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아무튼, ‘새인간뱀됐지’를 보면 알겠지만, 약 3일 정도 열이 오르면서 아플 거야. 몸이 변하는 거라서 그건 어쩔 수 없어.”
실리는 왕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대충 넘어가자며 손을 휘젓고는 ‘새인간뱀됐지’ 서류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다.
“진통제나 약 같은 것들도 하나도 안 들어. 3일간은 그냥 끙끙대면서 견뎌야 해. 어차피 의식도 거의 없고.”
그녀는 칼로 섬세하게 파운드케이크를 잘라 내며 말했다.
노란색의 뽀얀 단면에서 달콤한 냄새와 따끈한 온기가 피어올랐다.
“일어나면 외모가 아름다워져 있을 거야. 그건 우리를 구성하는 피 중에 외모와 관련된 능력을 갖춘 마족 때문인데……. 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고. 가장 많이 변하는 곳이라면, 눈.”
“눈요?”
“응. 그 마족의 눈 색이 닮아 버리거든. 나 같은 경우는 황금색 눈을 가진 마족의 피를 받은 거지. 모나한은 선홍색. 너는 모나한의 피를 받을 거니까 눈이 선홍색으로 변할 거야.”
“머리카락 색은 안 바뀌나요?”
“안 바뀌어. 좀 더 찰랑찰랑하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되긴 하지만, 색은 그대로야. 나랑 그란도 원래 눈 색은 다르고 머리카락 색은 같았어. ‘똑같은 머리카락 색이네요-’ 하면서 친해진 거라서.”
“음…….”
로나는 자신의 땋은 머리끝을 조금 만지작거렸다.
“왜? 너의 머리카락 색이 마음에 안 드니?”
“아뇨. 딱히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었어요. 머리카락 색을 신경 쓰는 타입도 아니고.”
“그래?”
“눈동자가 선홍색이 되면 엄청 눈에 띄겠네요.”
로나가 생각만 해도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은 남의 시선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얼굴이 엄청 예뻐지니까 눈에 띌걸?”
“아하.”
“로나는 지금도 엄청 눈에 띄어요. 귀여우니까.”
“아, 네. 그래요.”
로나는 모나한의 말에 대충 대꾸하고 실리를 바라보았다.
실리는 이제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을 들어 조심스레 한입 깨물었다.
따끈따끈한 노란색 속과 살짝 탄 설탕의 맛이 나는 갈색의 겉 부분이 입 안에서 폭신한 식감과 함께 부서져 내렸다.
특유의 퍽퍽함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입 안의 수분과 섞여서 점점 더 달콤해지는 맛이란-!
“으으음……!”
로나는 세상의 모든 행복을 느끼는 듯한 얼굴이 된 실리를 바라보며 이 ‘새인간뱀됐지’에 대해 계속 물어봐도 되는지 고민에 휩싸였다.
다행히도 실리는 그 한 조각을 마지막으로 아공간으로 파운드케이크를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 미안. 이거 따끈따끈할 때 꼭 한 조각 먹고 싶어서.”
“괜찮아요.”
“아무튼, 3일간 앓는 건 그냥 넘어가고 그 후가 문제야.”
“여기 서류에 쓰여 있는 대로라면,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서 견디기 힘들어진다는 거죠?”
“맞아. 아무래도 들리지도 느끼지도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쏟아지니까. 차근차근 감각이 확장되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라 일어나자마자 엄청난 소음과 엉망진창으로 섞인 냄새, 예민한 촉각,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엄청나게 밝게 느껴지는 햇빛.”
“으음…….”
“사실 다른 건 어떻게든 견딜 수 있어. 소음이야 귀를 막으면 줄어들고, 촉각이야 움직이지 않으면 사그라지지. 빛이야 지하실 같은 곳으로 가면 그만이고.”
실리는 그렇게 말하며 손끝으로 제 코를 가리키며 무언가 회상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
“여긴.”
그러고는 황금색 눈동자로 로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여긴 무리야. 입으로만 숨 쉬어도 뱀파이어의 예민한 감각은 모든 냄새를 다 맡아 버리거든.”
“지독하죠.”
실리의 옆에 앉아 있던 그란이 짓씹듯이 작게 내뱉었다.
“지금도 솔직히 견디기 힘듭니다. 특히 주위에 인간들이 많으면 온갖 음식 냄새가 뒤범벅된 것처럼 느껴져요.”
“그란은 1년 정도 후에야 인간들이 사는 마을로 올 수 있었어. 그전에는 바위산에 틀어박혀서 꼼짝도 안 했거든.”
