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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시루떡을 생각하다 전기장판에 몸을 지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뻗었다가, 수능 비문학에서 보았던 온돌의 구조를 떠올리려 끙끙댔다.
대충 원리는 아니까 뱀파이어로 살다 보면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많은 시간이 있으니까 하나하나 실험해 보면 되지!
로나는 언젠간 온돌바닥에 등을 지지고 말겠다고 결심하며 다시 시루떡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에 힘을 풀었다.
산장에 있을 때는 감각에 익숙해지기 위해 이것저것 훈련하느라 푹 쉬지 못했었다.
인디고 영지에 온 후 그때보다 열심히 일하는 것 같긴 한데, 어째 산장에 있을 때보다 더 휴식 느낌이야.
안정된 감각이란 이렇게 소중하구나아-.
로나가 모나한이 가져다준 부드러운 베개에 볼을 비비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거의 온실과 부엌을 왔다 갔다 하며 음식을 만들곤 했으므로 인디고 영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몰랐다.
기껏해야 모나한이 알려 주는 소식이나 접할 뿐이었다.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서 물어보지 않았기도 하고.
다만 인디고 저택이 마을보다 높은 언덕 위에 있었으므로, 한 번씩 언덕 위에서 내려볼 때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곤 했다.
부서졌던 담장이 복구되고 더 높아졌으며, 무너진 건물 잔해들이 치워지고 그나마 멀쩡했던 건물들은 벽을 보강했는지 더 커졌다.
타 버렸던 나무들이 정리되고 봄을 위한 평지만이 남았으며, 옆에 있던 숲이 겨울 땔감을 위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눈이 오기 전에 일을 끝낼 거라면서 발터와 모틸라가 저녁 식사 후에도 영지를 돌아다녔던 덕분이었다.
로나는 가끔 ‘나하고 모나한만 이렇게 편하게 있어도 되나?’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하지만 발터와 했던 계약은 그녀가 하루 세끼를 만들어 주는 것뿐이었다.
“확실히 하루 세끼를 전부 먹으니 다들 일할 힘이 넘치더군요. 하루가 뿌듯하다고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적어도 굶어 죽지 않을 거라고, 영지가 틀림없이 복구될 거라고 믿는 사람이 늘었다고.
사람들에게 희망이 생겨서 다들 밝은 얼굴이라고.
“앞으로도 하루 세 끼 식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로나는 뿌듯한 얼굴이 되어 어떻게든 더 맛있고 영양가 높은 식사를 만들려고 노력할 뿐, 그 외의 일은 걱정하지 않았다.
하긴, 마을이 얼마나 변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을 사람들이 다들 오동통해지기는 했지.
영양 쪽을 맞추는 건 잘 몰라서 그녀는 양으로 승부했다.
로나가 얼마나 잘 먹이는지 다들 살이 올라 피부가 건강하게 반짝거렸다.
그녀는 누군가를 옆으로 확대하는 데 재능이 있었다.
발터의 말대로 인디고 영지는 눈이 오기 전에 지금 남은 사람들이 겨울을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준비를 끝냈다.
마지막 건물을 복구했을 때, 몰려온 회색 먹구름 아래로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여긴 한번 눈이 오기 시작하면 몇 달 동안 계속해서 내립니다. 온 주위가 새하얗게 변하죠.”
“그래서 눈이 오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한다고 했던 거군요. 정말로 끝냈다니……. 대단하네요.”
“먹을 것을 구하러 갈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담장과 건물 복구 이외에는 전부 땔감을 구하는 벌목 일로 시간을 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이죠.”
“근데 그렇게 눈이 내리면 마을 사람들이 온실로 오기 힘들지 않을까요?”
“계속해서 길을 치울 생각입니다. 마을 사람들도 각자 집에서 사는 게 아니라 겨울 동안에는 무리 지어서 저택에 가까운 곳에서 지낼 테니까요.”
“아하. 그럼 저는 지금처럼 계속 식사를 차리면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몇 번을 감사 인사를 올려도 모자랄 정도로요.”
“됐어요. 다 돈 벌자고 하는 일인데.”
발터는 로나가 손을 휘휘 저으며 한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로나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시골에서 기본적인 빵을 제공하는 것보다 도시에서 디저트를 파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벌 게 분명했으니까.
고급 디저트와 기본적인 식사류 빵들의 가격 차이를 모르기에는 그도 한때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던 귀족이었다.
“……그래도 감사-”
“이제 감사 인사 그만! 하루에 한 번씩은 듣는 것 같다고요. 차라리 돈 내는 모틸라 씨에게 해요.”
“응? 나?”
로나의 말에 옆의 흔들의자에서 코코아를 홀짝이던 모틸라가 고개를 들었다.
보기 싫다며 옆에 대충 던져 놓은 서류를 한쪽 손으로 끔찍하다는 집어 든 채였다.
“네. 모틸라 씨에게 감사 인사 하세요.”
“감사합니다, 모틸라 님.”
“응? 엥? ……그래! 다 내 덕분이지!”
모틸라는 당황한 얼굴을 하다가 ‘잘은 모르겠지만, 감사하다니까 받자!’라는 얼굴이 되어 대답했다.
그 생각이 빤히 보여서 발터가 슬쩍 미소 지었다.
지금 네 사람은 부엌 옆에 딸린 작은 응접실에 벽난로를 켜 놓고 모여 앉아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로나와 모나한은 오븐에서 빵이 구워지길 기다리며 쉬고 있고, 모틸라는 흔들의자에 앉아 발터가 검토 후 건넨 서류를 모른 척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여기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 발터뿐이었다.
