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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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와 모나한은 실리와 그란의 아공간을 빵으로 가득 채워 주고 수도를 벗어났다.

실리가 알려 준 바위산으로 갈 생각이었다.

모나한은 겨울이 지나고 나서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을 했지만, 옆에서 실리가 차라리 겨울이 낫다고 충고했다.

옆에서 그란도 겨울이 냄새가 덜 난다는 말을 덧붙이며 열쇠 하나를 내밀었다.

자기들이 머물렀던 바위산에 있는 작은 산장 열쇠라며 여길 쓰라는 것이었다.

로나와 모나한은 감사하다면서 열쇠를 받았고, 마차를 몰았다.

마차 뒤 저 멀리 저택에서 손을 열심히 흔드는 두 사람을 보며 로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생각보다 뱀파이어들이 되게 괜찮네요.”

“뭐…….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그런 편이죠. 특히 괜찮은 이들이 주로 위를 맡기도 했고요.”

“총 몇 명이 있어요?”

“글쎄요? 200명 정도? 하지만 이건 저희 무리만 말한 거예요. 실제로는 다른 무리도 있고……. 저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뱀파이어들도 있을 수 있겠죠. 실제로 늑대 인간 쪽에서는 새로운 무리가 발견됐다는 말이 비교적 최근에 들렸고요.”

모나한은 전쟁 때 비밀 실험이 워낙 많았다면서 아직도 숨어 사는 다른 이종족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날 일도 별로 없고, 그들을 통합하거나 어떻게 할 생각도 없으니 신경 쓸 필요도 없죠.”

“아하.”

“신전에서 다시 이종족 탄압 같은 게 일어나면 모를까……. 근데 거긴 차라리 한번 망했다가 다시 생기는 게 빠를 것 같더라고요. 신관으로 있을 때 봤더니 아주 온갖 비리들이 드글드글.”

“그 정도예요?”

“거기에 기부금 내는 것보다 허공에 돈 뿌리는 게 더 나아요.”

모나한은 생각할 것도 없다며 고개를 도리질 치고는 느긋하게 마차를 몰았다.

어느새 실리의 별장은 보이지 않고 커다란 대로를 따라 마차가 굴러갔다.

모나한은 실리가 말해 준 바위산이 그리 멀지 않다고 말했다.

마차로는 일주일 정도 걸릴 거라고, 눈이 내리기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둘은 학원 도시에서 출발했을 때처럼, 작은 농담들과 웃음을 즐기며 움직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빵들을 팔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일주일 즈음 되었을 때, 마차는 황폐해 보이는 바위산의 작은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은 커다란 바위 사이에 작은 길로 들어가야 있었다.

바깥쪽에서는 작은 길을 굽이굽이 들어가야 해서 잘 눈에 띄지 않는 산장이었다.

하지만 작은 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공동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쪽의 커다랗게 뚫린 구멍으로 창백한 겨울 햇살이 환하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산장은 어떻게 만든 건지 모를 만큼 정교하게 바위틈 사이에 지어져 있었다.

다른 곳보다 약간 어두운, 햇살을 살짝 피한 곳이었다.

“실리의 취미가 목공이었죠, 아마?”

“목공이라기엔 나무집을 만들었는데요?”

“작은 걸로 시작하다가 스케일이 점점 커지는 건 오래 사는 이들의 특징이죠.”

모나한이 산장에 달린 자물쇠를 열며 실리가 만든 산장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최근에 실리와 그란이 써서 그런지 산장은 먼지가 쌓여 있을 뿐이지 부서진 곳은 없었다.

“청소는 좀 해야겠네요.”

“최소 1년은 쓸 테니까요. 아, 여기 곰팡이 슬었다.”

“남아 있는 천은 버리는 게 좋겠어요.”

“여기 청소용 걸레로 쓰고 태워 버리죠.”

산장은 부엌과 붙어 있는 벽난로 있는 거실, 작은 방, 계단으로 되어 있었고, 2층에는 커다란 방이 두 개가 붙어 있는 산장이었다.

1층의 작은 방에는 목공용 도구들이 굴러다니는 것으로 보아 실리가 이 방을 목공실로 쓴 모양이었다.

“모나한도 목공 할 줄 아나요?”

