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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 품 안에서 축 늘어진 로나를 한참이나 안고 있었다.
뱀파이어로 변하는 중에 아프다더니 제 품 안에 있는 로나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모나한은 붉게 열 오른 이마를 몇 번 쓰다듬고, 입술도 몇 번 맞춘 다음 조심스레 침대에 눕혀 주었다.
통증 때문인지 열 때문이지 찌푸려진 미간이 안타깝다는 듯이 쓰다듬는다.
소용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편해질까 봐 제 차가운 손을 이마에 대 보기도 하고, 손끝을 주무르기도 몇 차례.
창문 없는 어두운 방이지만 집 바깥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모나한은 아침이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로나의 당부대로 아침을 먹으러 방문을 나섰다.
어느 날인가 그랬던 것처럼 반숙으로 익힌 계란프라이에 물에 삶은 촉촉한 소시지를 준비한 모나한은 햇볕이 따뜻하게 흐르는 창문가의 식탁에 아침 식사를 내려놓았다.
새하얀 쌀밥과 가지런한 수저까지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완벽한 아침 식사였다.
그러나 모나한은 몇 번이고 건너편의 빈자리를 보고 마는 것이다.
황금빛 아침 햇살 사이로 먼지가 둥실거리며 떠다니는 그 빈 공간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보고 마는 것이다.
저 위층에서 열이 펄펄 끓고 있을 사람이 생각나 견딜 수가 없었다.
뱀파이어가 되기 전에는 굶주렸기에, 뱀파이어가 된 이후에는 뱀파이어라서 그를 지배했던 식욕이 이 순간만큼은 조용히 침묵하고 있음을 느꼈다.
모나한은 순간 자신의 안에 있는 가장 큰 욕구마저도 로나에게 길들여졌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가 그만두었다.
그런 것조차 궁금하지 않을 만큼 2층으로 가고 싶었으니까.
손은 빠르게 움직였고, 따끈한 밥과 반찬들은 순식간에 입 안으로 사라졌다.
언제나 하던 맛을 즐기던 행위들은 간단히 몇 번 씹어 모든 걸 넘겨 버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모나한은 로나의 말을 지켰다.
아침에 해가 뜨면 아침밥을, 점심에는 점심밥, 저녁에는 저녁밥을.
먹을 필요도 없는 식사였지만, 그녀는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기길 원했으니까.
“어쨌든 이것도 식사를 챙기긴 챙긴 거예요, 그렇죠?”
모나한은 매우 오랜만에 목소리를 내는 기분이 되었다.
기껏해야 3일도 안 되는 시간인데, 나누었던 대화가 사라진 것만으로 그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의 입으로 대충 챙겨 온 바게트 한 조각이 들어갔다.
식사는 그냥 식빵 한 조각, 모닝빵 한 조각이 입에 들어가는 것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1년 동안 어찌나 그녀가 자신을 물들여 놓았는지, 모나한은 제 영혼을 바라보면 어쩌면 온통 갈색으로 물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로나의 뜨거운 이마에 저의 차가운 이마를 대고 괜찮을 거라고, 빨리 일어나 달라고, 혹은 빨리 일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조금만 덜 아프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3일째 어느 날, 로나가 천천히 눈을 떴을 때.
갈색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가 저와 똑같은 선홍색이었을 때, 모나한은 그가 생각한 기다림만큼 환하게 웃었다.
* * *
그녀가 가장 먼저 인지한 것은 피비린내였다.
피로 채운 욕조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지독한 비린내가 가득했다.
새가 날아가는 날갯짓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는데, 몸의 감각은 그 새가 매우 멀리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개깃 소리는 마치 바로 귓가에서 퍼덕이는 듯 들렸다.
몸에 있는 솜털 하나하나가 곤두세워져서 피부에 닿아 있는 옷자락과 이불이 소름 끼치게 느껴진다.
분명히 눈을 감고 있는데, 한낮 여름의 햇빛 아래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모든 끔찍할 정도로 쏟아지는 지독한 감각에 로나의 반쯤 잠들었던 머리가 두통을 호소하며 깨어났다.
