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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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평생 가지고 싶어요.”

“저를요?”

로나가 모나한과 잡은 손을 살짝 흔들며 물었다.

모나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을, 당신의 사랑을.”

영원히 배우지 못했을 것을, 당신이 가르쳤으니까.

가르친 사람에게 그것보다 더한 것들을 드리고 싶어졌으니까.

“부드러운 사랑을 주세요.”

“주고 있어요.”

“평생을 가지고만 싶네요.”

“그럴 거예요.”

“……제가 감히 탐해도 될까요?”

“그럼요. 제가 허락했는걸요.”

아주 부드럽고 어딘가 조금은 슬픈 선문답이 둘 사이에 오갔다.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글쎄요. 이런 순간이 아주 많아지면-”

“그 끝자락조차 기억할걸요?”

“기억력에 자신이 있으신가 봐요?”

“잊어버리려 노력한 게 많거든요. 잊어버린 것도 많고요.”

그렇게 비워 버린 것만큼 전부 채울 수 있겠죠.

“따뜻한 색감으로 채워 주세요. 부드러운 색감요.”

“그렇도록 노력할게요.”

“제 옆에 로나가 있어 주기만 하면 돼요.”

“그럴 수 있을 때까지, 그럴게요.”

그러니까, 영원을요.

로나가 낮게 속삭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것들을 모아.

“모나한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날한시에 끝날 그 순간까지.”

“저는 감히 그 순간 너머도 바라고만 싶어요.”

“그래요. 할 수 있다면, 그 이후에도.”

“저에게 주실 건가요?”

“……모나한에게 줄게요.”

당신에게 줄게요.

영생에 가까운 시간도, 어쩌면 그 끝을 넘어 알 수 없을 시간들까지.

“……로나.”

모나한이 시선 끝에 꼭 잡은 손만을 보며 속삭였다.

금방이라고 사그라들어 버릴 것 같은 목소리였다.

참지 못한 눈물이 선홍색 눈동자에 맺혀 여리게 반짝였다.

로나는 모나한의 말대로 이 순간, 이 시간, 이 장면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어느 순간부터 가장 기다리게 되었던 말을.

가장 원하고야 만 말을.

“저랑 결혼해 줄래요?”

농담으로 시작한 오후, 아쉬움으로 흘렀던 색들, 조금은 슬펐던 선문답.

로나는 그 끝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정해 놓았던 대답을 꺼냈다.

꼭 그렇게 말하고야 말 것이라고 정해 놓았던 대답을.

“네. 좋아요.”

* * *

로나는 모나한이 아공간에서 반지를 꺼낼 거라는 건 아주 오래전부터 예상하였다.

아공간이 아니더라도 저 철두철미한 남자는 이미 그것을 준비했을 거라고.

제가 뱀파이어였던 시절에는 조금 어려웠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이었던 시절에는 자신의 눈을 피하기 아주 쉬었을 테니, 그 시간 어딘가에서 준비했겠지.

그러나 이렇게 그가 자신의 갈색을 좋아할지는 몰랐다.

“갈색 보석이네요.”

“토파즈예요. 가운데가 갈색 토파즈, 양옆의 두 개가 다이아몬드.”

꼭 갈색 보석을 넣고 싶었거든요.

모나한이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로나는 그 반짝이는 갈색을 보다가 제 네 번째 손가락에 있는 반지로 시선을 옮겼다.

모나한과 꼭 닮은 회색이 거기서 반짝였다.

“선홍색은 어디 갔어요?”

“그건 우리 두 눈에 있으니까요.”

“생각보다 화려하진 않네요?”

“화려한 반지를 드리는 순간 목걸이가 될 것 같아서요. 반죽하는 데 방해되잖아요.”

“그렇죠.”

“마감처리를 매끈하게 했어요. 반죽하더라도 묻지 않도록.”

안쪽에는 서로의 이름을 새기고요.

모나한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로나의 네 번째 손가락과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좋아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렇죠?”

“평생 끼고 있어야겠다.”

“좋네요.”

정말 좋아요.

모나한이 완전히 풀어진 얼굴로 속삭였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의 얼굴을 보다가 제 얼굴도 똑같을 것 같아 조금 웃고는 그의 이마에 제 이마를 대었다.

“지금이 결혼식은 아니지만.”

“네, 로나.”

“하고 싶어요. 맹세의 키스요.”

아니면, 그냥 키스라도.

“어떤 맹세라도 해 드릴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아도 돼요. 영원은 이미 있으니까.”

“이미 드렸죠.”

“이미, 가졌죠.”

로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제 이마와 모나한의 이마가 문질러지는 느낌에 한 번 더 장난스럽게 비비다가 아주 가까이 있는 선홍색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이 아련한 선문답 계속할 거예요?”

