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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와 모나한은 발터가 ‘같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라는 말을 하는 순간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은 응접실에 있는 모든 식탁에 달콤한 것들을 쌓아 올렸다.
모틸라가 조금이라도 맛있다고 했던 것들도 전부, 지금까지 아공간에 숨겨 놓았던 것들도 전부, 당장 만들 수 있는 달콤한 음료, 따뜻한 음료 한가득.
모틸라가 응접실에 들어왔을 때, 이게 뭐냐고 하며 웃을 수 있도록.
“이게 뭐야……. 너무 많잖아.”
그래, 저렇게 웃어 버리도록.
“자 우선 여기 앉아요, 모틸라.”
모나한이 의자를 빼며 말하고.
“원하는 걸 고르면 발터 씨가 가져다줄 거예요!”
“……제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저는 음료 담당이거든요. 우선 레몬차로 입맛을 돋우고 시작하죠.”
로나가 예쁜 도자기 잔에 노란 레몬차를 따르며 말했다.
“보기도 좋고 맛도 좋게 얇게 썬 레몬 조각도 하나.”
“여기 담요 있습니다. 예쁜 흰색이에요.”
“이거……. 뭐였죠? 몽블랑? 저번에 잘 드셨죠. 이것부터 드시죠.”
“……뭐야, 나 여왕님이야?”
모틸라가 주위에 둘러싸이는 것들에 키득거리면서 말했다.
언제나 식욕이 넘쳐나는 자에게, 식욕이 돋을 거라면서 레몬티를.
추위를 느끼지 않는 자에게, 따뜻하라고 담요를.
뭐든지 맛있어하는 자에게, 저번에 잘 먹었다는 음식을.
“뭐야, 이럴 필요 없는데.”
모틸라가 푹 젖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이렇게, 이렇게-”
잘해 주지 않아도.
“이럴 수가! 하는 말을 보아하니 저희가 부족한가 봐요! 모나한, 가서 이불을 가져와요!”
“알겠습니다, 로나. 아주 두꺼운 걸로 대령하죠.”
“발터 씨! 가서 장작을 더 집어넣어요! 얼굴이 창백한 걸 보니 춥나 봐!”
“예. 집을 불태울 정도로 태우죠.”
“아냐! 나 원래 창백해! 다들 알잖아!”
셋은 모틸라가 하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였다.
부족하면 넘칠 정도로 쏟아 버리겠다는 기세였다.
“전 지금부터 모틸라가 그만이라고 할 때까지 빵을 구울 거예요. 모틸라 잘 들어요.”
“으, 응?”
“배 터질 때까지 먹고 못 먹겠으면 아공간에 집어넣어요. 알겠죠?”
“어어, 알았어.”
“더 이상 아공간에 집어넣을 곳조차 없다! 그럴 때 말하는 거예요.”
“으응?”
“‘여기에 행복이 가득 찼어. 그러니까 이제 괜찮아’.”
“…….”
모틸라는 로나의 말에 입술을 떨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로나는 모틸라의 선홍색 눈동자가 다시 흐려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저는 이 저택이 가득 차더라도 빵을 계속 구울 거니까요. 빵에 압사당해 죽고 싶지 않으면, 꼭 말해야 해요. 알겠죠?”
로나는 모틸라가 당연히 긍정해야 한다는 듯이, 그녀의 대답도 듣지 않고 뒤돌아 부엌으로 사라졌다.
부엌으로 사라지기 전에 잊어먹었다는 듯이 들리는 가벼운 목소리가 마지막이었다.
“지금부터 음료 담당은 발터 씨에요.”
“예. 알겠습니다.”
발터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어느새 돌아온 모나한이 모틸라 어깨 위에 두꺼운 이불을 둘러 주고는 로나를 따라 부엌으로 사라졌다.
발터가 언제 컵들을 꺼내 왔는지, 디저트가 담긴 접시 옆으로 모양이 모두 다른 컵들이 하나하나 올라왔다.
