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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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예쁘게 내리네요.”

로나가 창문가로 다가가며 말했다.

창가에 비친 자신의 갈색 머리카락이 등 뒤의 벽난로 빛에 따뜻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렇네요. 조용히 내려요.”

조용히 로나의 등 뒤로 다가온 모나한도 로나와 똑같이 따뜻한 색을 등 뒤에 가득 두른 채였다.

“눈은 소리를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던데.”

“겨울은 다른 때보다 조용하긴 하죠. 특히 새하얗게 변했을 때는 더더욱요.”

“그 풍경 좋아해요.”

“……사실 겨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요?”

“길에서 살 때는 얼어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우울한 모나한의 과거.”

로나가 창문에 비친 따뜻한 색의 모나한을 검지로 콕 찍으며 말했다.

모나한의 입에서 나왔던 우울한 과거와는 다르게 그는 부드러운 색으로 가득 싸여 있었다.

“그렇죠. 우울한 제 과거.”

모나한은 로나의 검지에 콕 찍혀있는 따뜻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아하게 돼 보러 가 볼까요?”

“네?”

“같이 밖에 나가서 눈 구경 해요.”

“추울 텐데요?”

“저 뱀파이어예요. 춥지 않아요.”

로나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이것 보라며, 자신은 강하다면 가슴을 한껏 부풀린 채였다.

모나한은 그 모습을 보며 키득거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춥진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추워 보이니까.”

그리고 그건 싫으니까.

따뜻한 외투와 목도리를 하자고, 모나한이 말했다.

그리고 둘은 사이좋게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를 하고, 손모아장갑을 낀 채로 저택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모나한은 조금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저는 손모아장갑 말고 가죽 장갑을 끼고 싶다니까요.”

“왜요?”

“어차피 추위는 안 타는데, 제 잘생긴 손가락을 뽐내야죠.”

이것 보라며, 여기 잘생긴 손가락이 다 사라졌지 않냐며 제 눈앞에서 장갑 낀 손을 흔드는 모나한을 보며 로나가 코끝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싫어요.”

“네?”

“내가 추워 보이니까 싫어요. 걱정되고요.”

“……걱정하실 필요-”

“없는 거 알죠. 추위 안 타니까.”

“그렇죠.”

“그럼에도 걱정되는 게-”

그거죠.

로나는 말해 주지 않겠다는 듯이 짓궂게 얼버무렸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과 함께였다.

“그게 뭔데요.”

“글쎄요.”

“그걸 말해 줘야 해요. 그게 듣고 싶어요.”

“정말요?”

“정말요.”

로나가 모나한의 예정된 애원에 키득거렸다.

어깨를 몇 번 들썩이다가 이내 멈추고는, 선홍색 눈동자를 달콤하게 휘고는 진리를 말하듯이 속삭였다.

“사랑이요. 사랑이죠.”

언제나 그렇죠.

모나한은 순간 숨을 멈췄다.

알고 있는 단어고 예정된 단어였다.

무슨 말이 나올지 예상하는 게 아주 쉬웠지. 어떻게 어려울 수 있겠어.

그럼에도 이렇게 숨이 멈추고, 심장이 덜컥거리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은.

“그렇네요.”

몇 걸음 앞서간 로나의 손을 잡아 버리는 것은, 이마를 맞대고 입을 맞추는 것은.

“사랑이죠.”

모나한이 입술을 떼며 속삭였다.

진리를 받아들인 성자 같은 목소리였다.

“로나 씨, 정말 잘해요.”

“뭘요?”

“무거운 달콤한 말 하기.”

“……도대체 그게 뭔지 모르겠던데. 무거운 달콤한 말이 뭐예요.”

“이런 거요. 사랑이라든가, 행복이라든가.”

“모나한도 잘하는 거잖아요.”

“이렇게 심장을 뛰게 하진 못하잖아요.”

“……언제나 뛰게 했어요.”

로나가 볼을 살짝 붉히면서 말했다.

당신께 언제나 투덜거리곤 했지만, 삐죽거리고는 했지만.

