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 (66/154)

66

로나는 눈가에 비추는 빛에 움찔거리다가 눈을 떴다.

아침 햇살이 또다시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햇살을 바라보다가 제 옆에 누워 있는 모나한의 가슴에 햇빛을 피해 얼굴을 묻었다.

키득거리면서 웃는 낮은 목소리와 제 뒷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로나는 잠이 천천히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모나한의 가슴에 이마를 몇 번 비비다가 몸을 일으켰다.

“잘 잤어요?”

햇살 아래 회색 머리 미남이 얼굴 하나 안 붓고 그저 반짝이고만 있었다.

로나는 아주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감탄 나오는 얼굴을 감상하다가 제 볼을 만지작거렸다.

밤새 어찌나 잘 잤는지 볼이 따끈따끈 오동통해져 있었다.

으음……. 모나한의 얼굴은 산뜻하기 그지없는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내 얼굴은 엉망진창이겠구만.

아주 퉁퉁 부어 있겠어.

그녀는 잠시 제 외모의 이모저모를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자신이 정상이고 저 자식이 비정상인 게 분명했으니.

모나한도 로나의 퉁퉁 부은 볼을 보았는지, 손을 올려 만지작거렸다.

“볼을 새빨갛게 붉히고 퉁퉁 부었네요. 말랑말랑해요.”

“방금 일어났으니까요.”

“귀여워.”

“그래요, 뭐.”

로나, 귀여워. 나, 귀여워.

로나는 대충 중얼거리고 모나한의 손을 피해 기지개를 켰다.

푹신한 침대에서 잔 몸은 어디 하나 결리는 데 없이 따끈따끈하기만 했다.

어제 두 번이나 받은 마사지가 제 역할을 했는지 온몸이 가볍기 그지없었다.

로나는 제 볼을 한 번 더 만지려는 모나한의 손을 휙휙 피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전에 모나한이 시무룩한 얼굴은 했던 것 같기도 했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해서 부기를 빼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밖으로 나왔을 때, 모나한은 침대에서 그대로 옆으로 누워 로나를 바라보며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유혹이라도 하는 낯짝이었지만 로나는 턱 끝으로 욕실을 가리키며 말할 뿐이었다.

“가서 씻어요.”

“네!”

모나한도 장난친 거였는지, 로나가 콧방귀 뀌는 소리에 맞춰 살랑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로나가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보고 기초 화장품을 바르고, 한쪽 머리카락을 쫑쫑 땋아 내릴 때 즈음 세수를 한 모나한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로나가 반대쪽 머리카락을 땋으려는 것을 보고 외쳤다.

“저요!”

“네?”

“제가 할래요!”

그 말과 동시에 한쪽 손을 살짝 든 모나한이 거울 속으로 ‘뿅!’ 하고 나타났다.

방금 세수한 덕분에 묘하게 촉촉한 피부, 날렵한 콧날과 턱선, 살며시 웃은 입술, 기대감에 반짝거리는 선홍색 눈동자.

앞머리에 살짝 남은 물방울 몇 개가 아침 햇살에 반짝- 빛났다가 허공으로 떨어져 내렸다.

모나한은 거울을 두고 로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선홍색 눈동자를 예쁘게 휘며 사르르 웃었고.

“로나?”

로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려 눈을 ‘텁!’ 하고 가렸다.

심장에 매우 해로운 외모였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눈이 열일하며 슬로모션으로 모나한의 외모를 뇌 속에 박아 넣었다!

모나한이 당황하며 뒤에서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울렸지만, 로나는 손을 치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말했다.

“모나한, 우선 그 외모 좀 줄이고 올래요?”

“네?”

“그 잘생김 좀 줄여 봐요.”

“……진지하게 말하는 거예요?”

“아뇨. 진담으로 알아듣고 줄여 오면 화낼 거예요.”

“그렇군요. 가서 머리카락에 물 좀 더 묻혀서 올까요? 촉촉하게?”

“흐음.”

“제가 더 잘생겨지면 매일 아침 로나의 머리를 땋아 줄 수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매우 끌리는데.”

“그렇게 제 머리카락를 땋아 보고 싶어요?”

“네.”

모나한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으므로, 로나는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니까, 눈을 가리던 손을 내렸다는 소리였다.

로나는 아침 햇살에 반짝거리는 모나한의 외모에 눈을 꾹 감았다 뜨고, 그래도 빛나는 것 같아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로나?”

“휴. 갈수록 잘생겨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요! 저 갈수록 잘생겨져요!”

“네?”

“요즘 사랑을 하고 있거든요.”

흐흐흐.

모나한이 느끼하게 웃었다.

앗! 후광이 좀 줄었어!

느끼함이 첨가돼서 기름기가 꼈나 봐!

“좋아요. 이쪽 머리를 땋아요.”

“와아! 드디어 로나의 머리 땋아 본다!”

“머리카락 땋아 본다고 해 줄래요? 머리라고 하니까, 제 두개골이 땋아질 듯.”

“로나 씨 머리카락 땋는다!”

“어떻게 하는지는 알아요?”

“아뇨!”

“당당하군요.”

“뻔뻔한 거죠.”

모나한이 그 특유의 뻔뻔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눈을 휘고, 입꼬리를 씨익- 올리고, 코끝을 찡긋거리는 웃음.

로나가 그 익숙한 웃음을 보며 키득거리며 아직 땋지 않은 머리카락을 모나한의 손에 올려 주었다.

갈색 머리카락이 살짝 창백한 잘생긴 하얀 손 위에 놓였다.

“우선 세 갈래로 나누고요.”

“네.”

모나한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집중해서 머리카락을 나눴다.

