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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실라는 질란이 급하게 조사단원들에게 사람을 보내는 것도, 그들이 아실라가 빵을 샀던 토플럭 빵집을 조사하러 갔다는 소식도, 그리고 그 빵집의 부엌에서 아실라가 먹은 독과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독이 들어 있는 병이 나왔다는 것도.
그녀는 침대에 앉아, 전부 듣고,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조리사복을 입은 사내가 조사단들에게 끌려와 그들 앞에 무릎 꿇었다.
그는 매우 평범한, 어딘가에서나 많이 볼 수 있는 사내였다.
광장 한복판에 있는 유명한 빵집, 토플럭의 제빵사.
어디 작은 귀족가의 사생아였던가?
익숙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얼굴.
심지어 아실라가 빵을 샀을 때는 종업원이 계산했으므로 정말로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 나에게 독을 먹였다고?
내가 죽기를 바랐다고?
“왜……? 저한테 왜 독을 먹이신 거죠?”
“전 억울합니다!”
사내는 공포와 억울함이 가득한 얼굴로 외쳤다.
“전 독 같은 거 생전 손대 본 적도 없고! 제 빵에 독을 넣은 적도 없었습니다! 제가 왜 제 가게를 말아먹을 짓을 직접 한단 말입니까! 게다가 전 저분을 한 번도 만나 본 적도 없습니다!”
“맞아요. 저도 당신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데…… 왜…….”
“말 그대로입니다, 영애! 제가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제발 다시 조사해 주십시오!”
아실라의 의문에 답하듯 사내는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소리쳤다.
자신은 억울하다며 제발 다시 조사해 달라고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은 진실되어 보였고, 아실라는 더더욱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졌다.
자신이 판단할 수 없어 주위를 둘러보아도, 다들 알 수 없는 얼굴만 하고 있었다.
“이해가 안 되네요.”
“예?”
벽에 기대어 서 있던 리앙이 앞머리를 한번 쓸어 올린 채로, 살짝 긁으면서 말했다.
“포트럭 빵집에서 독이 나온 게 너무나도 이상하단 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저 빵집은 제빵사는 부엌에서 빵만 만들고, 계산이나 진열 전부 종업원이 한단 말입니다.”
“그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부엌에서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아실라 님의 빵에서만 독이 검출되냐 이 말이죠. 불특정 다수가 무작위로 가져간 빵일 텐데, 그중에 독이 들어 있는 빵만 아실라 님이 쏙쏙 골라 사 왔다? 빵에 있는 독으로 독살을 하기 위해서는, 계산할 때 빵에 독을 넣는 수밖에 없는데, 그럼 종업원을 잡아 와야죠.”
“하지만 독이 들어 있는 병은 부엌에서 나왔는데? 종업원이 부엌에도 들어가나?”
리앙의 말에 의자에 앉아 있던 프리먼이 고민을 하듯 테이블을 톡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그 말에 토플럭의 제빵사가 거세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닙니다! 어떤 멍청이가 종업원을 부엌에 들여보낸단 말입니까! 제 제빵 레시피를 훔쳐 갈지도 모르는데! 부엌은 오로지 저만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실제로 제빵사들은 후계자 말고는 자신의 부엌에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특히 광장에 큰 빵집을 차릴 정도면, 레시피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죠. 의문점이 너무 많군요.”
“아실라의 단골 빵집을 착각한 게 아닐까 하는데?”
“음?”
리앙이 저 말이 사실이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로브를 뒤집어쓴 채 조용히 앉아 있던 니켈스가 가설을 던졌다.
“포트럭의 제빵사나 종업원은 범인이 아닌 거지. 실제 범인은 아실라를 독살함과 동시에 범인을 아실라의 단골 빵집으로 하고 싶었어. 그 빵집은 주인이 제빵도 하고 계산도 하니까, 누명을 씌우기 좋았겠지. 아실라와 매주 일요일 대화를 나누는 아는 사이이기도 하고. 아실라를 싫어했다면, 아실라가 좋아하는 빵집도 무너트려 버리고 싶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아실라 님이 오늘 다른 빵집에 들렀고, 그래서 착각을 했다?”
