?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갔다 와서 한동안 제멋대로 구는 아이.

“초창기에 버릇을 잡았어야 했는데!”

모나한이 정말로 원통하다는 듯이 외쳤다.

중간에 진정하려고 심호흡을 했던 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였다.

거친 호흡에 들썩이는 어깨에 분노가 가득했다.

정말 모틸라를 돌보면서 많이 힘들었구나 싶었다.

“사실 발터에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것도 모틸라가 고생 좀 했으면 해서 그랬어요.”

“으으음.”

“정확히는 해피엔딩이 예정된 고생 좀 했으면, 한 30분 정도만.”

뭐라고 하기에는 참 미묘한 짓이라 로나는 조용히 입만 다물었다.

“모틸라하고 발터 씨의 관계를 보니까, 발터 씨가 감정을 드러낼 때 모틸라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그런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한 30분 정도만 어쩔 줄 몰라 했으면 좋겠다 싶었죠.”

당황도 좀 하고, 곤란해하기도 하고 그랬으면.

괜히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했다가 역풍 맞아서 사고 쳤다고 수습해 달라고 오면 실컷 놀리다가 수습해 주고 싶었다.

“발터 씨가 좀 불쌍하긴 했는데, 로나가 바로 말릴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냥 못되게 굴었어요.”

“갑자기 슬픈 얼굴로 오해하게 만들기에 깜짝 놀라긴 했죠.”

“저한테 한번 속았다가 로나한테 바로 진실을 알고, 모틸라한테 갔다가 두리뭉실한 표현에 화내길 바랐는데.”

“……생각보다 철저한 설계였군요?”

“발터 씨의 성격을 깜박했어요. 그런 걸 받아 줄 줄이야. 괜히 사귀는 게 아니었다 싶었죠.”

모나한이 실패해서 아쉽다며 로나의 어깨에 이마를 묻고 징징거렸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의 회색 머리카락을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괜히 연인 사이에 끼는 거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기에는 앞으로도 많이 끼어들게 될 예정 아닌가요?”

“……그렇긴 하죠. 시스템이 원하니까.”

“한식을 얻어야 하니까.”

로나와 모나한이 허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대화했다.

“거의 대충 얻었다고 생각하다가도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한식이 떠오른단 말이죠.”

“예를 들면요?”

“치킨, 피자, 짜장면, 짬뽕, 수육, 곰탕, 해장국, 육개장, 비빔면, 냉면, 돈가스, 카레, 떡볶이, 라면-”

“잠깐잠깐, 로나. 이러다가 밤새우겠어요.”

“밤샐 동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럴 수가, 방금 대충 얻었다고 한 말을 취소해야겠어! 신에게는 아직 수백 개의 한식이 남아 있소!

“근데 여기 오래 머물게 될 것 같잖아요. 그럼 한식 레시피는 한참 뒤에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모나한이 하는 말에 로나가 좌절한 얼굴로 대답했다.

“맞아요. 모틸라는 봄이 되면 떠나겠다고 하고 있지만…….”

“무리죠. 지금 하는 것만 봐도 발터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이미 뱀파이어인 것도 다 들켰고요.”

“맞아요. 이제 어떤 시련이 닥칠지 모르겠지만. 로나가 있으니까 잘 돌파하겠죠.”

“……답답한 거 싫어. 착각물 싫어.”

“네. 로나 때문에 돌파할 거예요. 그럼 이제 로나의 한식은 저 멀리-”

“와. 너무 슬프다.”

로나는 “발터를 끌고 가는 법이 없을까? 영주님이라서 안 가려나? 납치해? 아니면 모틸라를 버려?”라고 중얼거렸고, 모나한은 옆에서 “모틸라를 버리는 걸로 하자.”라면서 부추겼다.

이 자식. 얼마나 모틸라가 싫은 거야? 애증의 남매냐?

“뱀파이어한테 짧은 시간일 수도 있죠. 우린 오래 살 거니까.”

“아직 뱀파이어의 시간관념에 익숙하지 않은 저는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고요.”

특히 전생 한국인, 빨리빨리 한국인, 효율 최고 한국인인 나에게는 무리다!

“역시 모틸라를 버려야 하나?”

“아공간을 가득 채워 주고 떠나는 건 어때요. 우리가 한 번씩 들르면- 아니다, 급한 뱀파이어가 와야지. 모틸라가 아공간 빌 때마다 우릴 찾아서 오라고 해요.”

모나한은 자기가 최고의 의견을 냈다며, 꼭 모틸라를 버리자고 이야기하며 로나의 어깨를 주물렀다.

침상에서 첩이 황제의 어깨를 주무르며 음모를 꾸미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어차피 모틸라 성격상 한곳에 묶여 있는 걸 싫어하는데, 로나 만나면서 바깥바람 좀 쐬고 그러면 좋잖아요.”

“음, 그런가?”

“우리도 단둘이 있는 시간이 늘 테고. 모틸라 신경 쓰느라고 이것 봐! 어깨도 이렇게 뭉쳤네!”

뱀파이어는 어깨 안 뭉치잖아.

“맨날 방에 방음 마법 걸기고 힘들고, 스킨십도 줄고.”

그건 늘지 않았어? 스킨십 엄청나게 는 것 같은데? 너 손이 이곳저곳 다 오가던데?

“로나, 모틸라 버리고 저랑 같이 여행 가요. 단둘이요.”

소첩이 폐하가 걱정돼서 그렇사와요. 이리 어깨도 굳으시고, 하품도 많아지시고. 이게 다 모틸라 그 아이 때문 아니겠어요.