“그럼요?”

“전 이제 침묵을 원하거든요.”

“서로 입을 막아 버리는 걸로요?”

“그래요. 그걸로요. 그걸 원해요.”

로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나한이 계속 참았다는 듯이 입술을 닿아 왔다.

그동안 한껏 부드러웠고 장난스러웠던 것과 다르게 조금은 다급한 움직임이었다.

참은 만큼 매달리고, 참은 만큼 집요했다.

어디에 그런 욕망을 숨겼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뜨겁게 쏟아져 내렸다.

땋은 머리카락 사이로 커다란 손이 들어와 목덜미를 부여잡는 것도, 참지 못한 손이 소파 등받이를 부여잡아 결국 밀어 버린 것도.

그 힘에 소파에 앉아 있던 로나의 몸이 뒤로 넘어가는 것도.

갈색 머리카락이 깔끔히 묶인 뒷머리가 소파에 눕혀지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그 위에 올라탄 모나한이 참기 힘들다는 듯이 로나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낮게 신음한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모나한은 부족하다는 듯이 입 안을 전부 핥아 내리고, 로나의 혀를 뺏어서 잘게 깨물고, 그게 미안하다는 듯이 진득히 비볐다가, 입천장을, 이 뒤를 질척이다가.

이 이상은 위험하다는 듯이 물러나다가, 온몸이 붉게 열이 오른 로나가 매달리자 참지 못하고 다시 다가가고.

모나한은 제 남은 실낱같은 인내심을 붙잡아 자신의 몸으로 로나의 몸을 누르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 이상 닿으면 멈출 수 없을 게 분명해서.

그러나 실낱같은 인내심은 두 사람이었고, 한쪽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라서.

모나한이 내리누르지 않은 만큼, 로나가 올라가 몸을 붙였다.

그 감각에 모나한이 이를 악문 채 거의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침대로, 가고 싶어요.”

간신히 떨어진 입술 사이, 지독한 욕망으로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로나가 그 떨어진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떼고,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질척하게 빨아당기며 대답했다.

“아니더라도, 상관없어요.”

그 말에 옷자락 사이로 차가운 손이 파고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 * *

로나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상의는 단추 몇 개로 잠그고, 치마는 통으로 발목 아래서 살랑거리는.

그래서 완전히 벗기기 어려운.

모나한은 질척이며 섞였던 입술에서 떨어져, 로나의 귓가에 잘게 입 맞추고, 귓불을 약간 아프게 빨다가, 아픔을 위로하듯 혀를 뭉갰다.

그 혀가 목선을 타고 내려가 지분대고, 제가 한번 물었던 그 부분에 코를 비비다가, 부족하다는 듯이 옅게 물어 대고.

어느새 풀어 버린 단추 사이 가슴골에 아프지 않게 물었다가 핥고.

그러고는 욕망을 내뱉듯 한숨 쉬었다.

떨리는 입술이 예민해진 감각 사이로 지독하게 느껴졌다.

로나는 자신도 모르게 모나한의 위팔을 잡았다가 미끄러졌다.

간신히 잡은 옷자락이 강한 힘에 못 이겨 투둑- 조금 찢어졌다.

그 소리에 놀란 로나가 감았던 눈을 뜨고 모나한을 바라보는 순간, 모나한이 상체를 들어 올렸다.

언제나 깔끔했던 선홍색 눈동자가 이미 잔뜩 흐려진 채였다.

모나한은 로나를 지분거리느라 묻었던 입 주위에 체액을 손등으로 느리게 흩었다.

어느새 맺힌 땀도 함께였다.

로나는 모나한의 손등에서 뭉개지는 그의 붉은 입술, 가려지다 드러나는 짙은 선홍색 눈을 홀린 듯이 바라보다가, 어느새 그가 제 다리 사이에 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벅지까지 올라간 치맛자락을 제 손으로 쥐기도 전에, 모나한의 손이 치마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허벅지를 잡은 손은 분명히 차가워야 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뜨겁다.

밀색 다리가 하얘진 지 오래인데, 이상할 정도로 붉었다.

온몸에 열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모나한의 입술이 닿는 곳마다 그 열이 지독히 강해지기만 했다.

무릎 위에 숭고하다는 듯이 닿는 입술도, 이내 참지 못하고 뭉개진 입술 사이로 흐르는 낮은 신음도, 살짝 아프게- 그러나 커다란 쾌감으로 변하도록 무는 행위도.

무릎 옆을 타고 내려가 뒤를 습하게 빨아 대다가 이내 허벅지 안쪽으로 내려가는 혀도.

