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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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다른 세계의 이야기야.

앗. 나 지금 또 다른 이 세계에 와 있는 거 같은데?

갑자기 이상하게 정신이 멍해지고 현실감이 없어져!

전 전생에 뚜벅이였어요!

판타지 세계에 와서도 뚜벅이였어요!

마차는 그냥 말이나 소가 끄는 거 아니었나요!?

“그럼 이거랑 이거를 추가하면!”

“궁극의 마차!”

로나는 눈빛 반짝, 볼 발그레, 입술 활짝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내의 모습을 보고 흠칫하며 몸을 뒤로 물러났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 립스틱에는 코랄핑크와 핑크가 있고, 이 둘은 실제로 상당히 다른 색이며-”

“……네?”

“못 알아듣겠죠?”

“저번에 사신 립스틱 색깔 이야기 아닌가요? 로나 씨는 코랄핑크가 좀 더 잘 어울리던데요. 그 사과 맛이 나던 거요.”

“그, 그럼 제가 쓰는 파운데이션은-”

“23호요. 자연스러운 거 좋아하시잖아요. 그렇게 많이 덮는 것도 안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커버한 다음에 연갈색 아이섀도와 갈색 아이라인으로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왜 아는데요!?”

“로나 씨가 쓰는 거니까요?”

로나가 당황해 입만 뻐끔거리자 모나한은 당연하지 않냐는 듯이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나 씨 화장대에 올려져 있기도 하고요. 얼굴 만질 때 화장 지워지는 거 싫어하실 테니까 조심하기도 하고.”

“헐.”

“립스틱이 지워지는 것까진 어쩔 수 없지만요.”

모나한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익숙한 뻔뻔하게 웃는 얼굴을 했다.

로나는 왠지 모를 공포에 모나한과 가까웠던 몸을 은근슬쩍 뒤로 물렸다.

그리고 반대편에 앉아 있던 마차 상인도 로나와 똑같은 얼굴이 되어 뒤로 물러났다.

“자네……. 좀 징그럽구만.”

“예전에 이쪽 일은 해 본 적이 있거든요. 오페라의 화장사로 일했던 경력이 좀 있죠.”

“그, 그럼 제 커버도-”

“주근깨를 감추고 싶어 하시던 것 같던데, 걱정 마세요. 당신은 주근깨도 귀여우니까.”

“헐, 무서워.”

“그, 손님. 남편을 잘못 고른 게 아닌가 싶소만.”

“남편 아닌데요. 애인이지.”

“그럼 좀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쩔까 싶소만.”

“그러게요. 저도 방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안 돼요. 안 물러 줄 거예요.”

모나한이 초콜릿처럼 진득하고 달콤하게 웃으면서 말했고.

“헐. 대박 무서워.”

로나는 입가를 가리며 대답했다.

그녀는 겁먹은 얼굴로 동공을 흔들며 모나한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부르르 떨고는-.

“그럼 마찻값이 총 얼마인 거죠?”

다시 바른 자세로 앉아서 돈주머니를 주섬주섬 열며 말했다.

언제 무서워했냐는 듯이 담담한 표정이었다.

“아니, 그…… 괜찮소? 애인이 좀 거시기한데.”

“괜찮아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처음엔 좀 더 심했던 거 같기도 하고.”

“어, 음. 저런 놈한테 잡히면 답도 없을 텐데…….”

“제가 이기니까 데리고 사는 거죠.”

상인은 로나의 그 담담한 얼굴을 한번, 모나한의 실실 웃는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 보다가 ‘그래,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알아서 잘하겠지’ 같은 얼굴이 되어서 이것저것 많이 추가된 견적서를 내밀었다.

로나는 그 견적서를 한번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계약서를 보여 달라고 말했다.

“손님이 사시는 마차는 원래 있던 걸 사는 게 아니라, 주문 제작이니까 총금액의 10%를 선수금으로 주시면 되는 거요.”

“그럼 선수금의 반은 이 정도네요.”

“나머지 반은 제가 내고요.”

“아이고, 두 분 다 계산이 빠르시네.”

“저도 장사하거든요.”

“이거 같은 상인이셨네.”

