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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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구워진 빵을 오븐에서 꺼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루는 매우 규칙적으로 흘러갔다.

뱀파이어가 야행성이라지만, 로나가 지금까지 해 왔던 생활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냥 낮에 일하니까인가.

그녀는 인간이었을 때와 같이 아침 해가 뜨면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하루 종일 빵을 구워 사람들을 먹이고는 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점심과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짧은 겨울 해가 지고, 모나한이랑 도란도란 이야기하거나, 저택 서재에 있는 책을 읽거나, 산책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모나한과 닿지 않기 위해 두꺼운 이불에 칭칭 둘러싸여 그의 품에서 자는 것은 이제 매우 익숙해진 일이었다.

그러니까 뭐가 문제냐면-.

“아무런 이벤트도 터지지 않는다.”

“네?”

“우리 분명 소설 속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을 만났잖아요.”

“그렇죠. 모틸라와 발터요.”

“아실라 때는 빵집에서 어마무시한 이벤트들이 열리곤 했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에 비해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네요.”

“네. 저 둘은 그냥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들어와서 각자 방에 가서 잘 뿐이잖아요.”

“저희는 매일 이벤트 같은데 말이죠.”

모나한이 그렇게 말하면서 로나의 허리에 제 팔을 감고,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대고 비비적거렸다.

이제 스킨십이 많이 적응되어서 옷 위나 머리카락에 닿는 것은 얼마든지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로나는 따뜻하지는 않지만 단단하고 시원한 모나한을 느끼며 등을 그에게 기대었다.

“하루하루 스킨십의 강도를 늘려가고 있죠.”

“뭐, 우린 그렇다고 치고요. 저 커플은 진도가 안 나갑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온실 밖에서 영지민에게 무언가 명령하는 발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커플이긴 한 거죠?”

“아, 거기서부터 문제인가.”

“분명 상태창은 빵집에서 이벤트가 터질 확률이 올라간다고 했는데, 이벤트는 무슨. 하루하루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네요.”

“……그거 아니에요? 이 저택이 전부 빵집인 거죠.”

모나한은 대충 아무 이유나 붙이며 말했다.

모틸라와 발터의 관계를 걱정하는 대화를 하는 듯했지만, 둘의 표정은 무심하기만 했다.

솔직히 남의 연애에 끼고 싶은 생각 없수다.

우리 연애하기도 바쁜데, 남의 연애는 무슨.

“이 저택이 전부 빵집이면, 저기 구석에서 이벤트가 터지는 건가요?”

“그럴 수 있죠. 우리가 발터와 모틸라의 대화 내용까지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잖아요. 둘이서 알아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나 보죠.”

“그래도 뱀파이어의 귀면 들리지 않아요? 천장에 기어 다니는 벌레 소리도 들리던데. 이젠 무시할 수 있게 됐지만.”

“그거랑 비슷한 거죠. 모틸라와 발터 씨의 말도 무시했다거나. 아니면, 모틸라가 마법을 썼을 수도 있고요.”

“아, 저번에 알려 준 방음 마법요?”

“네, 뱀파이어들이 필수로 배우는 마법 중 하나인 그거요.”

로나가 산장에서 있었던 마법 수업을 떠올리며 이야기하자 모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알아서 이벤트 다 처리하고 연애하는 모습 같은 건 보여 주지 말았으면…….”

“그건 저도 바라는 거네요.”

“다음에도 엄청 커다란 건물에서 빵집 차려야겠다. 적어도 이벤트가 눈앞에서 터지는 건 안 볼 수 있게.”

“제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아주 좋은 생각이네요.”

“이번 이야기에선 잘 모르겠고, 다음 이야기 만날 때 한번 실험해 보죠.”

앞으로 이야기를 하나하나 만날 때마다 실험해서 어떻게든 이벤트를 멀어지게 해야겠다.

스킵 버튼을 내놓지 않으니 스스로 찾겠다!

“아무튼, 사실 눈앞에서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으니 전 좋기만 하고요.”

“네네.”

“그보다는 드디어! 김치를 만들 준비를 다 끝냈단 말이죠!”

“아, 그게 있었죠.”

“까먹고 있었어요?”

“모틸라가 여주인공이라는 충격이 너무 커서.”

로나는 모나한의 말에 알 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동안은 영지민들의 식사를 차리는 것에 익숙해지느라고 별 시간이 안 났었다.

모든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조금 헤매곤 하니까.

그러나 이젠 이 영지에도, 이 저택과 온실에도 익숙해졌고, 자잘한 일을 돕는 사람도 생겨서 어느 정도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로나는 그동안 미뤄 놓았던 김치 만들기를 해 보기로 하였다.

“김치 레시피가 열리면서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상점에 나왔거든요.”

“여러 가지가 많이 들어가는 요리인가요?”

“배추를 고춧가루 양념에 절여서 발효시키는 보관 음식인데……. 아무래도 이것저것 많이 들어가죠.”

배추랑 고춧가루는 기본이고, 파에 마늘, 생각과 사과, 배, 양파, 멸치액젓과 새우젓, 매실청 등등.

“그래서 이번에 해금된 재료는 배추, 멸치액젓과 새우젓, 매실청입니다.”

“……멸치와 새우요? 바다에서 나는 거요?”

“네. 그거요. 솔직히 김치 말고 이걸 어디에 써야 하는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김치는 만들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매실청은 얼음물에 타 먹을 수 있고, 탄산수에 타 먹을 수 있고, 배 아플 때 마셔도 좋고.

아니, 솔직히 전생에 배달 음식을 신봉하거나, 만들더라도 인터넷에서 그때그때 레시피 찾아서 얼렁뚱땅 만드는 비루한 자취생이었단 말이요!