“글쎄요. 그냥 일반인이 하는 정도일걸요? 힘은 세니까 더 잘하긴 하겠지만.”

어차피 아끼는 도구들을 다 가져갔을 거라며, 모나한은 도구들을 쓰레기통으로 집어넣었다.

“여기 창문이 크니까 허브를 화분에 키우는 것도 괜찮겠네요. 허브같이 향이 강한 종류의 화분을 가득 들여놓으면 다른 냄새를 좀 지울 수 있거든요.”

“아까 보니까 밖에 허브들이 많던데.”

“실리가 그란을 위해 키웠던 거겠죠.”

그의 말대로인지 2층의 안쪽 방에는 엄청난 양의 화분들이 가득했다.

안이 텅 비어 있는 걸로 봐서 떠나기 전에 전부 밖에 심어 놓고 간 모양이었다.

공동 안에 어떤 마법이라도 걸어 놓았는지, 초겨울인데도 파릇한 허브들이 흔들거렸다.

“그러고 보니 밖이 겨울치고는 푸르렀죠.”

“실리가 마법을 걸어 놨겠죠. 그녀는 마법 쪽에 상당히 능하거든요. 주위에 동물 냄새나 소리가 안 나는 걸 보면, 식물과 곤충 이외에는 쫓아내는 마법도 있는 것 같아요.”

모나한이 이상한 무늬가 가득한 나무 벽을 매만지며 아마 이게 마법 진일 거라며 말했다.

“모나한은 마법 잘 못 해요?”

“으으음. 그쪽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저는 활을 잘 쏜달까, 사냥을 잘하죠.”

“그러고 보니 처음에 사냥꾼이라고 했었죠.”

로나는 기억난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안쪽의 방에 아무런 창문이 달리지 않은 것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여긴 창문이 없네요?”

“여기에서 그란이 지냈던 것 같네요. 막 뱀파이어가 되었을 때는 햇빛이 너무 밝을 테니까, 억지로 창문을 안 만들었을 거예요. 여기 가득한 선반에는 아마 허브 화분을 뒀겠네요. 빛이 없어서 시들해지면 실리가 다시 싱싱한 화분으로 바꿔 줬겠네요.”

로나도 여기서 자는 게 좋겠어요.

모나한은 먼지 가득 쌓인 이불을 걷으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집 안에는 화분이 가득했고, 그란의 방에는 창문이 없었고, 벽은 두꺼워서 웬만한 소리를 차단했고, 모든 가구는 부드러운 감촉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실리가 얼마나 그란을 위했는지 알 수 있는 집이었다.

“이제 남은 방이 모나한이 지낼 곳이죠?”

“여기 바로 옆방이죠.”

둘은 먼지 쌓이고 곰팡이 슨 천 조각들을 복도에 내려놓은 채 옆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그란의 방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었지만, 창문과 침대, 흔들의자, 책장뿐이었다.

그란의 방과 비교되게 가구가 아주 적은 방이었다.

“소중한 가구는 이미 가져갔나 보죠?”

“반대일걸요.”

“네?”

“소중한 가구가 없어서 채워 넣지 않은 거겠죠.”

로나는 모나한의 말을 들으며 학원 도시에서 있었던 모나한의 방을 떠올렸다.

실리의 방과 비슷하게 모나한의 방도 로나가 채워 준 최소한의 가구만 있을 뿐이었었다.

“오래 살면 결국 모든 것들은 먼지로 화하고, 그걸 반복하다 보면 둘 중 하나가 되는 거죠. 마구잡이로 욱여넣거나, 어떤 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거나.”

아니면,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하거나.

“나중에 뱀파이어가 된 이들은 좀 다르긴 하지만, 그때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이들은 어디 하나씩은 다들 망가져 있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긴 했죠.”

모나한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가볍게 말했다.

로나는 실험실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무거워지는 분위기에 짧게 입술을 늘였다가 오므렸다.

“전 뱀파이어가 돼도 의미를 열심히 둘 생각이에요.”

“그래요?”

“음……. 서로 가구를 선물해 주는 건 어때요?”

“네?”

“각자 방에 들어갈 가구를 서로가 골라 주는 거죠. 이미 그것만으로 의미가 생겼잖아요.”

