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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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발터 씨랑 모틸라 씨가 좀 신경 쓰이네요.”

“신경요?”

“알아서 잘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 덕분에 관찰할 기회도 많이 준 것 같아서요.”

상태창이 어떤 인물상을 주인공으로 정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솔직히 상태창이 가리키는 여주와 남주만 아니면 연애를 하든 우정만 쌓든, 원수가 되는, 비즈니스든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그냥 그런 것들은 알아서 잘하라 하고, 로나는 필요한 정보만 쏙쏙 빼먹고 싶었다.

하지만 둘 다 일한다고 식사할 때만 겨우 보고 있으니 어쩔 수 있나.

그것도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먹어서 관찰하기도 힘드니.

발터와 모틸라가 바빠 아침밥만 겨우겨우 한 식탁에서 먹고 있었다.

“둘이 진도는 좀 뺀 것 같던데요?”

“……네?”

그건 또 무슨 금시초문이람?

내가 김치로 단련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로나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나한을 바라보았다.

“언제요? 그런 낌새는 조금도 없었는데? 둘 다 평소와 다를 게 없던데.”

“뭐……. 그렇긴 했죠. 근데 모틸라가 묘하게 하는 행동이…….”

“행동이?”

“발터에게 살짝 기대는 듯한 느낌? 좀 풀어져 있는 느낌?”

“저는 조금도 모르겠던데.”

“그야 로나는 모틸라를 오래 봐 온 건 아니니까요. 모틸라가 연애를 시작하면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모르고요.”

“모르죠.”

“저는 오래 봐 왔으니까 아는 거죠.”

모틸라 행동학 박사 모나한님께서 찡그린 채 말씀하셨다.

몇 번 연애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이젠 아무리 숨겨도 알아차려 버린다고.

자신이 알아차린다는 것 자체가 짜증 난다고.

“……그 둘, 제가 모르는 사이에 연애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네요.”

로나는 살짝 느껴지는 배신감에 입꼬리를 내렸다가 이내,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싶어서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하긴 우리 앞에서 연애 진도를 나가는 게 더 이상하죠?”

“그렇죠. 연애 상담을 해 오면 모르겠지만……. 모틸라가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발터 씨는 경험 없어 보이던데.”

“하지만 그는 남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성격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럭저럭 친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모틸라의 지인’이라는 느낌이고.”

“요즘은 아침 식사할 때만 겨우 얼굴 보고 있고요.”

“그때도 빠르게 먹고 밖으로 일하러 가 버리고요.”

로나는 알 만하다며 앉아 있던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생각해 보니 중2병에 시달리는 아실라나 자신의 눈앞에서 연애했지, 다 자란 어른들이 그러는 걸 보긴 힘들겠다 싶었다.

아실라도 우리를 병풍 취급 해서 그런 거였지, 그녀도 우리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면 얼굴이 빨개져서 도망가지 않았었나.

그에 반해 모틸라와 발터는 언제나 우리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둘 다 성인이었고, 성격도 남 앞에서 연애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정말 이 저택 전부가 빵집으로 인식되어서 우리 앞에서 이벤트가 터지지 않는 걸까.”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는 걸 보면, 그렇지 않을까요? 실제로 둘의 방인 저택 중앙 쪽은 모틸라가 방음 마법을 걸어 놔서 뭘 하는지도 모르고.”

저번에 저택 중앙 쪽으로 가면서 확인했거든요. 저희 방에도 걸어 놨고.

“……그럴지도.”

하긴 로나는 상태창이 어떤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하는지 궁금한 거지 그들의 연애가 궁금한 건 아니었다.

그냥 주인공이 되는 이유를 통계 내서 앞으로 편하게 주인공을 찾고 싶다!

그래서 많은 한식 레시피를 얻고 싶다!

“알아서 사건·사고 해결하고 알아서 연애하고 알아서 잘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모틸라랑 발터는 그러고 있는 것 같네요.”

로나는 모나한의 말에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리대에 엎드렸다.

