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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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의 손짓에 따라 묘한 점성이 있는 붉은 액체가 진득하게 흔들거렸다.

뭐, 전생에 선짓국도 맛있게 먹었는데, 생피도 한 번 먹어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모나한이 건넨 병은 뚜껑까지 꼭 닫혀 있었지만, 자신의 변한 코가 거기서 엄청나게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건 아주 아주 오래전에 맡았던 냄새였다.

이젠 거의 기억나지 않는 어렴풋한 냄새.

그리고 아주아주 그리워서 밤에 꼭 한 번씩 생각나곤 하던 냄새.

튀김 가루를 듬뿍 묻히고 비닐 안에서 쉐킷쉐킷 한 닭고기를 달궈진 깨끗한 기름에 넣었을 때, 차르르 하는 소리가 울리며 나는 그 냄새!

그것도 일반 가정집에서 만든 게 아니라,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고객들의 돈을 쓸어 담기 위해, 다른 회사들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굳건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들의 그 냄새!!

k-치킨!!

로나는 순간 이게 마물의 몸에서 나온 피라든가, 자신이 그걸 마셔야 한다거나, 분명히 걸쭉할 테고 기분 나쁜 따뜻함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아무 상관이 없어졌다.

그녀는 전생의 음식들을 먹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아직 많은 한식을 만들지 못했었다.

특히 전생에 먹었던 배달 음식들은 어떻게 해도 만들어지지 않아서 포기했다가, 다시 만들어 봤다가, 포기하길 반복했다.

그 화려한 음식들을 만드는 방법을 알기에는 그녀는 전생에 배달 음식을 적극 활용했으니…….

그 유명한 슬로건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배송의 민족!

로나는 전생에 절절한 배송의 민족이었기에 열심히 배달 기사님들에게 배달비를 바쳤다!

그런 그녀는 도저히 치킨과 피자, 짜장면과 짬뽕, 햄버거, 곱창과 마라탕, 라멘과 라면 등등등의 레시피를 알 방법이 없었고, 만들 방법도 없었다.

눈물 나게도 그녀의 레시피 능력은 제빵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모, 모나한. 모나한.”

“로나. 물론 이게 아주 역겹게 느껴지리란 걸 알아요. 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에요.”

“전, 저는-”

“지금 당신의 몸은 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썼어요. 우린 피에서밖에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해요. 이걸 마시지 않겠다고 거부하신다면, 죄송하지만 억지로라도 먹일 거예요.”

모나한이 죄책감과 비장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로나는 그런 모나한의 감정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잘 안 들어온다고!

아무튼 난 모르겠고, 빨리 그 k-치킨의 향이 물씬 나는 유리병이나 내놔!!

“주세요.”

“네?”

“지금 당장 마실 테니까 달라고요.”

“하……. 역시 로나. 당신은 정말 강한 사람인 게 틀림없어요. 정말 멋지고-”

“아니, 빨리 내놓으라고!”

“아, 넵.”

모나한이 로나의 서슬 퍼런 말투에 흠칫하며 유리병을 내밀었다.

로나가 유리병을 건네받으려고 하자 모나한이 급하게 말했다.

“조심해요! 힘이 세져서 깨트릴 수도 있어요.”

“오……. 알겠어요.”

로나가 모나한의 손에서 유리병을 휙 채 가려던 손을 아주 조심스럽게 뻗어 유리병을 쥐었다.

로나는 마치 젠가의 아슬아슬한 조각 하나를 빼려는 기분이 들어 완전히 집중한 채로 처- 어- 언- 천- 히- 모나한의 손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휴.”

“휴…….”

모나한과 로나가 안도의 한숨을 한번 짧게 내쉰 다음, 다시 유리병 뚜껑을 열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로나가 천천히 아름답고 우아해진 손을 뻗어서 뚜껑을 쥐고 처- 어- 언- 천- 히- 돌리-.

빠직-!

“금, 금 갔다!”

“괜찮아요! 아직 안 깨졌어요!”

