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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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조절하는 거요. 사냥이라도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요?”

“네?”

“이제부터 저도 짐승이나 마수 같을 걸 사냥해서 냠냠 해야 하잖아요. 인간을 사냥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저도 피를 마셔야 하니까.”

“……제가 잡아다 피만 드릴 생각이었는데요.”

“과보호예요, 모나한. 사냥하는 방법이나 알려 줘요.”

로나가 가볍게 말했지만, 모나한은 굳은 얼굴이 되어 그녀를 돌아보았다.

무언가를 죽이는 것은 익숙해지기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는 쉽게 익숙해지곤 했지만, 모나한은 로나가 살육에 평생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했다.

“로나, 생물을 죽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언젠가는 하게 될 테지만, 적어도 제가 옆에 있는 동안은 안 하면 좋겠어요.”

“시골에서 닭 모가지 수십 개는 꺾어 본 지 오래인데요.”

“어, 음.”

모나한이 살짝 당황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로나가 생각보다 살육에 익숙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시골 평민 출신이었지…….

“닭은 기본이고 염소랑 돼지 도축도 해 봤는데.”

“어, 음, 음.”

“알지 않아요? 시골 평민의 삶? 어릴 적에 다 시키던데.”

“……알긴 하죠. 왠지 로나는 어릴 적부터 빵만 만들면서 살았을 것 같아서…….”

“우리 집 여관 했어요. 매일매일 최소 닭 한 마리씩은 목을 꺾어야 했고, 어떤 날은 돼지를 잡고, 염소를 잡아야 했죠. 어떻게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아빠가 직접 한 적도 여러 번이고, 옆에서 돕는 건 당연했어요.”

무언가를 죽이는 일에는 익숙해요.

로나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명을 죽인 죄책감, 손을 붉게 물들이던 기분 나쁜 따뜻함, 흙바닥에 붉게 난 신발 자국 같은 것들은.

자른 뱃가죽 사이로 흐르던 내장, 죽어 가던 동물의 비명, 점점 탁해지던 눈동자 같은 것들은.

“어릴 적에 이미 다 했어요. 처음 무언가를 죽이고 잠 못 이루는 밤 같은 거요.”

“……젠장할.”

“왜요?”

“왜 로나를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요? 적어도 그런 날 밤에는 같이 있어 주고 싶은데.”

“언니들이 같이 있어 줬는데.”

“……신경 안 썼겠죠.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을 테니까.”

“…….”

“새까만 밤이 싫으시다고 하셨잖아요.”

로나는 모나한의 말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의 선홍색 눈을 바라보았다.

그가 가끔, 아니 사실은 아주 여러 번 저런 말을 할 때.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 달라서 아팠던 것들을, 그래서 이젠 그 아픔조차 익숙해져 버린 것들을.

익숙해지다 못해 모두가 그건 아픈 게 아니라고 말할 때 고개를 끄덕여 버리게 된 것들을.

그런 과거들을 위로할 때.

로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되곤 했다.

그녀는 저려 오는 손끝에 손을 살짝 오므리고, 모나한과 마주쳤던 눈을 내려 몇 번 깜박이고, 식탁 끝 어딘가를 잠깐 보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맞아요.”

목소리 끝이 떨려 와서, 입술을 한번 다물었다가.

“싫어해요.”

새까만 밤, 누구도 모르는 밤, 누구도 모르는 나, 어디도 속하지 못하는 나.

“그래도 이젠, 새까만 밤은 없으니까.”

로나가 이젠 선홍색으로 바뀐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울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시력이 좋아서, 밤조차 환하잖아요.”

환해진 밤, 당신이 아는 밤, 당신이 아는 나, 이젠-.

“그러니까 더 괜찮을 거예요.”

로나는 이제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가로등 없는 새까만 밤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보다는 모나한과 같이 있었던, 여러 번의 밤들.

별이 아롱지고, 달빛이 살랑거렸던.

“쉬운 것부터 시작해요. 원래 뭐든지 작은 것부터 하라고 그러잖아요.”

“……사냥 이야기하던 중이었죠?”

로나 얼굴이 너무 아롱아롱해서 다른 이야기 하는 줄 알았잖아요.

“맞아요. 사냥 이야기 중이었죠.”

로나가 키득거리면서 답했다.

모나한은 그 웃는 얼굴을 보고 작게 한숨 쉬었다가 결국 따라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작은 것부터 잡아 봐요. 초식 동물부터.”

“초식 동물 피는 무슨 맛이려나.”

“샐러드죠.”

“아.”

모나한은 당연하지 않냐는 듯이 대답하고는 타르트지를 휴지시키려고 냉장고에 넣어 두는 로나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뱀파이어의 사냥법보다는 인간의 사냥법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뭐가 다른가요?”

“으음……. 도구를 쓰느냐 그냥 맨몸으로 사냥하느냐? 직접 손톱이나 이빨로 죽이는 것보다 활로 쏴 죽이는 게 거부감이 덜할 테니까요.”

“덜 와닿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로나는 자신이 생각해도 그게 좋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저 활 쏴 본 적 없는데.”

“봄이 오기 전까지 연습하기로 해요. 어차피 겨울에는 사냥하기 힘드니까.”

“좋아요.”

“좋아요.”

로나와 모나한은 똑같은 대답을 주고받고는 잠시 기다리다가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타르트지를 꺼내 모양을 잡았다.

그리고 졸인 블루베리를 넣고, 위에 예쁜 격자무늬를 만들고, 예열시켰던 오븐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동안 모나한이 아침 반찬들을 만들었다.

“촉촉한 소시지.”

“계란말이 안에 치즈 넣을까요?”

