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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식당에 앉아서 풀코스로 하나씩 나오는 아침을 먹었다.
전채 요리, 수프, 생선 요리, 고기 요리, 샐러드, 디저트, 과일, 커피까지.
생선 요리에서부터 고개를 갸웃거렸던 로나는 차례대로 나오는 음식에 동공을 지진 시켰으나 어쨌든 맛있게 먹기는 했다.
아침이라 조금 부담된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로나도 매일 장사를 하기 위해 거나한 아침 식사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신 빼고는 거대한 위장을 가진 뱀파이어들인데, 많은 음식에 기뻐하면 기뻐했지, 싫어할 이는 이 식당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집에 초대되었는데 아무런 선물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전생의 예의범절 유교 사상을 흔들었다.
그녀는 어제 저녁 식사 때는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고 쳐도,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으니 작은 선물이라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나는 옆에 앉은 모나한의 팔을 토닥토닥 쳤다.
“내가 만든 빵 좀 줘요.”
“네?”
“아공간에 넣어 놨잖아요. 집에 초대되었는데 뭐라도 드려야죠. 이것저것 생각해 봤는데, 제일 좋아하실 만한 게 제가 만든 빵인 것 같아서요.”
뱀파이어들이 하는 행동 보면 내 빵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이 굴던데, 빵을 선물로 주면 제일 좋아하겠지, 뭐.
그런 로나의 말을 들은 모나한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라는 표정이 되어 로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절망적인 말을 들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다, 다른 걸 주면 안 될까요?”
“뭐가 있는데요?”
“……어, 음. 보석?”
“필요해요?”
로나가 실리랑 그란을 보며 말하자 이미 로나의 말을 듣고 눈을 반짝이고 있던 둘이 동시에 고개를 거세게 내저었다.
매우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필요 없대요. 빵 내놔요.”
“제, 제 거예요!”
“아니죠. 제 거죠. 모나한 것 아니에요.”
“하지만 제 아공간에 있는데!”
“제가 거기 보관해 둔 거죠. 내놔요.”
“어떻, 어떻게 그런 말을……!”
“제가 무슨 세금 징수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요.”
“세금 징수원이 아니라, 이것은 마치 세율을 올리는 영주님……!!”
“뭐라는 거야. 내 빵 내놔요.”
모나한이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애원 섞인 표정으로 로나를 바라보았지만, 로나는 귀찮다는 얼굴로 한쪽 손바닥을 내민 채 흔들었다.
“야, 빵 어딨냐?”
“이젠 뒷골목 양아치 같아!”
“어이, 뒤져서 나오면 빵 하나당 한 대씩 맞을 줄 알아.”
“이미 때리고 있잖아요!”
모나한이 아직도 팔을 토닥토닥 치고 있는 손을 가리키며 말했지만, 로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흑흑. 능욕당했어.”
“뭐라는겨.”
결국 로나의 손에 따끈따끈한 파운드케이크가 곱게 올려졌다.
모나한이 무슨 주머니의 먼지까지 털린 사람처럼 가슴께를 두 손으로 가린 채 흑흑거렸지만, 로나는 대충 손이나 한번 휘저어 주고는 무시했다.
먼지까지 털린 사람치고는 회색 머리는 샤라랑, 선홍색 눈동자는 반짝반짝, 창백한 피부는 주름 하나 없는데, 뭘.
마치 물에 젖은 한 떨기의 백장미 같은 모습이기는 했지만, 그녀가 넘어가기엔 모나한을 너무 많이 겪었다.
로나는 막 오븐에 나온 상태에서 아공간에 집어넣어서 아직 따끈따끈한 파운드케이크를 실리와 그란 앞으로 밀어 주었다.
모나한의 위장 크기에 맞춰서 커다랗게 만든 케이크라서 선물하기 딱 좋았다.
“이거, 집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드리는 선물이에요. 제 입으로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제빵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요.”
“응응. 온 세계에 소리치고 다녀도 괜찮을 것 같은 실력이더라!”
“어, 음.”
주접떠는 건 뱀파이어의 종특인가?
모나한도 그렇고 모틸라도 그러던데.
“아무튼, 보석이나 다른 것들보다 제 빵을 더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어! 완전 좋아!”
“어……. 여기 얼마나 머무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으시다면 한 번씩 만들어 드릴게요.”
“영원히 여기 머물러 주라.”
“아, 그건 좀.”
“그럼 부엌을 개방할 테니 마음껏 써 주십시오.”
“뭐, 그래요. 저도 물어보고 싶은 게 좀 있기도 하고요.”
“응? 물어보고 싶은 것?”
