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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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실라는 테이블 위에 사 온 빵을 하나하나 올려놓다가 푹- 한숨 쉬었다.

그녀는 언제나와 같이 일요일에 로나의 빵집에 갔다가, 왠지 모르게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였다.

이상하게 로나 씨와 모나한 씨의 무심한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실라는 그렇게 골목길을 서성이다가,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에 있는 이름도 모르는 빵집에서 빵을 사서 학원으로 오고 말았다.

“맛없어…….”

로나의 손맛에 완전히 중독된 아실라의 입은 이 빵이 맛없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녀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빵을 한입 베어 오물거렸다.

그 표정마저 여주인공답게 애교 있었다.

그녀는 여주인공 같은 얼굴로, 로나 씨의 빵보다 훨씬 맛이 떨어지는 빵을 다시 한입 먹으며 자신의 감정들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모나한 씨와 로나 씨에게서 느꼈던 감정.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무심한 눈동자.

자신에게 어떠한 애정도, 사랑도, 존경도 들어 있지 않은 눈동자.

“왜 그러는 걸까?”

그 눈만 떠올리면 체한 것처럼 속이 답답하고 울렁거려서 아실라는 도저히 그 빵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왜’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니기도 며칠째, 그녀는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모나한과 로나의 감정을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해 보기도 하고, 사실은 부끄러워서 감춘 것 아닐까 하는 고민도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점점 선명해지는 것은 그 아무런 온기도, 냉기도 없던 눈동자뿐이었다.

그녀는 다시 모나한과 로나의 호감을 얻으려고 빵집에 갈까 생각했다가도, 그들의 눈만 생각하면 다시 의자에 앉아 버리곤 했다.

“휴우우-”

아실라는 한숨을 푹 쉬고는, 먹고 있던 빵을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로나 씨의 빵보다 훨씬 맛없는 데다가, 왠지 흥미도 가져지지 않는 맛이라서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접시 끝을 만지작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다니는 틸레아 학원은 나라 최고의 학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원조차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매일 상주하는 정원사가 관리하는 정원은 꽃들의 색, 크기, 높이, 종류조차 전부 알맞고 어울리게 맞춰져 있었다.

아실라는 예쁘고 하얀 티 테이블 위에 턱을 괴고는 그 정원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나무들과 색색의 꽃들.

조금의 어긋남 없이 완벽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실라는 정원을 보며 그 모습이 꼭 자신 같다고 생각했다.

어디 하나 모난 구석 없이, 싫어할 곳 없이 완벽한 곳.

가을바람이 때로 낙엽들을 떨어트려 정원을 더럽히고는 했지만, 정원사들이 금세 정리하는 완벽한 곳.

사랑스럽고, 사랑할 만하고,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는.

“그래, 아실라. 이런 거로 이렇게 축 처지면 안 돼!”

아실라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티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하나도 흥미롭지 않은 빵은 그만 먹고, 로나 씨의 빵집에 가자.

가서, 좋아하는 빵을 왕창 사 오는 거야.

그리고 또 로나 씨와 모나한 씨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재잘거리고 웃으면 두 분도 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

맞아.

로나 씨는 축제 날에 힘든 일을 겪었잖아!

가서 괜찮다고 위로해 줘야 해.

많이 무서우셨을 테니까.

모나한 씨도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 봐 무서우셨을 거야!

내가 가서 괜찮냐고 물어봐야지!

거기까지 생각했던 아실라는 잠시, 더 이상 자신에게 상관하지 말라던 모나한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그러니까…….

맞아! 그때 내가 너무 겁에 질려서, 알맞지 않은 위로를 한 걸 거야.

난 바보야. 모나한 씨는 로나 씨가 보고 싶어서 마음이 급했을 텐데, 그에게 그렇게 말을 걸다니…….

모나한 씨의 손을 잡고, 로나 씨에게 갔어야 했어!

그리고, 그리고…….

위로를 건네고, 안심시키고, 원하는 말을 하고, 구원하고, 사랑을 받고.

맞아. 그래야 해. 나는, 그런 걸 잘하니까, 지금 가서-.

“아실라 님, 왜 일어나 있으셔요? 빵도 다 안 드셨는데.”

흠칫.

