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 (47/154)

47

이내, 병사들이 가게 안으로 들이닥쳐 와 이곳저곳을 제멋대로 뒤지기 시작했다.

진열대와 장식 선반, 바구니 안과 계산대, 부엌, 2층의 침실까지.

병사들은 매우 신중한 눈빛으로 조금이라도 수상한 물건들은 전부 모아 로나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설탕요.”

“밀가루 종류가 왜 이렇게 많죠?”

“당연히 어떤 밀가루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빵의 식감이 달라지니까요.”

“큭……! 이 이상한 빨간 가루는 무엇입니까!”

“고춧가루입니다.”

“윽! 이 이상한 새빨간 것은 무엇이죠?”

“고추장입니다.”

로나는 새삼, 이 빵집에 한식 재료가 많다고 생각했다.

저들이 보기엔 이것저것 이상한 게 많겠구만.

그 밖에도 로나는 소금, 이스트, 젤라틴 등등등을 하나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이 수상한 보라색 액체는 무엇입니까!?”

“아, 그건 남자한테 그렇게 좋다는.”

“……네? 설마 수상한 음료!?”

“복분자주입니다.”

“흠, 흠.”

로나는 또 새삼, 생각보다 전생의 재료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모나한이 있다 보니 전생의 재료를 숨길 필요도 없어서, 이곳저곳 편하게 늘어놓았던 것이다.

이거 독살 때문이 아니라 이상한 재료가 많아서 의심받겠는데?

근데 내가 모으겠다는데 어쩔 거야?

어디서 모았냐고 물어보면, 영업 비밀이라고 하면 되지!

아니, 그보다 제빵 관련 재료 말고 한식 내노으라고! 한식!

쌀, 고춧가루, 고추장 다음에 복분자주가 말이 되냐!

이게 무슨 연관 없는 라인업이오!

왠지 로나는 조금도 긴장되지 않아서, 병사들의 말에 다소곳이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드립을 멈추지 않았다.

분명 모나한이 자신보다 더 굳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로나는 모나한을 팔을 잡고 있던 손을 살짝 내려, 그의 손가락 안에 자신의 손가락을 엮었다.

모나한이 제 손을 한번 꼭 쥐었다가, 다시 힘을 풀고, 다시 꼭 쥐었다.

그리고 그의 차가운 엄지가 천천히 제 따뜻한 손가락을 쓰다듬었다.

무서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고.

그 뜻을 충분히 느낀 로나가 반사적으로 올라가려던 입꼬리를 단속하면서, 이상한 것을 아무것도 찾지 못해 당황하는 병사들을 단단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벌써 자정이 넘어간 지 오래되었다.

“제 가게를 더 뒤지셔야 하나요?”

“윽…… 그건…….”

“이상한 건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것 같은데. 어질러 놓은 건 치워 주고 가시는 거죠?”

“그…… 저희가 공무상 바쁜 일이 많아서…….”

“네?”

“흠흠. 저희가 독살 미수 사건을 조사하려면 시간이 없어서요. 치우는 건 못 해 드릴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떡해요? 이 난장판 해 놓은 것뿐만 아니라, 병사들이 조사했다는 소문은 어떡할 건데요.”

“아니, 그…….”

병사들의 대장은 옆에 병사를 툭툭 치며 “진짜 이상한 거 없어?”라고 물었고, 그 병사는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특이한 음식 재료는 많이 있습니다만, 마법 조사 장치에도 걸리는 게 없었고…… 독에 관련된 물품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말에 그는 정말 곤란하다는 표정과 죄송하다는 표정이 반쯤 섞인 얼굴로 로나의 매서운 눈을 바라보았다.

로나는 어느새 팔짱을 낀 채 삐딱한 자세로 대장을 보고 있었고, 그녀와 손을 떼고 싶지 않은 모나한이 팔짱 아래 톡 튀어나온 로나의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어쨌든, 커플의 행각은 뒤로하고, 로나의 눈초리는 매우 사나웠고, 자세는 그녀의 불편한 심기를 충분히 나타내고 있었으므로, 이제 대장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질란 라이언 님의 ‘정중하게 대하라’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저희가 질란 공작가의 조사단인데…… 그쪽으로 이야기하시면 보상금을…….”

“당연히 줘야죠. 지금 피해가 얼마인데. 소문 그거 무서운 거예요.”

“그렇죠, 그렇죠. 아하하. 원래는 구속하고 좀 그래야 하는데, 보다시피 증거도 없고…….”

