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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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틸라는 그 후 가끔 들르는 뱀파이어들을 맞이했다.

몇몇은 선홍색 눈동자를 가지곤 했지만, 그보다는 아름다운 여러 색깔이 그녀를 보러 왔다.

모틸라는 몇 번은 작은 응접실에서 그들을 맞이하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무언가 부끄러웠는지 밖에 나가서 뱀파이어들과 이야기를 하고 오곤 했다.

그녀는 선물을 받았다며, 아주 오래된 와인이나 관광 도시의 유명 디저트, 어느 마을의 특산 음식 같은 것들을 받아 와 나눠 먹었다.

누가 식욕의 노예들이 아니라고 할까 봐 들어온 선물이 전부 먹을 것이었다는 것이 웃음 포인트였다.

“모틸라 씨가 인기가 많네요.”

“여기저기 참견하고 다녔으니까요.”

“선물도 많이 받고요.”

“묘하게 아슬아슬해서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으니까요.”

로나가 저 멀리 사라지는 모틸라의 기척을 느끼며 하는 말에 모나한이 대답했다.

발터도 마을 쪽에 눈 때문에 막힌 길을 뚫는 것을 도와준다며 나가서 저택엔 단둘뿐이었다.

로나는 오랜만에 둘이 있는 응접실을 한번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아주 오랜만에 둘이 되었네요.”

“그러게요. 발터 씨랑 모틸라 씨가 언제나 저택에 있으니까 둘이란 느낌은 아니었죠.”

“발터 씨만 있었으면 모를까, 모틸라가 있으니까 신경 쓰였어요.”

“다 들리니까요.”

“그렇죠. 안 들으려고 서로 노력하고는 있지만.”

“이래서 뱀파이어들은 같이 안 사는데.”

모나한은 로나와 연애하는 데 방해된다고 투덜거렸다.

로나도 동감했지만 어떤 긍정적인 말이나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대신 부엌에 딸린 작은 응접실 소파에 앉아 따끈따끈한 장작불의 열기나 즐길 뿐이었다.

“모나한은 찾아올 사람 없어요?”

“찾아올 사람요?”

“모틸라처럼 전 부인이라든가, 전 여친이라든가.”

“……그거 어떻게 대답해도 제가 망하는 질문이군요.”

“그렇죠. 연애에 꼭 한번 하고 나서 파멸을 맛보고 수그러드는 질문이죠.”

“그런데 하는 거예요?”

“궁금하니까?”

모든 커플이 ‘난 저런 질문 안 할 거야’라고 했다가 망하는 질문 중 하나 아닐까.

“‘어떠한 대답을 듣더라도 화내지 않겠어요’.”

“……엄청나게 작위적으로 말씀하시는군요. 꼭 책을 읽으시는 듯합니다.”

“어떠한 대답을 듣더라도 화내지 않겠어요!”

“인제 와서 평범한 듯 말해 봤자 꼭 화내겠다는 의미로밖에 안 들려요!”

모나한의 그 대답에 로나는 어깨만 으쓱할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끔찍해서 모나한은 눈만 꾹 감았다가 푹 한숨 쉬었다.

“진짜 들어야겠어요?”

“그렇게 싫으면 하지 마요. 근데 들으면 제 이야기도 해 줄게요.”

“와……. 엄청나게 말하기 싫은데, 엄청나게 듣고 싶다.”

모나한은 로나의 말에 한숨을 여러 번 뱉고는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여 주며 말했다.

“분명히 말하건대, 결혼은 한 번도 안 했어요.”

“오오오.”

“연애를 안 했다고는 하지 않을게요. 전 오래, 아주 오래 살았다고요.”

“흠. 모나한은 스물다섯 살인 줄 알았는데.”

“그렇죠. 스물다섯 살이죠.”

모나한이 로나의 농담에 한숨 쉬는 듯한 목소리로 답하고는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전 여자친구는……. 몇 명 있다고는 안 할래요. 한 번 더 말하지만 전 아주 오래 살았으니까.”

