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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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언제나처럼 카운터에 앉아 ‘저녁에 무얼 먹을까?’라는 일생 동안 계속 반복되는 중요한 질문을 고민했다.

모나한에게 주면 또 이상한 말을 할까 봐 찬장에 숨겨 놓았던 복분자주를 떠올렸다.

독살 사건 때문에 결국 들키고 나서 모나한이 정력 어쩌구 하면서 실컷 가염 버터처럼 굴었었지.

그걸 숨겨 놨냐며 우쭈쭈 하고 귀여움도 실컷 받았다.

그리고 귀여움의 대가로 손을 실컷 물어 주었다.

감히 어디서 내 턱을 만지려고 하는가!

누가 뱀파이어 아니랄까 봐 손이 너무 단단해서 무는데 턱이 아팠다!

그래서 대가로 야식을 금지시켰지! 음하하하!

그 울상이 된 꼴이란!

“재수 없는 모나한.”

로나는 허공에 대고 모나한에 대해 사심 섞인 악담과 함께 승리의 미소를 짓고 나서 복분자주로 무엇을 해 먹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알코올을 빼면 괜찮지 않을까? 복분자주의 어떤 점이 정력과 관련 있는 거지? 사포닌? 안토시아닌?”

“주문 외워요?”

“네?”

“로나가 이상한 말 하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다가온 모나한이 로나가 이상한 단어들을 나열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니에요. 사포닌은 식물계에 널리 존재하는 배당체로 혈액을 용해하는 작용이 있어 심혈관 질환 관련으로 쓰이는-”

“……주문인가요?”

“이과였거든요. 원리 파악하고 분석하는 걸 좋아하죠.”

“뭔진 잘 모르겠지만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 과라는 건 알겠네요.”

로나는 그게 아니라 과학 어쩌고, 지식 백과 저쩌고라고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하긴.

분자나 세포가 있는 것도 모르는 이 세계에서 쓸모 있는 지식은 아니지.

애초에 마나가 있는데, 분자나 세포도 존재하나? 이 세계 사람의 몸이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 게 맞을까? 애초에 분자가 있기는 한 건가? 영양분의 작용은?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식물은 과연 광합성을 하는 건가? 햇빛을 봐야 잘 큰다니까 광합성을 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마나는 세포에 어떠한 작용을 하는 거지? 그게 움직이는 기전은?

“로나 씨?”

“핫! 순간 이과생의 피가 들끓어 올랐다!”

빵집 여주인으로서 누르고 있던 이과생의 의문이 와르르 들끓어 오르던 순간이었다.

“현미경 갖고 싶다. 누가 실험하고 논문으로 내줬으면 좋겠다. 완전 궁금한데.”

“어, 음…….”

“마탑에 가면 있지 않을까요? 이 세계에서 세포란 과연 존재하는가, 마나는 존재하는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증명된다면 어떤 관계성이 있고 어떻게 작용하여 수명이 늘어나고-”

“그만, 그만, 그만!”

“엥.”

“전 몰라요! 모르겠어요! 오래 살았지만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하지는 않은데, 죄송하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모나한은 그렇게 외치면서 로나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아는 뱀파이어 중에 미친 마법사 뱀파이어가 저런 질문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저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비천한 뱀파이어일 뿐인지라…….”

“어, 아니 근데 궁금하지 않아요?”

“아뇨. 안 궁금해요.”

“난 궁금하던데.”

“전혀 안 궁금해요.”

“전 솔직히 이 상점 창도 궁금해요.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놔두고 있지만, 상점 창에서 한식 재료가 나오는 어떠한 규칙이 있지 않을까요?”

“……네?”

“갈수록 한식 재료가 이상한 것만 뜬단 말이죠. 쌀, 고추, 고추장, 복분자주 순서잖아요.”

라인업이 이상하다고!

도대체 어떠한 규칙성이 있어서 이런 식으로 뜨는 거지?

한번 날 잡고 표를 만들어 볼까.

“로나 씨, 빵집 주인이 안 됐으면 미친 마법사가 됐을지도…….”

“흠. 글쎄요. 마법사가 되면 알 수 있는 걸까.”

“제가 아는 뱀파이어 마법사 중에 그런 비슷한 실험을 하는 이가 있거든요.”

“오! 만나 보고 싶다!”

“……미친 마법사예요.”

“궁금해요!”

“미친 마법사라고요!”

그런 기대에 반짝이는 눈으로 보지 말아 주세요!

모나한이 로나의 이과적인 궁금증에 파묻혀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빵집의 문에 달린 종이 딸랑- 하고 소리를 울렸다.

손님이 들어온 소리에 모나한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물러나고, 로나는 문 쪽을 보며 서비스업의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며 문 쪽을 보자, 보인 것은 분홍색의 몽실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미연시 게임의 여주인공 ‘아실라’였다.

“안녕하세요!”

아실라는 언제나와 같이 밝은 얼굴로 빵집에 들어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독살 이벤트가 있었다기에는 너무나 밝고 구김 없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여주인공 같은 환한 얼굴로 오늘은 어떤 빵이 있을지 너무나 기대된다며 진열대 이곳저곳을 종종거리며 돌아다녔다.

예쁘고 귀여운 얼굴에 예쁜 다양한 표정을 띠면서,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다는 고민하는 얼굴을 하면서.

로나가 저번 주 일요일에 아실라가 오지 않았던 것에 대해 생각한 걸 무색하게 만드는 모양새였다.

그 소란이 사실은 독살 이벤트가 아니었던가 고민하게 만들 정도였다.

