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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 씨는 어디에 계십니까?”
모나한은 아실라의 공포를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은 채, 로나의 행방만을 물었다.
여전히 로나의 향기가 코끝에 맴돌았지만, 그것을 덮어 버릴 정도로 단내가 주위에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모나한은 처음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 노예 상인의 피를 봐 버린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 붉은 피를 피하지 못하고 옷에 묻혀 버린 것도.
피 한 방울만으로도 진득한 단내를 맡을 수 있는 모나한의 예민한 코는, 그의 온몸에 묻는 다량의 피 덕분에 마비된 지 오래였다.
오랜만에 눈이 뜨거워지고, 머릿속은 반대로 차가워지는 분노는 모나한의 인내심을 깎아내리기 충분했다.
그는 이미 로나 말고는 그 어떠한 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현명한 로나라면 위험하지 않은 곳에서, 아니, 위험한 곳이라도 최대한 안전한 선택지만을 골랐겠지.
자신이 올 것이라 믿고 조금이라도 덜 위험한 어딘가에서 그 어여쁜 갈색 눈동자를 데굴거리고 있을 것이다.
단단히 땋아 내린 갈색 머리카락이 조금은 풀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침의 그 귀여웠던 치맛자락에 먼지가 가득 묻어 있을지도 모르고.
모나한은 그저 로나가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최대한 빨리 그녀에게 가야 했다.
그걸 위해 공포든 유혹이든, 필요한 감정들은 전부 사용할 수 있었다.
“아실라 님, 다시 묻겠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혹하기엔 입꼬리가 조금도 올라가지 않았으므로.
“로나 씨는 어디 있지?”
모나한은 공포만을 드글거리며 쏟아 내었다.
아실라는 유리알처럼 번들거리면서도, 지독히도 차가운 눈동자를 보았다.
코끝에 피 냄새가 비리게 넘실대고, 분명히 전등 빛 아래 서 있음에도, 시야가 이상하게 어둡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받아야 했으니까.
“소중한, 사람을-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려서, 슬프, 시죠?”
그녀는 언제나 남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알았으니까.
“로나 씨는 안전해요. 제가, 제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요.”
그 말을 하면 모두 자신을 좋아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쪽 안전한 곳에 있으라고, 제가-”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구원이라고.
그렇게 말해 주니까.
“아실라 님, 절 끌어들이려 하지 마세요.”
“……네?”
그러나 모나한은 전혀, 아실라가 원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제가 바라는 말, 위로가 되는 말, 그 잠깐의 가벼운 행동으로 저를 가지려 하지 마세요.”
전혀, 아실라가 원하는 시선도 주지 않았고.
전혀, 아실라가 원하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날 구원하려고 하지 말라고. 필요 없으니까.”
그냥 그는 그렇게 말하곤, 아실라가 가리켰던 복도로 사라져 버렸다.
아실라는 멍하니 그 피에 젖은 코트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저 피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저 행동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삶의 처음으로 선명하게 와닿은 거부에 배 속이 울렁거렸다.
* * *
“괜찮으십니까, 아실라 님?”
아실라는 멍한 표정으로 모나한이 사라진 복도를 보다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질란이 아실라의 표정이 신경 쓰인다는, 걱정하는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실라는 조심스레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감정들을 찾으려 눈동자를 굴렸다.
사랑, 존경, 걱정, 애정.
그녀는 질란의 눈 안의 익숙한 감정들을 그러모아 겨우겨우 품에 안았다.
아주 조심스레 입꼬리를 올리고, 수백 번, 수천 번 지었던 표정을 한다.
“……괜찮아요.”
제 분홍색 머리카락은 살랑거리고, 하늘색 눈동자는 반짝거릴 거예요.
“다친 곳은 아무 데도 없어요.”
고생해서 조금 창백하지만, 그럼에도 예쁠 거예요.
“구해 주러 오셔서 정말, 정말-”
저는 연약하고, 지쳐 보이지만, 그럼에도 굳세고, 밝게 행동할 줄 알아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감사합니다.”
날 사랑해 주세요.
아실라는 게임과 같은 행동을 했다.
질란이 아실라를 안으려다가 피가 가득 묻은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뒷걸음질 쳤다.
그는 놀라며, 죄송하다고, 자신은 기사이며, 피를 묻히는 자라고,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냐고 말했을 때, 아실라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고, 그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게임 속 여주인공처럼, 그녀는 전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위로를 내뱉었다.
그러나 어딘가 묘하게 작위적인 행동과 아슬아슬한 표정이 함께했다.
