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 (81/154)

81

모나한은 충격받아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는 겨우겨우 손을 들어 덜덜 떨리는 검지로 모틸라를 가리켰다.

모틸라는 어느새 서 있는 게 싫었는지 마부석 구석에 대충 쪼그려 앉아서 단팥빵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한없이 하찮고 어벙해 보였다.

모나한이 검지만큼 떨리는 입술로 소리 없이 물었다.

‘얘가?’

로나가 그 모습을 보며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 없이 말했다.

‘걔가.’

모나한은 마치 세상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다는 얼굴이 되어 소리 없이 물었다.

‘아니 진짜로, 얘가?’

로나는 이제 인정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 없이 답했다.

‘응. 진짜로. 걔가.’

그 사이에서 자신의 머리 위에서 소리 없는 문답이 오가는 것도 모르는 모틸라만 평화롭다는 얼굴로 단팥빵을 먹었다.

“와, 진짜 맛있다!”라고 가끔 추임새를 넣는 모습이 정말로 뭐랄까…….

“그럴, 그럴 리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쪼그려서 빵만 먹는 이 아이가!?”

“네. 그 아이가요.”

모틸라가 모나한이 기겁하며 소리치는 모습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만 깜박거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정말로……. 눈치 없……. 아니, 아방……. 불쌍…….

우리 모틸라는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제, 제목. 내용. 어서, 빨리!”

모나한이 ‘내 어린 동생이 맛있는 거 준다고 꼬시는 괴한을 ‘또’ 따라갔어요!’라는 얼굴이 돼서 외쳤다.

단팥빵을 소중히 쥐고 그들을 번갈아 올려다보는 모틸라의 깜박이는 선홍색 눈동자가 모나한의 표정과 대비되어 잘못하면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제목은 ‘가지 말아요, 그대여’예요. 내용은 모르겠어요. 그런 제목의 소설 읽은 적이 없는 건지, 아니면 전생에 읽은 게 너무 많고, 또 오래되어서 기억이 안 나는 건지…….”

“좋아요. 기억 안 나는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가지 말아요, 그대여’라고요? 그럼 모틸라가 어디론가 간다는 건데. 우리한테서 어디론가 가 버리는 건 아닐 테고.”

“남자 주인공한테서 떠나는 내용이지 않을까요?”

“그렇네요. 모틸라는 도망을 잘 치니까요. 좋아요. 모틸라!”

모나한이 이상한 분위기에 눈만 데굴거리며 눈치 보고 있는 모틸라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으, 응? 나 뭐 잘못했어?”

“너 어디서 도망 왔어!?”

“뭐!? 나 도망 안 쳤어!”

모틸라가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어딜 봐도 어디선가 도망친 사람의 반응이었다.

“저쪽, 저쪽에서 왔지! 너 고향이 저쪽이지! 고향에서 도망쳤지!”

“도망친 거 아니래도!”

“좋아. 저쪽으로 가 보면 되겠군. 로나! 모틸라의 고향으로 가죠!”

만나고 싶지만 만나고 싶지 않다던 모나한은 죽었다.

보고 싶지만 보고 싶지 않다던 모나한은 사라졌다.

이제 여기는 추진력 넘치는 모나한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 아냐! 저긴 그냥 지루하고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라고! 그보다는 저쪽! 저쪽으로 가면 관광 도시가!”

“난 그 지루하고 아무것도 없는 마을에 가야겠어!”

“그럼 너랑 로나만 가!”

“너도 가야 해!”

“나 사고 안 쳤어!”

“아냐! 방금 엄청난 사고가 일어났어!”

……가족이 소설 속 여주인공이 되었다는 충격이 큰가 보다.

하긴, 나도 어느 날 동생이 여주인공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으음……. 진정은 못 하겠군.

“로나! 마차에 모틸라 좀 집어넣어 놓을게요!”

“아, 네.”

