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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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연하게 맡아졌던 피 냄새도 이쪽을 알아차렸는지 잠깐 멈춰 섰다.

“보통은 알아차려도 지나가니까, 조금 기다리죠.”

그러나 모나한의 말과는 다르게 그 피 냄새는 오히려 그들 쪽으로 방향을 틀어 빠르게 다가왔다.

긍정적인 제스처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빠른 속도.

“혹시 모르니까, 로나.”

“네.”

모나한이 아공간에 넣어 놓았던 검을 로나에게 넘겨주었다.

“검 쓰는 방법은 기억하고 있죠?”

“1년 동안 모나한이 열심히 가르쳤죠.”

“활이 더 익숙하시겠지만, 그건 아공간에 있을 테고요.”

“필요하면 망설이지 않고 쏠게요.”

“좋아요. 제가 도망가라고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갈 거예요.”

아무리 뱀파이어가 되었다지만 싸움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자신이 모나한에게 도움이 될 리는 없었다.

그보다는 빠르게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서 모나한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좋겠지.

“다시 만나는 곳은 산장으로 해요.”

“알겠어요.”

로나는 아공간에 있는 활과 산장으로 가는 길을 떠올리며 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게 마부석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둘이 긴장하고 있기도 잠시, 저 멀리 숲 언저리에서 피 냄새를 풍기던 동족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풀숲 사이로 튀어나온 것은 움직임에 따라 넘실거리는 새까만 곱슬머리, 멀리서도 요사한 빛으로 반짝이는 선홍색 눈동자, 고혹적인 외모…….

“모틸라네.”

“모틸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로나가 들었던 검을 모나한에게 넘겨주며 마부석에 털썩 주저앉았고, 모나한이 검을 받으면서 반대쪽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원망스레 모틸라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언제나 등장이 참…….”

“아주 극적이네요.”

“지금 모틸라 씨 엄청나게 밝은 얼굴로 달려오는 거 맞죠?”

“저쪽에서는 빵 냄새도 맡았겠네요. 우리인 줄 알았겠군요.”

“아하, 그래서.”

그래서 저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온 거였군.

로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저 멀리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한 손을 붕붕 휘둘러 인사하며 달려오는 모틸라를 바라보았다.

고혹적이었던 첫인상과 다르게 참……. 밝고, 엉뚱하고, 환하고-.

“사고는 안 쳤겠지.”

걱정되는 인상이다.

로나는 옆에서 중얼거리는 모나한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래. 안 쳤을 거야. 내가 실리한테 안 쳤을 거라고 장담했으니까, 안쳤어야 해.”

도대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모나한이 저렇게 반응하는 거죠, 모틸라?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아냐, 난 신경 안 쓸 거야. 음음, 신경 안 써야지.”

“로나, 모나한!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안녕하세요, 모틸라.”

“와아! 진짜 반갑다! 널 여기서 보니까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로나는 모틸라의 호들갑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도대체 모틸라가 자신을 이렇게 반가워하는 이유를 몰라서였다.

만약 모틸라가 자신의 빵을 먹어 봤다면 저럴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첫 만남부터 사과하던 그날까지 자신의 빵은 한 입도 먹지 않았었다.

게다가 자신에게 잘못했던 게 있고, 마지막에 우는 모습까지 보여 줬었다.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하는 표정이 아니라 저렇게 반가워할 표정일 이유가 없었다.

“네가 로나 씨를 왜 그렇게 반가워하는 거지?”

그 생각을 모나한도 했는지, 그가 매우 의심된다는 표정을 하고 모틸라에게 물었다.

쉽게 보기 힘든 까칠한 모습의 모나한이었다.

“아니, 내가 좀 반가워할 수도 있지!”

“이유가 뭐야. 빨리 말해.”

“나는 무슨 이유가 있어야 반가워할 수 있는 거야? 그냥 난-”

“이유.”

“배고파.”

“그랬군.”

모틸라가 더 이상 변명하지 않고 바로 말했고, 모나한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나는 모틸라의 그 뻔뻔한 모습을 보면서 둘이 상당히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 배고픈 거지? 이쪽은 커다란 도시도 없어서 먹을 만한 마수도 많이 있을 텐데?”

“아아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지가 꽤 되었단 말이지.”

“왜?”

“아까부터 시비 거는 거야? 자꾸 질문만 하고.”

“왜?”

“그냥 밥 좀 못 먹었을 수도 있지! 이 주위는 다 시골이니까 맛있는 걸 못 먹었을 수도-”

“그럼 넌 바로 도시 쪽으로 달려갔겠지. 우린 그런 것에 참을성이 있는 종족은 아니니까. 그런데 그렇게 반가워할 정도로 식욕을 참았다라……. 왜?”

모나한이 사고 친 여동생에게 다그치는 오빠 같은 얼굴로 물음표 살인마처럼 말했다.

왜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건 착각이 아니리라.

그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닌지 모틸라는 ‘이 자식, 또 이러네!’ 같은 표정이 되어 외쳤다.

“내 맘이지! 다이어트 좀 하고 싶었나 보지!”

식욕의 노예들에게 제일 말이 안 되는 변명이었다.

뱃살도 안 튀어나오는 뱀파이어가 다이어트?

온몸에 군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뱀파이어가 다이어트?

만약 살이 찐다고 해도 눈앞에 맛있는 게 있으면 입 안으로 넣고 보는 뱀파이어가 다이어트?

모나한은 모틸라의 헛소리에 의심을 온 얼굴에 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이어트라…….”

“뭐, 왜, 뭐, 왜!”

너만 질문할 수 있는 줄 알아!? 나도 왜라고 말할 수 있다고!!