마차 상인은 “역시 상인은 돈 계산이 빨라!” 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로나와 모나한이 내민 선수금을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그럼 이른 시일 안에 칼같이 만들어서 연락드리겠소.”

“연락은 여기 적힌 주소로 부탁드려요.”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차 상인은 언제 모나한을 보고 기겁했냐는 듯이 활짝 웃으면서 둘을 배웅했다.

로나와 모나한은 여느 때처럼 손을 잡은 채로 마차 상점을 나서서 쭉 뻗은 거리를 걸어갔다.

“그럼 이제 가게 정리를 해야겠네요.”

“마차가 만들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천천히 정리하죠. 주위 단골들에게 이야기도 좀 하고.”

“원래 마을에서 떠나올 때처럼 갑자기 손님이 많이 모일 수도 있겠네요.”

“바빠지겠네요. 평소보다 빵도 좀 많이 만들어야 하고.”

“이제 모나한이 할 줄 아는 반죽도 많잖아요. 저한테 많이 배워서.”

“로나 씨가 잘 가르쳐 준 덕분이죠.”

“제 모든 걸 다 외워서 그런 건 아니고요?”

“흠. 그건 비밀인지라.”

“솔직히 말해 봐요. 제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 거죠?”

“글쎄요. 아직 모르는 것도 많아서요.”

“뭘 모르는데요?”

“글쎄요. 야한 의미의 여기저기?”

“헐.”

“연인으로서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죠.”

“헐.”

“꼭 알고 싶은 정보이기도 하고.”

“헐.”

“로나 씨. 헐밖에 못 하는 거예요?”

로나의 헐헐헐 하는 말에 모나한이 살짝 삐진 표정이 되어서 물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안타까워할 정도로 어여쁘게 불쌍해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이미 완벽히 익숙해진 로나의 눈에는 음흉한 뱀파이어가 하는 내숭일 뿐이었다.

오히려 이때다 하고 떠보려는 모습이 무서우면 무서웠지!

“저기, 좀 떨어져 줄래요? 좀 많이 무서운데.”

“안 돼요. 싫어요.”

“꺼져요.”

“절대 안 꺼질 거예요.”

“징그러운 뱀파이어.”

로나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미간을 한껏 찌푸렸지만, 모나한은 언제나 그랬듯이 뻔뻔하게 코끝이나 한 번 찡그리며 웃을 뿐이었다.

음흉한 내숭은 어디다 던져 버렸는지, 그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뻔뻔한 모습을 뽐내기 시작했다.

“오늘도 사랑스럽고 귀엽고, 볼이 뽀얀 게 한번 물어보고 싶고-”

“저 욕할 거예요.”

“욕 들은 대가로 볼에 뽀뽀를-”

“아악! 꺼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꺼져요!”

로나가 소리치며 잡은 손을 놓으려 붕붕 휘둘렀지만 안타깝게도 뱀파이어는 너무나 힘이 셌고-.

“이 느끼하고 징그럽고 무서운 놈!”

“애석하게도 전부 로나 씨 거네요.”

“따라오지 말아요!”

“로나 씨가 당기는걸요?”

“당신이 손을 안 놓잖아!”

“평생 그럴 예정이라.”

로나는 결국 집까지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야 했다.

* * *

로나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빵을 만들어 진열대에 올렸다.

아직 구워지지 않은 빵들이 계산대 뒤 부엌의 오븐에서 옹기종기 부풀어 오르고 있기도 했다.

평소라면 천천히 식어 가고 있을 오븐이 아직도 돌아가는 이유는 문 앞에 쓰인 안내문 때문이었다.

로나의 빵집이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은 시골 빵집에서 그랬을 때와 같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로나의 빵 맛에 중독된 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빵을 왕창 사 가는 것이었다.

“어허허헝-! 이 빵집이 사라진다니-!!”

그리고 저기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오열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처음 로나에게 이 건물을 팔았던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디저트류 빵을 아주 좋아하고, 단골이 되겠다고 말한 것을 아주 잘 지켜 온 사람이었다.

처음엔 한두 번 오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하루 한 번씩 꼬박꼬박 들러서 빵을 사 가곤 했으니.

얼마나 자주 사 먹었는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몸이 두 배로 불었다.

“이럴 순, 이럴 순 없습니다! 장사도 잘됐잖아요!”