“네에.”

“그, 질란 라이언 님이 정중하게 대하라 하셨고.”

“네에에.”

“흠흠. 저희가 병사 몇 명만 집에 두고 가도…….”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니, 방해는 절대 안 되도록, 얘들 숨소리도 안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동안 있는 건데요.”

“그…… 피해자분이 여기 빵을 먹고 쓰러지셔서…… 아마, 그게 확실시될 때까지는…….”

“그게 정확히 얼마인데요.”

로나는 두루뭉술 넘어가려 하는 대장을 쏘아보며 조목조목 따졌다.

모나한과 살면서 사그라들었던, 공격성이 오늘날 살아나고 있었다.

내가 혼자 장사를 했던 시간이 얼만데,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줄 알아?

“그…… 범인이 잡힐 때까지……?”

“장난해요? 그럼 범인이 안 잡히면? 평생 그분들 여기 출퇴근해요?”

“흠흠. 저희가 그렇게 실력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가씨. 일주일 정도 있을 거라는 얘기이고…….”

“저 조그만 빵집에서 장사하는 사람이에요. 지금 안 그래도 소문 때문에 매출이 줄게 생겼는데, 병사가 떡하니 있는 빵집? 잘도 손님이 오겠네요.”

물론 내 품 안에는 엄청난 돈이 있긴 하지만, 내 일일 매출을 떨어트리는 작자들은 모두 조금도 용서하지 않겠다!

“아니, 아가씨. 지금 한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그 매출이 중요하십니까?”

“당신은 월급 꼬박꼬박 받으니까 괜찮겠지만, 전 하루 매출로 먹고사는 사람이거든요? 장사한다고요. 누가 죽을 뻔한 건 한 거고, 그 사람이 죽었다고 제 장사를 안 해야 해요? 아니죠. 일주일 장사까지 배상해 줄 생각 아니라면, 다른 방법 찾아오세요.”

대장은 그 얄미운 얼굴을 보며,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제 험악한 얼굴이라도 써 보고자 인상을 팍 썼다.

그러나 이 빵집 주인 뒤에 있던 회색 머리의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이 얼굴을 확 굳히면서 빵집 주인 앞을 가렸다.

쓸데없이 잘생겨서 무시하고 있었는데, 이놈은 생각보다 어깨도 넓었고, 덩치도 컸다.

잘 보니 옷에 가려서 그렇지 근육질이었다.

대장은 왠지 그가 검을 꽤 써 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으로 이기지도 못하겠고, 조사단이라는 권력도 안 통하고, 높으신 분에게 정중하게 대하라는 말까지 들었던 그는 결국 한숨을 푹 쉬며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여길 못 치우고 가는 것, 소문 때문에 줄어든 매출, 일주일 동안 있을 병사들로 인해 줄어들 매출까지. 저희가 배상해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여기 적고, 사인도 하세요.”

로나는 어느새 모나한의 등 뒤에서 쏙 빠져나와, 종이와 펜을 대장 앞에 밀어 넣었다.

“하…… 철저하시네요.”

“구두 계약은 안 믿거든요.”

이런데 사인하는 거 아니라고 배웠는데……. 대장이 중얼거리면서 어떤 점을 배상하겠다는 말을 종이에 쓴 뒤, 사인하려는 찰나였다.

“여기가 아니랍니다!”

“응?”

“네?”

“예?”

문을 열고 들어오며 외쳤던 병사는 순식간에 몰려드는 시선에 다시 외쳤다.

“이 빵집이 아니랍니다! 피해자가 산 빵은 다른 빵집에서 나온 거랍니다! 지금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휴-”

로나는 도대체 무슨 오해가 있어서 여기서 이 난리를 쳤냐는 생각을 하다가 대장이 한숨까지 쉬며 안도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사인할 뻔한 종이를 찍찍 찢으며 환히 웃는 것도 보았다.

그렇게 책임지기 싫었냐.

“아하하. 그러면 여기에 병사가 있을 필요가 없으니, 배상할 것도 없겠네요.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문으로 나가려고 했다.

로나는 그런 그의 팔의 옷을 낚아채며 삐딱하게 고개를 꺾고, 돈을 뜯듯이 말했다.

“어지른 값, 소문 값.”

내놔.

칼만 안 들었지 강도의 얼굴이었다.