모나한은 로나의 말에 눈을 깜박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해 보지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이 산에서 내려가게 되면 실리에게도 선물을 해 주죠, 뭐. 이런 산장까지 빌려줬는데. 선물 받은 가구면 의미를 두고 쓰겠죠.”

“……그렇겠죠.”

“그 가구가 망가질 즈음에 또 다른 걸로 사 주면 될 거고요. 차라리 1년마다 하나씩 보내 버릴까?”

“그, 음. 실리는 아마 스스로 가구를 만들걸요?”

“그럼 실리 씨한테 가서 목공을 배우는 것도 괜찮겠네요! 재미있겠다.”

어차피 오래 살게 될 건데, 자신도 집을 직접 지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며 중얼거리는 로나를 모나한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도 같이 배울래요.”

“목공 일요?”

“네. 제가 직접 만든 가구를 로나가 써 줬으면 좋겠어요.”

“좋아요.”

로나는 기대하고 있겠다면서 눈꼬리를 예쁘게 접었다.

창문에 붙어 있는 커튼을 떼었기 때문에, 햇빛은 찬란하게 방으로 들어왔고, 방 안 가득 먼지가 반짝이며 흩날렸다.

로나는 먼지가 싫다는 듯이 고개를 파닥거렸지만, 모나한의 눈에 보이는 장면은 이상할 정도로 찬란할 뿐이었다.

색감이 조금 바랜 것 같기도, 아니면 온통 진하게 물들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절대로 이상이 생길 수 없는 좋은 눈인데도 그렇게 보였다.

모나한은 조금 웃어 버리고는 손을 들어 로나의 머리 위의 먼지를 조심스레 털어 주었다.

로나가 먼지를 치우려는 듯이 코앞에서 손을 휘저으며 코끝을 찌푸렸다.

달콤한 풍경이었다.

“먼지 엄청나게 날리네. 그거 빨리 복도에 두고 와요. ……왜 멍하니 있어요?”

“로나가 엄청 예뻐서요.”

“네?”

“먼지가 주위에 반짝이면서 돌아다니는데, 찡그린 코끝이 아주 예쁘시네요.”

“흠.”

로나는 모나한이 저를 꼬실 때 하는 웃음을 빤히 바라보았다.

속눈썹을 살포시 내리면서, 조금은 야하고, 조금은 순종적으로, 한가득 예쁘게 웃는 얼굴.

“저 또 반해 버린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기가 더 예쁜 얼굴 하는 주제에 난리 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긴요. 빨리 복도에 커튼 두고 와요.”

“……너무해라! 저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어떤 거요?”

“제가 꼬시면 두근거리긴 하는 거죠? 표정 완전 멀쩡한 거 봐!”

로나는 삐진 듯한 모나한의 말에 조금 망설이고는 말했다.

“……뭐, 두근거리죠. 음, 조금…… 은 아니고…….”

많이?

로나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대사 끝에 마침표도 찍지 못했다.

늘어진 말끝에 살짝 달린 물음표가 한껏 설레었다.

“전 잘 모르겠는데요.”

모나한은 가득 보이는 설렘에도 뻔뻔하게 말했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의 뻔뻔함을 째려보다가 한숨을 푹 쉬고는 투덜거렸다.

“증명할 방법이 없네요. 제 가슴에 손을 올리게 할 수도 없잖아요.”

“올리고 싶습니다!”

“뭐요?”

“흠, 안 되나.”

“아니, 당연히 안 되죠! 함부로 어딜 만지려고 그래요!?”

“함부로 만지는 건 아닌데요. 엄연히 허락을 받고 만지려고 하는 거죠.”

“헐. 그렇게 제 가슴이 만지고 싶어요?”

“사실 지금 만져 보고 싶은 곳은 허리?”

“허리요?”

로나가 제 허리를 더듬거리면서 묻자, 모나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은 솔직히 너무 성적인 뉘앙스가 커서 좀……. 그보다는 이렇게 폭 안고 등이랑 허리 좀 만지작거리고 싶어요.”

모나한이 허공에 팔을 두른 채 손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말했다.

로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잠깐 고민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모나한이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다가와 로나를 폭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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