“곤충은 음식 냄새가 안 난다는 게 다행이랄까요. 곤충까지 음식 냄새가 있었으면 미쳐 버렸을지도.”
그란이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실리는 그런 그란의 어깨를 몇 번 토닥여 주고는 로나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덤덤한 표정의 로나와 그 뒤에서 점점 창백해지는 모나한을.
특히 모나한은 로나가 걱정된 건지, 아니면 그녀가 뱀파이어가 되지 않겠다고 할까 봐 걱정된 건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일지도 모르는 엉망진창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실리의 생각대로 모나한은 정말로 제 감정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로나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일까.
제 눈에 지금 보이는 것은 언제나와 같은 갈색 머리카락과, 그 사이로 보이는 동그란 볼 뿐이어서 그런 걸까.
모나한은 로나가 어떤 표정일지 미치도록 궁금하면서도 동시에, 그녀의 표정이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얼마나 평범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과 변화에 약한지도.
만약에 로나가 무서워하면 어떡하지?
불안에 떨고 있으면?
그리고 자신이 그 표정을 본다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그렇게 무서우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이 가 버리면 매우 슬플 테지만, 당신과 있을 그 몇 년이라도 나는 충분히 행복할 거예요?
아니, 아니.
나는 그렇게 못할 거예요, 로나.
나는, 나는-.
입꼬리를 조금 올리고 눈꼬리는 축 내리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표정을 지을 테지.
가장 처량하면서도 불쌍하고 그럼에도 아름답고 유혹적인 표정을 할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가장 달콤한 목소리로, 가장 당신의 감정을 건드릴 단어들을 찾아 나열하겠지.
나랑 있어 주세요.
나랑 일생을, 평생을, 영원을.
아픔은 잠깐이고 행복은 길 거예요.
당신이 아픈 만큼 제가 더 행복하게 해 줄게요.
헛소리들을 나열하며, 눈물이나 몇 방울 떨어트릴 것이다.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당신이 없으면 나는 살지 못할 테니까.
잠깐의 아픔도 아픔일 텐데, 그것들은 전부 무시해 버리고 애원하겠지.
모나한은 스스로의 역겨움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얼굴에 지어지는 미소는, 내려가는 눈꼬리는, 만들어진 애원은-.
모나한은 천천히 로나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저 스스로가 얼마나 저열한 이인지 미치도록 중얼거리며.
“끝이에요?”
그리고 로나의 입에서 쏟아진 말은 모나한이 그대로 멈출 정도로 담담했다.
“어, 어.”
“흠. 그 정도라면야.”
로나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서류를 접어 품에 넣었다.
“아무튼 1년 정도야 버티면 된다는 거죠? 사람과 동물들이 없는 곳에서?”
“그, 그렇지.”
“그래요, 뭐.”
그녀는 마치 그 모든 고통들이 별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거라는 결심이나, 고통을 대비한 각오가 담긴 목소리가 아니라, 그냥 매일 그런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담담하고 평범하고 평온한 목소리.
“괜찮, 괜찮아요?”
모나한은 자신도 모르게 로나의 어깨를 급하게 잡고 말했다.
“네?”
“엄청 괴로울 거예요. 감각이 예민해진다는 건, 온 세상이 당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질 텐데-”
“어, 음. 모나한?”
“전부, 전부 끔찍하게 느껴질 텐데-”
로나가 모나한의 손길에 따라 그를 돌아보았을 때, 모나한은 스스로가 생각한 것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려간 눈꼬리, 조금의 눈물이 맺힌 얼굴.
그러나 입꼬리는 내려가고, 미간은 주름지고, 담긴 것은 걱정과 불안뿐이었다.
“내가 당신한테 뭘 해 줄 수 있죠? 난 그냥 옆에 있을 수 있는 것밖에 못 할 텐데. 심지어 옆에 있어도 내 몸에서 나는 피비린내가 당신을 힘들게 할 텐데-”
그리고 입 밖에 내뱉어진 것은 애원도 유혹도 아닌, 자책뿐이었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을 바라보았다.
그 아름다운 얼굴이 불안으로 흔들리는 것을.
제 스스로를 지독히도 혐오하는 얼굴을.
그녀는 그런 모나한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이 자식 갑자기 왜 혼자 땅 파고 있어!?
“어, 음. 모나한?”
“당신이 고통스러워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나는 도저히 그만하자고 말하지 못해요. 그냥 인간으로 있어도 괜찮다고, 굳이 뱀파이어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수 없어요. 저는, 저는-”
뭐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 자식은 왜 이래?