그녀는 그것들을 말하면서도 마음속에서 중얼거리는 의문들을 떨쳐 내야 했다.
넌 정말로 이해하는 거야?
넌 정말로 무섭지 않아?
너의 입 밖으로 쏟아지는 말들이 이상할 정도로 가볍지 않아?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이 쪼그라드는 것을 느낀다.
공포를 몰랐던 뇌가 공포에 비명 지르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에 머물고 싶어서.
사랑받고, 좋아하고, 아무도 싫어하지 않는 지금 이 상태에 머물고 싶어서.
“전 전부 이해할 수 있어요. 괜찮아요.”
“아실라 님…….”
“저를 위하신 거잖아요. 전 조금도 무섭지도, 싫지도 않아요.”
“당신은 정말로-”
제 구원이십니다.
질란이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을 때, 아실라는 밝게 웃었다.
전,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어요.
전, 아무것도, 싫지, 않아요.
괜찮다.
난 그럴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는 언제나 그랬으니까.
* * *
모나한은 아실라가 가리킨 복도를 달리다가 많은 기척이 느껴지는 방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문 안의 기척들은 전부 숨을 죽이고, 최대한 기척을 줄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조금도 훈련받지 않은 몸짓들이라 오히려 부산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향이 그 안에서 흘러나왔다.
진득한 단내에 코가 마비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로나의 가까이에 오니 그녀의 향만 온 주위에 가득한 것 같았다.
모나한은 급히 방문을 열려다가 흠칫- 몸을 굳혔다.
문의 손잡이에 올라간 자신의 창백한 손은 스스로 놀랄 정도로 붉은색이 가득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붉은 피가 가득 묻은 손과 연갈색 코트 끝단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는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모나한은 급히 연갈색 코트를 벗었다.
다행히도 코트가 막아 주었는지 안의 셔츠는 아침 그대로 새하얀 색이었다.
슬랙스 바지에는 피가 튀었던 것 같지만, 검은색이라 잘 티가 나지 않았다.
어두운 주황색 조명이라 더더욱 보이지 않을 거라고 모나한은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그는 제 옷들을 둘러보다가 복도에 찍힌 붉은 발자국을 본다.
핏자국이 말라붙기 시작해서 거뭇한 빛깔이 진득이 돌기 시작하는 발자국.
모나한은 자신도 모르게 신발 밑창을 바닥에 비볐다.
낡은 나무 바닥 위의 먼지가 피와 같이 뭉개져 그의 살육을 더욱 적나라하게 표현하기만 하였다.
모나한은 짙은 한숨을 아슬하게 내뱉고는, 그나마 깨끗한 코트 안쪽 옷감에 제 손의 피와 신발에 튄 피를 닦아 내었다.
신발은 그럭저럭 닦여 나갔지만, 손은 달랐다.
피가 진득하게 자국을 남겼다.
그의 창백한 손에 붉은색이 가득히 묻어 지워지지 않았다.
낡은 나무 바닥 위의 먼지랑 뒤섞인 피들과 제 손에 묻은 피들이 다를 게 무언가.
모나한은 마치 그의 끔찍한 속을 표현하는 것 같아 입가를 비죽거리며 올리려고 했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에 조용히 눈만 한 번 감았다가 떴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다가 코트를 복도 구석에 던져 버렸다.
검붉은색이 가득한 연갈색 코트가 엉망진창으로 복도 어둠 사이에 굴러떨어진다.
모나한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옷에 닦아 더 엉망진창으로 붉어진 손이 손잡이를 잡는 것을 본다.
결국, 힘을 주고 문고리를 돌리는 것도, 잠겨 있는 문고리를 부수는 것도, 천천히 문이 열리는 것도.
문 안의 방에는 로나와 비슷한 갈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여자들이 많았다.
갈색은 그만큼 흔한 색이었으므로.
그러나 모나한은 방문을 여는 그 순간, 낡은 전등의 흐릿한 주황빛 밑에 눈을 주었던 그 순간.
그는 그 안에서 한 번에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갈색을 찾아낼 수 있었다.
평소보다 부스스해져 버린 땋은 머리도, 조금 더러워진 하얀 긴 팔, 붉은색 체크무늬 치마, 옆으로 매단 가방.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갈색 눈동자.
그 사랑스러운 눈동자 안의 불안이, 안도로 바뀌는 순간을 본다.
갈색 눈동자 안에 믿음과 애정이 넘실거리며 차오르는 것을, 그리하여 마침내 부드럽게 휘며 웃음으로 변하는 것을, 모나한은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모나한!”