아실라는 갑자기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움츠렸다.

마치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왠지 모를 불안이 솟아올라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리다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학원에서 그녀에게 배정해 준 시녀 베나가 그런 아실라의 모습을 보며 살갑게 웃었다.

“이것 보셔요. 피아나 님이 보내신 차여요.”

“……피아나가?”

아실라는 조금 입술을 삐죽거리며 피아나라는 이름을 불렀다.

아실라는 피아나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그녀도 자신을 다른 사람과 다른 눈으로 보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녀는 언제나 제 주위로 다가오지 않고, 저 멀리 있었는데, 아실라가 한 번씩 그녀를 보기라도 하면, 언제나 눈이 마주치곤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런 사람은 많이 있었다.

아실라가 무언가를 하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뭐랄까. ‘평범한 아이인데 보면 볼수록 묘하게 예쁘단 말이야? 아실라와 친해지고 싶다-’라는 흔하디흔한 얼굴들.

그러나 피아나 그녀는 그들과 다른 얼굴을 하고는 했다.

금발 사이로 날카롭게 뜨인 눈, 꾹 다문 입, 가끔씩 경련하는 입가.

그러니까, 아마도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

하지만 아실라는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에게 별로 선명하게 다가오는 감정도 아니었다.

그냥 그런 이들은, 저 멀리서 입가를 우글거리다가 갑자기 다가와 나쁜 말을 하고, 자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혼나고는 멀리 사라지곤 했던 것이다.

왜 나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위에 이야기하면, 그들은 모두 그렇게 말했다.

네가 너무 착해서 그래.

너 주위에 멋있는 사람이 많아서 그래.

널 질투해서 그래.

자격지심이지, 자격지심!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아실라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그들에게 다가가 더욱 상냥하게 말을 걸고는 했지만, 그러면 그들은 왠지 더더욱 자신을 싫어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네가 친절하게 굴었는데, 쟤는 왜 저러는지 몰라.

맞아, 아실라. 저런 얘한테 말을 걸 필요 없어. 널 싫어하는 사람한테 뭐하러 말을 거니?

그야 아실라는 착해서 그렇지.

아하하. 아실라는 너무 착하다니까.

착한 아이.

착한 아이.

그래. 자신은 착한 아이였고,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득 둘러싸여, 악의는 멀리서 다가오지 못했다.

질투나 악의, 싫어하는 감정 같은 것들은 자신에겐 저 멀리 있는 감정에 지나지 않았다.

언제나 한 명씩은 있곤 했지만, 그녀에겐 그냥 모른 척 지나가면 되는 것들뿐이었다.

피아나 그녀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싫어해서 자신을 방해하고는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일들은 주위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을 돕는, 그래서 잘 풀려 가기만 하는, 자신의 착함을 드러내게 하는 일들일 뿐이었다.

“피아나 아가씨가 축제 일을 미안하다면서 주신 거여요. 너무 1등이 하고 싶어서, 자신도 모르게 그랬다고, 미안하단 말을 꼭 해 달라고 하셨어요. 다음에 정식으로 사과하러 오겠다고요.”

“……그래?”

“걱정되시는 건 알지만, 제가 혹시나 해서 개한테도 먹여 보았는데, 멀쩡하였어요! 어떻게, 드실 건가요?”

“……피아나가 사과했는데, 안 먹을 순 없지. 한 잔 줘.”

“어쩜, 착하시기도 하여라.”

아실라는 착하다는 말을 들으며, 새하얀 도기를 들어 그녀가 들고 있는 주전자를 따르기 좋게 대 주었다.

시녀 베나는 “어쩜 내 아가씨는 배려심도 깊지. 다른 이들은 그냥 따라 주기만을 기다리는데, 이리 찻잔도 대어 주시고.”라며 감동하였다는 듯이 웃었고, 아실라는 그 모습을 보며 수줍어하였다.

새하얀 도기 안으로 불그스름한 찻물이 조르륵- 흘러내리고, 이내 진하고 달콤한 향이 방 안 가득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퍼졌다.

“와…… 향 좋다.”

“저도 타 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아주 유명한 차여요. 향뿐만 아니라 맛이 아주 달콤하다고 소문이 자자하죠. 드디어 피아나 님도 반성하셨나 보아요.”