그리고 아직 깍지끼고 있는 모나한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10분 지난 것 같지 않아요?”

“그즈음 된 것 같은데, 어때요? 괜찮아요?”

로나가 부엌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 말에 모나한이 로나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피며 물었다.

조금이라도 참는 표정이 보이면 바로 손을 놓으려는 모습이었다.

로나는 모나한의 걱정 어린 눈을 바라보며 잡고 있던 손을 살짝 흔들며 말했다.

“소름 끼친다거나 불쾌한 느낌은 안 드네요.”

“좋네요.”

모나한이 다행이라는 듯이 웃고는 말을 이었다.

“이왕 잡고 있던 거 괜찮지 않을 때까지 하고 있을까요?”

“그 전에 빵이 다 구워지지 않을까나.”

“손을 잡은 채로 오븐에서 꺼내면 되죠.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거 진짜 남이 보면 무슨 짓이냐고 욕하겠다.”

“뭐, 어때요. 여긴 우리 둘밖에 없는데.”

우리 둘이 좋으면 그만이지.

모나한이 달콤하게 속삭였다.

로나는 그 속삭임에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왕이면 30분은 넘었으면 좋겠어요.”

“왜요?”

“10분은 너무 짧지만 30분이면 많은 걸 할 수 있잖아요.”

“어떤 거요?”

로나가 반사적으로 물었다가 후회하는 얼굴을 했다.

무슨 대답이 나올지 뻔했기 때문이었다.

“글쎄요. 예열하고 굽고 식히고?”

“……우와! 빵 이야기죠?”

“그럼요.”

“아니잖아요.”

“그렇죠.”

모나한이 코끝을 찡긋거리면서 뻔뻔하게 웃었다.

로나가 검지로 그 주름을 꾹꾹 눌러 댔다.

모나한이 그 손길에 장난치듯이 머리를 흔들었고, 그에 따라 회색 앞머리가 살랑거리면서 부드럽게 로나의 손을 스쳤다.

“물론 빵을 여러 번 굽고 싶지만, 아직 로나에겐 그건 힘들겠죠.”

“와! 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뱀파이어의 강하고 힘세고 긴 체력을 알려 드려야 하는데.”

“그것참 정말 알고 싶지 않네요!”

“정말요?”

“……왜 되묻는 거죠.”

“흠.”

“흠.”

아닌 걸 아니까.

모나한이 도발하는 듯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살짝 다가온 얼굴의 붉은 입술이 장난기를 담아 휘었다.

로나가 그 얼굴에 뭐라고 한마디 하려 입을 열자, 모나한이 몸을 뒤로 쓰윽 빼면서 무해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로나가 싫다면 아무 짓도 안 하겠지만.”

“……싫다고는 안 했는데요.”

“그럴 줄 알았어요.”

뻔뻔하게 말하면서 눈썹 들썩이는 꼴이 아주 잘생기고 재수 없다.

청초한 에델바이스는 개뿔이.

여기 여기 있는 놈은 그냥 토끼 같은 얼굴을 한 여우 놈일 뿐이었다.

뻔뻔하게 웃는 모습 뒤로 살랑거리는 꼬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모나한이 그렇게 행동하는 거 아주 잘생기고 재수 없는 거 알죠?”

“그럼요. 그리고 로나가 은근 좋아한다는 것도 알죠.”

“그건…….”

“사실이죠?”

“사실이군.”

로나의 대답에 모나한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렸다.

이 대화가 너무나도 즐겁고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었다.

로나는 괜히 그 표정 어딘가를 툭 건드려서 깨트려 보고 싶었지만,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괜히 심술부리는 것이란 걸.

지금 억지로 내려간 입꼬리도, 턱 끝의 우글거림도, 조금 튀어나온 입술도 그런 거지.

모나한이 끝없이 달달하게 구니까 괜히 더 심술부리게 되는 것이다.

“오, 로나. 그 귀여운 입은 애교죠?”

“……애교는 아니죠.”

“그럼요?”

“글쎄요. 어리광?”