“네. 좋아요.”

“좋다니 다행이네요. 그리고 그들이 찾아올 거란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아마 전부 죽었을 테니까.”

“아마?”

“마지막을 못 봐서 하는 말이에요. 인연이 끊기면 소식조차 듣지 않으려 노력했거든요. 인간이 살 수 없는 세월만큼 연애를 안 하긴 했어요.”

“흐음.”

“진지하지 않은 건 연애라고 치지 말자고요, 우리.”

“좋아요.”

“휴.”

모나한이 잘 넘어가서 다행이라는 듯이 양손을 내리며 가슴께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이제 로나 차례라는 듯이 그녀의 모습을 흉내 냈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자, 이제 로나 차례.”

“그렇군요. 이제 저의 고해성사를 들을 시간이에요.”

로나가 모나한이 그랬듯이 그의 모습을 따라 양손을 들며 말했다.

“저도 진지하지 않았던 관계를 빼고 말하자면, 두 명.”

“두 명?”

“미성년자일 때 학교에 다니면서 1년. 성인이 돼서 학교에 다니면서 1년 반.”

“학교를 오래 다녔네요.”

“전생에는 보통 그래요. 한 명은 대학교를 고향과 떨어진 곳으로 가면서 사이가 소원해져서 끝, 한 명은 대학원이라고 엄청나게 공부하는 곳에 들어가면서 사이가 소원해져서 끝.”

“으으음.”

“모두 전생의 사람들이니까 찾아올 사람은 없답니다.”

로나가 올렸던 손을 흔들거렸다.

자신이 그랬듯, 어떠한 감상을 내어놓으라고 하는 동작이었다.

“이생에서는요?”

“모나한뿐이죠.”

로나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귄 사람이 그뿐이라는 의미도, 나에겐 그뿐이라는 의미도 되는 이중적인 문장, 이중적인 목소리였다.

눈치 빠른 모나한은 곧장 알아듣고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했다.

“달달한 말을 잘하시는군요.”

“그럼요, 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재주가 있거든요.”

“뻔뻔하기도 하시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닮아 가는 중이라서.”

로나가 그렇게 말하며 모나한이 수백 번 지었던 표정을 했다.

코끝을 찡그리며 뻔뻔한 웃음을 흘렸다는 소리다.

모나한은 그 올라간 입꼬리를 보다가 피식- 웃고는 장난스레 그 끝을 손가락으로 콕 찍었다.

로나가 여러 번 자신의 몸을 검지로 콕콕 찍었던 그 손길처럼.

“괜찮네요.”

“그렇죠? 저도 뻔뻔하게 잘 웃는답니다.”

“네. 아주 뻔뻔하고 매력적이에요.”

“그럼, 대답은 그건가요? ‘좋아요’.”

“네. 그래요. 좋아요.”

“휴.”

로나가 모나한이 그랬듯 한숨을 쉬며 양손을 내리고 가슴께를 쓰다듬었다.

모나한은 그런 로나의 행동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신기하네요.”

“뭐가요?”

“과거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니.”

“그래요?”

“그래요. 예전에는- 음. 이 말은 지뢰군요.”

“해 봐요. 궁금한데.”

“……좋아요.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매우 싸우곤 했거든요.”

“오.”

“진지한 사람과도 진지하지 않은 사람과도요. 그래서 사실 조금 준비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첫 싸움을요?”

“그렇죠.”

꼭 해야 할 말도 준비해 놨죠.

모나한이 이 말만은 꼭 해야 했다며 얼굴을 진지하게 바꾸고 말했다.

미간을 살짝 좁히고, 눈빛은 진중하게.

로나의 선홍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제가 당신과 아무리 싸우더라도, 이것만은 확실해요. 로나.”

“그게 뭔데요?”

로나가 모나한의 말에 맞장구쳐 주었다.

진지한 모나한과 대비되는 밝은 목소리와 표정이었지만, 둘 중 그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란 거요.”

“오호.”