멸치액젓과 새우젓을 어디다 쓰는지 알 것 같냐!?

고기 먹을 때 넣어 먹거나 곰탕 먹을 때 넣어 먹는 것 정도밖에 생각 안 나!

“아무튼 그래서 김치를 만들기 위해서 짜잔-! 이렇게 준비했죠.”

“왜 소금에 절인 배추가 있나 했더니.”

“미리 해 놨어요. 양념 만드는 것부터는 모나한이랑 같이하려고요. 많이 만들지는 않을 거예요.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 한 네 포기 정도 해 보고 괜찮으면 쭉쭉 만들어 보는 걸로.”

“알겠어요. 뭐든지 시작해 보는 게 우선이죠.”

“좋아요. 그럼 같이 양념을 만듭시다!”

모나한은 그 말에 로나가 부엌 조리대에 늘어놓은 재료를 훑어보았다.

새빨간 고춧가루가 있는 걸 보니 또 뭔가 매운 음식인가 보다.

고추 튀김 먹으면서 엉엉 울었던 로나가 엊그제 같은데, 또 매운 음식에 도전하는 건가.

“근데, 괜찮아요? 이거 만들기 시작하면 로나 버티기 힘들 것 같은데.”

“그래서 모나한을 기다린 거예요. 재료를 꺼내면서 깨달았거든요. 직접 만들면 죽는다.”

“으음……. 그럴 것 같네요.”

모나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로나 대신 조리대 앞에 섰다.

그리고 로나가 말하는 대로 재료를 하나하나 넣으면서 새빨간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다.

옆에서 로나가 켈록거리며 죽으려 하는 게 느껴진다.

“……레시피를 적어 주고 밖에서 기다리는 게 어때요.”

“김치……. 김치……. 김치…….”

“제가 만들어 줄게요. 지금 거의 울고 있는데.”

“아아아……. 화생방, 이건 화생방이야.”

“울지 말고 나가 있어요. 밖에서 레시피 적으면 말해 주고요. 가지러 나갈게요.”

“네에에.”

로나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참기 힘들었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코를 틀어막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코가 막혀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가 말했다.

“다 썼어요. 부탁 좀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로나에게 배운 게 얼마인데.”

“네엥.”

“여기 옆에 있는 건 뭐예요?”

“수육 레시피! 된장이 없는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생각나는 대로 적었어요.”

“이대로 고기를 삶아 달라는 거죠?”

“네엥. 그거랑 막 만든 김치랑 먹으면 맛있거든요.”

“알겠어요. 온실에서 허브 화분이라도 가꾸고 계세요.”

“그럴게요.”

로나는 아직 진정되지 않은 코를 한번 훌쩍이고 ‘잘 부탁한다’라고 말하고는 온실 쪽으로 종종종 사라졌다.

모나한은 피식 웃고는 김치를 담으로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혼자 부엌에 있는 게 오랜만이라 조금 웃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 시간.

온실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식당에서 모틸라와 발터, 로나와 모나한이 새로 만든 김치와 수육을 먹기 위해 모였다.

로나가 그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었으므로, 모틸라와 발터도 한식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발터는 아직 미묘한 얼굴을 하곤 했지만, 또 다른 식욕의 노예인 모틸라는 ‘새로운 음식이라면 다 좋아!’라는 표정으로 한식을 즐기곤 했다.

발터가 어색해하는 것을 알아서 처음에는 빵 같은 것들을 식탁에 더 올리곤 했지만, 발터의 괜찮다는 말 이후에는 그냥 한식이 식탁에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에만 미묘한 표정일 뿐이지 막상 먹으면 잘 먹긴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따끈따끈한 흰밥은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로나의 원픽 육고기가 많이 올라오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김치는 좀 호불호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먹어 보고 괜찮으면 드세요. 이렇게 고기랑 같이 먹으면 돼요.”

“으으음……. 맛은 있습니다만.”

“다만?”

“왜 이렇게 매운 음식이 많은 건지 언제나 의문입니다.”

“제가 매운 걸 좋아하거든요.”

로나의 말에 발터는 더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로나가 좋아한다고 하는 것에 비해 매운 것을 엄청 못 먹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보쌈김치를 먹으면서 밥보다 물을 더 많이 마시고 있으니…….

“혀를 단련시키는 중입니다.”

로나가 발터의 표정을 읽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발터는 그녀의 부들거리는 입꼬리를 잠깐 보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식탁에서는 김치를 처음 먹어 보는 발터가 오히려 로나보다 더 잘 먹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넷 중에 가장 못 먹는 사람은 로나였던 것이다!

“흐으, 흐으, 흐으. 발터 씨, 괜찮으세요? 안 매우세요?”

“맵긴 하지만 견딜 만합니다. 로나 씨 말대로 단련이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괜찮기도 하고요.”

“……젠장! 나만 맨날 못 먹어!”

“하하하, 로나. 점점 익숙해질 거예요. 물에 양념 좀 씻어 드릴까요?”

“자존심 상해서 싫어요!”

“그럼 밥을 좀 많이 먹어요. 물보다는 우유를 먹는 게 좋겠어요.”

로나가 울상이 되어서 모나한이 건네는 우유를 벌컥벌컥 마셨다.

처음 고추와 고춧가루가 나왔을 때부터 단련해서 겨우 매운 것에 적응했던 혀가 뱀파이어가 되면서 다시 리셋되었다.

로나는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드디어 김치를 먹게 되었는데!

뇌는 그리웠다고, 이 맛이라고 소리치는데!

내 혀야! 왜 먹지를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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