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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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한은 제 품에 잠든 로나를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올려 이마를 쓰다듬었다.

손길을 따라 갈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둥글고 부드러운 살갗이 매만져졌다.

그는 온 밤하늘이 어둠에 잠길 때까지 그녀의 머리 끝자락을 만지다가 이마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고는 몸을 일으켰다.

로나의 물 젖은 갈색 머리카락이 다 마르고도 한참을 지난 시간이었다.

로나의 체온에 따뜻해진 피부가 밤공기에 천천히 식어 갔다.

모나한은 온기 끝자락이 아쉽다는 듯이 서 있다가 제 몸이 완전히 차가워졌을 즈음에야 발걸음을 옮겼다.

새까만 밤의 복도는 달빛만 겨우 들어오고 있었지만, 달이 구름에 가린 건지, 이내 그 빛도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모나한은 등잔불 하나 켜지 않고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쇠 비린내가 가장 심한 곳을 찾아 문을 열었다.

딱히 붉은빛이 가득하거나, 섬뜩한 광경은 아니었다.

그랬으면 쇠 비린내가 아니라 단내만을 맡았을 테니까.

그는 화려한 방, 화려한 티테이블, 화려한 의자에 앉았다.

온갖 검붉은색과 황금색이 뒤섞여 요사한 빛으로 술렁였다.

모나한은 그런 화려한 것들에는 조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조금도 멈춤 없이 티테이블까지 걸어갔다.

테이블 위에는 당연하다시피 술잔이 놓여 있었다.

황금빛이 넘실거리는 지독한 독주였다.

모나한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우아하고 여유 있는 몸짓으로 붉은 천으로 이루어진 의자에 앉았다.

검은 바지를 입고 있던 한쪽 다리 위에 다른 쪽 다리를 올린, 건방지다면 건방진 자세였다.

느긋하게 기댄 상체와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눈, 그 사이의 선홍색 눈동자가 로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색으로 탁한 색을 띠고 있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얼굴 위에 이상할 정도로 붉은 입술 뒤로 황금빛 독주가 한 번도 쉬지 않고 넘어갔다.

툭 튀어나온 목젖이 움직이기도 몇 번, 모나한이 잔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구름이 걷히고 창백한 달빛이 창가를 타고 흘렀다.

모나한이 달빛조차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려진 두꺼운 커튼 뒤의 새까만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탁했던 눈동자가 어느새 달빛 아래 요사하고 선명한 선홍색으로 빛났다.

그 눈동자를 의식해서일까, 어둠 속에서 창백하고 아름다운 손이 나와 술잔을 채워 주었다.

“한 잔이면 됐어.”

모나한이 손끝으로 잔을 밀어 버리며 말했다.

“로나가 술 냄새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 예의상으로 한 잔 마셨으니 이제 됐어.”

“흐응…….”

술을 따라 주었던 손이 재미없다는 듯이 술잔을 가져갔다.

술잔을 든 파리하고 아름다운 팔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창문을 반쯤 가리던 커튼을 느릿하게 걷었다.

팔을 따라서 천천히 올라간 달빛이 이내 고혹적인 얼굴을 느릿하게 비추었다.

그 얼굴은 한가운데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는 따뜻한 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차가워 보였다.

햇빛의 금색보다는 차가운 금속 질과 비슷한 색감이었다.

여인은 술잔을 그대로 들어 제 입으로 가져갔다.

유리잔 안의 황금색 독주가 모나한이 그랬던 것처럼 한 번의 멈춤도 없이 여인의 목 뒤로 넘어갔다.

여인은 그 독주와 비슷한 금색 눈동자로 모나한의 선홍색 눈동자를 홀릴 듯이 바라보았다.

매끈한 목선의 근육이 움직이고, 술잔의 독주가 모두 사라졌을 때, 마지막 한 방울이 반짝이며 여인의 붉은 입술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붉은색 혀가 요사스러운 색감으로 나와 질척하게 투명한 술잔을 혀로 핥아 내렸다.