로나가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환한 얼굴로 양팔을 벌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모나한은 반사적으로 튀어 나가 그녀를 안으려다가, 움찔 멈춰 서며 손을 뒤로 감췄다.
“뭐예요, 왜 뒷짐 지고 있어요?”
로나의 평소와 같은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떨리면서 흘렀다.
평범한 로나라면 이 상황이 무섭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도 가장 현명한 선택을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녀는 가장 평범한 생활을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모나한은 자신이 한 모든 일들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로나가 알게 되면 무서워하게 될 일들.
상황을, 사람을, 결국엔 자신을 무서워하게 될, 새빨갛고 진득한 나쁜 짓들.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자신을 무서워하게 될 일들.
그래서 모나한은 잘못을 저지르고 애교 부리는 여우 같은 익숙한 표정을 꾸미며, 멀쩡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음- 나쁜 짓을 조금, 했거든요.”
그러나 막상 밖으로 나온 그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고, 낯설 정도로 불안이 가득했다.
모나한은 어쩔 줄 몰라 등 뒤에 있는 손을 움찔거렸다.
로나는 그 불안이 서린 선홍색 눈동자를 보았다.
자신을 여기에 두고 간 망할 뱀파이어와 똑같은 선홍색.
하지만 그 안에 든 감정은 전혀 달랐다.
따듯하고, 부드럽고, 자신 때문에 흔들리는, 그래서 너무나 사랑스러운.
“내가 나쁜 짓 하고 오면 뭐 하라고 했죠?”
“……네?”
“빨리 예쁘게 방긋방긋 웃어요.”
모나한은 그 말에 반사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가, 다시 내리고, 다시 올렸다가, 고개를 숙여 버렸다.
그는 도저히 멀쩡한 얼굴을 할 수가 없었다.
로나가 말한 대로 예쁘게 방긋방긋 웃으려는데, 눈가는 찡그려지고, 입술은 내려갔다.
이상하게도 그는 울 것만 같아서, 하나도 예쁘지 않은 엉망진창인 얼굴이라서.
모나한은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로나는 그 행동을 보다가, 모나한의 허리에 손을 감고 속삭였다.
“예쁜 짓 하라 그랬더니, 귀여운 짓 하는 거예요?”
로나가 모나한의 표정을 보려 그를 안은 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자, 모나한이 얼굴을 피하면서 말했다.
“잠깐만 기다릴래요? 잠시만요.”
“왜요?”
“제가 진짜 이상한 얼굴이라서 그래요.”
“으음.”
“조금만 시간을 줄래요?”
로나는 모나한이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리려다가, 손에 묻은 피에 다시 내려 버리고.
그걸 보여 주고 말았다는 것에 불안해하다가, 결국 다시 고개를 돌려 피하는 것까지 모두 바라보았다.
“싫어요.”
그녀는 그것들은 전부 보며 속삭였다.
“보여 주세요, 네?”
아주 약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모나한은 할 수 없다는 듯이 로나와 눈을 마주쳤다.
웃으려다 실패한 이상한 표정.
찡그린 미간과 일렁이는 눈동자, 올라가다가 실패한 입술.
로나는 그 일렁이는 눈동자를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무서웠어요.”
“저도요.”
모나한이 속삭였고, 로나가 대답했다.
“보고 싶었어요.”
“저도요.”
로나가 속삭였고, 모나한이 대답했다.
어느새 로나의 눈동자도 모나한과 똑같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모나한은 로나의 일렁거리는 갈색 눈을 맞추고, 등 뒤에 있던 손을 천천히 움직여, 로나를 끌어안았다.
그 행동조차 피 묻은 손이 닿지 않으려 애쓰고 있어, 로나는 조금 웃고 말았다.
“바보. 이미 피 냄새 완전 나거든요?”
“……떨어질까요?”
“나 피 냄새 많이 맡아 봤어요. 시골에서 내가 꺾은 닭 목만 몇십 개는 될 텐데.”
“이런, 무서운 사람이었네요.”
“떨어질까요?”
“……아니요.”
모나한이 겨우 진정했던 목소리를 다시 떨며 말했다.
그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저 목소리 떨리잖아요. 그만 감동시킬래요?”
“알았어요. 조용히 있을게요.”
“좋아요.”
“네, 좋아요.”
“조용히 있는다면서요.”
“설마 대답도 하지 말란 거예요?”
“전 로나 씨 목소리만 들어도 감동받거든요.”
그 말에 로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맘에 안 든다는 표시로 입꼬리를 쭉 내렸다.
모나한은 내려간 입꼬리와 로나의 우글거리는 턱을 보고 웃어 버리고 말았다.
조금도 어색하지도, 이상하지도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