“아아. 여행을 다녀 보고 싶어서요.”

“크허헝. 그럼 더 말이 안 되죠. 빵집 문 살짝 닫아 놓고 여행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안 되시는 겁니까!?”

뭐야. 왜 이렇게 질척거려.

전남친이야?

로나는 눈물범벅이 된 채로 다가오는 중개인을 피해 살짝 물러나며 답했다.

“돌아다니다가 더 적당한 곳이 있으면 정착하려고요. 여긴 사실 너무 골목이기도 했고.”

“제가 더 좋은 건물을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아니, 떠날 건데요.”

“크허허허허헝!!”

내 사랑스러운 마들렌, 치즈케이크, 에그타르트-.

중개인은 엄청나게 질척거리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좋아했던 빵들을 하나하나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나는 그 말을 신경도 쓰지 않고 중개인이 덜덜 떨며 내민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자, 이제 건물 대금을 주세요.”

“어허허헉-!!”

처음 볼 때 비해 두 배는 불어난 몸의 중개인이 손수건을 물어뜯으며 돈주머니를 건넸고, 로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받아들인 채 완벽하고 철두철미하게 돈을 세고 품속에 넣었다.

“빵 사 가실 거죠?”

“여기 있는 빵 전부 주십시오!!”

“안 돼요. 다른 분들도 사 가셔야 해요.”

“잔인하십니다!”

“무슨 실연당한 사람처럼 굴지 마세요.”

“전 실연당한 기분입니다만!!”

아, 진짜.

토실토실한 턱수염 중년 사내가 엉엉 울면서 질척거리니까 힘들다야.

모나한의 질척거림도 안 받아 줬는데, 부인에다가 자식에 손주까지 있으신데 그만 좀 합시다!

“아, 거참! 몰라요! 전 갈 거예요!”

“크허흑크허헉크허흑!”

로나는 이젠 이상한 소리로 울기 시작하는 중개인을 매우 떨떠름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마들렌 레시피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요. 이거 줄 테니까 만들어 달라고 해요. 개인 요리사도 가지고 계시는 분이 무슨.”

“……제빵 레시피를 이렇게 공개하셔도 되는 겁니까?”

“됐어요. 이거 말고 비밀 레시피 많아요. 마들렌 좋아하셨잖아요, 그렇죠?”

중개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 레시피를 보다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자 황급히 닦아 내었다.

“……감사합니다, 로나 씨.”

로나는 그 말고도 자신의 가게를 사랑했던 단골들에게 레시피 하나하나를 건네주었다.

이럴 필요까지 있나 잠시 생각했지만, 자신은 이 세상 누구보다 다시는 먹지 못하게 된 음식에 대한 향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로나는 중개인이 내민 건물 대금과 계약서에 서명을 마치고 그가 축 늘어진 어깨로 가게를 나가는 것을 보았다.

딸랑- 하고 문이 닫히고 가게는 적막에 휩싸였다.

아침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던 진열대는 어느새 빈 곳을 한두 곳 보이고 있었다.

로나는 왠지 모를 쓸쓸함에 그 빈 진열대를 손끝으로 살짝 쓸었다.

남은 빵가루가 손끝에 묻어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거 여기다 채우면 되죠?”

그런 쓸쓸함도 잠시.

모나한이 어느새 오븐에서 꺼낸 새로운 빵을 산더미처럼 쌓아 가져왔다.

로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쓸쓸히 비었던 진열대가 다시 따끈따끈하게 가득 차는 데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조금 쓸쓸하네요.”

“모든 끝에는 아쉬움이 남으니까요.”

모나한이 위로하듯 로나의 손을 살짝 잡았다.

오븐에서 빵을 꺼내서인 듯 언제나 차가웠던 모나한의 손이 오늘따라 따뜻한 온도였다.

“굳이 가지 않으셔도 돼요.”

모나한이 로나의 쓸쓸해 보이는 얼굴을 보며 말했다.

로나는 그 걱정 어린 눈동자를 보다가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김치에 눈이 멀어 상태창을 두둔하던 사람 어디 갔죠?”

“으음…….”

로나의 말에 모나한이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걱정하던 눈을 돌려 먼 산을 바라보았다.

로나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고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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