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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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너무 행복해 보여서 재수 없다는 게 이런 건가?

로나는 모나한의 헤실거리는 얼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평소에도 잘생긴 얼굴이긴 했는데, 오늘은 뭔가 빛이 반짝반짝하면서, ‘세상에서 제가 제일 행복해요’라는 얼굴을 하고 있다.

가끔 저 얼굴을 보면서 잘생겼다. 그러므로 재수 없다. 같은 생각을 하고 했는데.

오늘은 행복해 보인다, 그러므로 재수 없다. 같은 생각이 든다.

“로나 씨이-”

“뭐야, 목소리 왜 그래.”

“흐흐흐.”

“뭐야, 웃는 거 왜 그래.”

뭐 잘못 먹었나? 아니, 잘못 먹였나?

“뭐 잘못 먹었어요?”

“저요? 제가 먹은 거라면-”

사랑?

모나한이 찡긋- 윙크를 하며 말했다.

“미, 미쳤나 봐. 모나한 저기 반성의 벽에 가서 좀 진정하고 와요.”

“반성의 벽 싫어요.”

“아들, 착하지?”

“아들 아닌데요. 남편인데요.”

“남편, 착하지?”

“흠.”

모나한은 남편이란 말에 반성의 벽 쪽으로 가다가 돌아와서 로나의 옆에 다시 붙었다.

“뭐야, 착한 남편 어디 갔어?”

“착한 남편은 부인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네?”

“네?”

“네?”

로나와 모나한은 서로 모른 척하며 “네?”라고 말하다가 낄낄거렸다.

뭔진 모르겠지만 모나한이 즐거워 보이니 됐지, 뭐.

“로나 씨, 뱀파이어 됩시다.”

아, 그것 때문에 즐거웠냐?

모나한 나 닮아 가는 거 같은데.

사람이, 아니, 뱀파이어가 되게 직접적이 됐어.

“제가 고민을 해 봤는데요.”

“네에.”

“어젯밤에 로나 씨 방에 몰래 들어가서 로나 씨를 보면서 고민을 했는데요.”

“네? 제 방에요?”

“제가 로나 씨를 너무 사랑하더라고요.”

“저기요? 몰래요?”

“그래서 평생 같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아니, 저기. 불법 침입자 씨.”

“참고로 이거 프러포즈 아닙니다. 프러포즈는 나중에 정식으로 할 거예요.”

뭐지? 이 사람? 엄청 뻔뻔해!

“걱정 마세요. 잠꼬대도 로나 씨다웠으니까.”

“저 잠꼬대 했어요?”

“정자세로 자면서 입술 몇 번 오물거리고 끝났어요. 아쉬웠죠.”

“아뇨. 아쉽지 않은데요.”

“아쉬웠어요.”

모나한이 슬프다는 얼굴을 하고 한숨 쉬었다.

원래 뻔뻔한 작자인 건 알고 있었지만, 점점 뻔뻔함이 늘고 있어!

“그런 식으로 나오면 저도 모나한 방에 몰래 들어갈 거예요?”

“환영합니다.”

“아, 젠장.”

“어서 오세요.”

“아우! 말실수예요, 말실수!”

“실수가 아니라 사실로 만들면 어떨까요, 우리? 모양도 비슷한데.”

로나는 모나한의 말에 험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경고했다.

반성의 벽으로 가게 될 거다, 모나한.

그러나 사랑에 눈이 먼 모나한에겐 통하지 않았다.

“어차피 뱀파이어로 만들려면 오늘 밤을 같이 보내야 하는걸요.”

“……제가 아는 방법이랑 많이 다른가요?”

“아는 방법요?”

“목을 무는 거요.”

“그거 맞는데요, 로나. 무슨 생각한 거예요? 야한 생각? 꺄아!”

“같이 밤을 보내야 한다면서요!”

“물리면 이틀 정도 아프다고 알고 있어요. 아픈데 제가 계속 같이 있어야죠. 그럼 같이 밤을 보내야 하고요.”

“진작 그렇게 말했어야죠! 아니, 잠깐. 이틀요?”

“네, 이틀요.”

“오늘 월요일이잖아요.”

“그렇죠.”

“그럼 오늘 물면, 월, 화, 수요일까지 아프다는 건가요? 이틀 정도라고 했으니까 넉넉히 수요일까진 아프겠네요?”

“어, 네. 그렇죠?”

“그럼 수요일 장사를 못 하게 되잖아요!”

“……로나 씨. 뱀파이어가 되는데 장사가 그렇게 중요해요?”

“당연하죠! 뱀파이어가 되는 건 한순간이지만 장사는 평생 하는 거라고요!”

모나한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로나를 바라보았지만, 로나는 “다음 주 일요일 밤에 물기로 해요, 그럼 수요일 장사를 할 수 있을 거야.”라며 손이나 씻을 뿐이었다.

“장사밖에 모르는 바보…….”

“뭐라고요!?”

“로나 씨 귀엽다고요.”

“알아요. 나, 귀엽다. 로나, 귀엽다.”

로나가 언제가 모나한의 강요에 했던 말을 콧노래로까지 만들면서 불러 댔다.