“그래. 그래서 범인의 계획이 꼬인 거지.”
“그럴 수 있나? 위치부터 다르고, 빵집 크기도 다른데?”
“범인이 위에서 시키기만 하는 사람이라면. 계획을 내리고 시키기만 했다면. 직접 실행한 이는 그가 시키는 대로 그냥 한 거지. 사실 귀족 사회에 많이 있는 실수잖아?”
니켈스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면서, 나는 가설을 던져 본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모든 이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아랫사람에게 시키기만 하는 귀족 사회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실수이기도 했다.
“애초에 이 병에 있는 독과 아실라가 먹은 독이 같은 독인가?”
프리먼이 테이블에 놓인 독이 든 병을 툭 건들며 말했다.
“내가 왕자로서 많은 독살 위험에 시달려 봐서 아는데, 세상엔 정말 수많은 종류의 독이 있지.”
“흠.”
“증상이 비슷하거나 같지만, 실제 독은 전혀 다른 독인 적도 많고.”
아실라는 격렬히 토론하는 이들을 바라보다가, 방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녀는 추리나 사실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과 관련된 사건은 모두 저런 식으로 흘러갔다.
자신이 고민하지 않아도, 주위에서 다 알아서 해결해 주곤 했다.
아니면, 어떠한 행운이, 어떠한 인연이, 어떠한 기적 같은 것들이 일어나 그녀를 구해 주곤 했다.
그리하여 모든 위기는 기회가 되거나, 보상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주위를 둘러보았다.
꼭 이 상황이 매우 작위적이고, 또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그녀는 피아나, 그녀가 왠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뭔가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처럼, 죄를 지은 것처럼, 범인처럼.
아실라는 멍하니 입을 열었다.
“독이 꼭 한 가지여야 하나요?”
“응?”
“제가 먹은 빵의 독과 다른 무언가가 만나면, 더 무서운 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녀는 꼭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대사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두에게 진실을 알리는, 그래서 그녀가 주목받는.
그리고 그녀의 생각대로 사람들은 모두 아실라에게 주목했고, 아실라는 그 시선들을 받으면서 피아나를 바라보았다.
피아나는 아실라의 시선에 안절부절못하다가, 덜덜 떨다가,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말을 이을 때마다, 그녀의 떨림은 점점 줄었고, 몸은 굳어 갔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눈에 선명한 악의가 천천히 차올랐다.
“예를 들어, 피아나 님이 주신 차라든지.”
그 말을 아실라가 내뱉었을 때, 아실라는 피아나가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을.
그녀가 남주들에게 붙잡혀 넘어지는 것을.
바닥에 엎드려 그녀에게 다가오려 바르작거리다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치는 것을.
“너만 왜! 너만 왜 전부 가지는 건데!! 죽여 버릴 거야!!”
그리고 결국 입까지 막혀 끌려가는 것을, 바닥에 아름다운 황금색 머리카락이 쓰레기처럼 나뒹구는 것을, 바라보고, 바라보고.
보기만 하였다.
* * *
아실라는 베라가 머리를 정리해 주는 것을 멍하니 거울을 통해 보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피아나가 범인이었다.
아실라가 당한 빵 속의 독은 피아나가 선물한 찻잎과 함께 섭취했을 때 강해지는 타입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끌려간 후 아실라를 독살함과 동시에, 아실라가 좋아하는 빵집을 망하게 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공작가의 공녀인 만큼 그녀는 감옥으로는 가지 않고, 독실로 끌려갔다.
그녀는 끌려가는 마지막까지 조금의 반성도 없이 그저 악의만 쏟아 냈었다.
“왜 그런 걸까?”
“네?”
아실라는 거울을 보던 눈을 내려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조그맣고, 뽀얗고, 아기자기한 손톱 끝까지 어여쁜 손.
“왜 날 싫어하는 걸까?”
