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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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온 것 같은데요?”

“마을 사람들이라면 온실 쪽으로 올 텐데……. 제가 가 보겠습니다.”

발터가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일어나며 말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부엌에 가려던 발을 멈춘 로나가 발터가 응접실을 나가는 것을 보며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코끝을 몇 번 흠칫거렸다.

눈의 창백한 냄새에 섞여 비릿한 피 냄새가 나고 있었다.

“뱀파이어?”

“그런 것 같은데요.”

“뱀파이어가 여기 올 일이 있어?”

모틸라가 발터가 걱정되었는 흔들의자에서 일어나 응접실을 나서면서 중얼거렸다.

모나한과 로나도 그 뒤를 따라갔다.

“모틸라, 당신을 보러 온 것 아닙니까?”

“나?”

“네. 주름이 생겼으니까.”

“아……. 수도에 들러서 이야기했다고 했지.”

모틸라가 예상이 간다면서 빠르게 움직였던 걸음을 살짝 늦췄다.

그 뒤를 따라가며 로나가 질문했다.

“근데 만나면 치명적인 척 또 해야 해요?”

아공간에 있는 3단 트레이를 또 꺼내야 하나?

“계약상 서로 이야기를 해야 만난 것으로 간주합니다. 가끔 지나가다가 인사만 하는 정도는 상관없어요.”

“으음.”

“누군지 보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대화를 나누면 됩니다.”

“알아서 소개해 줄 거죠?”

“그럼요.”

모나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발터가 저택 정문에서 맞이하고 있는 두툼한 황토색 털 외투를 입은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사내도 그들을 발견했는지, 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넘겨 얼굴을 드러냈다.

빛바랜 금발이 먼저 시선을 잡아끌고, 그리고 그 사이에 요요한 선홍색 눈동자가 모틸라를 바라보았을 때, 모틸라가 작게 중얼거렸다.

“……안제.”

그 목소리에 후회와 그리움, 아련함이 섞여 있어 로나는 모틸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왠지 평온한 일상이 와장창 깨지고 폭풍이 몰려올 것만 같았다.

아직 열려 있는 정문에서 거센 바람과 함께 눈이 휘몰아쳤다.

* * *

“그래서, 누구예요?”

로나가 방음 마법이 걸린 중앙의 작은 응접실로 사라진 안제라는 남자와 모틸라의 뒷모습을 보며 모나한에게 속삭였다.

모나한은 사라진 모틸라의 뒷모습을 한번, 그런 그녀를 끝까지 바라보는 발터의 모습을 한번 번갈아 바라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전-”

모나한이 말하기 힘든지 ‘전-’까지 말하고 입을 한번 다물었다.

그냥 전에 알던 사람? 아니면 전 남친? 보아하니 전 남친인 것 같은데.

“전 남편일 겁니다.”

“억.”

전 남친보다 더 센 게 나오고 말았습니다.

로나는 놀라서 눈을 깜박이다가 슬쩍 옆에 서 있는 발터를 보았다.

발터도 모나한의 말을 들었는지, 딱딱히 굳은 얼굴로 주먹을 꾹 쥐고 있었다.

둘의 사이에 알아서 진도가 나갔다고 하더니, 진짜였나 보다.

“……전전전 남편일 수도 있고.”

“……네?”

“아니던가? 저번 남자는 결혼을 안 했던가.”

모나한이 기억이 잘 안 난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잠깐만.

모틸라 언니 지금까지 사귀던 사람이 몇 명?

전 남편은 몇 명?

여자 주인공이잖아, 당신! 이혼 경력 있는 여주가……. 여주가 꽤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혼 경력이 여러 번인 여주는 없는 걸로 아는데!

제 옆에 서 있는 남자 주인공이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어요! 동공을 흔들고 계신다고요!

“제가 아는 진지하게 만난 사람들만 치면, 아마 전전전 남자일 겁니다. 지금은 발터 씨가 연인이니까요. 그렇죠?”

“……그렇, 습니다.”

모나한의 말에 발터는 숨길 생각은 없었다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가를 한번 쓸었다.

로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이 상황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그럼 전전전 남자와 현재 남자 사이에 낀 모틸라 이야기를 관찰하는 입장이 된 거잖아.

발터 씨한테 뭐라 위로해야 해? 아님, 그냥 모른 척해.

그동안 평화로웠는데, 갑자기 소설 진도가 확확 나가는 기분이야…….

“음…….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여기 계속 서 있을 수는 없으니까 응접실로 돌아갈까요?”

“……예.”

로나의 말에 발터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더니, 먼저 응접실로 향했다.

로나와 모나한의 발터의 뒤를 따라가며 조용히 속삭였다.

단 거, 단 거 만들자.

맛있는 거라도 먹입시다.

발터가 응접실에 앉아 손에 잡히지 않아 서류를 처리하지 못하고 만지작거리기를 몇 번째, 조용히 부엌으로 사라졌던 로나와 모나한의 쟁반 가득 단 디저트들을 왕창 가지고 돌아왔다.

만들기로 한 마들렌은 기본, 다른 달콤한 디저트들을 더 만든 채였다.

혹시 단것에 질릴까 봐 안주에 어울리는 짠맛 가득한 것도 함께였다.

“먹고 해요, 먹고.”

