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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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아실라는 거친 숨을 애써 작게 내쉬며 복도를 달렸다.

결심과 자신감으로 단단했던 눈동자는 어디 가고, 그녀는 불안과 의심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상했다.

자신의 삶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방에 있었던 이들은 자신을 찬양하고, 자신을 믿으면서 따라와야 했다.

물론 무서운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다 구해 줄 것이다.

모든 일이 끝나면 ‘그때 아실라 님 말을 듣길 잘했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언제나 모든 일들은 그렇게 흘러갔다.

마치 모든 사람들을 전부 구원하고 말 것이라는 것처럼.

세상에 너를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처럼.

그런데, 그런데 왜.

자신은 혼자 여기를 달리고 있지?

왜 지금 내가 혼자이지?

왜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아무도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지?

무서워.

“아냐. 아냐. 난 무섭지 않아. 나는, 나는-”

무서워.

“난 빠져나갈 거야. 보란 듯이 빠져나가서, 질란 님한테 가서 말하는 거야. 저기 납치범이 있어요.”

무서워.

“전 겨우 빠져나왔어요. 다들 겁에 질려 있어서, 저라도 어떻게든 행동해야-”

무서워.

“구해 주세요. 다른, 다른 사람들을, 저기 있는, 겁에 질린-”

무서워.

낡은 전등이 주황빛을 내며 복도에서 흔들리고, 먼지 쌓인 나무 벽이 삐걱거리고, 달리는 소리는 천둥 같고, 숨소리는 거칠고.

무서워.

생각해, 생각해, 생각해 봐.

저기에 뭐가 있을까.

모퉁이를 돌아가면.

문을 열면.

어둠 너머에.

어둠 구석에.

어디서 거친 손이 튀어나올지 모르고, 어디서 둔기가 휘둘러질지 모르는.

어둠. 어둠. 어둠.

“……무서워.”

아실라는 공포에 질려 떨었다.

어느새 그녀는 복도 한가운데에 멈춰 서 있었다.

겨우 움직인 발끝에서 끼이익거리는 소리에, 바람에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제 치마가 스치는 소리에 멈추면, 오로지 숨소리만이 거칠게 복도를 울리고.

그마저도 줄어들면- 침묵.

어디로 가야 하지?

어디로 가야 아무도 없을까.

어디로 가야 날 구해 주지?

아실라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자신이 왔던 길 외엔 안전해 보이지 않는 복도.

황색 전등 빛이 비치었다가 꺼졌다가, 침묵 속에 결국.

어둠까지 내려앉았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낡은 나무 벽을 짚었다.

오래도록 쌓인 먼지가 손끝에 걸려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진다.

그 먼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다.

앞으로 가야 했다.

사람들을 구하려면.

앞으로 가야 했다.

착한 아이가 되려면.

앞으로 가야 했다.

사랑받으려면.

그러나 아실라의 발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가 앞이 아니라, 뒤로 발을 움직였다.

먼지 쌓인 나무 바닥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발끝을 따라, 먼지가 즈윽- 하고 느리게 뭉개지고.

“아실라 님?”

침묵 속에서 가볍고 달콤한 목소리가 울렸다.

* * *

모나한은 음산하고 광기 어린 붉은빛이 안내하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이미 저 뒤 어딘가에 있을 모틸라는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후였다.

그는 그냥 로나가 보고 싶었다.

햇빛에 달아오른 나무와, 막 오븐에서 꺼낸 밀 빵 냄새가 나는 여자를.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다가도, 이내 웃어 버리고 마는 사람을.

이 거지 같은 목줄은, 상대방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지만, 정확하고 섬세한 위치까지 알려 주지 않았다.

건물 하나 정도로 위치를 좁히는 것이 전부였다.

예전에는 차라리 그 점을 이용해 제 주인을 피하곤 했었지만, 지금은…….

“모나한 씨?”

“……질란 라이언- 님이었던가요.”

“맞습니다. 어딜 그리 급히 가시는 길이십니까?”