“어머! 그런 걸 고민하고 계세요?”
“나는 잘 모르겠어서…….”
아실라는 그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치마에 주름이 지는 걸 보고, 주름을 톡톡 펴고는, 다시 손을 예쁘게 펴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멍하니 옛날을 생각했다.
자신이 처음 착한 말을 했던 순간.
귀족가의 남자아이가 길에서 넘어졌을 때, 그 아이의 엄마가 ‘귀족으로 태어나서 이런 거로 울면 안 돼요!’라고 소리치며 그 아이를 나무랐을 때.
그 아이가 흙을 손에 꾹 쥐며 울먹거렸을 때.
아실라는 왠지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저 아이가 울지 않을지.
무슨 말을 해야, 저 아이가 웃게 될지.
<괜찮아? 많이 아프지?>
그래서 그렇게 했다.
그녀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었으므로.
그 아이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았고, 이내 환히 웃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내내, 그 아이는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자신을 아주 좋아했다.
그 후, 아실라는 알게 되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호감을 얻을 수 있는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지.
그건 그녀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실라는 지금 그런 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지금 선명한 것은 피아나의 눈이었다.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
“날 그냥 좋아하면 안 되는 걸까? 나를 좋아해 주면 좋겠는데…….”
그런 악의 말고, 그냥 나를 좋아해서, 같이 놀고…….
“아실라 님, 모든 사람이 아실라 님을 좋아할 순 없어요.”
“……응?”
“그렇잖아요. 아실라 님은 정말 착하지만, 어딘가에는 아실라 님을 싫어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고요. 아실라 님도 그러시잖아요? 살다 보면 싫은 사람이 생기곤 하는 거죠.”
아니, 나는 그런 적 없는데.
나는 그런 적 없어, 베라.
나는 한 번도 누군가가 싫었던 적이 없는걸?
“그런데 정말 가 보실 거예요?”
“응?”
“그…… 피아나 님이 사과하신다고 하셨지만, 꼭 아실라 님이 그 사과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으시잖아요.”
“……하지만 사과한다고 했는걸?”
“하지만…… 하긴, 아실라 님은 착하시니까 어쩔 수 없죠.”
“……응.”
나는 착한 아이니까.
아실라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본다.
몽실몽실한 분홍색 머리카락, 꽃잎 같은 하늘색 눈동자. 뽀얀 볼과 발그스레한 입술.
아기자기한 외모. 예쁜 외모. 사랑스러운 외모.
아실라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갔다.
밖에서는 리앙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분들은 먼저 회장에 가 계셔서요. 오늘은 제가 에스코트 담당입니다.”
리앙이 약간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아실라는 그 얼굴을 올려다보고, 그가 내민 손을 잡고 복도를 걸었다.
복도의 창문에서 아름답게 관리된 정원이 계속 이어졌다.
아실라는 창문 밖 정원을 보면서 걸었다.
잠깐잠깐 벽이 나올 때 빼고는 전부, 아실라의 시야에는 정원만이 가득했다.
빛이 둘을 비추어 환해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정원이 예쁘네요.”
“……그러게요.”
“조금 멍하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아실라는 정원을 보며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이해할 수가 없고, 와닿지도 않으며, 알고 싶지도 않은데, 선명하기만 한 것들이 떠올랐다가 가라앉고,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괜찮아요.”
저는 괜찮아요.
지금까지도 그것들은 전부- 저 멀리 있었는걸요.
저는 저 정원처럼, 낙엽 하나, 어질러진 나뭇가지 하나 없이.
예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끼익.
어느새 둘은 복도 끝에 다다르고, 커다란 회장 문이 느리게 열렸다.
아실라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회장 가득한 학생들을 지나, 자신을 좋아하는 세 명의 남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회장 한가운데에 스포트라이트가 펼쳐지고, 모든 시선이 집중된 것 같은 곳에 아름다운 아실라가 섰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평소보다 수수한 옷과 수수한 화장을 한 피아나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어떠한 정해진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