“샐러드도 만들어요. 위에 드레싱을 가득 뿌릴래요.”

“좋아요. 거기 밥 좀 퍼 주세요.”

“제가 수저 놓을게요.”

둘은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아침 식사를 차렸다.

한 상 가득 아침 식사가 준비되고, 둘은 마주 앉아 웃으면서 수저를 들었다.

다른 점이라면 아직 햇빛에 익숙하지 않은 로나를 위해 닫아 놓은 커튼 같은 것.

로나가 젓가락을 그만 반절로 접어 버리고 헛웃음을 지었다는 것.

새것을 가져오려는 로나를 말리고 모나한이 “영차.”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며 젓가락을 다시 펴 주었다는 것 정도.

그 외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조금의 농담과 수다가 곁들여진 식사였다.

* * *

1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온갖 꽃향기에 로나가 코를 감싸 쥐고 다시 방에 틀어박혔던 봄.

“꽃향기가 이렇게 싫어질지는 몰랐는데! 백합 향기에 질식해 죽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닐지도……!”

쏟아지는 햇살에 버티지 못하고 밤에만 생활했던 여름.

“타들어 간다, 타들어 가! 완벽히 어둠의 자식이 된 기분이에요!”

낙엽에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에 적응하고, 그 아래 기어가는 벌레 소리에도 놀라지 않게 된 가을.

“저기 낙엽 아래 풍뎅이 한 마리, 나무 위로 개미 일곱 마리.”

그리고 다시 모든 것들이 잠드는 창백한 겨울.

“겨울이 되니 모든 것이 잠드네요. 훨씬 조용해졌어요.”

그즈음의 로나는 뱀파이어의 운동 신경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다.

모나한과 사냥을 나가기도 몇 번, 직접 무언가를 물어 죽이는 일에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직접 사냥한 동물의 목덜미를 무는 일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여전히 거울 속에 사냥꾼 복장을 하는 자신은 아직도 어색했지만.

“봐도 봐도 안 어울린단 말이야.”

“로나는 노란색 빵집 옷이 가장 잘 어울려요.”

“저도 노란색이 잘 받는다는 건 알아요.”

“그리고 동그란 안경이 잘 어울리죠.”

모나한이 어느샌가 꺼낸 안경을 로나의 얼굴에 씌워 주며 말했다.

로나가 그 행동에 피식 웃고는 안경을 손끝으로 쓰윽 올리는 시늉을 했다.

모나한이 그 모습을 보며 귀엽다는 듯이 로나의 볼에 잘게 입 맞추었다.

정말 오랜만의 입맞춤에 로나가 모나한이 닿았다 떨어진 제 볼을 만지작거렸다.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 1년, 본의 아니게 둘은 매우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마치 현대적 유교 사상을 넘어서 조선 시대 유교 사상이 둘 사이를 지배하는 기분!

로나는 어떻게든 겨우겨우 감각을 적응시켜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평범하게 문을 열고, 햇빛을 바라보고,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모든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고, 모든 냄새에 토하지 않고, 모든 감각에 뒷걸음질 치지 않게 되었다.

감각을 전부 무디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다.

그러나 모나한과의 스킨십은…… 스킨십만큼은!

좋아하는 사람과 닿을 때 무뎌지는 법 좀 누가 가르쳐 주세요!

감각이 너무 예민해져서 입맞춤은 개뿔! 손잡는 것도 못 하겠어!

엄청나게 좋은데, 몇 분만 지나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흘러서 견디지를 못하겠다고!

닿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무뎌진 감각들이 다시 예민해져서 ‘세상 꺼져! 세상 지옥!’이라고 외친다고!

연애한 지 이만큼이나 되었는데, 초반부처럼 손도 못 잡는다는 게 말이 되니.

어깨만 닿아도 파드득!

살짝 옆에 떨어져 있어도 솜털이 우수수!

머리카락 만지는 손길에도 히이익!

“갑자기 수도승이 된 기분이야…….”

“하하하. 왠지 로나가 스킨십에 안달이 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군요.”

“물론 평소에 제가 도망치고는 했지만, 싫은 적은 없다고요.”

“싫어하지 않으신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확인받으니 좋네요.”

“모나한은 아쉽지 않아요?”

“당연히 아쉽죠. 하지만 전 나중에 분명히 얻게 될 달콤한 결과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중이라서요.”

만져도 부서지지 않는 로나를 얻었다!

모나한이 환하게 웃으며 환호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제 마음대로 로나를 이영차, 저영차, 요영차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꿈이 크시군요.”

“지난 1년간 못했던 것들을 전부 몰아서 할 거예요. 로나가 감각에 완전히 익숙해지는 그 순간- 파티다!”

“……그 파티가 혹시 살색이 많나요?”

“글쎄요. 맛있는 걸 먹긴 하겠죠.”

“음식 이야기죠?”

모나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로나는 힘 조절 못 하고 때려도 괜찮지 않을까 고민했고.

“크윽! 내 힘이 너무 세서 조절할 수가 없다! 하지만 모나한도 뱀파이어니까 때려도 괜찮지 않을까? 주먹질해도 괜찮지 않을까아?”

“아하하. 안 돼요, 로나. 이젠 진짜로 멍들 확률이 너무 높거든요.”

“멍 한두 개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아아?”

“갈비뼈가 부러질 확률도 너무 높으니까 참아 주세요.”

“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제가 참겠어요.”

“와! 다행이다! 살아남았어요!”

로나는 끝까지 자신을 놀리려는 모나한을 결국 한 대 때리려다가, 모나한이 자신의 꽉 쥔 주먹을 검지로 톡톡 치고 부드럽게 웃는 것에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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