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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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결혼식이 진행되는 게 그렇게 좋아요?”

“그럼요? 로나랑 제 결혼이잖아요? 안 할 생각이었어요?”

“……하긴 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뭐, 어때요. 저쪽에서 알아서 장소도 제공해, 계획도 세워, 다른 것도 전부 해 주겠다는데.”

“으으음…….”

“모틸라가 파티를 엄청나게 좋아하거든요. 특히 자기가 여는 걸 아주 좋아하죠. 자신의 안목을 뽐내는 것도 좋아하고.”

“으으으음…….”

“그냥 맘 놓고 맡겨 놓으면 신난 채로 알아서 다 해 놓을걸요? 솔직히 로나, 몸만 가고 싶죠?”

“……그건, 그렇지만.”

“게다가 첫 결혼식이니까 더 고민될 테고, 로나 성격상 고민하다 보면 고민하기 싫다고 으악거리실 테고.”

“날 너무 잘 아는군요.”

“그냥 모틸라가 하는 걸 즐겨요. 아쉬우면 두 번째 결혼식은 로나가 직접 꾸미면 되죠.”

“……두 번째 결혼식요?”

로나가 모나한의 말에 자기가 잘못 들었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결혼식을 두 번이나 하라니?

모나한하고 이혼하라고?

“앞으로 수백 년도 더 살 건데 결혼식 좀 여러 번 하면 어때요? 물론 신랑은 계속 저여야 하지만.”

모나한은 당연히 아니라며, 다른 이는 꿈도 꾸지 말라고 말하면서 아주 가벼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가볍지만 달콤한 목소리라 로나의 부담을 덜어 주려는 것 같았다.

“결혼식을 한번 경험해 보면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보이잖아요. 그럼 좀 더 부담이 덜겠죠.”

그는 열정에 차 어디선가 종이를 가져와 계획을 적기까지 하는 모틸라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렇게 불타서 하는 만큼 생략하는 것도 없이 결혼식으로 할 수 있는 건 전부 할 텐데, 나중에 로나가 원하는 것만 쏙쏙 골라서 할 수도 있을 거고요.”

모나한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며 웃으면서 하는 말에 로나는 어느새 어깨에 들어갔던 힘을 살짝 풀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다른 곳에 가서 다시 결혼식 열어 보고, 또 신랑·신부가 되어 보고, 축하도 받고. 그러면 되죠. 실제로 뱀파이어 부부 중에는 청첩장만 다섯 번 보낸 경우도 있어요. 30년 단위로 결혼식을 다시 하던데.”

“똑같은 부부가요?”

“그럼요. 결혼식도 유행이 있다고, 유행이 바뀔 때마다 해 줘야 한다나 뭐라나. 한 세 번 가 보고는 안 갔던 것 같던데. 거긴 하객들 오는 것도 신경 안 쓰고 그냥 둘이 즐기려고 하더라고요.”

“와우…….”

“그러니까 로나도 신경 쓸 필요 없이, 첫 결혼식은 모틸라가 해 주는 대로 받아요. 마음 편하게요.”

로나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입술을 오물거리고 생각에 잠겼다.

결혼식은 일생 단 한 번만 하게 될 줄 알았는데, 무슨 파티처럼 열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다.

하긴, 모나한이랑 결혼을 안 할 것도 아니고.

자기는 종이가 그렇게 싫다고 투덜거렸던 모틸라가 무슨 깜지를 쓰는 것처럼 세우는 계획을 말릴 생각도 안 들고.

“뭐……. 그럼 마음 편하게에-”

로나가 살며시 의자에 몸을 편하게 기대며 속삭였다.

“모틸라가 해 주는 대로 즐겨 볼까요?”

“좋은 생각이에요.”

옆에서 식탁에 편하게 상체를 기댄 모나한이 속삭였다.

키득거리는 웃음이 함께였다.

* * *

결혼식은 오렌지 꽃이 피는 늦은 봄에 하기로 했고, 현재는 아직 눈도 내리지 않은 겨울이었으므로, 모틸라는 줄줄이 세운 결혼 계획서를 엉엉 울며 치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계획이 생기면 바로바로 추가하겠다며 결혼 계획서를 식당 한쪽 벽에 걸어 놓았다.

로나는 그걸 볼 때마다 ‘이게 정말 맞는가’라는 기분이 들었지만, 별말을 하지 않았다.

로나가 영지민의 하루 세끼를 제공하는 것은 순식간에 영지에 퍼졌다.

영지를 복구하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발터와 모틸라가 로나가 건네준 아침 식사용 빵을 들고 이야기한 덕분이었다.

그들이 영지민들과 마을 담장을 복구하고,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우고, 땔감을 위한 나무를 베는 동안, 로나와 모나한은 온실을 치우고 있었다.

방치했다는 말답게 온실은 말라 죽은 화분들과 자잘한 식물들이 가득했다.

그나마 나무들 정도가 겨우겨우 살아남아 있었다.

모나한이 죽기 직전의 나무들을 관리하는 동안, 로나는 빈 화분들을 정리하고, 가져온 허브 화분들을 주위에 배치했다.

화분을 두세 개 가져온 것뿐이라 로나가 편해지기 위해서 허브 화분을 더 만들 필요가 있었다.

“상점 창에서 살 수 있는 허브들 좀 번식시킬까요?”

“씨앗 챙겨 온 것 있어요. 이것도 좀 심죠.”

“숲에서 캐 오는 건-”

“겨울이라 숲에서 찾기는 힘들 것 같고, 그래도 여긴 햇빛이 잘 들어오는 온실이니까 번식시키기 쉬울 거예요. 조금씩 늘려가죠.”

로나가 모나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마지막 허브 화분을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그러고는 흙 묻은 손은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점심용 스튜를 끓여 볼까요.”