모나한은 그런 로나 뒤를 졸졸 따라가다가 문득, 이게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것 말이다.

귀여운 뒷머리와 흔들리는 땋은 머리, 옆머리 사이로 잠깐 보이는 둥근 볼이라든지, 고개를 숙이면 보이는 뒷덜미, 열심히 움직이는 팔 같은 거.

여기저기 종종종 걸어 다니는 발걸음 같은 거.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귀여울 수 있지?

“모나한 이상한 생각 하죠? 표정이 이상한데?”

“로나 씨 생각 했는데요.”

“아닌데, 무슨 이런, 이런- 헤벌쭉- 한?”

로나는 모나한의 표정을 따라 하려다가 실패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것도 좋다.

내 표정 따라 하려고 하다가 실패하는 거.

어떻게 한 번을 성공하지를 못하지?

귀여워라, 귀여워.

“귀여워.”

“아, 왜 이래. 달라붙지 좀 마요! 요리하잖아요!”

“로나, 귀여워.”

“반성의 벽! 반성의 벽!”

“귀여워, 로나.”

아쉽게도 모나한. 위대한 뱀파이어, 순혈에 가까운 자, 오래되고 집요한 미식가에게 반성의 벽은 통하지 않았다.

* * *

로나와 모나한은 하루 장사를 마치고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모나한은 바닥의 먼지들을 밀걸레로 청소 중이었고, 로나는 창문가를 걸레로 한번 닦아 내고 있었다.

밤이 오고, 가게 바로 앞에 있는 가로등의 빛이 넘실대며 창문 안으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곧 비가 올 모양인지 옅게 비 냄새가 맡아졌다.

로나는 그 냄새를 맡다가 갑자기 생각난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고갯짓에 따라 창문에 비치는 로나의 얼굴 또한 고개를 움직였다.

그녀는 전생에 수없이 보았던 여러 가지 뱀파이어물들을 떠올렸다.

물론 그 뱀파이어와 이 세계의 뱀파이어는 다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슷한 점이 한두 군데는 있었다.

그러면 인간이 뱀파이어로 변할 때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냄새를 더 잘 맡게 되고, 운동 신경이 확 좋아지고, 소리도 더 잘 들리는…… 몸이 초인처럼 변하는 거지.

“근데 보통 엄청 힘들어하지 않던가?”

“네?”

어느새 바닥을 다 닦았는지, 자신을 도와주려고 손걸레를 들고 온 모나한이 뒤에서 물었다.

로나는 모나한을 뒤돌아보면서 방금 생각난 의문을 물어보기로 했다.

“인간이 뱀파이어로 변하면 그냥 확 변하게 되는 건가요?”

“으음…….”

“아니면 막 시각이랑 후각이 예민해져서 ‘으아아악-! 힘들엉-!’ 상태가 되나요?”

“……힘들‘엉’요?”

“그러니까-”

“아니, 무슨 말인진 알아들었어요. 그냥 귀엽게 말하길래.”

“……알아들었으면 설명이나 해 줘 봐요.”

로나가 모나한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치면서 말했다.

모나한은 그런 로나를 보며 작게 웃었다가, 창문가를 닦으면서 고민했다.

자신이 처음 변했을 때는 어땠더라.

너무 오래된 데다가 그때는 그냥 다 같이 힘들었지.

실험실에 갇혀 있었던가, 묶여 있었던가?

허기는 언제나 따라오는 종류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뱀파이어로 변하던 순간은 어땠지.

그 옛날의 기억 말고 최근의 기억이라면?

“으으음…….”

“잘 모르겠어요?”

“그렇네요. 저는 다른 사람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랬다고 했죠.”

“이틀 정도 힘들다는 것 외에 뭔가 있었던가……?”

“모나한이 변했을 때는 어땠는데요?”

“너무 옛날이라 기억이 잘 안 난단 말이죠.”

“그럼 다른 뱀파이어한테 물어보면 어때요?”

모나한은 로나의 말에 반사적으로 모틸라를 떠올렸다.

그가 아는 가장 많은 인간을 뱀파이어로 만든 이는 그녀였으니까.

그러다가 그는 모틸라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었다.

모틸라가 로나에게 한 짓이 있는데, 어떻게 그녀에게 그런 걸 물어본단 말인가.

“……수도에 가 볼까요?”

“수도요?”

“보통 각 나라의 수도에는 뱀파이어들이 하나씩 있거든요. 특히 이쪽은 저희 무리의 구역이니까.”

“무리도 있어요?”

“저쪽 제국 쪽에 무리가 하나 있고, 더 위로 올라가서 추운 곳에 하나, 그리고 이 근방의 작은 왕국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땅은 저희 무리의 구역이죠.”

“오……. 생각보다 뱀파이어들이 많은가 봐요?”

“그보다는 다들 멀리 떨어져서 생활하지만 필요할 때 뭉치는 느낌?”

모나한은 그래도 각 나라의 수도마다 최소 한 명의 뱀파이어는 있을 거라고 말했다.

모두 미식가인 만큼 가장 많은 음식들이 모이는 곳에 머물게 된다고.