달콤하고 씁쓸하고, 따뜻하고 차갑고, 조금은 짭조름하고 시고.
온갖 음료수들이 모두 다른 컵들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모틸라는 얼마나 따를 거냐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가장 달콤하고, 가장 따듯한 것들부터 손에 쥐었다.
차가운 손끝에 온기가 퍼지고, 달콤한 것들이 몸 안을 휘감고.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은 발터가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넘겨 주었다.
모틸라는 그 손길에 발터를 올려다보았다.
걱정과 애정, 배려와 관심. 조금의 슬픔에 따뜻한 사랑을.
“같이 먹자.”
모틸라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러기로 했잖아.”
아주 연약하고, 아슬하고, 사그라질 것 같은 목소리로.
발터가 옆에 앉아 몽블랑을 포크로 자르고, 떠서.
입으로 가져가 오물거리고 삼켰을 때는.
“맛있지?”
“예. 아주.”
“응, 정말-”
그렇네. 아주, 정말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완벽하다.”
그 목소리 끝자락에는 조금의 울음을.
그러나 단단한 단어가.
힘겹게, 무겁게.
굳게.
* * *
로나는 정말로 모틸라가 “여기에 행복이 가득 찼어. 그러니까 이제 괜찮아.”라고 말했을 때야 빵을 굽는 걸 그만두었다.
그 말을 할 때 모틸라의 표정은 감동하거나, 씁쓸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 질린 얼굴이었다.
로나가 정말로 정말로 빵을 산처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고맙다는 표정을 한 발터도 그즈음에 가서는 ‘이게 인간이 가능한 건가. 아, 인간이 아니라고 하셨지. 그럼 뭐지? 제빵의 신? 제빵의 악마?’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로나는 오히려 그 얼굴에 뿌듯해했다.
“좋아. 이겼군.”
“……그래. 뭔진 모르겠지만 네가 이겼다고 하자.”
모틸라가 윗배를 부여잡고 말했다.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목 끝까지 차오른 빵이 튀어나올 것 같다.
“우읍. 진짜로 튀어나올 것 같아. 걷지도 못하겠어.”
“좋아. 걷지도 못하게 만들었어. 완벽한 승리야.”
“행복이 아니라 빵이 가득 찼어. 이미 행복을 넘겨서 죽을 것 같아. 나 정말 쟤가 빵으로 저택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걱정됐다니까.”
“저도 중간부터 그런 걱정을 했습니다.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았습니다만.”
“빨라졌어요. 모나한이 중간에 마차에 있던 오븐을 가져왔거든요. 저번부터 옮기고 싶었는데, 이번에 처리해 버렸죠.”
로나의 밝은 목소리에 모틸라가 배신감 어린 표정으로 모나한을 바라보았다.
“왜 그랬어? 꼭 그래야만 했어?”
“무릇 용사에게는 알맞은 신검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로나에게는 최신형 오븐이 필요하듯이요.”
“반대 아냐?”
“로나는 제빵의 용사니까 괜찮아요.”
“아냐 아냐. 용사 같은 그런 인간적인 게 아니야. 뭐랄까…….”
“신이나 악마에 가까운 듯합니다만.”
“말 잘했다, 발터! 쟤는 제빵의 악마야!”
그 말에 로나는 뽐내는 표정이 되어 코끝을 높이 올리고 한 손으로 머리를 휙 넘겼다.
땋은 머리가 채찍처럼 어깨 뒤로 넘어갔다.
“이젠 무기도 쓰는 것 같은데!”
“사실 제 머리카락은 훌륭한 채찍이죠.”
로나가 머리끝을 잡고 휙휙 돌리며 말했다.
그 말에 모나한이 키득거리고 발터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요. 이제 모든 농담이 끝났으니- 해산.”
모나한이 손뼉을 짝짝 치며 말했다.