갑자기 혼자 땅 파고 들어가서 흙 덮고 비석까지 세우고 있어?
“뱀파이어가 되어 주세요. 부디, 제 옆에- 있어 주세요.”
모나한이 무릎이라도 꿇을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로나의 팔을 잡은 채로, 공포와 불안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흔들리는 선홍색 눈동자에서 결국, 눈물이 한 방울 떨어져 창백한 볼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로나는-.
“아니, 뱀파이어 한다니까요!?”
‘빽-!’ 하고 소리 질렀다.
“……네?”
“누가 안 한대요? 왜 혼자 무덤 비석까지 세우고 있는 거래? 한다니까?”
“어, 어……?”
“자자, 울지 말고. 당황스럽네. 왜 울고 그런데? 물론 우는 얼굴도 예쁘고 잘생기긴 했는데, 난 우는 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 뚝!”
“어, 음, 네.”
모나한이 당황한 얼굴로 눈을 한껏 깜박이며 대답했다.
로나는 왠지 우는 손주를 달래는 할머니 같은 표정이 되어서 모나한의 허벅지를 철썩철썩 치면서 말했다.
“저 뱀파이어 될 거예요. 모나한 옆에 있을 거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한번 크게 푹 쉬고는 말을 이었다.
“물론 좀 실감이 안 나긴 해요. 감각이 예민해진다는데 실제로 겪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긴 하죠.”
“그러니까-!”
“저 말 안 끝났어요.”
“……네.”
모나한이 말하려다가 로나가 눈썹을 휙 올리며 바라보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힘들어할 수도 있고, 짜증도 많이 낼 거고, 모나한한테 화낼지도 모르죠.”
“……네.”
“그래도 후회는 안 할 거예요. 어떤 결정들은 선택하기 전에 불안하죠. 이게 맞는 걸까, 내가 틀린 건 아닐까. 하지만 지금 제가 한 결정은 그런 게 아니에요.”
로나가 모나한의 눈을 보며 말했다.
담담하고 단호하고, 똑바른 얼굴로.
“이건 후회할 결정이 아니라고요. 난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이건 절대 가벼운 감정이 아니고, 흩어질 감정도 아니에요. 그리고 모나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요.”
모나한은 아직 허벅지에 놓여 있는 로나의 손이 이상할 정도로 따뜻하게 느껴졌다.
불안으로 차갑게 식었던 몸이, 천천히 안정되어 가는 걸 느낀다.
“전 지금 행복하고, 앞으로도 그러길 원해요. 그리고 그만큼 모나한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네.”
“그리고 둘 다 행복할 방법은 제가 뱀파이어가 되어서 당신과 오랜 세월을 함께하는 거라고 믿고 있어요.”
“……네.”
“제가 뱀파이어가 되는 건, 행복을 위한 결정이고, 전 이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네, 로나.”
“뱀파이어가 될 거예요. 그리고 당신과 평생을 살 거예요. 알겠죠?”
“알겠어요, 로나. 알겠어요.”
모나한은 제 허벅지에 올려진 로나의 손을 그러잡았다.
모나한 고개를 숙인 채로 울었다.
제가 잡은 손의 손등 위로 눈물이 방울져 떨어져 부서졌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저열한 저에게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당신.
피비린내 나는 저에게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당신.
평화와 평온, 막 만든 밀 빵, 햇빛에 달아오른 나무.
따뜻하고 따뜻해서, 녹아 버릴 것만 같은 사람.
로나는 모나한이 잡은 손을 풀어 그의 앞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 그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엉망진창으로 울고 있는 얼굴을 쓰다듬으면, 손에 물기만이 가득했다.
로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먼저 프러포즈했네요. 모나한이 졌어요.”
모나한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리려다가, 결국 웃어 버리고는 속삭였다.
“전 한 번도 당신을 이겨 본 적이 없는걸요. 언제나 지고 말 거예요.”
“그럼요, 제가 더 강할걸요?”
“그래요. 로나가 언제나 저보다 강하죠. 언제나요.”
온 평생을 다 해도 이기지 못할 사람.
이기고 싶지 않은 사람.
모나한은 로나의 손 위에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미치도록 행복했고, 숨 막힐 정도로 눈물이 났다.
제 모든 빌어먹을 과거들이 이 순간을 위해서 놓여졌던 시련 같았고, 대가 같았다.
끔찍했던 과거들이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면,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면, 괜찮았다.
모나한을 위한 행복이 로나로 왔다.
그렇다면 로나를 위한 행복도, 모나한이 되게 할 것이다.
그녀가 말한 대로, 평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