“그럼 한번 가서 물어보는 것도 좋겠네요. 제가 뱀파이어가 되면 모나한의 무리에 속하게 되는 거니까, 저도 가서 인사를 하는 것도 괜찮겠고요.”

“……왠지 본가에 신부를 소개하러 가는 기분.”

“뭐래니. 그럼 모나한도 우리 부모님한테 인사하러 가시든가요.”

“인사는 이미 하지 않았나요? 저희 떠나올 때 이미 신랑감으로 점찍어진 분위기였는데.”

“아…… 그렇긴 했죠.”

“저 점수 완전 잘 땄잖아요.”

“그 말 들으니까 살짝 걱정된다. 그들이 절 좋아할까요?”

“그냥 빵 쪼가리 하나 던져 줘도 노예로 삼아 달라고 할 것 같은데요.”

“음, 아, 음……. 진짜 그럴 것 같아서 무섭다.”

식욕의 노예들이 가득한 건가.

“그건 그렇고. 제 신부라는 말에 반박 안 하네요?”

“네?”

“옛날엔 애인이란 말에도 떨떠름해했으면서, 이젠 완벽히 제 신부인 거죠.”

“…….”

모나한은 로나를 놀릴 생각으로 장난기 가득한 얄미워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언제나와 같이 로나가 투덜대거나 반성의 벽으로 향하라고 소리칠 줄 알았다.

더욱 능글거리게 굴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로나는 조금 삐죽거리는 얼굴을 하긴 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아주 조금, 진짜 아아아아아아아주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헐.”

“뭐요.”

“지금 고개를 끄덕였잖아요. 그렇죠?”

“…….”

평소에는 아니라고 말할 로나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고 한 모양인데, 창문에 비쳐서 다 보이고 있었다.

흔들리는 갈색 눈동자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물거리는 입술도.

“와…….”

“……뭐요.”

“아뇨. 좀 미칠 것 같은 기분이라.”

로나는 아직도 창문에 자신의 표정이 전부 비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목소리는 담담하게 나왔지만 부끄러워하는 표정은 그대로였다.

모나한은 절대로 창문에 비친다는 말은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목소리를 더욱 감미롭게 만들며 속삭이는 듯이 말했다.

“저 지금 엄청 입 맞추고 싶은-”

“아, 여기 사탕이 거의 떨어졌네.”

“-기분이에요.”

“내일은 사탕을 만들어야겠어요. 사탕 만들어 본 적 없죠?”

“기분이라고요.”

“재료를 미리 준비해 놔야겠다. 어머나! 그거 준비하고 자려면 지금 움직여야겠다!”

“저 입 맞추고 싶어요!”

“아, 몰라요. 저리 가요.”

그러나 로나는 모나한의 감미로운 목소리 따위에는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매우 티 나는 목소리와 행동으로 “사탕이 부족해!”같은 대사나 날리며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둘이 같이 닦던 창문이 마지막 창문이었으므로 모나한도 걸레를 들고 종종거리며 로나의 뒤를 따라 걸었다.

“자기 전에 한번 합시다!”

“주어 넣어요, 주어!”

“아, 입술만 한번 붙였다 떼자고요!”

“나한테 맡겨 놓은 사람처럼 굴지 말아요!”

“맡겨 놨어요!”

“언제요?”

“평생요!”

“네에?”

“평생 맡겨 놨으니까, 저는 로나에게 언제든지 입을 맞출 권리가 있는-”

“헛소리하지 말고 설탕 포대나 들어요.”

“헛소리 아닌데요, 이건 저의 완벽한 진심-”

모나한이 로나가 가리킨 설탕 포대를 들며 말했고, 로나는 그런 모나한에게 콧방귀 뀌며 흘겨보다가 답했다.

“알았어요. 자기 전에 한 번.”

“한 번으론 부족한데요.”

“한 번 해 달라면서요.”

“많이 해 주세요.”

“뻔뻔한 거 봐.”

“그게 저의 매력이죠. 좋아하죠? 저의 뻔뻔한 부분.”

“……조용히 해요.”

“왜요? 저처럼 목소리만 들어도 두근거려요?”

“아뇨! 아니거든요!?”

“제가 목소리도 좋긴 하죠. 걱정 마세요. 이제 평생 들으실 거예요.”

“와와! 완전 지겹다!”

“애석하게도 제 목소리가 지겨워질 목소리는 아니라서요. 아주 감미롭거든요.”

“재수 없어!”

“흐음. 재수 없는 저도 좋아하시잖아요.”

“순종적인 모나한 어디 갔어!? 내 순종적인 모나한 돌려줘!”

로나가 외쳤고.

“오늘은 삐뚤어진 모나한이라서요. 흠, 버터에 고춧가루 좀 들어간 거죠.”

모나한이 답했다.

전생과 다른 빛 없는 밤하늘, 그나마 조금은 밝은 가로등, 문 닫는 가게, 환히 밝혀진 부엌.

달콤한 냄새가 가득한 설탕 포대, 와글거리며 굴러다니는 웃음.

새까만 밤이 환하게 끝나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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