로나가 자신의 집에 머무는 동안 빵을 만들어 주겠다는 소리에 쾌재를 부르던 실리와 그란이 로나가 질문이 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뱀파이어가 되면 정확히 어떠한 장단점이 있나요?”
“……오.”
그리고 실리는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오’ 하고 소리 내고 말았다.
모나한이 몰래 찾아와 창백한 달빛 아래에서 불안과 걱정으로 눈동자를 흔들었던 게 바로 어제인데……. 이 아이, 바로 물어보고 말았어!
“어……. 모나한이 말해 준 건 없어?”
“네.”
“……오.”
실리는 로나 옆에서 얼굴을 딱딱히 굳히고 동공을 지진 시키다 못해 칵테일 섞는 것처럼 흔들고 있는 모나한을 바라보았다.
뱀파이어라 체온이 낮아서 식은땀을 안 흘리는 거지, 일반 사람이었으면 이미 땀범벅이었겠다 싶다.
“3일 동안 아프다는 것 이외에는 모나한도 잘 모르는 것 같아서요.”
“아, 음……. 모나한은 다른 사람을 뱀파이어로 만든 적이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마침 최근에 사람을 뱀파이어로 만든 적이 있는 실리와 당사자인 그란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생생할 것 같아서요.”
“그건 그렇지…….”
실리는 로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로나의 시야 밖에서 엄청난 갈등에 휩싸이고 있는 모나한을 힐끗 바라보았다.
실리가 힐끗 바라본 모나한은 로나를 말리려고 손을 올렸다가,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가, 고개를 젓고 다시 내렸다.
갈등과 번민에 휩싸인 한 마리의 중생 같았다.
모나한은 그렇게 혼자 북과 장구를 열심히 치더니 결국 로나를 말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양손을 곱게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먼 산을 바라보았다.
묘하게 해탈한 표정이다, 저거.
실리는 그 꼴을 보고 있자니, 과거의 제가 생각나기도 하고,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 같은 기분도 되었다.
모나한이 하는 짓거리에 대해 답답함과 자신이 과거에 했던 짓의 답답함이 곱해져서 주위에서 돌아다니는 기분이랄까.
주위에 고구마가 손에 손잡고 강강술래를 하는 듯한 기분이랄까.
“그래! 내가 전부 세세히 정확하게 알려 줄게!”
그래서 그녀는 그냥 로나의 편을 들기로 했다.
잘 모르겠지만, 저 커플에서 사이다는 로나가 맡은 것 같으니까!
저기 시야 어딘가에서 모나한이 배신당한 눈으로 보는 것 같지만, 저런 고구마의 기분 따위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까!
“마침 안 그래도 이걸 주려고 했어! 우리 새로운 왕께서 만드신 ‘새로운 인간이 뱀파이어가 됐을 때를 위한 지침서’. 이름하야, ‘새인간뱀됐지’!”
“……이름이…….”
“나와 그란이 열심히 참여해서 만든 ‘새인간뱀됐지’야!”
“이름, 이름이……. 꼭 그렇게 지었어야만, 아니, 줄였어야만 했나요?”
로나가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물어봤지만, 실리는 그저 예쁘게 웃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어. 왕께서 지은 이름이거든.”
“아니, 왕이 있다는 게 신경도 안 쓰일 정도로 이름이 놀라워!”
“참고로 이번 대 왕의 명령은 ‘만나면 처음에 치명적인 척하기’야.”
“아, 그래서 그따위 장난을…….”
모나한이 작게 중얼거렸지만, 로나는 그 말을 신경 쓰기보다는 뱀파이어가 돼서 해야 하는 일이 ‘치명적인 척하기’인 게 더 신경 쓰였다.
“제가 잘못 들었나요?”
“아니! 잘 들었어. 뱀파이어가 되면 잘 지켜야 한다?”
실리가 ‘찡긋-!’ 윙크하며 로나를 향해 검지를 탁 튕겼다.
엄청나게 느끼한데 외모 때문에 센 언니 느낌의 연예인 보는 느낌!
우리 사이에 모니터가 느껴져요! 벽이 느껴진다고요!
여러 가지 의미로 벽이 느껴져요!
“아니, 그 왕이시란 분은 도대체……? 어떤…… 분……?”
로나는 왠지 뱀파이어가 되는 것보다 저 종족의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가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명칭만 왕이지 사실 귀찮은 서류 작업을 하는 이를 뜻합니다.”
모나한이 옆에서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이라 해야 그나마 하고 싶어 하니까 그런 명칭이지, 사실은 뭐……. 보스나 리더, 군주……. 팀장, 조장…….”
어째 갈수록 PTSD 오는 명칭이 나열되는뎁쇼!?
“다들 하기 싫어해서 여기저기 돌리다가 결국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맡기로 했죠.”