사실은 나도 심장이 떨렸노라고.

매 순간, 모든 단어, 모든 문장에서 그랬노라고.

“봐 봐요. 지금도 하잖아요.”

“무거운 달콤함?”

“무거운 달콤함.”

모나한이 겨울 공기에 차가워진 입술에 한 번 더 입을 맞추면서 말했다.

“아, 정말! 이런 분위기 그만!”

“으음. 전 정말 좋았는데.”

“저도 정말 좋았지만, 지금은 모나한이 겨울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한 시간이라고요.”

“그건 이미 했어요.”

“네?”

“제가 어떻게 로나가 좋아하는 계절을 싫어할 수 있겠어요. 로나가 겨울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에요.”

로나는 모나한의 말에 입술 끝을 내리고 미간을 좁혔다.

부러 삐죽거렸다는 뜻이다.

모나한은 이미 그 삐죽거림이 통하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로나가 부끄러워서 그렇다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그 표정이 좋아서 괜히 더 느끼하게 굴고, 달콤하게 굴고.

그러는 거 아니겠는가.

“사랑요, 사랑이죠.”

“네?”

“그렇다고요.”

“알 수 없는 소리.”

로나는 그렇게 말하곤, 모나한과 잡은 손을 끌고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황량했던 정원에 눈이 한가득 쌓여 포근해 보였다.

“모나한이 겨울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어요.”

“어떤 건데요?”

“저랑 눈을 가지고 놀면 돼요.”

“음…….”

“모나한은 저를 좋아하니까, 저랑 놀면 어쩔 수 없이 겨울도 좋아하게 될 거예요.”

로나가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한 말이랑 다를 게 뭐예요?”

“뭐가요.”

“‘로나가 겨울을 좋아하니까 저도 좋아한다’와 ‘로나를 좋아하니까 로나랑 놀면 겨울을 좋아하게 된다’랑. 같은 말인 거 같은데.”

“모르겠네요!”

“로나, 그냥 눈 가지고 놀고 싶은 것뿐이죠?”

“네!”

로나가 이번에도 당당하게 말했다.

고개까지 끄덕이고 눈을 반짝거리면서.

모나한은 그 모습을 보며 한껏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뭐 하고 놀까요?”

“눈사람 만들죠. 네 개.”

“네 개 나요?”

“정문 옆에 두 개씩 두죠. 제 눈사람, 모나한 눈사람, 모틸라 눈사람, 발터 눈사람.”

“그리고요?”

“조그만 눈사람도 만들어서 저택 담장 위에 줄줄이 놓아둘 거예요!”

“……밤새우겠네.”

“이럴 때 뱀파이어의 강하고 지치지 않는 긴 밤을 보여 달라고요.”

“그걸로 증명된다면야, 얼마든지.”

모나한은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다면 어깨를 으쓱이고는 주위에 있는 눈을 뭉쳤다.

“제가 몸통 만들게요.”

“그럼 제가 머리!”

로나가 신나서 머리를 만들려고 눈을 뭉쳤다.

동그란 손모아장갑 사이로 새하얀 눈이 동글동글해졌다가 눈이 가득 쌓인 곳으로 푹 떨어지고, 이내 데굴데굴 굴러서 더욱더 커지고.

“로나 눈사람 먼저 만들죠.”

“그럼 제 키가 이만큼이니까……. 이 정도!”

“갈색 땋은 머리를 표현하려면, 흠- 덩굴 어디 없나?”

“빨간 열매로 눈동자를 하죠!”

로나가 어디선가 빨간색 열매를 가져와서 말했다.

정말 재밌는지 온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였다.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네! 그것도 전생의 어릴 적요!”

“그래요?”

“현생에서는 어릴 적 겨울이 정말 추웠거든요. 노는 건 상상도 못 하고 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 나날.”

“불행한 로나의 과거.”

“그렇죠!”

깔깔깔. 로나가 맞는 말이라며 소리 높게 웃었다.

그리고 이것 보라며, 모나한이 따뜻한 색에 온통 둘러싸여 있던 것처럼, 자신도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에 장갑까지 껴서 온통 따뜻하다고.

