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 (43/154)

43

휴일인 화요일, 로나가 가게 테이블에서 잡지를 보고 있었다.

수도의 음식이나 관광지들을 소개하는 잡지였다.

둘이서 수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으므로, 로나는 즐거운 기분으로 얇은 종이를 팔락이며 넘겨 댔다.

그 옆에서 모나한이 자신은 이 음식이 먹고 싶다든가, 이건 예전에 먹어 봤는데 아주 맛있었다든가 하는 말을 덧붙였다.

로나는 모나한이 말하는 음식에 동그라미를 치며 자신은 수도를 관광하고 싶다고 말했다.

“판타지 세계에 태어났는데 관광도 제대로 못 한다니, 얼마나 억울했는지 알아요?”

“제가 있으니 이제 억울해할 필요 없겠네요.”

“모나한은 관광할 만한 곳 많이 알고 있나요?”

“으음…… 도시나 관광지는 잘 모르겠어요. 자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요. 하지만 자연 풍경 같은 건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 곳은 안내해 드릴 수 있죠.”

그래도 수도는 별로 안 변했을 거예요.

거긴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려는 예술 단체가 있다고 모나한이 말하며 잡지 한곳을 톡톡 짚었다.

“아직도 그 단체 이름이 있는 걸 보면, 오래된 건물 보존을 그대로 하고 있겠죠.”

“성 같은 것도 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지금은 신분이 평민이라서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지금 수도에 있는 뱀파이어가 뭘 하고 있냐에 따라서 어쩌면요?”

모나한은 그렇게 말하며 이것도 동그라미 쳐 달라며 한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콕 찍었다.

하긴, 자신은 아이스크림은 만들지 않으니 먹고 싶을 만도 했다.

잘 보니 제빵과 관련된 음식점은 하나도 말하지 않는 게, 모나한이 얼마나 자신의 빵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로나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입꼬리를 올리곤 아이스크림 가게에 동그라미를 쳤다.

“저 간식 좀 먹어도 돼요?”

“흠, 좋아요.”

그리고 모나한의 간식 타령에 훌쩍 넘어가 줬다.

평소라면 샘플로 만들어 놓는 빵들을 와구와구 먹어 버려서 조금만 먹으라고 타박하고는 했는데,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까.

사실 모나한이 자신의 기분을 잘 눈치채곤 기분 좋을 때만 물어보는 것 같기는 했지만.

자신도 그가 먹고 싶다고 할 줄 알고 더 많이 만들기도 하니까 쌤쌤이라고 치자.

로나는 모나한에게 샘플로 만들어 놓은 버터 쿠키를 넘겨주었다.

모나한은 어느새 부엌에서 가져온 새하얀 그릇에 로나가 넘겨준 버터 쿠키를 담았다.

네모나고 뽀얀 노란색의 쿠키들이 차곡차곡 쌓아 올려졌다.

“로나 씨도 드실래요?”

“아뇨. 전 괜찮아요. 잡지나 더 볼래요.”

“좋아요.”

다른 거는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하는 주제에 간식과 관련되면 두 번 물어보지 않는 모나한은 로나의 거절에 바로 대답하고는 쿠키를 입으로 가져갔다.

바로 옆에서 쿠키가 바스락거리며 입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기분 좋게 귓가에 울렸다.

모나한의 감탄사도 같이.

“잘 만들었죠?”

“오, 언제나 잘 만드시죠. 절 지배하고 계시잖아요.”

“제가 모나한의 위를 지배했죠.”

“혀하고 코도요.”

“위장의 지배자죠.”

“결국엔 제 마음도 가져가셨죠.”

“흐음. 잘생겼으니까 특별히 받아 가도록 하죠.”

로나와 모나한이 잡지를 보며 아옹다옹 농담을 나누고 있는데, ‘딸랑-’ 하며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로나는 잡지에 동그라미를 치려던 손을 멈추고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잡지를 보고 있던 모나한이 어느새 사라져 문에 등을 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 해요?”