“유리 조각이 안에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뱀파이어의 위장은 아주 강한 편이지만 불안하시다면 한 병을 더…….”

“어, 그렇게 되면 이걸 버려야 하는 거죠.”

“그렇죠?”

“아뇨! 전 도저히 k-치킨을 한 방울도 버릴 수 없어요!”

로나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하며 마치 아이라인의 눈꼬리를 빼는 그 섬세한 손길을 떠올리며 병뚜껑을 돌렸다.

그리고 드디어 병뚜껑이 열렸고, 로나와 모나한은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푸욱 쉬었다.

“와, 와……. 진짜 맛있는 냄새 난다. 허브들 때문에 코가 매캐하고 모나한 때문에 피비린내가 장난이 아닌데 그 사이를 뚫고 k-치킨의 향기가 물씬 올라와요.”

“……어, 네.”

모나한은 도대체 그냥 치킨도 아니고 k-치킨은 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걸 물어보기에는 로나가 유리병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뜨거웠다.

“좋아요. 드디어 k-치킨을 향한 첫 한입…….”

“어, 피를 향한 첫 한입인데요. 오, 알았어요. 입 다물고 있을게요.”

모나한이 로나의 시선에 그녀가 언젠가 알려 주었던 입에 지퍼를 차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을 한 번 더 째려보고는 천천히 엄청나게 맛있는 향이 나는 마물의 피를 입 안으로 기울였다.

혀끝에 처음 닿는 것은 치킨을 한입 딱 깨물었을 때 나는 그 닭 다리의 진득하고 짭조름한 육즙이었다.

아쉽게도 그 바삭한 껍질의 식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맛만은 전생에 먹었던 치킨과 똑같았다.

튀김의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 안의 고기에 든 따끈따끈한 육즙.

로나는 그 이빨에서 부서지던 튀김의 바삭함과 작은 방탄력이 느껴져서 이 사이에서 톡톡 끊어지던 쫄깃한 육질의 식감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움에 작게 신음했다.

그러나 그 맛만은 정말로 똑같아서, 그녀는 언젠가 다시 이 치킨을 직접 만들어서 맛과 식감을 한꺼번에 즐기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그녀가 전생의 음식들을 만들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점점 그 맛들이 잊혀지고 있다는 것도 한몫했었으니.

이제 그 맛을 정확히 알려 주는 피가 있으니, 시행착오를 몇 번 겪으면 맛도 식감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 솔직히 전생의 맛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는데…….”

“전생의 맛이 느껴져요?”

“네, 바로 그 맛이에요. 자본주의의 정점에 물든 맛!!”

“그건……. 그건 저도 먹어 보고 싶네요.”

“사실 그동안은 맛이 정확히 기억 안 나고 어렴풋하기만 해서 직접 만들 때 망설여졌는데, 이제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저도 먹을 수 있겠네요?”

“네!! 모나한에게도 k-음식의 진수를 보여 주겠어요!!”

“와아아!”

모나한이 박수 소리가 나지 않도록 손만 움직여 가짜 박수를 짝짝짝 쳤다.

지금의 로나의 귀에는 박수 소리조차 천둥처럼 들릴 게 틀림없었으니까.

로나는 그런 모나한의 배려를 눈치채고는 방긋 웃고는 깨끗이 비워진 유리병을 넘겼다.

“확실히 배가 고프긴 했나 봐요. 이거 마시고 나니까 갑자기 좀 살 것 같네요.”

“그렇죠?”

“준비해 줘서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피도 먹었으니까 좀 주무시든가…… 아니면 좀 쉬고 계세요.”

“음……. 티 났어요?”

그렇게 말하는 로나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뱀파이어라고 하기에도 심각할 정도로 창백했고, 힘 조절을 한다기에는 손끝이 덜덜 떨렸으며, 말할 때마다 이 사이가 떨려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안 괜찮다고 했잖아요. 사실……. 지금 많이 힘드네요.”

로나가 창백히 질린 입술을 겨우겨우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지나갈 거니까요.”

