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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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가를 주면 되잖아!”

“예?”

“네?”

씩씩거리는 모습으로 모나한과 발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틸라가 소리쳤다.

“나 돈 많아! 내가 돈 줄게!”

“하아? 누군 없는 줄 아십니까?”

“네 성격에 나보다 많겠니? 너는 그때 벌어서 그때 쓰는 타입이잖아!”

“어느 정도는 모아 놓는 타입입니다만?”

“나는 ‘어느 정도’ 모아 놓는 타입이 아니거든! 내 아공간에는 보석과 골드로 가득 차 있단 말이야!”

“누군 아공간에 보석이 없는 줄-”

모나한은 자신의 아공간도 보석이 가득하다고 말하려다가 눈을 데굴 굴렀다.

생각해 보니 보석이 가득 차 있진 않았다.

보석이 있긴 하지, 골드도 있고.

보물 상자 세 개 정도는.

하지만 그 외의 공간에는-.

“생각해 보니까 빵으로 가득 차 있군.”

“……뭐야, 그거. 부럽다.”

모틸라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부럽다고 중얼거렸다.

“기본적인 식사류의 빵들도 많지만, 로나가 1년 동안 타르트류를 많이 만들었죠. 이상하게 타르트류가 끌린다면서 왕창 말이죠.”

“아아앗.”

“제 아공간에는 치즈, 레몬, 블루베리, 사과, 커피, 딸기, 초콜릿, 에그 타르트 등등등. 온갖 타르트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뭐야, 그거! 부럽다!”

모나한이 자랑하는 표정으로 말했고, 모틸라가 부럽다고 소리쳤다.

제 아공간의 휘황찬란한 보석들과 골드보다는 모나한의 아공간의 달콤한 디저트들이 더 끌린다!

로나는 자신의 빵과 관련돼서는 맨날 콩트가 열리는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뭐, 저렇게 좋아해 주니 뿌듯하긴 하네.

“아,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난 돈이 많다는 거지. 이젠 다 쓰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아, 예.”

“그렇게 관심 없다는 얼굴 하지 말고! 좋아! 이런 건 모나한에게 말해 봤자 소용없지! 얘! 로나야!”

저놈은 옛날부터 금전 욕심이 없었어! 아주 한심해!

모틸라가 모나한에게 콧방귀를 크게 뀌며 무시하고는 로나를 불렀다.

“네?”

“재산이 필요하지 않니? 너도 이제 살날이 아주 많이 남았는데, 내가 너에게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놀 수 있을 금액을 줄 수 있단다!”

……시어머니께서 재산 물려주려 하시는 줄.

어? 비슷한가? 모틸라가 모나한의 여동생이니까 시댁인가?

로나는 모틸라를 보며 이상한 생각을 하다가 그만두고 고민하는 표정을 했다.

이 영지에서 빵집을 차리냐 마냐는 이미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상태창이 원하기도 했고, 사람이 별로 없는 작은 영지여서 아직 예민한 자신이 지내기에도 좋았다.

제빵사가 없다고 하니 마을 영지에 있는 모두가 자신의 빵을 먹을 테고, 그러면 레벨업과 빵 코인도 잘 모이겠지.

남주와 여주가 여기 있으니까 더더욱 잘 모이겠고.

지금 로나가 하는 고민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알리느냐 마냐였다.

그걸 알리기만 하면 모나한이 외부로 나가지 않더라도 모든 식량 문제가 해결될 테니까.

하지만 만약 이들이 자신을 배신한다면?

아니면, 영지민들이 이상하게 생각해서 신전 같은 곳에 신고한다면?

로나는 어릴 적 자신의 상태창을 보며 중얼거렸던 의심들을 다시 떠올렸다.

차마 부모님에게도 형제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친한 친구에게도 속삭이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쓰지 않는 시장의 밀가루를 사들이던.

혹시나 알아차릴까 봐 전생의 레시피대로 만든 빵들을 엎어 버리던 순간들.

평범한 날들의 그림자 속에서 속삭이던 의심들.

로나는 그런 의심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자신이 생각보다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들킬지도 몰라 긴장하며 움츠렸던 손끝이, 손님 하나하나 의심하며 굴리던 눈동자가, 바짝 말라 오던 혀끝과 간지럽던 목 뒤가 평온하기만 하였다.

말해 버려도 괜찮은 것 아닐까?

모두에게 말하고 다닐 순 없겠지만, 몇 명에게라면.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친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사람에게는.

로나는 자신이 불안에 떨며 쌓아 놓았던 벽이 어느 순간부터 아주 낮아졌다고 생각했다.

여긴 안 된다며, 더는 다가오지 말라며 자신을 숨기고 감추고 배척했던 벽.

하지만 지금은-.

들키면 도망가면 되지.

잘하면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여기서 들키면 다른 곳으로 훌쩍. 저기서 들키면 또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 버리면 된다.

이제는 그럴 수 있었다. 평범한 시골 평민 여자가 아니라, 선홍색 눈동자를 가진 뱀파이어가 되었으니까.

어디로 가든지 모나한이 함께일 테니까.

“저 특별한 능력이 있어요.”

“응?”

로나는 왠지 간지러운 혀끝을 한번 깨물고 말했다.

평생을 숨겨 온 비밀을 말하는 순간, 그녀는 이상하게도 비실거리며 나오는 웃음을 느꼈다.

“엄청 특별한 능력요. 특별하지만 평화롭고 평온한 능력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어떤 엄청난 이야기의 주인공도 아니지만.