“싫어! 안 들어갈 거야! 나 진짜 사고 안 쳤어! 그냥 그 마을이 질려서 나온 것뿐이라고!”

“안 믿어!”

모틸라가 자신을 마차에 욱여넣으려는 모나한에게 반항해 문틈을 부여잡고 외쳤다.

“진짜라고! 그냥 그 마을에 좀 있는데, 어떤 남자애가 나를 좋아하게 돼 버려서……. 아하하. 이 몸의 인기란! 하지만 난 곧 죽잖아? 시한부라고! 그러니까 그 아이의 사랑을 받아 줄 수 없지! 그래서 그냥 나온 것뿐이야!”

“그 아이가 남주일 확률이 높네요.”

“좋아. 확실히 거기로 가야겠군요. 얼굴을 봐야겠어요! ……만약 모틸라가 도망가게 내버려 두면-”

“소설 속 전개가 느려질 뿐이겠죠. 남주가 여주를 찾아서 돌아다녀야 할 테니까.”

“도망가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

모틸라의 말에 잠깐 멈췄던 모나한이 다시 마차 안으로 모틸라를 욱여넣으며 말했다.

속도는 모틸라가 빠르고 힘은 모나한이 강했지.

모나한이 모틸라에게 달리기로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반대로 모틸라가 모나한에게 힘 싸움으로 이긴 적도 없었고.

무슨 말이냐 하면.

“아아악! 이 힘만 무식한 놈아!!”

모틸라가 별 반항하지 못하고 마차 안으로 욱여넣어졌다는 뜻이다.

모나한이 강제로 닫아 잠근 문 안쪽에서 모틸라가 소리쳤다.

“나 이거 부순다? 부숴 버린다!?”

“제가 아주 아끼는 마차예요, 모틸라.”

“로나가 매우 아끼는 마차입니다, 모틸라.”

“이이이익!!”

모틸라가 마차를 부수겠다고 소리쳤다가 로나가 아끼는 마차라는 말에 부수지는 못하고 억울하다는 신음만 질렀다.

로나에게 잘못한 게 있는 모틸라는 도저히 그녀가 아낀다는 마차를 부술 수가 없었다.

그런 모틸라의 상태를 뻔히 눈치챈 로나가 씩씩거리며 마부석에 앉는 모나한에게 고삐를 넘겨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안에 케이크를 좀 많이 만들어 놨어요. 전부 먹어도 돼요.”

“뭐!? 내가 그런 거로 넘어갈 줄 아니!?”

“네.”

“예.”

“…….”

“로나 씨는 빵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계시거든요.”

모틸라는 침묵했고, 모나한은 아직 거친 목소리로 쏟아 내듯이 말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마차 안에서는 달콤한 케이크를 먹는 소리만 가끔 울릴 뿐이었다.

* * *

모나한은 전속력으로 마차를 몰았다.

모나한의 심정을 대신하듯 마차가 위아래로 미친 듯이 덜컹거렸다.

뱀파이어여서 다행이지 인간이었다면 진작에 튕겨 떨어졌을 정도였다.

모나한은 마음 같아서는 마차고 뭐고 두 다리로 달려가서 남자 주인공이라는 놈을 만나고 모틸라를 ‘가지 말아요, 그대여’라는 소설 속에서 끌어내 버리고만 싶었다.

인생의 평생을 사건·사고만 몰고 다니냐!

죽을 때가 되면 사람이 좀 달라질 줄 알았지! 얌전해질 줄 알았지!

사랑했던 것들을 돌아보러 간다고 해 놓고서는!

마지막까지 이렇게……!

“모나한, 좀 진정해요.”

“……하.”

“그래요. 숨 좀 길게 내쉬어요. 몸에 긴장도 좀 풀고.”

로나가 어깨를 토닥이면서 하는 말에 모나한이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길게 한숨 쉬었다.

그는 로나의 말대로 고삐를 조정해 마차의 속도를 줄였다.