어느새 응접실을 깨끗이 치우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였다.
“어, 벌써 다 치웠어요?”
“이런 것 정도야 금방이죠.”
“같이 하면 되는데.”
“로나는 빵 만드느라 계속 일했잖아요.”
“모나한도 옆에서 도왔잖아요.”
“말 그대로 ‘도운’ 거잖아요. 그렇죠?”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씨익 웃었고, 로나는 한껏 감동한 표정이 되어서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뒷정리와 설거지를 완벽히 끝내고 칭찬받기를 기다리는 모나한이라니.
로나는 만드는 건 좋아해도 치우는 건 싫어하는 편이었다.
“어떻게 칭찬해 줄까! 아무리 칭찬해 줘도 모자라겠네!”
“글쎄요. 원하는 건 얼마든지 있지만.”
“있지만?”
“우선 저 방해물들이 사라지고 나면요.”
모나한은 앞치마를 벗으면서 그렇게 말하며, 모틸라와 발터를 바라보았다.
그 방해물을 보는 모나한의 눈에 모틸라가 얼굴을 한껏 구기며 외쳤다.
“망할 커플! 바퀴벌레! 커퀴벌레!”
“뭐라는 겁니까? 제가 알기로는 그쪽도 커플인데.”
“우린 그런 오글거리는 짓은 안 하거든!”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거야!”
모틸라가 외쳤지만,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발터는 조용히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모나한은 그런 발터를 보고 “흠.” 하고 짧게 신음했고, 모틸라도 그런 발터를 발견하고는 배신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발터는 그 표정을 보고 짧게 헛기침하더니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노력하겠습니다.”
도저히 자신이 없지만, 그런데도 힘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보고 왠지 죄책감에 휩싸인 모틸라가 외쳤다.
“괜찮아! 나 그거 잘해! 오글거리는 짓 잘해!”
“그래도 듣고 싶으신 것 아닙니까. 제가 어떻게든 배워 보겠습니다.”
발터가 모나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든 모나한이 하는 달콤한 행동을 배우겠다는 뜻이었다.
모나한이 그 모습을 보고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흠. 저보다는 로나에게 배우는 편이 좋을걸요?”
“예?”
“저는 가벼운 달콤한 말을 잘하지만, 로나는 무거운 달콤한 말을 잘하거든요.”
“……그렇군요.”
모나한의 말에 발터가 크게 깨달았다는 얼굴을 했다.
그 얼굴로 모자랐는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로나 씨.”
“어, 예? 음…….”
로나가 발터의 말에 곤란하다는 듯이 말끝을 흐리다가 모나한을 한번, 모틸라를 한번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모르겠지만, 네 사람 중 세 사람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거겠지.
“저의 수많은 매력 중 하나를 알아 버리셨군요.”
“그렇죠. 수많은 매력 중 하나시죠.”
“맞는 소리 같아.”
“그렇군요.”
“…….”
로나가 “농담으로 말했던 말이 진담으로 돌아오면 이런 기분이 되는구나…….”라고 중얼거렸다.
한껏 당황한 얼굴이었다.
“아, 아무튼. 잘은 모르겠지만, 알아서 배워 가시는 게 좋겠어요. 남을 가르치는 재주도 없고, 그런 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나한테 진짜 그런 매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알겠습니다. 알아서 배워 가도록 하겠습니다.”
로나가 흐리게 붙인 말을 무시하며 발터가 말했다.
그는 이미 로나의 무거운 달콤한 말의 위력을 맛본 이였다.
모틸라와 발터는 로나의 떨떠름한 표정을 뒤로 하고 응접실을 나섰다.
짧은 겨울 해가 진지 오래라서, 창문 밖은 까맣기만 했다.
방 안에서 흐른 불빛 덕분에 하얀 눈송이가 희게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방금까지 불었던 눈보라가 거짓말이라는 듯이, 조용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