“오히려 더워요. 저 지금 목덜미에 땀날 것 같다고요.”

“그래도 하고 있어요. 땀 식으면 감기 걸려요.”

“뱀파이어가요? 안 걸리잖아요.”

“뱀파이어가요? 이걸로는 땀도 안 나요. 뭐, 그래도 걱정되는 게, 그거니까-”

모나한이 로나가 그랬던 것처럼 사랑이라는 단어를 장난스럽게 얼버무리며 말했다.

“그거요?”

로나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죠.”

모나한이 똑같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로나는 그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기만 하고 모나한을 조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다급해진 모나한이 먼저 입을 열고 말았다.

“사랑요.”

“제가 이겼네요.”

로나가 “먼저 말했으니까, 모나한이 진 거예요.”라고 말했고, 모나한은 그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언제나 당신께 지고 말지만, 앞으로 수백, 수천 번을 그러고만 싶어요.”

“아아아. 또 이런 분위기가 되고 말았어!”

“제가 정말 좋아하니까요.”

“됐어요, 모나한 눈사람은 못생긴 표정으로 만들 거야.”

“음, 전 정말 잘생겨서 못생긴 표정을 지어도 잘생겼어요.”

“……재수 없어.”

로나는 뻔뻔하게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하는 모나한의 모습에 재수 없다고 말하고는 모나한 눈사람의 얼굴을 엉망진창으로 뭉갰다.

“이건 여드름이야.”

“전 그런 거 안ㄴ 나요.”

“입술에 부스럼도 폈어.”

“으으음. 전 그런 거 안 생겨요.”

“살쪄서 턱이 두 개 됐어.”

“오, 로나. 저 살-”

“안 쪄요! 안 찌겠죠!”

“네, 그럼요. 제 복근이 여기 있답니다. 복근도 아주 잘생겼어요.”

아무도 모나한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눈사람을 씩씩거리며 완성한 로나는 눈사람의 몸통에 커다랗게 ‘모. 나. 한’이라고 이름을 적었다.

모나한은 그 모습을 보며 킥킥 웃고는 그 눈사람 옆에 서서 자신감이 가득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닮았나요?”

“에라이, 젠장할. 하나도 안 닮았네.”

로나가 짜증과 포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하고는 한 번 더 모나한의 이름을 새겨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자신은 절대 바꾸지 않을 거라며 말하며, 모틸라의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눈 뭉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너희, 뭐 하는 거야-!?”

저 위 어딘가에서 모틸라의 높은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래를 보고 눈을 굴리던 두 사람이 목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보자 얇게 입은 모틸라가 테라스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밤하늘 아래 새까만 머리카락이 바람을 따라 휘날렸다.

“눈사람 만들어요!”

“뭐? 나도 할래!”

모틸라가 테라스 난간에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는지, 조용히 나타난 발터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그 손길에 모틸라가 몸을 뒤로 물리며 크게 외쳤다.

“금방 내려갈게!!”

“따뜻하게 하고 와요!”

“알았어어-!”

모틸라가 말하며 발터와 방 안으로 사라졌다.

“둘이 같이 있었나 보군요.”

“둘이 같이 있었나 보죠?”

“흠.”

“흐음.”

로나와 모나한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둘이 사라진 방 테라스를 바라보았다.

커퀴벌레 어쩌고 하더니 이런 늦은 시간에 둘이 같이 있었단 말이야?

서로 각자 방으로 가는 줄 알았더니, 같은 방에 들어갔단 말이야?

“저기 발터 씨 방이죠.”

“그렇죠.”

“발터 씨 침실이죠.”

“그렇네요.”

“흐음.”

“흐으음.”

둘은 여동생이 연애하는 것을 보는 오빠 부부의 얼굴이 되었다.

“놀릴까요?”

“좋아요. 제가 또 그거엔 재능이 넘치죠.”

“그것참 좋네요. 마침 저도 그거엔 재능이 넘치거든요.”

로나와 모나한이 굴리던 눈을 놔두고 문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을 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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