평소보다는 살짝 빠른 속도였지만, 아까처럼 마차가 덜컹거릴 정도로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진정 좀 됐어요? 손잡을까요?”

“……괜찮아요. 아직 불쾌하시잖아요.”

“그러니까 10분만요. 10분은 참을 수 있으니까.”

로나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자 모나한이 못 이기겠다는 듯이 웃으려다가 아직 가시지 않은 분노 때문에 어색해진 입꼬리에 그만두고 조용히 로나의 손을 잡았다.

뱀파이어가 되어서 예전보다는 길고 우아해진 손.

그렇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화상 자국, 칼자국, 흉터들.

모나한은 언젠가 로나가 자신의 손을 만질 때 그랬던 것처럼, 로나의 손에 있는 흉터들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어떤 이야기일까요?”

“글쎄요. 예상 가는 게 없어서.”

“아실라와의 공통점은 뭘까요?”

모나한이 모틸라의 이름을 말하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물었다.

모틸라에게는 그녀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었다.

자신이 놀라며 소리친 말로 유추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낮을 것이다.

누가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일 거라 생각하겠어.

로나처럼 그런 부류의 이야기들을 접한 사람이 아니라면 더 떠올리지 못하겠지.

“아실라랑 둘이 닮은 점이 있나요?”

“아방한 거.”

멍청한 거, 현실 파악 못 하는 거, 제멋대로인 거.

모나한이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짓씹듯이 말했다.

로나는 그 목소리에 그만 심술부리라는 듯이 모나한의 손을 한번 세게 꾹 쥐었다.

모나한이 그 손길에 눈을 감은 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알았어요. 그냥 한 소리예요.”

“둘 다 엄청 예쁜 점?”

“그걸로 정해진다면 실컷 비웃어 줄 의향이 있는데요.”

“으으음……. 상태창에 물어봐도 답이 없는데.”

“자신한테 필요한 것만 답하나 보죠……. 그러고 보니 김치 레시피는 얻었겠네요. 축하해요.”

“이렇게 얻고 싶진 않았는데.”

“저도요. 이렇게 얻고 싶진 않았어요.”

모나한 내뱉는 말에는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분노가 섞여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전부 뱉어 내려는 듯이 길게 한숨 쉬고는 로나의 손을 한번 꾹 쥐고 놓아주었다.

“10분이 끝나고야 말았네요.”

“좀 더 잡고 있어도 되는데.”

“로나 턱에 점점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아…….”

“한계였죠?”

“눈치 빠르긴.”

로나가 모나한과 잡았던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그녀는 모나한이 만졌던 감각을 떨쳐 내려는 듯이 제 손을 몇 번 주물럭거렸다가 모나한과 눈이 마주치고는 멋쩍게 웃었다.

“……싫은 건 아닌 거 알죠?”

“알아요. 감각이 이상할 뿐이잖아요.”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몇 번이나 말하지만, 부디 천천히 하세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이제 실컷 힘주어 만져도 부러지지 않는데, 로나의 감각이 너무 예민해져서 만지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모나한 괜찮다는 듯, 제발 급하게 하지 말라며 잔소리만 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천천히 할게요. 어쨌든 우린 모틸라와 같이 있어야 해요. 상태창도 경고했어요.”

“경고요?”

“빵집을 빨리 만들라고, 그렇지 않으면 주인공들에게 아무리 빵을 먹여도 평범한 경험치와 빵 코인만 얻게 될 거라고.”

“……그 마을에 가면 빵집을 차려야겠네요.”

“네, 그러니까 느긋하게 관찰하자고요.”

“……느긋하게요.”

“느긋하게요. 진정하고, 차분히. 상태창이 어떤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생각하는지 알아보죠.”

“후……. 좋아요. 천천히 하죠.”

모나한이 그렇게 말할 때 즈음의 마차는 평소와 같이 느긋한 속도로 움직이게 되었다.

모틸라를 만나기 전처럼 나른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안정된 분위기이기는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