어지러웠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나한, 모- 나한.”

로나는 지독한 어지러움 속에서 무언가를 부여잡듯이 모나한의 이름을 불렀다.

욕망으로 뜨거워진 귀 어딘가로 평소보다 짙은 목소리가 대답한 것 같기도 하다.

로나는 열기를 쫓으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흔들었다.

모나한이 그러지 말라는 듯이 턱을 부드럽게 붙잡고, 잘게 입 맞추다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듯이 다시 파고들었다.

허벅지 바깥쪽을 잡았던 손이 어느새 안쪽을 매만졌다.

그의 입술이 닿았던 범위를 넘어서, 그가 남긴 열꽃 주위를 넘어 전부.

입술을 닿기 위해 모나한이 다시 올라와서 그런가, 로나의 다리 사이에 모나한의 몸이 실렸다.

뜨거워진 부위가 닿아 끈적하게 내리눌렀다.

선연한 욕망을 전혀 숨기지 않은 채였다.

그 모든 행위 동안 입술이 떨어진 적이 없었다.

원하는 것은 아픔이 아니라 쾌락이라, 그건 둘 다여야 함이 분명하므로, 모나한은 오랜 시간 진득하기만 했다.

참을성이 있는 자는 아니었지만, 원하는 얻기 위해 참을 줄은 아는 자였다.

그래서 아픔은 없었고, 시야는 이내 흔들렸다.

잔뜩 흐려진 시야에서 천장, 햇살, 커튼인지 모를 것, 모나한의 회색 머리카락, 간간이 맞춰 오는 선홍색이 전부 흔들렸다.

그가 몇 번을 자신의 이름을 불렀는지 모르겠고, 자신이 몇 번을 그의 이름을 불렀는지 모르겠다.

그게 얼마나 지독히 끈적거렸는지도.

로나는 제 시야에 들어왔던 흐린 빛이 환한 색에서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짧게 주황색이었던 것을, 마침내 새까맣게 내려앉았던 것을 점멸하듯 기억했다.

로나는 드디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시야에 언제부터인가 없어졌던 옷자락을 찾다가 포기하고, 언제부터인가 뒤엉켰던 살갗에 이마를 대고 말했다.

참을 수 없이 흘렀던 신음에 잔뜩 쉬어 버린 목소리로.

“부드러운 사랑……. 안 줄 거야.”

강하고 힘세고 긴 뱀파이어라더니, 이건 너무하잖아.

“아하하. 이미 맹세했잖아요.”

“왜 나만 목소리 나갔어. 재수 없어.”

“제가 열심히 해서 로나만 목이 나간 거죠.”

“죽을 것 같아…….”

“전 아주 만족스러워요.”

“뱀파이어가 됐는데, 왜 이렇게 체력이 없어졌지.”

“살아온 세월이 이만큼 차이 나는데 어쩔 수 없죠.”

이 태어난 지 1년밖에 안 된 뱀파이어야.

모나한이 짓궂게 말하며 로나의 귓가에 잘게 키스했다.

만족감이 가득 담긴 행위여서 로나는 이젠 무리라는 듯이 그 입맞춤을 피했다.

“어, 디서- 반말이야아-”

“네네. 제가 잘못했어요, 주인님.”

“인제 와서 주인님은 무슨.”

“계약상으로는 평생, 한날한시에 죽을 때까지 제 주인님이시고-”

“가서 물이나 가져와요.”

“이젠 제 부인이죠. 레몬즙 좀 넣어서 드릴게요.”

모나한이 소파에서 일어나 부드러운 담요를 덮어 주며 말했다.

떠나기 전에 눈 옆에 내려앉은 긴 입맞춤을 로나가 귀찮다는 듯이 피해 버렸다.

체력이 바닥나서 다 귀찮았다.

“자, 이거 마셔요.”

모나한이 그새 살짝 잠든 로나를 깨워 일으켜 앉히고 시원한 레몬 물을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로나가 멍하니 물을 홀짝이는 동안 응접실에 남은 흔적들을 깔끔히 치웠다.

“걸으실 수 있겠어요?”

“……아니요.”

“그럼 제가 안아서 방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모나한이 로나의 단호한 말에 키득거리고는 그녀를 담요째로 품에 안았다.

공주님 안기라기엔 제 품 안 가득 품은 채였다.

로나는 그 행위에 지친 얼굴로 멍하니 눈만 몇 번 더 깜박이다가 모나한의 목덜미에 고개를 박고는 눈을 감았다.

몰려오는 수마를 이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모나한이 더 달콤한 잠을 자라는 듯 부드럽게 흔드는 것을 느꼈다.

요람 속의 아기라도 된 기분이어서 로나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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