로나는 역시 여주인공이라고, 위기 같은 것들은 특유의 밝은 표정과 밝은 기운으로 전부 헤쳐 나가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아실라가 종종거리며 카운터로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실라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빵을 쟁반에 가득 담은 채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평소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양이라 ‘저번 주에 못 온 걸 만회하는 모양이라도 되나 보다’라고 로나는 가볍게 생각하며 계산했다.

그리고 아실라는 방긋방긋 웃는 표정으로 그런 로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빵을 계산하고 봉투에 거의 다 담았을 때 즈음, 아실라의 하늘색 꽃잎 같은 눈동자가 섬세하게 몇 번 깜박이고는, 그녀의 입에서 달콤하고 가벼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번 주 일요일에 엄청난 일이 있었어요!”

“아, 그러세요?”

로나가 빵을 종이봉투에 담으며 여상히 대답했다.

“독살당할 뻔했지 뭐예요!”

“……네?”

그리고 그녀는 아실라의 밝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 종이봉투를 보던 눈을 돌려 아실라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독살당할 뻔하는 이벤트가 열린 것은 알았지만, 그걸 자신에게 말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저렇게 밝은 표정과 목소리로.

아실라는 그 당황한 갈색 눈동자를 보며, 방긋 웃었다.

“절 싫어하던 한 영애가 벌인 짓이었어요. 제가 먹은 빵이랑, 차에 독을 넣었대요! 막막 피 토하고, 쓰러지고 그랬다니까요?”

“아…….”

“제가 먹은 빵 때문에 난리가 났었는데, 여기 빵집이 제 단골 빵집이라 조사받았죠?”

“음, 네.”

“저번 주 일요일엔 여기 빵을 먹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저 때문에 괜히 이상한 누명 쓰게 돼서…… 죄송해요.”

아실라가 푹 고개를 숙였고, 그 몸짓에 따라 분홍색 머리카락이 훅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로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손을 저으며 부정했다.

“아니에요. 아실라 님은 피해자인걸요.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아실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숙였던 고개를 들어 로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럴 것 같았어요.”

“네?”

“로나 씨는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았어요. 언제나 그랬으니까요.”

로나는 묘하게 성숙해 보이는 그 얼굴에 당황해서 아실라의 하늘색 눈동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실라 또한 로나의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그녀의 눈에서 감정을 찾으려고 했던 순간이 있다.

자신을 향한 애정, 존경, 흠모 같은 것을 찾으려고 갈색 눈동자를 헤매듯이 바라보았던 순간이 있다.

“절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저 좋아하지 않죠?”

그러나 지금은, 그녀의 눈에 아무 감정이 없다는 걸 안다.

“싫어하지도 않고, 사실 아무 생각 없죠?”

“아실라 님.”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관계가 그저 남일 뿐이란 것도 안다.

“뭐라 하는 게 아니에요. 화내는 것도 아니구요. 그냥, 어느 순간 깨달아 버렸거든요.”

그리고 사실은 세상의 많은 관계들이 그것뿐이라는 것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아실라는 조금 입꼬리를 올렸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저는 사실 빛의 마법보다 다른 걸 더 잘해요.”

“네?”

“착한 말을 하는 거요. 착한 아이가 되는 거, 누군가에게 원하는 말을 해 주는 거, 원하는 행동을 해 주는 거.”

“…….”

“그렇게 해서 사랑받는 걸 아주 잘하죠. 하지만-”

그녀는 마치 비밀 상자를 열어 버린 아이 같았다.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전부 알아 버린.

“하지만, 그냥, 알아 버렸어요. 그렇게 해도 누군가는 나에게 아무런 생각이 없을 거고, 누군가는 나를 싫어할 거란 걸요.”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어서, 로나는 처음으로 아실라가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현실 속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처럼.

“그렇지만 저는 사랑받고 싶은걸요? 전 착한 아이이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제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일어서서 나아가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처럼.

“착한 사람이 될 거예요. 이번엔 그렇게 가볍게 하는 게 아니라, 힘들고, 괴롭고, 아프더라도. 누군가를 돕고, 위로하고, 일어서게 할 거예요.”

전 그걸 아주 잘하거든요.

아실라가 웃으며 말했다.

솜사탕 같은 분홍색 머리카락, 하늘색 꽃잎 같은 색의 눈동자, 뽀얀 볼, 발그스레한 입술.

게임 속 묘사와 같은 외모.

슬프게 웃는 눈동자, 올라간 입꼬리, 성장의 아픔을 아는 얼굴.

게임 속과는 다른 웃음.

로나는 게임 속 인물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보았다.

아이가 성장하는 순간을 보았다.

아실라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빵을 사고 문을 나섰다.

딸랑- 하고 가게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렸다.

씩씩하게 앞으로 걸었다.

품 안 가득한 빵 봉지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올라와 코를 간지럽혔다.

매주 일요일, 행복을 가득 안고 학원으로 돌아가는, 언제나 똑같은 길.

아실라는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흐르고, 볼을 지나고, 턱 끝을 넘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실라가 앞으로 갈수록, 걸음마다 눈물이 뒤따라 자국을 남겼다.

그녀는 저 뒤에 중요한 걸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순수 같은 것.

깨닫는 순간 다시는 갖지 못하는 것.

어린 시절, 어린 나, 어린 우리.

사람은 누구나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시절이 있다.

그리고 우린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자란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건 너무나 아프다.

아실라는 이제 그것을 알았다.

사춘기가 끝났다.

지독한 여름이 완전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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