심장이 뛰는 소리에 맞춰 쿵쿵쿵거리며 아파 오는 머리가 겨우겨우 삐걱거리며 돌아가 이 모든 감각이 자신이 뱀파이어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린다.
로나는 눈부셔 어쩔 줄 몰라 하며 겨우겨우 눈을 떴다.
침대 옆 의자에서 모나한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카락 한 가닥, 얼굴의 솜털 하나, 속눈썹 한 가닥을 넘어, 선홍색 눈동자 홍채 안의 붉은 선까지 전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로나는 짧은 시간 안에 들어온 그 엄청난 양의 정보에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몇 번 저었다.
아, 목덜미에 닿는 내 머리카락의 한 가닥이 지독히도 까슬거린다.
로나는 모나한이 도대체 어떠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또 다른 이세계에 들어와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녀는 욱신거리는 머리를 겨우겨우 부여잡고, 눈을 감은 채로 몇 초, 몇 분이 흘렀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옆에 앉아 있는 모나한이 자신과 똑같이 굳어 있는 것마저 선명하게 느껴진다.
“……괜찮으세요?”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로나의 귀에 천둥처럼 들렸다.
로나는 그 소리에 놀라 ‘흠칫-!’ 어깨를 떨었다가 자기보다 더 놀라는 것 같은 모나한의 모습에 한 번 더 몸을 움츠렸다가 눈을 깜박였다.
“괜찮-”
와, 내 목소리가 두개골을 타고 들리는 게 엄청나게 커.
로나는 제 목소리에도 흠칫 놀랐다가 모나한처럼 엄청나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지 않아요.”
“…….”
로나는 모나한이 충격과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 된 것을 보고 픽- 입꼬리를 올렸다가, 제 볼 근육의 움직임이 선명히 느껴지는 것에 흠칫거렸다.
“새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감각 진짜 다 새롭다.”
“……죄-”
“죄송하다고 하면 때릴 거- 아니지, 지금 때리면 모나한이 붕 날아갈지도 몰라.”
“…….”
“쏟아지는 감각 때문에 머리 아프고 모나한은 매일 좋은 냄새 났는데, 지금은 피 냄새만 지독하네요.”
“…….”
“저도 그래요?”
“네?”
“이제 밀 빵 냄새 안 나겠네. 축하해요, 밀 빵 냄새에 흥분할 일은 없어지겠다.”
모나한은 그 장난기 실린 농담을 들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가, 겨우 입꼬리를 조금 올리다가 말았다.
막 눈을 떴을 땐 환하게 웃는 표정을 본 것도 같았는데, 그 표정은 어디 갔는지 안절부절못하는 뱀파이어만 저기 앉아 있다.
아니, 저게 앉아 있는 건가? 무지 엉거주춤한데? 스스로 의자 다리를 하고 고문 중인데?
“지금은 막 변해서 익숙하지 않은 거겠죠. 점점 익숙해질 테니까, 이건 신경 쓰지 말고요.”
“……네.”
“그보다 원래 이렇게 배고파요? 뱃가죽이 등에 닿은 것 같은데.”
“막 변해서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더 그런 걸 거예요. 제가 피를 좀 모아 왔어요. 고위 마물의 피예요.”
“오.”
로나가 의자에 앉으라는 듯 손짓하고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하자 모나한은 죄책감 어렸던 표정을 담담하게 바꾸며 말했다.
로나는 피를 좀 모아 왔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자는 동안 잠깐 나갔다 왔어요. ……거부감이 생길 수 있는 건 알아요. 피를 마신다는 게 쉬운 건 아니죠. 하지만 혀를 조금이라도 대고 나면 괜찮을 거예요.”
모나한이 아공간에서 피가 담긴 병을 꺼내며 말했다.
그는 로나가 피를 마신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까 봐 조심해하는 몸짓이었다.