모나한은 어느새 다시 로나의 뒤쪽으로 물러나, 성직자형에 퇴폐미 한 방울 떨어트린 얼굴을 하고,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내 로나, 멋있다!”를 하고 있었다.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하다니, 내가 속을 것 같아?

결국, 대장은 종이에 가게를 어지른 값과 소문값을 배상하겠다고 적고, 사인하고 나서야 빵집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들이 골목으로 사라질 때까지, 로나는 빵집 문에 팔짱을 끼고, 다리를 벌리고, 턱을 살짝 든 채로 서서 바라보다가,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콧방귀를 “흥!” 하고 뀌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모나한이 얼마나 코가 좋은데! 어디서 누명을 씌우려고!

그런 로나의 모습을 은근슬쩍 조용히 먼저 가게를 치우고 있던 모나한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뭐야. 왜 먼저 치우고 있어요?”

“이거 치우려면 로나가 고생하잖아요.”

“먼저 치우면 모나한이 고생하잖아요.”

“저에게 이건 고생도 아니랍니다아.”

“흐으음.”

“점수 땄나요?”

“맛있는 거 만들어 줄까요?”

“제가 맨날 먹을 거만 원하는 줄 알아요?”

“네.”

“정답입니다. 크루아상에 달콤한 크림치즈랑 딸기잼 넣은 거 해 주세요.”

“구체적이네?”

“그게 먹고 싶거든요, 지금.”

그 말에 로나는 그럼 빨리 치우고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고, 모나한은 자신이 치울 테니까 부엌에 가서 빨리 빵을 만들어 달라며 로나의 등을 밀었다.

힘이 어찌나 센지 조금이라도 반항해 보려 한 로나의 발이 한 번의 멈춤도 없이 부엌으로 밀렸다.

“뭐야? 힘 왜 이렇게 세?”

“힘 하면 또 저죠. 로나 씨가 잘 알다시피 아침에도 밤에도 힘센 모나한!”

“밤에 힘센지는 모르겠는데요.”

“알게 해 드리는 수가 있어요.”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빵을 내놓지 않으면 잡아먹겠다!”

로나가 모나한의 말에 “아이고, 무서워라!”라는 말을 하며 부엌으로 사라졌고, 이내 부엌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가득 풍겼다.

그녀가 딸기잼이랑 달콤한 크림치즈를 가득 넣은 크루아상을 다 만들어서 가지고 부엌 밖으로 나갔을 때는 가게는 이미 전부 정리된 후였다.

부엌 안쪽도 크림치즈를 만드는 동안 모나한이 휙휙거리면서 정리했으니, 이제 2층만 남았-.

“2층도 정리했어요.”

2층도 정리한 모양이다.

“로나 씨 방만 손 안 댔어요. 고민하긴 했는데, 거기까지 치우면 싫어하실 것 같아서요.”

“오오오.”

“그래도 혹시 괜찮다면 같이 치울 때 도와드릴게요.”

“와아! 모나한 짱이다, 멋있다, 잘생겼다!”

“제가 좀 최고긴 하죠?”

“그럼요! 자요, 모나한이 원한 크루아상.”

“와아! 로나 씨 짱이다, 멋있다, 최고로 사랑스럽고 당신의 손은 마치 신께서 만들어 준-”

“1절만.”

“로나 씨 최고라고요.”

“저도 알아요.”

로나가 씨익 웃은 채로 코끝을 찡그리면서 웃었고, 모나한이 그 표정을 따라서 코끝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녀는 맨날 모나한의 표정을 따라 하다가 실패하는데, 그는 어찌나 잘 따라 하던지.

로나는 새삼 자신이 저런 얼굴로 웃었나 싶기까지 했다.

“여행요.”

“네?”

로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올려 모나한의 찡그린 코끝을 만지다가 말했다.

“우리 수도로 여행 가는 거요. 어쩌면 생각보다 더 일찍 가게 될 수도 있겠어요.”

“일찍요?”

“네. 아마도 지금 아실라의 독살 이벤트가 터진 것 같거든요. 그게 끝나면 아실라의 이야기가 끝나니까요.”

“게임이 끝나는 거네요.”

“그렇죠.”

“그럼, 둘이 수도로 갈까요?”

저랑 같아지게요.

모나한이 로나의 손에 이마를 비비면서 나긋이 말했다.

“그러게요.”

로나가 나른해 보이는 모나한의 표정을 보며 답했다.

“뱀파이어가 되러요.”

나긋하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