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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는 그런 모나한을 당황한 낯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아-!” 하고 깨달았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고 보니 네가 누굴 동족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네.”
“안 만들었으니까.”
“전쟁 중에도 만든 적 없어?”
“마녀들이 강제로 만들게 한 적은 있지만, 금방 다른 곳으로 끌려갔다고.”
그러다가 3일 후에 뱀파이어가 돼서 나타나던데.
그래서 그냥 3일 정도 아프면 뱀파이어가 되는 줄 알았다고.
“너 그 애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 안 했어?”
“딱히?”
“엄청나게 괴로워하고, 어떤 것도 가리지 않고 무자비로 흡혈하고, 통제도 안 되잖아. 몰랐어?”
“……전쟁통이었잖아. 괴로워하는 놈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고, 흡혈은 아예 대놓고 하라고 인간 사이로 우릴 굶겨서 던져 댔고, 통제? 마녀 놈들이 마력으로 찍어 누르는데?”
“…….”
“게다가 내가 원해서 뱀파이어가 된 것도, 그 녀석들을 뱀파이어로 만든 것도 아닌데 당연히 신경 안 썼지. 나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어디 가서 미쳐 죽든지 알 게 뭐야.”
미쳐서 죽는 놈들이 한둘이었던 것도 아니고.
모나한이 떠올리기만 해도 짜증 난다는 듯이 입꼬리를 이죽거렸다.
“……모틸라가 뱀파이어로 만든 사람들을 본 적은-”
“오, 모틸라가 내 말을 한 번이라도 들었다면, 보는 척이라도 했겠지만. 모틸라가 처음으로 사람을 뱀파이어로 만들었을 때 난 충분히 말렸어. 그리고 그 녀석은? 모두가 알다시피 안 들었지.”
그다음부터는 알은척도 안 했어.
모나한이 비웃음을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갠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동족으로 만들었어’라며 새로운 뱀파이어를 데려왔다고. 그런데 내가 그 인간이 힘들었든지 말든지 알 게 뭐야. 난 누군가를 뱀파이어로 만들 생각이 조금도 없었는데.”
“……네가 대단한 건지, 로나 씨가 대단한 건지.”
보통은 최소 두 명 정도는 뱀파이어로 만드는데.
실리가 중얼거렸지만, 모나한은 오히려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어 답했다.
“로나가 대단한 거지.”
“아, 그래.”
실리는 순간 자신과 그란이 하는 연애에 휘말린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반성했다.
“나는 잘 모르니까 물어보러 온 거잖아. 뱀파이어가 되면 그렇게 힘든 건가?”
“……뭐, 몸이 변해서 아픈 거야 금방 지나가지. 그보다는 그 후가 문제지.”
“……응?”
모나한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보고 실리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우리랑 교류 좀 하고 살아라. 살아 있다는 것만 알리면 뭐 하냐고. 자주 만나면 이런 건 관심 없어도 알게 되잖아.”
모틸라랑만 가끔 연락했었지, 너.
그마저도 동굴 속으로 자러 간다, 일어났다, 어디 있다. 그 정도만 했었지.
“저번에 신전에서 너 만났을 때는 얼마나 놀란 줄 알아?”
“그거야 뭐…….”
“뱀파이어가 신관이라니. 착해 보이는 얼굴을 아주 잘 써먹고 있던데.”
“얼굴값 한 거지.”
실리는 뻔뻔한 모나한의 말에 한숨을 한 번 더 푹 쉬고는 허공에 손을 휘적거리더니 서류를 하나 꺼냈다.
“이거나 봐. 최근에 일반인이 뱀파이어가 되었을 시의 유의 사항을 적은 안내문을 만들었으니까.”
“……이런 것도 만들었어?”
“폐하가 일을 잘하시거든.”
모나한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귀찮음이 가득한 눈동자가 정갈한 글씨체로 쓰인 서류를 가볍게 읽어 내렸다.
소파에 대충 기대어 있던 모나한의 몸이 점점 딱딱히 굳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실리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모나한이 서류를 다 읽었을 때 즈음 입을 열었다.
“일반인이 뱀파이어가 됐을 때, 생각보다 못 버티더라고. 사실 우리도 다들 미쳐 있어서 넘어간 거지 쉽지는 않았잖아.”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
“그랬지. 다른 괴로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하고.”
“……이렇게 힘들었던가?”
모나한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려놓은 서류에는 일반인이 뱀파이어가 된 후에 일어났던 일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름다워지는 외모, 영생에 가깝게 길어지는 수명 같은 것의 장점에 가려 외면받기 쉬운 감각의 변화.
건너편 지붕 위로 지나가는 개미의 다리조차 보이는 시각은 눈을 감으면 사라지고, 길을 가는 사람의 발에 차인 모래 알갱이가 굴러가는 소리까지 들리는 청각은 귀를 막으면 된다.
스치는 옷자락의 실낱 하나까지 느껴지는 촉각은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후각만은, 숨을 멈추면 죽기 때문에-.
주위에서 느껴지는 넘쳐 나는 음식 냄새들은 섞이고 섞여 버려서, 아무리 맛있는 냄새라도 역겨움을 자아내고는 했다.
“피를 원하는 충동 같은 것들은, 그냥 피를 가져다주면 돼. 우리야 배고픈 상태로 인간들 사이에 던져져서 학살하게 됐지만-”
“고위 마물의 피라도 가져다주면 배고픔이 없어지겠지.”
“애초에 주위에 음식 냄새가 안 나면 이성도 유지돼. 일어났을 때 주위 생명체를 전부 없애고 고위 마물의 피를 가져다주면 흡혈에 관한 충동은 해결. 하지만-”
“감각이 문제인가.”