“상태창이라고 제빵에 관련된 특별한 힘을 주는 능력요. 그리고, 제빵과 관련된 재료를 살 수 있는 상점 창도요.”

적어도 내 삶을 특별하게 했고, 빵을 먹는 사람들을 특별한 순간으로 초대했고, 이젠 어떠한 영지를 특별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능력.

“모나한이 다른 영지로 갈 필요도 없고, 다른 영지에서 상인을 부를 필요도 없다는 거죠.”

로나는 언젠가 등 뒤에서 흐르는 햇빛 가득한 창문에 걸터앉아 난생처음 비밀을 말했을 때처럼,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그때 모나한이 ‘매우 평화로운 힘’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도.

그가 덤덤하게 행동했던 것도 기억한다, 그게 정말 기뻤던 것도.

그리고 그때의 모나한과 다르게 눈앞의 모틸라와 발터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온몸으로 한껏 자신이 놀랐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로나는 그게 너무나도 웃겨서 키득거리며 웃어 버리고 말았다.

“뭐, 뭐뭐뭐, 뭐라고? 그러니까 지금 바로 음식 재료를 얻을 수 있다는 거야?”

모틸라의 말에 로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허공에 상점 창을 불러 밀가루 한 포대를 결제했다.

결제 음이 귓가에 울리고 나서 바로, 로나의 눈앞에 밀가루 한 포대가 허공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

로나와 모나한에게는 아주 익숙한 광경이었지만, 당연히 모틸라와 발터에게는 깜짝 놀랄 만한 광경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모틸라는 어깨를 흠칫 떨며 서 있던 자리에서 한 발짝 물러났고, 발터는 그대로 한쪽 손을 허리에 차고 있던 검 위에 올린 채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은 조용히 밀가루 포대가 나왔던 허공을 노려보았다.

으으음, 이렇게 보니 모나한이 그때 얼마나 담담히 행동했는지 알겠다.

“이 능력은-”

발터는 로나의 능력과 정체에 관해 물어보려다가 입을 닫았다.

로나의 능력을 보는 즉시, 그는 과거 기사 교육원에 있을 때 배웠던 것들을 떠올렸다.

악마의 계약이나, 삿된 것의 환상, 마녀로 불리던 이들의 능력.

발터는 순간, 자신의 주위에 똑같은 선홍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 세 명이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모틸라를 만난 후에 그녀가 의심스러웠던 순간들도.

그리고 그는 그 모든 의문을 목 뒤로 깔끔히 삼켜 버렸다.

“……대가가 어떻게 됩니까? 상점 창이라고 했으니까……. 돈입니까?”

그녀의 정체가 어떻고,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악마도 마녀도 이런 망해 버린 영지에는 어떠한 관심도 주지 않을 텐데.

내일 당장이라도 굶어 죽은 이들과 얼어 죽은 이들이 나올 것 같은 곳인데.

발터는 저들의 정체를 생각하는 것보다, 로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로 했다.

자신의 굶주린 영지를 구원할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맞아요, 돈이에요.”

로나는 발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현실에서 쓰는 돈이 아니라, 빵을 다른 사람에게 먹임으로써 얻는 빵 코인이 대가였지만 그런 것까지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가격은 어떻게 됩니까?”

“그거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이 능력에는 제약이 있어요. 재료 그대로는 팔지 못하게 되어 있죠. 제가 직접 빵을 만들어서 판매해야 해요.”

“그렇다면-”

“같은 부엌에서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까지는 괜찮은 것 같지만. 실제로 모나한이 만든 빵도 몇 번 팔 수 있었거든요.”

“그럼 마을 사람들을 불러서 같이- 아니군요. 그렇게 되면 능력을 숨기시기 어려워지겠어요.”

“그렇죠.”

발터가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경계심이 어린 로나의 눈동자에 하던 말을 부정했다.

로나는 최대한 숨기고 싶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드는 것은 저랑 모나한이 할 거예요. 대가로 받아야 할 빵값은 제가 틸레아 학원 도시에서……. 아니, 제가 살았던 시골에서 팔았던 금액만큼 받을게요. 낱개로 사시는 게 아니라 다량으로 구매하실 거죠?”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영지민을 먹여야 하므로.”

“……빵이 아니라 식사로 계약하면 어떨까요. 어차피 요리 재료는 있으니 식사를 만들 수도 있는데. 언제나 빵이 곁들여져야 하긴 하지만.”

“그건 원래 먹는 식사도 그러하니까 괜찮습니다.”

로나는 발터의 말에 ‘아, 그랬지’라는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상점 창에 쌀이 나오고 나서부터 당연스레 밥을 먹고 있던 로나였다.

“식사로 곁들이면 어차피 기본적인 빵일 테고, 다량이라고 하면 더 싸게 드릴 수 있겠네요. 계산해서 서류로 드릴 테니 계약서를 작성하죠.”

“이런 건 확실히 하는 게 서로에게 좋긴 하죠.”

발터는 조금 당황한 기분이 되어 대답했다.

똑같은 선홍색 눈동자를 가진, 이상할 정도로 아름다운 세 사람.

그중 한 명이 가진 도무지 현실감 없는 능력.

그리고 정확히 계산해서 서류로 주겠다는 말과 계약서.

발터는 이상함이 가득한 현실에 허공으로 부유했다가 서류와 계약서라는 단어에 갑자기 땅으로 떨어진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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