로나는 모나한이 하는 이상한 짓에 황당해하며 물었지만, 모나한은 예쁘게 방긋 웃기만 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상한 게 들어오려고 해서요.”

“이상한 거요?”

로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등 뒤의 살짝 열린 문 틈을 봐 보려고 했지만, 모나한의 등이 생각보다 넓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겨우 보이는 거라고는 어깨 위의 문이 덜컹거리는 것 정도?

모나한은 로나의 의아하다는 얼굴을 보고 어떻게 설명할지 망설이다가 매우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 음, 벌레?”

“누가 벌레라는 거야!”

그리고 모나한이 대답하자마자, 그의 등 뒤에 살짝 열린 틈에서 고혹적인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한 번이라도 들으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유혹적인 목소리.

“모틸라?”

“벌레입니다.”

“나처럼 예쁜 벌레 본 적 있어?! 빨리 안 비켜!? 이 힘만 무식하게 센 새끼!”

“하하하. 벌레가 바스락거리는 중이에요. 즉, 역겨운 소리가 들린다는 거죠. 무시하세요.”

“이익! 문을 부술 수도 없고! 거기, 뭐지. 이름도 모르잖아. 빵집 주인 씨! 얘 좀 말려 봐요!”

“이름도 모르는데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빨리 저기 어디 동굴 속 같은 데 가서 뒈지십시오.”

“얘는 소름 돋게 존댓말을 왜 하는 거야!? 드디어 미쳤어!? 드디어 머리가 돌아 버렸구나!”

뭐지, 저거?

고혹적이거나 유혹적인 뱀파이어는 어디 가고, 개그?

“사과하러 왔어! 사과하러 왔다고!”

“쳇.”

모나한은 그제야 문에서 몸을 뗐고, 씩씩거리는 모틸라가 빵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저건 뭐 하는 짓일까’ 하는 얼굴로 보고 있는 로나와 눈을 마주치곤 부끄러워하며 눈을 피했다.

“……안녕.”

그녀는 매우 부끄러워하며 손을 살짝 들었다가, 내리고, 두 손을 잡고 공손하게 섰다.

“뭐 하는 짓입니까? 징그러워라.”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모나한이 정말 징그럽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피했다.

그 모습이 꼭 예전에 사귀었다든가, 썸이 있었다거나 하는 모습이 전혀 아니라…… 뭐랄까, 현실 남매?

“로나 씨, 저는 정말 이런 벌레는 들여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로나 씨를 힘들게 한 벌레인데. 너무 징그럽지 않나요? 쫓아 보낼까요?”

모나한이 애교를 담아서 불쌍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울망거리면서 말했고.

“헐. 진심이야? 그 말투, 표정. 진심인 거야? 와, 토 나온다.”

모틸라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걸 봤다는 얼굴로 그를 피하며 웩웩거렸다.

“둘이 남매예요?”

로나는 이름도 비슷하겠다, 하는 짓도 비슷하겠다, 서로 싫어하는 것도 똑같아서 눈을 깜박거리면서 물었다.

그러고 보니 눈 색깔도 똑같았지.

헐, 설마 모틸라가 나한테 했던 짓이 남매의 연애질을 보고 놀란 여자 형제의 행동!?

그런 로나의 질문에 모나한과 모틸라가 얼굴 근육을 와그작 찡그렸다.

생각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싫다는 표정이었다.

“미쳤습니까? 이런 여자랑 남매이게? 피가 통했다고 생각만 해도…… 하, 그만 죽고 싶어졌다.”

“왜 네가 더 싫어해!? 내가 더 싫어해야지! 저기, 얘. 그런 끔찍한 소리는 입 밖에 내면 안 돼. 그건 욕보다 더 심한 말이야.”

“아, 친구라고 했죠?”

로나가 끄덕이며 말하자 모나한이 깜짝 놀라 물었다.