“난 당신을 사랑하고, 이건 그 사랑에서 시작된 작은 시련일 뿐이에요.”

“그렇군요.”

“그러니 부디 이렇게 애원하건대.”

“네에.”

“멀어져야 한다거나, 그만두자거나, 헤어진다는 생각만은- 하지 말아 주세요.”

“그래요!”

“조금 기다려도, 아니. 많이 기다려도 좋으니. 제게 다시 오시기만 하세요.”

“그렇게 할게요.”

“오, 로나. 사랑해요.”

“저도요!”

모나한의 진지한 연극 톤에 로나의 장난기 어린 밝은 목소리가 섞여 통통 튀었다.

하나도 어울리지 않아서 완벽히 어울리는 말장난이었다.

“좋아요. 우리의 싸움이 완벽하게 끝났군요.”

“오. 우리가 싸웠나요?”

“그렇죠. 가상의 모나한과 가상의 로나가요.”

“그렇군요. 둘이 헤어졌나요?”

“아뇨. 둘은 더욱 서로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모나한이 동화의 끝을 장식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나가 그 목소리에 낄낄 웃고는 전생에 많이 본 동화 영화들 같다고 말했다.

특히 모나한의 목소리와 대사가 그랬다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고.

“그리고 더 달콤했죠?”

“아, 좋아요. 그런 거로 하죠.”

“웃음기 가득 담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해 봤자-”

“긍정으로 들리나요?”

“긍정으로 들리네요.”

모나한은 이 대화가 정말로 마음에 들고 재미있었는지,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로나를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란 어쩜 이리 소중한지.

농담의 박자가 맞는 사람은 어쩜 이리 달콤한지.

“그거 알죠? 로나와 하는 대화가 모두 끝내준다는 걸.”

“그럼요. 알죠. 제가 바로 신이거든요.”

“제빵의 신이죠?”

“빵으로 신도를 모으고 있죠.”

“교주가 되게 해 주세요.”

“오, 이런. 이미 선택받으셨네요.”

“좋아요. 전도하고 다녀야겠어요. 로나 가라사대, 로나를 믿으면 빵이 내리리라.”

“하급 신도에게는 밀 빵을, 중급 신도에게는 타르트를, 상급 신도에게는 케이크를 선사하마.”

“그럼 교주에게는 뭘 선사하시나요?”

“제가 만들 수 있는 모든 빵?”

“와우. 그야말로 신의 선물이네요.”

모나한이 생각만 해도 감격스럽다는 듯이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며 말했다.

로나가 그 모습에 못 참겠다는 듯이 낄낄거렸다.

선홍색 눈동자가 동그랗게 휘어서, 농담에 맺힌 눈물에 반짝이기까지 했다.

“눈이 아름다우시네요.”

모나한이 그것을 놓치지 않고 수작을 걸었다.

“오.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았거든요.”

로나가 연극 톤으로 그 수작에 넘어가 준다.

“그분도 선홍색 눈동자를 가졌나 보죠?”

“그럼요. 아주 매력적인 색이랍니다.”

모나한은 로나의 말에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선홍색 눈동자를 보고, 그 눈가를 만지면서 말했다.

“조금 아쉽네요.”

“뭐가요?”

“……이제는 갈색 눈동자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주 평범한 색이었잖아요.”

“그렇기에 더 특별했죠.”

“정말로 평범한 색이었는데.”

아름답지도 않고, 물먹은 듯 진하지도 않고, 자세히 보면 금색 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갈색, 그뿐.

“그래서 더 소중했죠.”

모나한이 정말 아쉽다는 듯이 로나의 눈가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의 표정을 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무슨 색이었어요?”

“제 눈 색요?”

“네.”

“……글쎄요. 잊어버린 지 너무 오래됐네요.”

“그래요?”

“노란색에 가깝지 않았을까요? 제가 살던 고향에는 그 색의 눈을 가진 사람이 많았으니까.”

“그럼 그 색이었다고 해요.”

“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니까. 노란색요.”

