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 (69/154)

69

로나는 모나한의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고 말려 주고 볼까지 토닥여 준 다음에, 울어서 더 처연한 매력을 한껏 뽐내는 얼굴을 실컷 감상하고 나서 몸을 돌렸다.

식탁 한구석에서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있던 실리와 그란이 몸을 돌린 로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 하하하……. 갑자기 나가는 게 더 어색할 것 같아서……. 하, 하하…….”

실리가 눈을 피하며 변명했지만, 로나는 딱히 그들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고, 이성이 나간 건 모나한이었지 자신이 아니었으니.

“괜찮아요. 저희야말로 실례했죠.”

“아냐 아냐 아냐. 연애하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거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별말씀을.”

로나는 왠지 부끄러워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사과했으나, 실리가 손을 휘저으며 괜찮다고 하자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담담한 얼굴을 했다.

사실 부끄럽지는 않았다.

나보다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갑자기 혼자 무덤 파고 들어간 모나한이 부끄러워해야지.

하지만 그녀는 모나한이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뒤돌아보면 언제 울었냐는 듯이 뻔뻔한 얼굴이나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생각대로 역시나, 로나가 뒤돌아본 모나한의 얼굴에는 부끄러움이라고는 한 조각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는 그냥 살짝 지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물을 왕창 쏟아 내서 약간 멍하고, 지친 표정.

방금 운 사람치고는 눈가의 붉은 기도 어느새인가 사라진 후였다.

로나는 문득 제 얼굴에 걸린 담담한 표정이 모나한의 뻔뻔한 표정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도 뻔뻔해 보이는 표정이 돼 가는……!

이상한 게 닮아 가는 모양이다.

로나는 대충 생각하고는 아직 멍한 표정인 모나한을 두고 다시 실리를 바라보았다.

“그란 씨가 버텼다던 바위산이 어디인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거기 가 보게?”

“네. 아무래도 생명체가 적은 곳이 좋을 것 같아서요.”

“음……. 조금 설명하기 힘들긴 한데, 모나한이라면 대충 어디인지 알 거야. 모나한에게 설명해 둘게.”

“감사합니다.”

“뭘. 정 감사하면 가기 전에 빵이나 많이 만들어 주고 가.”

“하하하. 그럴게요.”

실리는 부엌은 언제든지 마음껏 써도 된다며 말을 덧붙이고는 자신들은 정원에서 파운드케이크와 함께 티 타임을 즐기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나는 한 번 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예의 바르게 웃었다.

그리고 실리와 그란이 식당을 나가자 모나한의 손을 잡고 방으로 향했다.

모나한은 아직도 살짝 멍한지 로나가 잡아당기는 손을 말없이 졸졸졸 따라갔다.

그는 로나가 이끄는 대로 움직여 침대 가에 걸터앉았다.

로나도 모나한의 옆에 앉아서 그의 앞머리를 살짝 쓸어 넘기며 말했다.

“좀 진정됐어요?”

“……네.”

“차가운 물 좀 마실래요?”

“괜찮아요.”

“아직 멍해 보이는데.”

“오랜만에 울었어요. 정말 오랜만에요. 저, 잘 안 울거든요.”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젠 붉은 기가 완벽히 사라진 눈가를 살짝 비볐다.

로나가 눈 비비지 말라며 그 손을 말리고는 모나한의 눈 끝을 살짝 토닥였다.

“음, 꽤 잘 울 것 같은데…….”

“가짜로 눈물 흘리는 건 아주 잘하죠.”

“오.”

“진짜로 우는 일은 별로 없는데……. 요즘 꽤 울었네요.”

“모틸라 씨 때문에요?”

“모틸라랑 당신 때문에요. 뭐, 둘 다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어쩔 수 없죠.”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특유의 장난기 섞인 뻔뻔한 표정을 지으려고 했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어색한 표정일 게 분명해서, 모나한은 그냥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로나의 허리를 안고, 고개를 그녀의 어깨에 파묻어 얼굴을 감추는 것을 선택했다.

“……울보는 모틸라예요.”

“그래요?”

“걔는 허구한 날 운다고요. 울면서 화내고, 울면서 짜증 내고.”

“저도 꽤 자주 우는데.”

“……잘 안 울지 않아요? 우는 거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음…….”

로나는 제 어깨에 비비적거리는 모나한의 회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과거를 떠올렸다.

꽤 울었던 것 같은데.

어릴 적에는 지푸라기 사이에서, 새까만 창문 아래에서.

그다음에는 타오르는 오븐 앞에서, 반죽대 앞에서, 장사가 끝난 계산대 위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 후에는-.

“모나한을 만나고나서부터네요.”

“네?”

“당신을 만난 후부터는 잘 안 울게 됐어요.”

자글자글한 농담이 있어서였을까?

제 비밀을 전부 털어놔서였을까.

마침내 기다리지 않던 비현실이 쏟아져서였을까?

그 비현실감을 같이 느껴 주는 사람이 있어서였을까.

로나는 제 어깨에 올려진 모나한의 머리에 고개를 기대고, 그의 회색 머리카락 끝을 잡아 가벼운 손장난을 쳤다.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고 차가운 머리카락이 사락거렸다.

“그전에는 많이 울었는데, 혼자 있을 때 말이에요.”

“……저랑 반대네요.”

모나한이 로나의 무릎에 올려져 있던 그녀의 다른 쪽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전에는 정말 안 울었는데. 아무것도 저를 울리지 못했죠.”