“네? 친구요? 너 설마 나랑 친구라고 말하면서 다니니? 와-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안 하거든? 평소엔 너 이야기 털끝만큼도 안 하거든? 로나 씨한테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로나 씨? 잠깐. 너 이름도 모른다며? 거짓말한 거냐?”

“네가 귀여운 척하면서 말했잖아, 이 새끼야!”

뭐지. 둘 다 반성의 벽으로 보내고 싶어졌다.

로나는 뭔가 모틸라의 이미지가 와장창 깨지는 것을 느꼈다.

모틸라에게 납치되었을 때는 전혀 믿기지 않던 모나한의 친구라는 말이 갑자기 엄청나게 믿음이 간다.

하는 짓이 매우 똑같아.

그녀는 옥신각신하는 둘을 멍하니 보다가 그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계산대를 땅땅 쳤다.

“자자, 여러분? 그만 싸워요. 모나한, 착하죠?”

“저기, 얘가 그런 말을 들으면 모나한이 아니지. 애가 얼마나 말을-”

“네. 그만둘게요.”

“듣네?!”

모나한은 세상 충격받았다는 얼굴의 모틸라를 놔두고 종종 걸어가 로나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녀의 머리 위에 제 볼을 비비적거렸다.

그리고 모틸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보았다는 얼굴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너 연애하면 그렇게 되는구나…… 좀 무섭다…….”

“제가 어떻게 연애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어어. 상관없지. 상관있어도 없게 만들고 싶다.”

로나는 그런 모나한을 가볍게 떼어 내고는, 모틸라를 티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리고 접시에 이것저것 빵을 올리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모틸라의 반대 자리에 앉았다가, 뭐가 불안한지 앉지도 않고 제 뒤에 서 있는 모나한을 돌아보았다.

갑자기 이 둘을 붙여 놓으면 싸우느라 대화의 진행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로나는 우선 모나한을 떼어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려는 모나한에게 말했다.

“가서 커피 타 와요.”

“……네에.”

모나한은 얌전히 부엌 쪽으로 사라지면서도,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힐끔거렸다.

그리고 모틸라는 “사랑…… 무섭네…….”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로나는 모나한이 무슨 짓을 했는지 평소보다 몇 배는 빠르게 타 온 커피를 받고, 모나한이 먹던 간식을 넘겨주면서 2층을 가리켰다.

커피를 이렇게 빨리 타 오는 것을 보니 차라리 2층으로 보내는 게 낫겠다 싶었다.

“저기 가 있어요.”

“네? 하지만-”

“저기 가 있어요.”

“제가 같이 있는 게 좋지-”

“가 있어요.”

“……네에.”

모나한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터덜터덜 걸어서 2층으로 올라갔고, 모틸라는 “이제 끔찍해…….” 같은 말이나 중얼거리고 있었다.

로나는 모나한이 완전히 2층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를 감시하다가,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몸을 돌려 앉아 있는 모틸라를 보았다.

모틸라는 매우 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진지하게 사과의 말을 꺼내기에는 방금까지 모나한과 싸우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그녀는 어색한 모습으로 자신의 풀어진 검은색 머리카락 끝을 몇 번 만지작거리고, 몇 번 입을 열었다 닫았다.

어떠한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것 같기도 했고, 정리한 이야기들을 차마 뱉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으…… 안녕…… 하세요?”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모나한과 친구라고 하실 정도면 오래 사셨을 거니까요.”

“으음…… 그렇긴 하지.”

이제 와서 말을 높이는 것도 이상하긴 하고.

모틸라는 올려놓은 손끝의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말했다.

그런 모틸라는 얼굴은 축제 날 창문 옆, 밖의 등불 빛에 흔들거리던 고혹적이고 우아한 얼굴 그대로였다.

그러나 묘하게 순해 보이는 표정과 창문 가득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을 담은 얼굴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다.

모틸라의 볼에서 햇살이 부드럽게 반짝거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