“가운데 머리카락 위에 첫 번째 머리카락을 얹고, 그다음엔 첫 번째 머리카락 위에 세 번째 머리카락을 얹고-”

말로 설명하다 보니 어려워서 일자 머리끈을 가져와 시범을 보이고, 모나한이 그걸 열심히 따라 하고.

로나는 머리카락에도 신경이 있는지 잠깐 고민했다.

갈색 곱슬머리를 조심스럽게 만지는 섬세한 손길이 이상할 정도로 잘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로나는 모나한에게 뭐라고 말을 걸려다가, 모나한이 정말 진지한 얼굴로 제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을 거울을 통해 보고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왠지 입꼬리가 비실비실 올라가고 발끝이 까닥거려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푸흡-! 이게 뭐예요!”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요.”

그녀는 거울을 통해 모나한의 진지한 얼굴을 실컷 감상하다가, 모나한이 땋은 머리에 그만 웃고 말았다.

반대쪽 땋은 머리는 귀 아래에서 시작하는데, 모나한이 땋은 머리카락은 너무 위에서 시작해서 완전히 짝짝이가 되어 있었다.

한쪽만 말괄량이 삐삐라도 된 모양이어서 로나는 비실거리며 웃다가 갈색 머리카락을 다시 모나한의 손 위에 올려 주었다.

“크흐흡! 다시 해 봐요.”

“윽, 이거 푸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워요.”

“천천히 해요. 아직 이른 아침이잖아요.”

“좋아요. 다시 한번 하는 법 알려 줄래요?”

“그럼요.”

그리고 그렇게 로나가 다시 한번 머리 땋는 법을 알려 주자, 이번에는 귀 아래에서부터 차분히 땋아 간 모나한이 너무 끝까지 땋으려고 욕심부리다가 풀려 버린 머리에 실망해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로나는 또 푸흐흐 웃고는 풀린 머리카락을 잡고 그를 향해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나한이 로나의 머리카락을 예쁘게 땋아 내렸다.

“성공했어요!”

“잘했어요, 모나한.”

칭찬의 의미로 손뼉을 짝짝 치던 로나와 모나한이 거울을 사이에 두고 눈을 마주쳤다.

갈색 눈동자와 선홍색 눈동자가 동시에 똑 닮게 휘는 것이, 거울에 비쳤다.

“아침 먹으러 갈까요?”

“아쉽네요. 전 로나랑 만드는 아침 식사가 좋은데.”

“그렇네요. 오랜만에 남이 해 준 아침밥 먹겠다.”

“분명히 로나가 만든 것보다 맛없을 거예요. 게다가 한식도 아닐 거고요.”

“흠. 한식에 익숙해진 뱀파이어라……. 안 어울려.”

“로나가 절 그렇게 만들었잖아요. 책임져 주세요.”

“그래요.”

“오.”

로나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모나한이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사뿐히 올려놓았다.

“뱀파이어 하나 정도야. 책임 좀 지죠, 뭐.”

“이럴 수가, 감동적이야.”

“제가 또, 한 감동하는 사람이죠?”

“그럼요, 그럼요. 세상에서 제일 감동적인 사람이죠.”

“흠, 좋아요.”

“흐음, 좋아요.”

둘은 키득거리며 손을 꼭 잡고 방문을 나섰다.

로나가 땋은 머리카락과 모나한이 땋은 머리카락이 똑 닮은 모습으로 그들의 걸음을 따라 흔들거렸다.

* * *

모나한은 옆에 걸어가는 로나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걸음걸이에 맞춰 앞머리가 흔들거리는 사이로 보이는 섬세한 속눈썹까지 언제나처럼 사랑스러웠다.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고민을 말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당신이 뱀파이어가 되면 어떤 괴로움이 있을지 알려 주어야만 했다.

실리의 충고처럼, 미룰수록 말하기 더 힘들어질 테니까.

하지만 그건 미루고 싶을 만큼 제게 무겁게 느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모나한은 과거 로나가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우리의 미래 계획이 어떻게 되냐던 질문.

자신이 죽으면 동굴 속에 들어가서 울다가, 다 잊어버리고 살 것인지.

자신도 뱀파이어로 만들어서 같이 살 건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평생 그녀를 사랑한 척할 것인지.

어떤 게 진실이냐고 묻던 사람, 얼굴, 눈동자.

조금의 불안 위에 결심과 용기가 가득 담고 자신을 올려보던 눈동자.

모나한은 자신이 그런 눈을 하는 순간을 조금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무섭지 않을 수가 있는 거죠?

아니, 당신도 무서웠겠죠.

그래도 그냥 말한 거겠죠.

생각은 짧으면 좋고, 행동은 빠를수록 좋다고 했던가.

그게 당신의 삶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하지만 나는, 내 삶을 온통 통틀어 배운 교훈이 엉망진창이라서.

아프면 도망가라고, 싫으면 모른척하라고, 아쉬우면 잠들어 버리고, 싫증 나면 그만둬 버리는.

도망가고 도망간 삶만 살아와서.

모나한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로나를 보며 웃었다.

눈가를 사르르 접고, 입꼬리를 매혹적으로 올리며, 약간의 순종을 담아 속눈썹을 나붓이 내리며.

예쁘고, 잘생기고, 순종적이면서도, 조금은 야하게.

수십 번, 수천 번이고 로나 앞에서 웃었던 그대로.

로나는 그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조금 내려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생각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또 꼬시려 한다’든가, ‘잘생긴 여우 같은 놈’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녀가 그 표정 그대로 고개를 돌려 앞을 보고 걸어갔다.

맞잡은 손이 흔들거린다.

다행이었다.

뱀파이어라 체온이 낮아 땀 따위는 나지 않을 테니.

자신의 거짓을 충분히 감춰 줄 테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