흡사, 폭탄 돌리기…….
“그리고 왕이 된 자는 서류의 이름을 정할 수 있는 권리와 딱 한 가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집니다. 단, 명령은 신체, 재산, 정신적 피해가 없거나 경미한 것으로 한정합니다.”
“그리고 처음 왕이 된 자가 내린 명령이 ‘만나면 셔플 댄스 겨루기’였어.”
“그 제도를 생각한 자는 ‘무릎 꿇기’나 ‘숭배하기’나 이런 걸 생각하면서 말했는데, 처음이 남을 놀리는 걸로 시작하다 보니까……. 그다음부터 다 저따위가 되었죠.”
“왕이 된 자는 전력을 다해서 놀림감을 생각해 내고 있지.”
“어떻게 해야 더 쪽팔리게 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진지하게 생각하죠.”
“이 서류 내려올 때도 ‘주의 사항 : 꼭 줄임말로 새인간뱀됐지라고 안내할 것’이라고 전달받았다고.”
뱀파이어 사회, 생각과 다른 의미로 엄청난데!?
“그래서 저희는 서로 절대로 알은척 안 합니다. 최대한 안 해요.”
“응. 만나면 진짜 흑역사를 적립하게 돼.”
친구의 친구 느낌의 데면데면한 사이 아니었냐고.
사실은 서로 흑역사를 적립하는 사이였냐고.
“……뱀파이어가 돼도 괜찮은 걸까……? 내 인생의 다음 이야기는 ‘흑역사 적립하기’인가……?”
“안돼. 무르기 없기! 나는 이 빵을 또 먹고 싶다구!”
“뭐, 음, 네.”
로나가 실리의 말에 떨떠름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정말 떨떠름한 기분만 드는 것 같다.
그녀는 그 기분이 그대로 담긴 손짓으로 실리가 건넨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러니까 집게손가락으로 더러운 것 만지듯이 집어 들었다고.
“아, 내용은 정상적이네요.”
“그럼. 이번 왕이 일을 참 잘해.”
“음…….”
“그만큼 쓰레기 같은 제목도 잘 생각해 내!”
“아, 음…….”
저 언니, 해맑은 얼굴로 디스 중이신데?
“모나한 너도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명령을 못 들었으니까, 날 만나서 안 한 건 넘어갈게. 다른 뱀파이어 만나면 꼭 하라고.”
“절대 다른 뱀파이어 따위 만나지 않을 겁니다.”
“로나가 뱀파이어가 되면 소개하기 위해서라도 만나러 가야 하지 않니?”
“아, 그래야 하나요?”
“로나. 잘 생각해요. 그때는 당신도 뱀파이어라서 치명적인 척해야 한다고요!”
“안 만날래요.”
로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해요, 안 해.
“뭐, 신입 생겼다 하면 보러 갈 동족들이 몇 명 있으니까. 익숙해질 거야!”
“어디 깊은 숲속 같은 데로 도망가죠.”
“제가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을 많이 압니다.”
“괜찮아, 괜찮아. 뱀파이어가 되면 외모가 예뻐지니까 생각보다 할 만하단다! 그래도 어색하면 더 웃기니까 거울을 보고 연습하는 걸 추천할게!”
“아니, 싫어요. 안 하는 방법 없나요?”
“모나한?”
로나가 안 하는 방법이 없는지 묻자 실리가 조금 무서운 표정으로 모나한의 이름을 불렀다.
모나한은 그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아아…….”
로나는 모나한의 목에 순간적으로 섬뜩한 붉은빛의 계약 진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모나한과 처음으로 계약했을 때 나타났던 그 계약 진이었다.
“뭐예요? 이거 뭐 명령이라도 있어요? 그러니까 진짜 계약상의 명령?”
“네. 있어요.”
“무슨…….”
어두운 종족이라는 느낌과는 다르게 꽤 가벼운 사회인가 했더니, 아닌가?
사실은 강제적이고 끔찍한 곳인가?
“안 지키면 다음 조장이 돼요. 아, 조장이 아니라 왕이죠.”
“아…….”
딱히 끔찍하지는 않나 봄.
“왕의 임기는 50년이에요. 50년 동안 서류 처리만 해야 해요.”
아주 끔찍하나 봄.
“모든 뱀파이어의 피에 새겨져 있는 계약이니까, 로나도 뱀파이어가 되면 발동될 거야. 피할 방법은 딱 두 가지야. 아직 명령을 듣지 않았거나, 주름이 생겼거나.”
“왜 피에 그런 걸 새기고 그래요…….”
“다들 서류 처리하기 싫으니까!”
실리가 산뜻하게 말했고, 그란과 모나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조장은 어디에 가도 환영받지 못하는 직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