목소리까지 아스라이 떨리는 로나는 그렇게 말하며 옅은 숨을 한번 몰아쉬고는 다시 침대 속으로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 들어갔다.

모나한은 그런 로나의 모습을 보며 방금까지 감추었던 죄책감 어린 얼굴을 다시 꺼내었다.

로나는 그 얼굴을 보며 저 볼이나 미간의 주름을 검지로 콕 찔러서 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그럴 수 없으니까.

“미간 펴고, 입꼬리 올리고, 죄책감 갖지 말고, 모나한 스스로를 탓하지 말고.”

“……네.”

“지금은 방에 혼자 있고 싶어요. 방금 일어났지만……. 좀 더 잘래요.”

“그래요. 전 로나가 제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경계까지 나가 있을게요. 좀 더 편히 잘 수 있을 거예요.”

“그럴 필요까지는-”

“그럴 필요 있어요. 아마 며칠간은 날뛰는 감각에 힘들 테니까……. 괜찮아지면 저를 불러요.”

모나한은 살짝 도리질하며 말하고는 언제나처럼 조금은 뻔뻔한 미소를 억지로 입꼬리에 올리고는 평소보다 더더욱 느끼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제 이름을 불러 주길 기다리고 있을게요, 로나.”

“……진짜 이 가염 버터.”

“로나는 빵이고요. 최고의 조합.”

“그래요. 최고의 조합.”

모나한은 로나의 그 말을 듣고 한번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는 소리 없이 방을 나가며, 아주 조용하게 방문을 닫았다.

로나는 모나한의 피비린내가 점점 저 멀리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침대 위에서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귀를 막고 덜덜 떨었다.

생각한 것보다 끔찍한 감각들이 온몸을 뒤흔들고, 뇌를 반죽시키며 쏟아져 내리고, 믹서기 안에서 돌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 그녀를 잠식했다.

눈물이 줄줄 흐르는 감각이 느껴졌고, 심지어 그것조차 아주 끔찍했다.

하지만, 베개 옆 이불자락에서는 옅은 피비린내가 났다.

그녀의 예민해진 코는 그가 얼마나 그 자리에 머물렀는지 알 수 있게 하였다.

아마 자신이 잠들어 있는 3일 내내 제 옆에 붙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주위에 돌밖에 없었는데, 저 멀리 나가서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거긴 따뜻하지도 않고, 맛있는 것도 없고, 편하지도 않을 텐데.

방 안에는 매캐한 허브 향기가 가득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다른 생명체들의 냄새는 나지 않고.

그들의 흔적에서 나는 옅은 냄새가 모나한이 그들을 모두 저 경계 밖으로 치워 버린 것을 뜻해서.

로나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가, 제 얼굴의 근육이 움직이는 느낌까지 끔찍해 오히려 웃고 말았다.

생각보다 끔찍했고, 생각보다 역겨웠고, 생각보다 괴로웠지만.

생각보다 괜찮았고, 생각보다 참을 만했고, 생각보다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나한.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가 저 멀리서 다가오면, 나는 이제 그가 얼마나 빠르고 급하게 달려오는지도 알 수 있겠지.

감정이 변하는 순간의 작은 움직임도, 모나한이 자신을 위해 곧잘 숨겨 버리곤 하던 작은 배려들도, 이젠 모두 눈치채 버릴 것이다.

그 모든 게 너무나 기대되고 너무나 두근거려서 로나는 쏟아지는 끔찍한 감각들을 전부 버틸 수 있었다.

그것들은 전부, 그냥 지나갈 것들이다.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다거나, 지옥에서 기적을 바란다거나 할 필요도 없는.

그냥 지나가 버릴 한때의 감기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로나는 끔찍하게 느껴지는 근육의 움직임을 느꼈다.

그러니까, 언제나 그랬듯이, 모나한을 떠올리면 하는 표정.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는 얼굴.

한숨 쉬듯이, 조금은 한심하다는 듯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행복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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