“저한테 어리광부리는 거예요?”

“그렇네요. 저 진짜 남한테 어리광 안 피우는데.”

“저한테는 얼마든지 하셔도 되는데.”

“네. 그래서 지금 하고 있잖아요.”

“아주 좋네요.”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깍지껴 잡은 손의 툭 튀어나온 뼈를 살살 매만졌다.

로나는 간지러워서 모나한의 손을 툭 때려 떨어트렸다.

모나한이 다시 만지작거리고, 로나가 간지럽다며 다시 떨어트리기를 몇 번.

모나한은 몇 번을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손이 아니라 입술로 로나의 손등을 간지럽혔다.

입술이 잘게 오가며 간지럽히기도 몇 번, 길고 조금은 숭고해 보이는 듯한 입맞춤이 한 번.

모나한은 자신의 성스러워 보이는 외모를 잘 이용하는 이였다.

숭고해 보이고, 순종적이고, 조금은 아련해 보이는 방법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위험함과 퇴폐를 섞어 유혹적으로 바꾸는 방법도.

순종적으로 내려앉았던 회색 속눈썹을 살짝 들고, 선홍색 눈동자로 로나와 눈 맞추고 눈가를 붉히며 웃으면-.

“……와.”

“잘생겼나요?”

“아주요. 끝내주네요.”

로나가 아주 좋아하지.

그녀는 순종에서 유혹으로 변하는 그 순간의 얼굴을 좋아하니까.

“제가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요.”

“참으로 진득한 초콜릿 같은 음성이군요. 아주 좋아요. 계속해요.”

“잘하거든요. 달콤하게 구는 거요.”

“네. 지금 정말 달콤해요. 얼굴도 목소리도.”

“몸매도?”

“몸매도.”

“칭찬이 아주 마음에 드네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로나.”

모나한이 아주 끈적하고 유혹적이면서도 달콤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꿍꿍이속이 한껏 보여 더욱 넘어가게 만드는 태도였다.

“우리가 서로 사귀자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처음으로 입 맞춘 날을 기점으로 해도 1년이 훨씬 넘었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제가 로나를 아주 사랑하는 건 알고 있을 거고요.”

“아주 잘 알죠.”

“그리고 제 욕구 중에 식욕이 가장 큰 건 사실이지만- 다른 욕구도 꽤 크거든요.”

“네, 계속해 봐요.”

“정말 슬프게도 지금까지 로나와 닿은 가장 은밀한 곳이-”

입술이네요.

모나한이 자신의 한 말을 강조하기라도 하는 듯이 로나의 손등에 제 입술을 느릿하게 뭉개며 말했다.

어떻게 한 건지 그의 입술이 조금 전보다 선정적인 색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발가락은 움츠리고, 침을 삼키고, 시선을 잡아끄는 색이었고 행동이었다.

로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모나한이 얼마나 유혹적인 사내인지 실감했다.

“전 좀 더 여러 곳에, 진득이- 닿고 싶거든요.”

“……진도를 나가고 싶다는 소리죠.”

“오, 로나. 그건 너무 직접적인 말이에요.”

그는 로나가 꺼낸 단어가 매우 귀엽다는 듯이 속삭였다.

우리 둘 사이에는 좀 더 많은 은유와 비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좀 더 돌려 말하고, 좀 더 간접적이어서 더욱 은밀하고 사적이면서도 깊은 말들이 있을 거라고.

“전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로나- 푹 익은 과일 같은 거요. 썩기 직전에 가장 달콤하고 약간은 술의 향이 나는 것 같은.”

“……농밀한?”

“오, 그래요. 아주 마음에 드는 단어예요. 그러니까-”

이제는 농밀한 사랑, 해 보는 게 어떨까요?

모나한이 드디어 로나의 손등에서 입술을 떼며 말했다.

휘어진 눈가는 달콤하고, 휘어진 입가는 진득하고-.

“저희 손잡은 지, 30분은 넘은 거 같은데.”

슬쩍 핥고 지나가는 혀가 아주 유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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