“그렇지. 다른 감각이야 그럭저럭 차단할 수 있지만, 후각은 힘들지. 숨을 참을 수는 없으니까. 입으로 숨쉬면서 버티는 것도 하루이틀이고, 예민한 감각은 입으로 들어오는 숨에서도 악취를 맡아 버리곤 하잖아. 악취도 계속 맡으면 익숙해진다고, 결국 괜찮아지기는 하지만.”
“버티는 동안이 문제로군.”
“맞아. 나는 그때 온갖 약물에 절여져 있어서 괜찮았거든.”
“……나는 묶여 있었던가.”
“전쟁터에서 만났을 때는 감시받고 있었고.”
“그때도 못 버틴 놈들은 알아서 죽었어. ……못 버틴 건지 안 버틴 건지는 모르겠지만.”
실리는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라며 고개를 저어 버리고 모나한이 내려놓은 서류를 술잔이 든 손으로 톡톡톡 건드렸다.
“보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와, 예상되는 돌발 상황도 적혀 있어. 실제로 나는 그란을 변하게 했을 때 꽤 도움이 됐어.”
“……어떤 사람이었어?”
“응?”
“그란 말이야. 인간일 때 어떤 사람이었냐고.”
“과거를 묻지 않는 건 불문율 아냐?”
“적당히 이야기해 줘. 로나와 비교 좀 해 보게. ……로나는 진짜 평범한 일반인이니까.”
“으음……. 그런 것 같기는 했지만.”
실리는 낮에 보았던 평범한 얼굴의 여인을 떠올렸다.
단정히 땋은 갈색 머리카락, 길거리에서 수없이 보일 갈색 눈동자.
적당히 탄 밀색 피부, 적당한 콧대, 적당한 입술.
그야말로 평범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
“정말로 평범한 사람이야. 해가 뜰 때 일어나서 빵을 만들고, 하루 장사를 열심히 하고, 장사가 끝나면 가게를 닫고 잠자리에 드는- 정말 평범한 사람.”
“숨겨진 과거나 피치 못할 사정 따위 하나도 없는?”
“그래. 특별한 점이라면……. 제빵 실력?”
“아, 그건 완벽했지.”
“그것 말고도 많은 특별한 점들이 있지만-”
전생을 기억한다거나, 게임 상태창이 있다거나.
어떤 일에도 꿋꿋하다든가, 올곧은 시선으로 앞을 바라본다든가.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긴다든가, 평화와 평온으로 이루어진 사람 같다든가.
그런 많은 특별한 점을 가지고 있는 로나였지만, 그래서 더욱 평범한 사람이기도 했다.
“피나 싸움 같은 것들, 날붙이나 비명 같은 것들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거든.”
평생 겪게 할 생각이 없기도 하고.
“으음……. 그란이 꽤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긴 하지.”
“숨겨진 과거나 피치 못할 사정?”
“맞아. 귀족 집안의 사생아, 뒷골목 해결사.”
“흠.”
“근데 사실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잖아.”
실리는 가볍게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어차피 모든 괴로움과 감각은 주관적인 거야. 아무리 남이 뭐라고 해 봤자 자기가 극복하지 못하면 끝이라고.”
“그건…….”
“로나 씨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그녀라면 버티겠지.”
“그럼 가서 그 서류나 보여 줘. 너 보라고 준 거 아니야, 그녀가 보라고 준거지.”
“…….”
“뭐, 아무것도 알리지 않고 우선 동족으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지. 잘하는 거 있잖아? ‘저는 몰랐어요오. 모르는 일이에요오오’.”
“그렇게 안 할 거야.”
“그래?”
“그래.”
모나한은 서류의 끝을 무언가를 가늠하듯이 매만지고 있었다.
실리가 그런 모나한에게 조금의 용기라도 불어 넣고 싶었는지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우리가 뱀파이어로 만든 사람 중에 못 버틴 이는 별로 없어. 특히 미리 알려 주고 변하게 한 사람들은 잘 버텼고.”
“…….”
“옆에서 누군가 돌봐 준다는 게 생각보다 크더라고.”
실리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지만, 모나한의 귀에는 이상하게도 변명으로만 들렸다.
모나한은 결국 서류를 아공간으로 넣고, 망설임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선, 조금 천천히……. 여행 좀 더 하고.”
“흐음.”
“감각이 예민해지면 사람 많은 곳은 못 갈 테니까.”
“뭐, 맘대로 해. 충고 하나 하자면-”
“알아. 미룰수록 말하기 더 힘들겠지.”
“알고 있네.”
실리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모나한은 서류가 있었던 자리를 몇 번 더 손끝으로 매만지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떨어지는 손끝과 로나에게 가는 발걸음에서 망설임이 가득했지만, 실리는 딱히 그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저와 같이 있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제 사랑과 관련된 망설임일 게 분명할 테니.
저도 그란과 관련된 일에서 저런 모습을 보였었으니 새삼스럽지도 않다.
저 망설이며 미루던 순간들 모두 저 또한 겪었던 일이니.
오래 산 대가로 다들 겁쟁이가 되는 건 아닌지, 잠깐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실리는 더 이상 모나한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찬장에서 술을 한 병 더 꺼냈다.
이번에는 위장을 타들어 가게 할 독주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향기로운 향이 나는 술이었다.
제 사랑이 좋아하는 향이고, 달콤하지는 않은 술.
그녀는 잔에 따른 향기롭고 부드러운 술을 목 뒤로 넘기며 그란이 돌아오기를 달빛 아래에서 기다렸다.
죄책감 어린 맛은 충분히 마셨으니, 자신의 사람을 기다리며 애정 어린 맛을 마셔도 괜찮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