누가 봐도 지독히도 위험한 유혹 같은 몸짓이었다.

그녀의 행동이 그랬고, 유리잔을 핥은 붉은 혀가 제 입술을 핥아 올리는 행위가 그리고 이내 야살스럽게 휘는 황금색 눈동자가 그랬다.

“장난은 그만하지?”

그러나 모나한은 여전히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오히려 그 모든 행동이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며 입가를 이죽거릴 뿐이었다.

“장난이라니?”

그런 모나한의 행동해도 뱀파이어 실리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남편은?”

“어머. 정말 믿는 거야?”

“진짜잖아.”

그러나 모나한은 이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귀찮다는 듯이 혀를 차자, 실리는 이내 지루하다는 얼굴로 술잔을 티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탁-!’ 하고 거칠게 내려놓는 소리가 창백한 방 안을 울렸다.

방금까지 유혹적으로 군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것은 오래된 지루함과 익숙한 나태였다.

“사냥 갔어.”

“변한 지 2년이면 한창 식욕이 왕성할 때이긴 하지. 그래서 사람?”

“아니, 단 걸 엄청나게 싫어하거든.”

“아하.”

“오히려 사람이 가득한 곳에선 식욕이 떨어진다더군.”

“왜 변한 지 얼마 안 되는 동족과 수도에 있나 했지.”

실리는 지루하다는 얼굴 그대로 술을 따르며 발끝을 까딱거렸다.

“……모틸라는-”

표정은 그대로였고, 목소리도 느긋했으나, 모나한은 실리의 발끝의 까딱임이 멈췄다는 것을 눈치챘다.

실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말을 이었다.

“수도에 올까?”

“그 녀석 성격이라면 분명히.”

“……그래, 그렇겠지.”

실리는 눈을 창밖으로 돌렸다.

창백한 달빛이 가득한 밖, 차가운 겨울 풍경.

그녀는 아득히 먼 과거를 추억하는 것 같기도 했고, 후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난 분명히 말렸어.”

모나한이 살짝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랬지.”

실리가 말했고.

“모두 그랬지.”

모나한이 답했다.

이제 그의 얼굴에는 완연한 짜증이 머물러 있었다.

“몇 번이나 말렸어. 쓸데없이 동족을 만들지 말라고, 쓸데없이 피를 나눠 주지 말라고.”

“안 들었지.”

“고집만 더럽게 세 가지고.”

“외로움도 많이 타고.”

“……너무 많이 탔지.”

이제 모나한의 얼굴에 남은 건 후회였다.

그 얼굴을 보던 실리가 망설이다가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옆에 있어 줬다면-”

“실리.”

모나한이 딱딱히 굳은 얼굴로 실리의 이름을 불렀다.

“……그래, 맞아. 아무도 옆에 있어 주지 않았지.”

“우리 모두.”

“맞아. 우리 모두.”

실리는 그 말을 힘겹게 내뱉고는 술잔을 연거푸 비웠다.

지독한 독주였지만 그걸로는 조금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나한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건 그냥 목을 타오르는 고통으로 죄책감을 덜어 내는 행위일 뿐이었다.

“괜히 탓 하지 마. 나도, 너 자신도. 우린 모두 각각 뿔뿔이 도망쳤어. 처음에 전쟁터에서 도망쳤을 때, 살아남은 놈들은 다 혼자 도망간 놈들이었어.”

“……그랬지.”

“전부 멍청한 외톨이들이었을 뿐이야. 첫 단추를 잘못 채운 제 잘못이지. 누가 멍청하게 그렇게 도망치래?”

멍청한 모틸라 같으니.

모나한이 이죽거리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다가 창밖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모틸라는 도망친 뱀파이어들 중에서도 특히 많은 인간을 동족으로 만든 이였다.

