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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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마차 위에 마지막 짐을 넣고는 빵집 가게 문에 팻말을 걸었다.

[이 빵집은 이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방문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작은 나무 팻말에 적힌 평범한 글귀였지만 로나는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어 팻말 윗부분을 몇 번 더 쓰다듬었다.

아마 여기서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평범했던 인생이 뒤바뀌던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기를 잠시, 로나는 쓸쓸함을 털어 버리고 새로운 앞날에 대한 기대 가득한 얼굴로 마차로 다가갔다.

가게 안에 남아 있는 몇몇 물품은 부동산 중개인이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것이다.

모나한이 마부석에 앉아 같이 산 튼실한 말 두 마리의 고삐를 잡은 채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론가 떠나는 것에는 모나한이 로나보다 더 익숙했으므로, 그는 별 쓸쓸함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여기 떠나는 거 쓸쓸하지 않아요?”

“로나가 옆에 있는데요?”

모나한이 뭐 그런 걸 묻느냐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며 느끼한 소리를 했다.

예상한 대로의 대답이라 로나는 별말 없이 피식 웃고는 모나한의 옆에 걸터앉았다.

마차가 다그닥거리며 출발했고, 마지막까지 배웅하러 나온 부동산 중개인이 그들의 등 뒤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손수건을 흔들었다.

“저 아저씨는 마지막까지 왜 저런데……. 부담스럽게.”

“로나가 마지막으로 가게를 점검하는 순간까지 제 옆에 와서 우는소리 하던데요. 제발 안 가면 안 되겠냐고.”

“아휴. 저 집 아주머니한테 꽤 눈치 보였다고요. 갈수록 아저씨가 살이 찐다는데, 제 빵만 그렇게 드신다고.”

“매일 오셔서 사 가셨으니. 아주머니도 같이 옆으로 커지시던데.”

“집에 가져가면 결국 같이 먹게 된다고……. 왜 이렇게 맛있게 만드냐고 화내셨죠.”

모나한이 알 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고, 로나가 한숨을 푹 쉬고는 뒤를 돌아 중개인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커흐흑커허헉!’ 하는 특유의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로나는 ‘뒤돌아서 손까지 흔들어 줬으면 할 거 다 했지!’라는 생각으로 다시 뒤돌아 앞만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손주까지 있는 동그란 수염 아저씨의 우는 얼굴을 더 보고 싶진 않았다.

마차는 모나한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생각보다 틸레아 도시의 성문을 나서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온갖 장치와 마법을 쏟아부은 마차의 탑승감은 끝내주기까지 해서 로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모나한과 재잘재잘 수다를 떨었다.

“저 그런 로망도 있었어요!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거죠.”

“풍경화요?”

“맞아요! 엽서만 한 종이에다 여행한 곳을 그려서 벽에다 붙여 놓는 거죠. 그거 하려고 전생에 미술도 배웠었는데.”

“참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하단 말이죠. 미술은 귀족들의 전유물인데.”

“이쪽은 물감이 비싸던가요?”

“엄청나게요.”

평민 미술가들은 후원자를 찾아 그렇게 떠돈다고, 모나한이 중얼거렸다.

“뭐, 저희야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니. 수도에 가면 미술 도구를 사는 것도 괜찮죠.”

“근데 정말로 그림을 그리기엔 제 실력이 또 그렇게 좋은 건 아닌지라……. 애초에 1년 정도 겨우 배웠다고요.”

그것도 1주일에 한 번씩.

평생 교육원에서 한 시간씩!

“다시 배우면 되죠. 저도 가르쳐 드릴 수 있고요.”

“모나한 그림 그릴 줄 알아요?”

“미술가는 평민이 귀족 사회로 들어갈 수 있는 그나마 쉬운 방법 중 하나여서요. 신분 세탁하기 좋았죠.”

“욕망에 휩싸여서 들어갔군요.”

“시간이 많으니까 어떻게든 실력이 쌓이죠. 기본적인 실력만 쌓아 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유행을 따라가면 되니까요.”

“예술인데요?”

“예술도 유행이 있거든요. 제가 진짜 예술가도 아니고, 저는 그냥 신분 세탁이 목적이었으니까요.”

“아하.”

로나가 알 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누구보다 기초는 잘 알려 드릴 수 있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잘 그리게 되는 요령도요.”

“오오오.”

“천천히 배우세요. 이제 로나의 앞에도 무수한 시간이 펼쳐질 테니까, 하고 싶은 거 전부 해요.”

“그 말 참 유혹적이네요.”

“그림이야 여행하면서 실컷 그리면 실력이 늘겠죠. 실제로 옛날에 알던 사람 중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는 온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림 그리는 게 꿈이라고 하더라고요.”

“오오!”

낭만 있는 작자잖아!

로나는 멋있는 사람이라면서 감탄했다.

“여행하다가 괴수에 잡아먹혀서 죽었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죠.”

“……오오.”

그리고 이 세계의 무서움에 전율했다.

맞아……. 괴수와 도적들이 있는 세계였지…….

“로나는 그럴 위험은 없으니까요. 제가 있기도 하고, 뱀파이어가 되면 스스로 지킬 수도 있을 거고요.”

모나한이 로나의 실망했다는 얼굴을 보고 키득거리며 말했다.

“물론 그 전에 뱀파이어가 되어야겠지만요.”

“요즘 하는 말이 거의 그걸로 끝나네요. ‘로나 씨, 뱀파이어가 되세요’, ‘로나 씨, 뱀파이어가 되어야 합니다’.”

“빨리빨리 뱀파이어가 되지 못할까!”

모나한이 뻔뻔한 얼굴로 소리쳤다.