“크림수프는 아침에 먹었으니까, 토마토 어때요?”

“추우니까 살짝 매콤하게 해요. 고기랑 양파 가득 넣고. 마늘도 가득 넣고.”

“……로나 마늘을 정말 좋아하죠. 요리에 그렇게 마늘 많이 넣는 사람 처음 봤어.”

“맛있잖아요.”

“맛있긴 하죠.”

이 세계 뱀파이어는 마늘을 먹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마늘을 못 먹었으면 뱀파이어가 되는 것을 정말 망설였을 거야.

로나는 흡족한 마음으로 또다시 마늘 향이 가득한 음식을 먹을 생각을 하며 적당히 정리된 온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말라비틀어져 있던 나무들을 뿌리째 들어내 한쪽에 쌓아 놓고, 잔가지들도 모아서 정리했다.

모나한이 갈퀴로 쓸어 버린 나뭇잎들도 저기 한곳에 왕창 모여 있다.

빈 화분들은 한쪽 벽면에, 허브가 담긴 화분들도 벽 쪽에 옹기종기 모아 두었다.

덕분에 중앙이 휭하니 비었다.

“……여기서 사람들이 식사하면 춥지 않고 좋지 않을까요? 아침, 점심, 저녁을 전부 여기서 먹는 거죠.”

“흠, 200명 정도는 들어올 수 있겠네요. 좁으면 100명 정도씩 돌아가면서 먹으면 되고.”

“이 온실 위쪽 창문이 열리는 거 맞죠.”

“그렇네요. 이 레버를 돌리면 열리는 형식이에요.”

“그럼 안에서 불을 피워도 되겠네요. 커다란 냄비가 있던가? 사람 몸 반 정도 되는 거요.”

“어제 부엌을 뒤졌을 때 몇 개 있던 것 같던데.”

“가져와서 여기서 직접 스튜를 끓이죠. 바로 먹을 수 있게요.”

“오늘은 바닥에서 먹고, 발터 씨에게 말해서 식탁을 만들죠. 잡일 할 수 있는 사람도 좀 구하고.”

“하긴, 다량으로 설거지가 나올 테니까요. 식탁 정리도 해야 하고.”

“그런 건 담당을 맡겨 놓는 게 좋을 테니까요.”

로나와 모나한은 서로 의견을 나누며 계획을 세웠다.

적어도 영지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온실을 급식소처럼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들은 상의한 것처럼 적당한 장작을 쌓고, 그 위에 커다란 냄비를 얹어 토마토 스튜를 끓였다.

“스튜가 뭉근하게 끓여질 동안 같이 먹을 빵을 만들죠.”

“바로 구워도 되는 빵들로 하는 게 좋겠어요. 점심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요.”

1년 동안 같이 장사를 해 와서인가?

둘은 손발 척척 맞게 일했다.

지치지 않고 빠르고 힘센 뱀파이어 둘이라 그런지 온실 안의 움직임은 배속이라도 걸어 놓은 것 같았다.

발터와 모틸라에게 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쭈뼛거리는 몸짓으로 식기를 든 채 온실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맛있는 수증기가 몽실거리는 토마토 스튜들과 바구니에 가득 담겨 있는 빵들이 그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발터는 온실 안을 보자마자 그들이 준비한 것을 눈치채고는 몇몇 사람들에게 스튜를 나눠 주라고 명령했다.

로나가 건네준 국자를 인사하며 받아 든 사람들이 각자 식기를 가져온 영지민들에게 토마토 스튜를 나눠 주기 시작했다.

“부족할까 봐 안쪽에서 끓이는 것도 있으니까, 마음껏 드시라고 하세요.”

“……감사합니다.”

발터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온실로 나온 로나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로나는 괜찮다며 손을 휘젓고는 발터 씨도 식사하시라며 부엌에서 가져온 식기를 쥐여 주었다.

“아, 안쪽에서 드시겠어요?”

“점심은 다 같이 먹겠습니다. 바로 일하러 가야 하기도 하고요.”

“그러세요. 모틸라 씨는……. 이미 한 자리 차지하고 드시고 계시는군요.”

로나가 어느새 마을 사람들 사이에 끼여 토마토 스튜를 와구와구 집어넣는 검은 곱슬머리를 발견하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랑도 잘 어울리십니다. 인기가 많으시죠.”

“그래요?”

“저보다도 더 인기가 좋습니다.”

“영주님으로서 아쉽겠네요.”

“……그렇진 않습니다. 영주가 된 지도 얼마 안 됐고, 아직 신뢰를 쌓을 만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고.”

“글쎄요. 평민이었던 제 입장으로 말하자면, 이럴 때 밥 잘 챙겨 주는 영주님이잖아요. 신뢰도는 확 올랐을 것 같네요.”

발터는 로나의 그 말에 그녀를 잠시 쳐다보다가 “감사한 말씀입니다.”라고 인사하고는 로나가 나눠 준 토마토 스튜를 들고 모틸라가 앉은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

로나는 참으로 덤덤한 청년이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빵을 오븐에서 꺼내고 있을 모나한을 찾으러 부엌으로 향했다.

등 뒤로 정말 오랜만에 맛있는 걸 먹는다며 감탄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서, 로나가 살짝 미소 지었다.

왠지 어깨가 으쓱거리고 뿌듯함이 가득 느껴지는 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게 적성에 맞나 보다.

특히 마을에 처음 들어오면서 신경 쓰였던 비쩍 마른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스튜를 먹고 있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얼굴이 스튜의 따뜻한 김으로 둘러싸인 것은 더욱 마음에 들었고.

로나는 저녁에는 또 뭘 만들지 즐겁게 고민하며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소리를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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