“근데 여기서 일하면 집중 안 되지 않아요? 지금 발터 씨 혼자만 일하고 있는데.”
사실 일 해야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분은 열심히 딴짓 중이시고.
로나가 담요 속에 몸을 더 파묻으며 말했다.
“글쎄요. 혼자 차가운 서재에 있는 게 더 싫어서요.”
“아하.”
“로나가 이상한 재능이 있긴 해.”
“이상한 재능요?”
“뭐랄까……. 긴장이 풀린달까? 포근포근하고 따끈따끈한 느낌이 된달까.”
“난로 아래 식빵을 구우면서 졸고 있는 고양이를 보는 기분이죠.”
“맞아! 그런 기분!”
모나한의 말에 모틸라가 딱 그런 느낌이라고 손뼉을 한번 치며 동의했다.
“제가 괜히 베개나 담요 같은 걸 갖다 드리는 게 아니랍니다. 왠지 보고 있으면 더 나른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욕구가 든단 말이죠.”
“맞아.”
“저 고양이 아닌데요, 사람인데요.”
지금은 사람보다는 시루떡에 가까운 것 같아요. 여기 눌어붙었다고요.
로나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지만, 이미 모틸라와 모나한은 고양이 집사라도 되는 표정으로 흐뭇하게 로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발터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는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방금 한 말에 거짓은 없었다.
정말로 혼자 차가운 서재에서 일하는 것보다 여기 있는 게 훨씬 나았다.
서재의 벽난로에 불을 지필 수는 있겠지만, 이 특유의 분위기는 없을 테니까.
그저 혼자 새하얀 서류를 넘기는 소리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이곳의 공기는 따뜻하고, 바로 옆 부엌에서 구워지는 빵 냄새가 슬그머니 흐르고, 다른 사람들이 마시고 있는 따뜻한 차의 향기가 맡아진다.
가끔 티격태격하는 작은 장난과 농담이 장작이 타는 타닥거림 사이로 들려왔다.
여기에 있으면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해지는 것 같다고, 발터는 희미하게 생각했다.
농담이 오가는 시간이 끝났는지, 다시 응접실은 따뜻한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드문드문 서류 넘기는 소리와 만년필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 모틸라의 차 마시는 호록거림과 모나한의 책 보는 소리, 어느새 잠든 로나의 작은 콧소리가 공간을 채우는 오후였다.
창밖으로 새하얀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오늘 밤부터는 본격적으로 쌓이기 시작하겠네요.”
잠깐 들었던 잠에서 깬 로나가 멍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다 말했다.
그 말에 모나한이 볼에 붙은 옆머리를 넘겨 주며 입을 열었다.
“이미 어느 정도 쌓이기 시작했던데요. 조금 있으면 온 세상이 완전히 새하얀 색일 거예요.”
“저 눈 내리는 거 좋아해요. 치우는 건 귀찮지만.”
로나의 말에 발터와 모틸라도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 수업을 받을 때도 겨울이 나았습니다. 아무래도 훈련을 할 때 덜 덥거든요.”
“난 겨울에 파티가 많아져서 좋아! 물론 다른 계절에도 파티는 많지만, 겨울엔 수확기에 걷은 세금으로 파티를 여니까 더 화려했거든!”
“저는 글쎄요, 딱히 좋아하는 계절은 없었습니다만.”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며 로나의 빈 컵에 코코아를 다시 채워 주었다.
“로나가 겨울을 좋아하는 큰 이유를 하나 알 것 같긴 해요.”
“어떤 거요?”
“겨울에는 오븐 앞에 있어도 괜찮았겠죠. 오히려 따끈해서 좋았을 거고.”
“아, 매우 큰 이유였죠. 여름에는 오븐 앞에 서 있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고요.”
“그래서 재작년 1년 동안 제가 열심히 오븐에서 빵을 꺼냈죠.”
“모나한이 자신이 꺼내겠다고 할 때마다 정말 멋져 보였어요. 박수가 절로 나왔죠.”
“전 만족스러웠죠, 로나가 언제나 수고했다며 간식을 쥐여 줬으니까.”
“뭐야, 그거. 부럽다.”
로나와 모나한의 이야기에 점점 듣기 싫다는 얼굴을 하던 모틸라가 모나한의 간식 이야기에 부럽다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도 로나를 일찍 만났으면 엄청 많이 도와줬을 거야!”
“그리고 간식을 얻어먹었겠죠.”
“그럼! 그런 의미에서 간식 먹지 않을래?”
“지금 먹고 있는 코코아는 간식이 아닌가 보죠?”
“이건 음료잖아! 간식! 씹을 수 있는 거!”
“그럴까요?”
로나가 모틸라의 말에 덮고 있던 담요를 내리며 말했다.
저택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을 때부터 모틸라는 저렇게 종종 간식을 먹자고 말하곤 했다.
모나한이 모틸라에게 로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녀는 모틸라의 요청이 딱히 싫지 않았다.
분명 모틸라가 자신보다 아주 나이가 많을 텐데, 그녀가 하는 일들은 꼭 어린 여동생이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간식을 만들어주는 것을 싫어하지 않기도 했고, 빵을 만드는 순간을 아주 좋아하기도 했고.
정확히는 빵이 오븐에서 구워지는 그 순간을 아주 좋아했다.
밀가루가 익어 가며 나는 달콤한 냄새, 따뜻한 오븐의 온도, 그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
로나가 남는 오븐에 마들렌이라도 구워 보겠다며 말하자, 모나한도 도와주려는지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마들렌을 만들까 이야기하며 응접실을 나가려는 그 순간.
쾅! 쾅! 쾅!
“계십니까?”
저택 정문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