“수도만 가면 바로 목을 와그작 물어 버릴 거예요. 주의 사항만 알면 바로 시행할 거라고요. 솔직히 이왕 되기로 한 거 빨리빨리 하자구요. 제가 로나 손 좀 마음껏 잡아 봅시다!”

“응? 지금까지 마음껏 손잡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저 딱히 손잡는 거 피하지도 않았는데?”

“제 힘을 뭐로 보고 그러세요. 로나 씨 손을 잡을 때마다 제가 얼마나 많은 결심을 하는데!”

로나가 손을 올려 자신은 피한 적 없다며 팔랑이자 모나한이 그 손을 억울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뱀파이어와 비교하면 인간이 얼마나 약한 줄 알아요? 전 지금까지 로나 씨를 마음껏 손대 본 적이 없단 말입니다! 왜 그렇게 약하고 그래요!”

“제 탓이에요?”

“그럼요! 왜 손이 무슨 종이처럼 연약하기 그지없어!? 조금만 힘주면 아그작 해 버릴까 봐 무섭다고요.”

모나한은 정말 힘들다는 듯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제가 원래 그 정도로 힘 조절을 못 하는 뱀파이어는 아닌데……. 이게 다 로나 씨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기 때문이죠.”

“갈수록 난리네.”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한도를 넘으면 무언가를 부수고 싶어진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모나한이 뭔가 해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게 모르게 무언가를 많이 참고 있었던 모양이다.

“알았어요, 알았어. 수도에 가서 뱀파이어가 되는 방법에 대해 딱 알고! 그러고 바로 목 물린다, 내가!”

“좋아요.”

로나가 매우 든든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하자, 모나한이 매우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둘은 그렇게 장난을 치며 가도를 달렸다.

수도로 가는 길은 두꺼운 돌로 포장된 관리되는 도로라 별 위험도 사고도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달렸을까, 이제는 완연한 겨울에 가까워져서 그런가 어둠은 생각보다 금방 하늘을 물들였다.

“금방 밤이 오네요.”

“겨울이라 해가 짧아지는 데다가, 주위에 민가도 없으니까요.”

“오늘은 이즈음에서 그만 가는 게 좋겠죠.”

“으음…….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불을 피우는 게 좋겠어요. 어두워지면 로나 씨는 앞이 잘 안 보일 테니까.”

“우리 사 놓은 마법 램프 있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만 딱 주위를 밝힐 정도죠.”

불 옆에 있는 게 좋겠어요.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차를 세웠다.

마침 야숙을 할 만한 적당한 공터가 있는 곳이었다.

가도를 오가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인 듯 모닥불이 피워졌던 흔적이 여기저기 존재했다.

모나한이 말들을 마차에서 풀어 주는 동안, 로나는 주위에서 잔가지들을 모아 불을 붙였다.

그리고 적당한 냄비를 불 위에 올리고 크림과 치즈, 감자와 고기를 듬뿍 넣은 크림 스튜를 끓이기 시작했다.

“로나 상점 창은 최고예요.”

“언제든 신선한 재료를 얻을 수 있으니까 여행에서 음식 걱정할 필요는 없죠.”

“심지어 물도 팔잖아요. 진짜 최고.”

말들이 적당히 풀을 먹을 수 있게 적당히 풀어 준 모나한이 따끈따끈하게 올라오는 크림 스튜 냄새에 환호하며 불 옆에 앉았다.

“밤새 불을 피울 거면 장작이 더 있어야겠지만…….”

“마차 안에서 잘 거잖아요. 괜찮아요.”

모나한이 출발하기 전에 만들어 온 모닝빵을 아공간에서 꺼내며 대답했다.

“괜히 마차에 여러 가지 방어 마법을 해 놓은 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불은 괜한 걸 불러들이기도 하고.”

“헉! 설마 불을 보고 괴수 같은 게 다가오나요?”

“으음. 이런 길 가까이에 괴수가 있을 확률은 낮죠. 제가 말하는 건 사람이에요.”

“아.”

로나가 확실히 마을 밖에선 사람을 조심해야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릇 한가득 따끈따끈한 크림 스튜를 떠서 모나한에게 건넸다.

모나한은 따끈따끈한 스튜를 받고, 마치 물물 교환을 하듯이 모닝빵 하나를 로나에게 넘겼다.

“많이 만들었으니까, 많이 먹어요.”

“제가 잘하는 것 중 하나죠.”

“모닝빵도 아공간에 산더미처럼 있잖아요.”

“아침에 많이 만들어서요.”

“다른 건 놓고 와도 빵은 못 놓고 온다더니.”

모나한은 로나의 말에 당연한 거 아니냐는 표정을 하고는 크림 스튜를 살살 불어 입에 넣었다.

진득하고 짭조름한 것이 따끈하게 혀를 적시고, 목 뒤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

“아, 진짜. 요리 정말 잘해.”

“모나한의 위장을 사로잡고 있죠.”

“매시간 매초마다요. 행복하네요.”

“이것도 로망 중 하나였어요. 모닥불에 크림 스튜 해 먹는 거.”

“훌륭한 로망이네요. 최고예요.”

“그렇죠?”

로나가 의기양양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아직 첫눈이 오지 않은 초겨울.

차가운 바람,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새하얗고 진득한 크림 스튜, 동글동글한 갈색의 모닝빵.

로나는 몸을 움츠려 신발을 로브 안으로 숨기며 씨익 웃었다.

전생에 만들었던 버킷리스트나 로망 같은 것들.

이생에 포기했던 낭만 같은 것들.

그녀는 왠지 그런 것들을 꿈꾸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하나하나, 그때 그리던 것보다 더 완벽하게.

머리 위로 깨끗한 겨울 하늘, 예쁜 달, 별이 총총총 헤매이며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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