“……그래요. 전 원래 노란색 눈을 가지고 있었어요.”

“아쉽네요.”

로나가 모나한이 그랬듯이 그의 눈가를 만지면서 말했다.

“……뭐가요?”

“이제는 노란색 눈동자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주 평범한 색이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었죠.”

“정말로 평범한 색이었죠.”

“가장 좋아하니까, 가장 특별했을 거예요.”

모나한은 로나의 말에 눈을 무겁게 감았다.

어떠한 감정을 속으로 삼켜 가볍게 만들려는 것처럼.

“로나는 참……. 이상한 재주가 있어요.”

“그래요?”

“저를 울게 만드는 데 아주 능숙하죠.”

“그거 정말 이상한 재주네요. 울 뻔했나요?”

“네, 조금요.”

내가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다가 끝내 잊지 못했던 과거들조차, 그녀는 다른 색으로 덧칠해 버리곤 한다.

그건 꼭 밝은 노란색이라서, 로나가 가장 좋아한다는 노란색이라서.

질척한 과거가 조금은 밝게, 햇빛을 받은 것처럼 따뜻하게 덧칠되고는 했다.

절대 그런 과거가 아닐 진데.

“로나는 참- 제 모든 감정을 다르게 바꿔 버리는 것 같아요. 방금까지 저희가 나눴던 질문들은 거의 질투로 끝난다고요. 그런 감정들조차 이렇게 따뜻하기만 하잖아요.”

“사랑은 원래 그런 거래요.”

“아니에요, 로나.”

모나한은 로나의 말에 조금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어딘가 슬퍼 보여서 로나는 모나한의 손을 잡았다.

모나한이 그 손길에 위로를 받았다는 듯이, 소파 등받이에 고개를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속삭였다.

“제가 아는 사랑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제가 배운 사랑들은 전부 아프고 뜨겁고 불타올랐죠.

저를 망가트리고 불태우고 마침내 재처럼 사그라들었어요.

제 삶을 무너트리고 싶은 것처럼, 저를 상처입히기만 했죠.

화려하고 낭만적이고 많은 거짓에 조금의 진실을.

더러운 감정들은 더욱 얼룩지도록, 아름다운 것들은 목마른 자에게 떨어지는 물 한 방울처럼.

제가 배운 사랑은 그런 거예요, 로나.

저는 전부 그렇게 배웠다고요.

“당신이 주는 사랑은 너무나 부드러운걸요.”

“그래요?”

“네. 아주요.”

“……제가 모나한에게 그런 것들만 주고 싶은가 보죠.”

모나한은 그 말에 눈을 떠 로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평범한 풍경이었다.

방금까지 농담이 오가던 응접실에서, 폭신하고 조금은 낡은 소파 위에서.

겨울 햇살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들어오는 오후에서.

그녀는 그냥 자신의 옆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화려한 샹들리에의 불빛이 찬란하게 쏟아지지도 않았고, 온갖 화려한 레이스가 꽃잎처럼 흩날리지도 않았으며, 가장 귀한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은 것도 아니고, 황제에게만 바치었다는 만찬을 먹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정말 평범한 풍경이었다.

모나한은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 입꼬리를 올리려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겨우 삼킨 감정들이 쏟아져 온통 적셔 버리고 말 것 같았다.

매일 뜨는 해가 창문으로 쏟아져 내린 것뿐이었다.

그 햇빛이 갈색 머리카락 위에서 반짝거리고, 저와 똑같은 선홍색 눈동자가 저를 보고 있을 뿐이고, 그녀의 단단한 손이 자신의 손을 잡은 것뿐이었다.

평범하고, 평범하고, 평범한.

그러나 모나한은 그 순간 자신이 이 시간을 영원히 기억하리란 것을 예감했다.

이 평범한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하리란 걸.

저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시간 중 하나가 되고 말 것이란 걸.

모나한은 햇살에 반짝이는 로나를 바라보았다.

지독히도 부드러운 사랑이었다.

그에게는 한평생 그것만이 필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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