“기분 안 좋을 땐 우선 단것을 먹읍시다.”

“……감사합니다.”

발터는 로나가 건넨 초콜릿 타르트를 묵묵히 먹어 치웠다.

로나는 마음속으로 ‘그래! 슈가 하이를 노려!’라고 외쳤고, 그 마음에 통했는지 발터는 아까 전보다는 좀 더 진정된 얼굴을 하였다.

그는 더 이상 디저트는 먹지 않고 조금 망설이는 얼굴로 고민하더니 고개를 들고 모나한에게 물었다.

“혹시……. 안제라는 분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음…….”

그의 질문에 모나한이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100년 전 즈음인가, 유명한 사람이 한 명 있지 않습니까? 평민 권리를 향상시킨.”

“아, 그 귀족이 원할 때 평민을 죽일 수 있다는 ‘즉결 처형권’을 없앤 사람 말입니까?”

“네. 그 사람요.”

“그러고 보니 그분 이름이……. 안제죠.”

“네. 그 사람입니다. 약 14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을 했죠. 노예 살해 시 처벌을 받도록 법을 제정하게 만든 사람도 그 사람입니다.”

“……대단한 분이시군요.”

발터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전부 그런 사람들이에요. 모틸라가 진지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발터는 모나한의 말에 문득 자신이 방금까지 하고 있던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그 서류에는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위대하거나, 역사에 적힐 만하거나,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될 만한 것들.

모나한이 이야기했던, 모틸라가 사랑했다는 사람들이 새웠던 역사들.

발터에게는 그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여기 있는 것은 망해 버린 영지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아주 작은 작위를 가진 기사 한 명뿐이었다.

그는 왠지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서류 끄트머리를 구겨 버렸다.

“……먼저 방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발터는 구겨 버린 서류 끝처럼 하찮게 느껴지는 자신이 견디기 힘들었는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사라졌다.

모나한은 그 모습을 보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로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위로가 필요했는지, 로나의 허리에 팔을 감고는 어깨에 머리를 기대 이마를 비볐다.

“사실 그렇게 진지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죠.”

“네?”

“모틸라 말입니다.”

“……모틸라와 발터 씨와의 관계가 진지한 게 아니란 뜻인가요?”

“반대예요. 모틸라가 안제와 진지한 관계가 아니었을 거란 의미입니다.”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로나의 손가락을 가지고 장난쳤다.

조금이라고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 보려는 생각인 듯했다.

“모틸라는 어딘가 비틀어져 있거든요. 가장 동족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을 만들지 못해서 그런가, 그 이후에 동족으로 만드는 이들은 다 똑같은 작자들이었어요.”

“어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세상을 바꾸는- 모틸라에 말에 따르자면 ‘영생을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

“……영생을 함께해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요.”

“그렇죠. 그게 핵심이죠.”

모나한은 로나는 파악도 잘한다며 키득거렸다.

“모틸라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옆에 있어 달라고 이야기하죠. 그들이 가진 신념보다 목표보다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우선시해 달라고.”

그리고 언제나 그렇게 되지 않죠.

다들 그녀보다 그들의 신념을, 목표를 위해 가 버려요.

모틸라를 놔두고, 버려 두고.

“근데 제일 웃긴 건 그녀도 그걸 알고 있다는 거예요.”

자신이 절대 첫 번째가 되지 않을 사람들만 골라서 사랑한다고 말하지.

자신을 놔두고 가 버릴 걸 알면서도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더 중요한 게 있는 걸 알면서도 가장 소중히 해 달라고 떼쓰고.

“그리고 결국 가 버리면,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떠나 버리죠. 그들이 후회하고 다시 돌아와도 절대 받아 주지도 않고요.”

모나한은 뻔하다는 듯이 말했다.

자기가 그런 걸 몇 번을 봐 온 줄 아냐고, 매번 똑같은 짓을 한다고.

그녀가 동족으로 만드는 작자들은 전부 그런 놈들 뿐이라고.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보기에 그건, 그냥…….”

그리고 그는 이 말만은 정말 하기 싫었다는 듯이 인상 쓰고, 정말 하기 힘들다는 듯이 로나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아주 연약한 목소리로.

“길고 긴 자살 방법일 뿐이에요.”

눈물을 흘리다 못해 지쳐 버린 목소리로.

“그리고 드디어 끝난 거죠. 이제 주름이 생겼으니까. 그녀의…… 자살이요.”

모나한이 길게 한숨 쉬었다.

슬픔이나 후회, 포기와 체념.

그런 것들을 아주 오래한 이의 숨이었다.

로나는 순간, 모나한의 긴 숨을 들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실라가 떠올랐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세상을 바꾸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그야말로 주인공 같은.

그렇다면 모틸라는 어떠한 점에서 주인공이 된 걸까.

그녀가 주인공임을 알고 나서부터 내내 로나를 궁금하게 했던 의문이 이 순간 풀리는 듯했다.

모틸라는 그런 사람들을 뱀파이어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의 삶 내내, 그런 사람들만 찾아서 영생을 선물했겠지.

그리하여 세상은 좀 더 괜찮아지고, 살 만해지고, 이로워졌을 것이다.

그녀의 시간을 희생하여.

“그래서 주인공이군요.”

“……네?”

“모틸라가 주인공인 이유요. 아실라가 주인공이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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