“딱 한 모금만 넘겨 보면 ‘아, 먹을 만하구나’ 싶을 거예요!”
모나한은 가라앉은 기분을 부러 띄우며 밝고 가볍게 말했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의 모습을 보며 조금 웃고는 그의 손에 있는 싱싱한 붉은색 액체를 담은 유리병을 바라보았다.
딸기주스나 토마토주스라고 생각하기엔 무리인 딱 봐도 피가 담긴 병이었다.
“자자, 먹어 보세요!”
모나한이 로나가 빤히 보고 있는 것에 애가 탔는지, 유리병을 로나의 손 위에 올려 주며 말했다.
왠지 전생의 엄마가 한약 먹일 때 했던 행동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막상 먹으면 단맛이 느껴진다며 억지로 손에 쥐여 주셨지.
“어차피 뱀파이어가 됐으면 마셔야 해요. 물론 거부감이 강하겠지만, 몸에 좋아요!”
어, 더 똑같아졌다.
완전히 보약 챙겨 먹으라고 손에 한약 박스를 억지로 쥐여 주던 엄마 같아!
엄마 저 기차 타고 가는데 짐이 많으면 힘들어요!
마실게요, 마실게요. 택배로 부쳐 주세요!
“혹시 무랑 같이 먹으면 안 된다거나, 복용 중에는 술을 마시면 안 된다든가.”
“어, 아뇨? 상관없어요. 실제로 인간의 피를 술에 넣어 마시는 유행이 한번 돌았을 정도 인걸요.”
“뭐죠, 그 끔찍하게 들리는 유행.”
“인간의 피는 달콤하니까요. 특히 레몬청 같은 달콤한 맛을 가진 인간의 피는 인기가 많았죠.”
로나는 모나한의 말에 순간 낡고 박쥐가 날아다니는 고성 아래에서 피를 착취당하는 비쩍 마른 인간들이 퀭한 눈으로 삶은 포기한 채 벽에 기대 있고, 그 위층에서 화려한 옷을 휘감은 뱀파이어들이 낄낄대며 붉은 액체가 담긴 와인 잔을 마시는 모습이 연상 되었다.
“한번은 라임청 맛이 나는 피를 가진 인간이 있었는데, 죽을 때까지 엄청난 돈과 온갖 몸에 좋은 약초들을 쓸어 담았죠. 120세까지 살았던가?”
어, 갑자기 방금의 끔찍한 장면들은 모두 사라지고 한 건강한 할아버지가 병원 침대에서 헌혈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어! 윙크하셨어!
“또 어떤 인간은 산딸기주 맛이었는데, 그 인간은 80세인가밖에 못 살았어요. 워낙 술을 좋아하는 양반이라 다들 술 좀 그만 먹으라고 했는데……. 휴우. 결국엔 술 먹다가 갑자기 훅 가셨어요. 죽기 3일 전까지 술을 마셨으니 좋아하는 거 하다 가신 거죠, 뭐.”
뭐지, 이젠 말 안 듣는 할아버지가 ‘내가 술을 좋아해서 내 몸도 술맛인가 봐! 하하하하!’ 하고 웃다가 쓰러지는 모습이 연출되었어!
“뱀파이어 사회는 알면 알수록 퇴폐미가 없군요.”
“으음……. 제가 속한 무리가 좀 그런 편이랄까……. 사실 다른 뱀파이어 무리도 있는데, 거긴 정말 퇴폐 유혹일걸요?”
“오오오!”
로나의 감탄사 끝이 기대된다는 듯이 올라갔다.
“저희가 이제 다른 뱀파이어를 만나면 해야 할 치명적인 척을 매 순간 매시간 하고 사는 거죠.”
“오오오…….”
로나의 감탄사 끝이 생각해 보니 끔찍한 거 같다며 내려갔다.
“그래요. 그들은 온 인생이 그야말로 흑역사…….”
모나한도 자기는 생각만 해도 싫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로나는 그 고갯짓을 보며 건넨 유리병을 살짝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