모틸라가 마차 옆에 서서 모나한을 올려다보며 소리쳤지만, 모나한은 모틸라가 달려왔던 방향을 보며 무언가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나 그냥 먹을 것만 조금 주면 안 돼? 너희 여행을 방해할 생각은 없다고.”

모나한의 모습에 모틸라가 무언가 느꼈는지, 그녀가 마부석으로 훌쩍 뛰어올라 모나한의 시야를 가리면서 말했다.

그리고 모나한은 그런 모틸라의 선홍색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무언가 결심했는지 모틸라의 손목을 ‘턱!’ 하고 잡았다.

“뭐, 뭐야. 이거 놔!”

“로나, 저희 다음 목적지가 방금 결정됐어요.”

“오, 그래요?”

조용히 둘의 대화만 듣고 있던 갑자기 결정된 목적지에 눈만 깜빡거리면서 대답했다.

“네. 모틸라가 왔던 마을로 갈 거예요. 저쪽으로 쭈욱 가면 될 것 같네요.”

“아, 그렇군요.”

“뭐? 싫어! 난 이쪽으로 갈 거야! 거긴 안 갈 거야! 그냥 시골이라고, 시골! 아- 무것도 없어!”

“로나 씨, 잘 봐 두세요. 지금 이게 모틸라가 사고 쳤을 때의 반응입니다.”

“아하.”

“아냐!”

모틸라가 모나한의 말에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모틸라는 사고를 안 쳤으면 당당하게 이유를 이야기하거든요. 이렇게 온갖 변명을 늘어놓는 건 사고를 쳤다는 뜻입니다.”

“아냐! 안 쳤어!”

“아하.”

“변명도 정말 못해서 다 들통나죠. 아주 알아보기 쉬워요.”

“오, 그래 보였어요.”

그래. 변명이 하나도 말이 안 되긴 하더라.

누가 봐도 사고 친 사람 같기도 하고.

고혹적이었던 모틸라는 어디 가고 거짓말 하나도 못 하는 모틸라만 저기 있네.

언니, 거짓말 너무 못한다…….

“이이익! 이거 놔! 난 갈 거야! 먹을 거 안 줘도 되니까, 놔 달라고! 힘만 무식하게 센 새끼! 으아아! 손목에 멍든다! 아프다!”

“그 정도로 세게 잡지 않았습니다. 그냥 뭐랄까……. 빠져나갈 수 없게 잡았을 뿐이다!”

“이상한 곳에 요령 좋은 놈!”

“칭찬으로 받도록 하죠.”

모나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하고는 ‘어떻게 해야 모틸라를 잘 잡아 둘 수 있을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로나는 둘이서 친남매처럼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다가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보고 있는 재미가 있긴 했지만 이대로 가면 온종일 저러고 있을 것 같았다.

“자자자, 그만해요. 모틸라, 배고프다고 했죠?”

로나가 만들자마자 아공간으로 집어넣어서 아직 따끈따끈한 마늘 소스를 올린 모닝빵을 꺼냈다.

막 구운 갈색 모닝빵에 열십자로 칼자국을 내고, 그 사이에 크림치즈와 버터 마늘 소스를 뿌려 오븐에 한 번 더 구운 빵.

차가운 겨울 공기에 하얀 김이 따끈따끈 올라오고 짭조름하고 달콤한 냄새와 함께 마늘의 알싸함이 살짝 느껴지는 마늘 모닝빵.

로나는 그 빵을 마치 굶주린 아기 고양이를 꼬시는 것처럼 살며시 내밀었다.

“와아아…….”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마늘 모닝빵의 유혹적인 자태에 모틸라가 모나한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던 것도 잊은 채 멍한 표정이 되었다.

로나는 왠지 장난기가 들끓어서 모닝빵을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흔들었다.

그 손에 따라 모틸라의 시선뿐만 아니라 고개까지 왔다 갔다 한다.

얼마나 배고픈지 요요한 붉은색 입술에 침이 한 방울 보이는 것 같다.

어라? 뒤에 있는 모나한의 시선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데.

당신 아침까지 이거 많이 먹지 않았던가요.

위장에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창백한 얼굴로 말하지 않았나요.

“모나한도 줄까요?”

“네.”

“나, 나 먼저! 나 먼저! 나 진짜 배고파! 죽을 것 같아!”

“많이 있어요. 둘 다 줄게요.”

둘은 자신에게 달라는 듯이 손을 로나 쪽으로 쭉 뻗어 냈다.

참을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모양새가 마치 뱀파이어의 덕목 같아 보일 정도였다.

로나가 마늘 모닝빵을 그들의 손에 하나씩 사이좋게 올려 주었다.

둘은 손에 동그란 모닝빵이 올라오자마자 입으로 가져가 먹어 치웠다.

“하……. 갈수록 실력이 좋아지기만 하신다니까.”

“뱀파이어가 되면서 정말 1g 단위로 계량할 수 있게 되기도 했으니까요. 감각이 예민하니까 수련이 더 잘된달까.”

“진짜……. 천상의 맛.”

모나한이 감탄하면서 빵을 우물우물 씹어 댔다.

그래도 그동안 로나의 빵을 먹은 경험이 있어서 그는 모틸라의 손목을 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로나의 빵을 처음 먹어 본 모틸라는.

그것도 뱀파이어가 변하고 나서 섬세한 감각과 손놀림, 설탕의 1g까지 구별하는 혀를 가지고, 1년 동안 엄청난 양을 생산해 스킬을 올린 로나의 빵을 먹은 모틸라는-.

“와……. 와……. 미쳤다……. 와…….”

모나한에게서 빠져나갈 생각은 저 멀리 보낸 지 오래.

자신의 손목이 모나한의 손에 잡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지 오래.

모틸라는 그냥 모나한의 손에 잡힌 채로 마늘 모닝빵을 삼키자마자 다시 로나에게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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