“그래도 모틸라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물론 60년이긴 하지만 뱀파이어로 치면 짧은 시간-”

“사랑에 빠지면 하루하루 특별하고 길어지잖아요. 모틸라도 그러겠죠.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버려요! 내팽개쳐요!”

“흐음……. 그래도 둘의 대화가 답답해서 걱정되던데. 아닌가? 이거 오지랖인가?”

“로나가 원하면 뭐든지 참견해도 되지만……. 전 단둘이 있고 싶을 뿐이에요. 이건 어떨까요?”

“어떤 거요?”

“모틸라 이야기 끝나자마자 여행을 간다.”

“응?”

“그리고 제가 최고급 스파를 즐기게 해 드린다.”

“어떻게요? 뱀파이어가 되면 무리라면서요.”

“배웠거든요.”

“모나한이 마사지를요?”

“네. 로나를 위해서.”

“……콜!”

모틸라보다야 마사지가 중요한 거 아니겠어? 그거 한번 받아 보니까 참 시원하고 좋더라고. 아주 중독되고 끝내주더라고.

모틸라? 알 게 뭐야. 자기가 배고프면 나 찾아오라, 그래! 찾아오면 빵 준다, 그래!

모나한 이 자식, 예나 지금이나 유혹 참 잘하는구먼!

로나와 모나한은 극적인 타결을 기념하여 힘차게 악수했다.

“지금도 해 드릴 수 있지만, 여긴 솔직히 최고급 마사지를 위한 향유도 없고, 화장품도 없고-”

“네, 네.”

“알죠? 최고는 작은 것에서 차이가 나는 법.”

“그럼요! 잘 알죠!”

“여기서 나가서 유명한 휴양지로 가요. 그럼 제가 풀코스로 대접할게요.”

“하- 상상만 해도 두근거린다.”

로나가 기대에 찬 눈을 하며 말했다. 뱀파이어가 되면 최고급 스파를 다시 맛보지 못한다는 게 너무 슬펐는데, 모나한 이 자식! 날 유혹하기 위한 노력을 조금도 멈추지 않는구나! 잘생겼다! 멋있다! 사랑한다!

“모나한이랑 결혼할래.”

“프러포즈에 답은 이미 받았죠.”

“내 남편 최고다.”

“그렇죠?”

모나한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웃자 로나가 박수를 쳐 가며 그를 띄워 주었다.

콧대 높이고, 어깨 높여서 아예 비행기 타고 날아갈 정도로 띄워 주마! 이렇게 멋있는 놈한테 내가 못 할 게 뭐람!

“원하신다면 오늘 밤에도 해 드릴 수 있는데.”

“마사지요? 좋죠!”

“맞아요. 향유는 없어서 일반 기름을 써야겠지만.”

“제가 상점창에서 결제할게요! 올리브유 정도는 있으니까, 그거 써요!”

“좋아요. 로나 허리 아프게 되면 해 드릴게요.”

“와, 정말요? 안 그래도 요즘 자기 전에 허리가 아파서…….”

로나는 말하다가 흠칫 굳었다. 그러고는 모나한을 언짢음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제 허리 통증의 범인은 당신이잖아요.”

“음. 반박할 말이 없군요.”

“지금 그 말은 오늘도 제 허리를 아프게 할 예정이라는 소리잖아요.”

“오, 로나. 예언가 같아요!”

모나한은 신기하다며 뻔뻔한 얼굴로 감탄했다. 그러고는 로나가 뭐라고 한 소리 더 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이 벌써 깜깜해졌네요. 자러 가야겠어요.”

“정말 자는 게 맞는 거죠?”

“잠에는 여러 가지 잠이 있죠.”

“전 쿨쿨 자는 잠을 말하는 거예요.”

“전 아니에요.”

“뭐, 이 자식아?”

“전 강렬한 잠을 잘 거예요.”

“꿈도 크구나!”

“로나가 협조하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꿈이죠.”

“아니. 협조 안 할 건데?”

“흐음. 로나도 알다시피 제가 유혹을 꽤 잘하거든요. 사실 아주 잘하죠.”

넘어올 수밖에 없게 해 드리죠.

모나한이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로나가 어이없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모나한은 로나의 표정을 보며 키득키득 웃더니 부엌의 불을 꺼 버리며 더욱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부엌 불도 껐고, 장사도 끝났네요. 이제 방에 가야죠?”

“이 뻔뻔한 자식.”

“저 그거 잘하는 거 알고 있잖아요.”

“하, 젠장. 뻔뻔하게 웃는 거나 해 봐요. 그 얼굴이나 오랜만에 보고 싶으니까.”

모나한은 그 말에 로나 앞에서 수없이 한 웃음을 지었다.

눈을 휘고, 입꼬리는 씨익, 코끝을 찡긋. 로나가 그 웃음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과 비슷한 웃음을 내뱉고는 검지를 들어 찡그린 코끝을 꾸욱 눌렀다.

“알겠어요. 그거 해요.”

“강렬한 잠요?”

“네네. 강렬한 잠, 아픈 허리와 마사지.”

“하- 상상만 해도 두근거린다.”

모나한이 로나가 최고급 스파를 상상하며 했던 말을 따라 하자 로나가 어이없어하며 방으로 향했다.

자기가 수없이 모나한의 표정을 따라 하려다 실패한 것과 다르게, 제 표정과 똑같아서.

그 표정 후에 짓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웃기기만 해서.

로나는 결국 어이없다는 표정을 포기한 채 크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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