“그런 걸까…… 난 그녀가 날 너무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남을 싫어하는 감정도 참 힘든 걸 텐데…….”

“어쩜. 착하기도 하지.”

“아냐! 착하긴 뭘. 그냥…… 난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게 좋은걸?”

“그런 걸 착하다고 하시는 거여요! 자자. 따뜻할 때 드셔요. 제가 또 따라 드릴게요.”

아실라는 베나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차의 향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차의 맛 또한, 향만큼 훌륭했다.

“와. 이거 정말 달콤하다!”

“그렇지요?”

“나만 먹기 너무 아깝다…… 맛있는 건 같이 먹어야지! 베나, 너도 여기 앉아!”

“어머! 저는 시녀일 뿐인데…… 제가 앉기에는…….”

“베나, 또! 내가 말했지? 우리 둘만 있을 때는 그러지 말라구! 베나도 나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흑! 알겠어요. 여기 앉을게요. 아실라 아가씨는 어찌 그리 착하신지.”

아실라는 착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마음속 무언가가 채워지는 것을 느끼며 차를 마시는 베나에게 부끄럽다는 듯이 웃었다.

“이것이 그 아실라 님에 제일 좋아하신다는 빵집의 빵이어요? 어쩜. 색깔도 곱지.”

“으, 응?”

“저도 하나 먹어 봐도 될까요? 저번에 주신 빵도 정말 맛있었는데, 이번 빵은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되어요.”

“아, 아니!”

아실라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베나가 아실라의 거부에 놀라서 빵으로 가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녀는 당연히 아실라가 빵을 먹어도 된다고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실라는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왠지, 자신이 빵을 다른 곳에서 사 왔다는 것을 알리기 싫었다.

그냥 그 빵집의 빵이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로나 씨가 빵을 너무 잘 만들어서, 그 빵집의 빵과는 맛의 차이가 심했다.

로나 씨의 빵을 한 번이라도 먹어 본 사람은 한입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실라는 왠지 모르게 변명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 이번에 빵집에 늦게 가서. 왜, 내가 주말에 학원에 늦게 돌아왔잖아. 그날따라 밖에 햇빛이 너무 좋아서 산책을 오래 하다 보니까, 빵집에 늦게 간 거야.”

“아…….”

“그래서 빵을 이것밖에 사 오질 못했네? 알지, 베나. 내가 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럼요, 아가씨. 이 학원에 아실라 님이 빵을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요.”

“정말? 그 정도야? 조금, 부끄럽다…… 아무튼, 너무 조금 사 와서…… 나눠 주지 못하겠어. 미안해.”

“아니어요, 아가씨.”

“다음엔 내가 이만큼, 이만큼 사 올게. 꼭 나눠 줄게. 알았지?”

“그럼요, 그럼요. 우리 착한 아실라 아가씨가 약속을 어길 리 있겠사와요? 저는 다음 주만 기다리고 있을게요.”

“응, 응.”

“그럼 이 빵은 아실라 님이 드셔요. 저는 아실라 님이 드시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답니다.”

“아이, 그런 말 하지 마. 알았어! 먹을게. 먹으면 되지, 참.”

아실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빵을 입에 집어넣었다.

로나 씨의 빵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지만, 아실라는 그 빵을 먹을 때처럼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표정을, 행복하다는 표정을 하였다.

왠지 모르게 다시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아까와 같이 기분 탓일 거라고 생각하며, 아실라는 빵 하나를 전부 위장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울컥, 정말로 무언가가 속에서 울렁거리며 넘어왔고, 그녀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그것을 뱉었을 때.

“꺄아아아악!! 아가씨!!”

베나는 비명 질렀고, 아실라는 이상하게도, 온 시야가 새빨갛기만 해서.

울컥, 울컥거리며, 배 속에서 무언가가 계속 역류하고.

이상하게도, 테이블 위와 찻잔 안, 갈색 빵, 그리고 자신이 입은 옷까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아가씨, 아가씨!! 아실라 님!!”

아실라는 베나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에, 왜 그렇게 소리 지르냐고 물으려 입을 열다가, 그대로 흐려지는 시야. 넘어가는 시야.

암전.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배 속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선명한 통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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