처음 사랑했던 인간을 못 잊어서, 그 사람을 동족으로 만들지 않은 것을 후회해서, 그 미련으로 제 피를 쉽게 나눠 주게 되어 버린.

“……모틸라가 수도에 오면 연락해 줘.”

“올 거야?”

“……그래. 빚이 있으니까.”

“우리 모두 그녀에게 빚이 있지.”

멍청한 모틸라.

모나한이 다시 중얼거렸다.

똑같이 짜증 난 목소리였지만 실리는 거기에 실린 애정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실험실에서, 전쟁에서, 지옥 속에서.

거긴, 이제는 죽고 싶은 미친놈들과 아직은 죽기 싫은 미친놈들만이 돌아다녔다.

벽에 제 이마를 박아 자살하려는 이들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실험으로 인해 죽어 간 이들은 그보다, 전쟁 속에서 죽어 간 이들은 그보다 더 많았던 시대였다.

희망이나 기적 같은 것들은 이미 닳아빠져서, 짓밟힌 담배꽁초보다 못한 존재였다.

멍청한 모틸라는 가장 처음 도망을 입에 담은 이였다.

아니, 탈출이었던가.

도망, 도주, 탈출…… 자유.

멍청한 모틸라.

네가 가자고 했지.

네가 가장 처음 말했어.

그래서 우리 모두 모여서 계획을 세웠지.

지독한 피비린내가 나는 방이었어.

단내도 아니고, 짠 냄새도 아니고, 매콤한 냄새도 아닌.

피비린내만이 가득한 방이었다.

“모두에게 최대한 빨리 알릴 거야. 그럴 필요가 있지.”

“……그래.”

“모틸라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찾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래.”

“오랜만에 피비린내가 지독하겠네.”

“그래-”

실리가 울음이 가득한 얼굴로 웃었는데, 모나한은 제 얼굴도 비슷한 몰골일 것 같아 입을 굳게 다물었다.

턱의 근육이 꽉 문 이빨에 따라 올라왔다가, 이내 떨어진 한숨에 섞여 가라앉았다.

어차피 우리 모두 비슷한 얼굴이겠지.

“……아직 60년이나 남았으니까.”

모나한이 부러 밝게 말했다.

“맞아. 결혼하니까 갑자기 1년이 엄청나게 길어지더라!”

“나도 연애하니까 1년이 엄청 길더라고.”

“으음, 으음. 오랜만에 공감받으니까 기분 괜찮네. 다른 놈들은 1년은 한 시간이나 마찬가지라고 투덜거린다고.”

“솔로들의 주장 따윈 무시해.”

“좋은 생각이야.”

실리가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로나, 괜찮은 사람 같더라.”

“세상에서 제일 괜찮지.”

“어어, 그래. 나도 그란 보면 그런 생각 해.”

“제일 예쁘고.”

“으음……. 그래. 나도 우리 남편 보면 그런 생각 해.”

“제일 사랑스럽고.”

“그래, 나도 울 자기 보면-”

“빵을 세상에서 제일 잘 만들어.”

“그건…….”

실리가 눈을 데굴 굴렸다.

“내 사랑은 못 하는 거군.”

“그렇지?”

“음……. 그 빵 맛을 따라갈 순 없겠어. 그건 무리야. 그건 천상의 맛이라고.”

“그렇지.”

“사실 그 빵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동족으로 만들 이유가 충분한 것 같긴 했어. 평생 그걸 먹을 수만 있다면야, 수명의 반 정도야.”

“으음……. 동감이야.”

가볍게 넘나드는 농담에 멈췄던 실리의 발끝이 다시 흔들거렸다.

실리는 작게 박자를 타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준비는 잘하고 있는 거지?”

“안 그래도 그걸 물어보려고 들렀어.”

“응?”

“나 아무도 뱀파이어로 만들어 본 적 없잖아. 잘 모른다고.”

관심도 없었고.

모나한이 반쯤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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