그는 그 손을 잡고, 로나가 제 머리카락을 만지는 손짓에 따라 했다.

창백하고 기다란 손가락이 로나의 손가락 사이로 구르고, 장난치고, 간지럽혔다.

“근데 요즘은……. 많이 우는 것 같아요. 당신을 만나고 나서부터요.”

그러고는 얽혀진 손가락을 평소보다 조금 강한 힘으로 부여잡았다.

모나한은 로나와 저의 얽힌 손, 소맷자락, 옷자락의 단추, 갈색 머리카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는 아주 작게 속삭였다.

“위로해 줄 사람이 생겨서 그렇나 봐요.”

모나한은 제가 한없이 약해진 것만 같았고, 또는 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그런 것들은 아무 상관 없을 정도로 안정되고 안심되고 행복하거나.

그는 제 머리를 만지는 로나의 손이 멈춘 것을 느끼고는 약간의 투정을 담아 로나의 어깨에 이마를 비볐다.

로나의 손이 다시 느리게 손장난을 치며 그를 쓰다듬었다.

모나한은 그 손길을 느끼면서, 조용히 잠식해 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 * *

로나는 모나한이 커다란 회색 여우 같다고 생각하며 그의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렸다.

아름다운 색에 부드러운 감촉이라 만지는 재미가 있기도 했다.

게다가 모나한의 자는 모습을 처음 보는 거라 신기하기도 했다.

언제나 그녀가 먼저 잠들고는 했으니.

로나는 한참 동안 모나한의 잠든 얼굴을 관찰했다.

위대한 뱀파이어 씨는 자는 모습도 순수해 보이는 성직자 타입에 묘하게 퇴폐미 한 방울 떨어트린 잘생긴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평소보다 살짝 처연해 보이는 모습이 더해져 점수 플러스.

게다가 맨날 하던 그 뻔뻔한 웃음과 유혹이 없이 얌전히 자고 있으니 또 다른 매력으로 점수 플러스.

그녀는 그렇게 모나한의 자는 얼굴을 감상하며 밀색 손가락 사이로 회색 머리카락을 한참 흐트러트렸다.

어느새 창문 가득 들어와 방 안을 환하게 비추던 햇살이 천천히 넘어가고 그림자가 짧아지고 있었다.

정오에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손에 느껴지는 감각이 평화롭고 즐거워 생각 없이 즐겼던 로나는 슬슬 어깨가 버티기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제빵 반죽과 장사로 단련된 어깨에 부담이 될 정도라니, 이 자세로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그녀는 모나한의 이름을 불러 그를 깨울까 고민하다가, 모나한이 너무나 달콤한 잠을 자는 것 같아서 망설였다.

생각해 보니 모나한의 자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기도 했다.

언제나 제가 먼저 잠들고는 했으니.

그녀의 몸짓에 따라 모나한이 부드럽게 눕혀져 짙은 녹색 이불 위에 회색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로나는 그 섬세한 얼굴이 이불 위에서는 더욱 야해진다고 생각하며 미모를 조금 감상하고 몸을 일으켰다.

마음 같아서야 침대 가에 걸쳐진 다리도 위로 올려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모나한이 잠에서 깨어나 버리고 말 게 분명했다.

예민한 여우 같으니라고.

로나는 조심스레 눈가를 간지럽힐 것 같은 앞머리만 치워 주고서는 발소리를 조심하며 방문을 향했다.

“어디 가요?”

그리고 그녀가 방문을 열려는 순간 모나한이 뒤에서 잠기운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로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는 작게 한숨 쉬고는 뒤돌았다.

그럴 줄 알았어.

저 예민한 여우가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지.

“부엌에 가서 점심 식사 후에 먹을 디저트를 좀 만들까 해서요.”

“저 두고요?”

“그럴까 했는데, 따라올 거죠?”

“로나가 가는 곳이 바로 제가 갈 곳이죠.”

“부엌이 무슨 모험의 목적지 같네요.”

“반죽이라는 마왕을 물리치고 나면 갓 만든 빵이라는 보상이 주어지죠.”

모나한이 약간 흐트러진 옷차림을 다듬고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로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울었던 자국이나 멍해했던 표정들이 전부 사라진,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가실까요, 주인님?”

모나한은 언제나 그랬듯이 코끝을 찡그리고 입꼬리는 올리고, 눈가는 실컷 휘는 뻔뻔한 웃음을 짓고는 로나가 잡고 있던 문고리를 잡아 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그 명칭 오랜만이네요.”

로나는 모나한의 웃는 볼에 손을 올린 채 살짝 토닥이고는 작게 키득거렸다.

그리고 그의 안내대로 방문을 지나 복도로 나갔다.

“목적지는 부엌, 마왕은 머랭, 보상은 레몬 머랭 파이!”

“아, 머랭 마왕은 주로 손목을 공격하더라고요.”

“그러니 손목이 강한 모나한이 공격을 도맡아 하도록 하세요.”

“파이지는 로나가?”

“커트는 둘이 만들죠.”

“끝내주는 보상이 나오겠네요.”

“그럼요. 레몬 커트는 새콤달콤하고, 머랭은 폭신하고, 파이지는 고소하겠죠.”

“점심 식사보다 그 후에 올 디저트가 더 기대될 정도예요.”

로나는 모나한이 군침을 꿀꺽 삼키는 것을 키득거리며 바라보았다.

둘은 나란히 손을 잡고 가벼운 걸음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겨울이었지만, 정오의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복도에서 회색 머리카락과 갈색 머리카락은 반짝반짝 빛나기만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