“당신이야말로, 바빠 보이십니다만?”

모나한은 미간을 와락 찌푸리며, 안 그래도 급한 마당에 자신을 방해하는 이를 바라보았다.

“아실라 님이 사라지셔서요. 이 근방을 뒤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혹시, 모나한 씨는-”

“저는 아실라 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야말로 로나 씨가 사라져서 찾는 중입니다. 바쁘니까, 비켜 주시겠습니까?”

모나한은 질란 라이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끊어 버리며,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아실라가 납치되었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게임 속 여주인공이라 안전하게 어디선가 나타날 게 틀림없는데.

질란은 그런 모나한의 선홍색 눈동자를 보다가 등허리에서 오르는 소름에 흠칫- 몸을 떨었다.

빵집에서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날카로운 빛으로 번득이고 있었다.

부드럽고 순수해 보이던, 마치 성직자 같은 빵집 종업원은 사라지고, 잔인한 포식자가 그림자 아래 서 있었다.

모나한이 질란의 대답조차 듣지 않고 몸을 돌려 뛰쳐나가자, 라이언이 반사적으로 따라붙었다.

“무슨 짓입니까? 아실라 님을 찾으러 가신다면서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가는 길이 같을 뿐입니다.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노예 상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이용하는 창고가 그쪽일 뿐입니다.”

질란은 당신이 위험해 보인다는 말은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원래 목적을 꺼내었다.

“하…….”

그 말에 모나한은 안 그래도 찌푸렸던 미간을 더욱 찌푸리는 것을 넘어, 입술을 이죽거렸다.

제 감은 아실라와 로나가 같이 있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망할 게임은 제 주인을 가만둘 생각이 없는지, 어떻게 해서든 아실라와 엮을 모양이었다.

질란 라이언은 모나한의 빠른 발을 실력 좋게 따라붙었다.

모나한은 뒤에서 가까스로 따라오는 그를 한번 힐끗 보고는 그대로 달렸다.

기사, 기사 하더니만.

하긴, 여주인공의 어장 속 물고기라면 평범한 재능은 아니겠지.

자신은 이 골목의 길을 잘 몰랐고, 질란은 순찰하며 익숙해진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둘은, 거의 비슷하게 노예 상인의 창고에 도착했다.

모나한은 그 안에서 옅게 풍겨 오는 밀 빵의 냄새를 충분히 맡을 수 있었다.

그는 조금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문을 발로 차, 부숴 열어 버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비명 소리가 저 안까지 들리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 * *

질란은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모나한이 지나간 길을 뒤따랐다.

모나한의 손속이 잔인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빵집의 종업원이라고 했던 사내는, 조금의 낭비도 없이 최적의 동선으로 다른 이들을 제압했다.

자신의 눈을 신경 써서 검을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검은 흉포하게 움직였다.

“……당신 절대, 빵집의 종업원 따위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예전에 사냥꾼이었습니다.”

그는 그 이상의 변명은 귀찮다는 듯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피가 낭자한 바닥을 걸어갔다.

전부 적의 몸에서 흐른 피였다.

한 명도 죽은 이가 없어서, 더욱 두려울 정도였다.

기사와 사냥꾼의 행동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왔었지만, 오늘처럼 피부에 와닿는 일은 없었다.

질란은 어떻게 괴수를 상대하는 것과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같냐는 말을 하려다가, 모나한의 스산한 분위기에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아실라 님을 찾고 나서 그 점에 대해 캐물어야겠다는 생각은, 모나한의 선홍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죠. 그렇잖아요?”

언젠가 모나한이 로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모틸라가 로나에게 시도했던 것처럼.

묘한 음으로, 뇌를 초콜릿으로 절여 버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그러나 그때와는 다르게 사무적으로.

“의심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너의 아실라라도 찾고 싶다면, 뇌를 텅 비워 버리자.”

모나한은 질란의 남색 눈동자에 자신의 선홍색 눈동자를 마주치며, 그 눈을 넘어, 뇌까지 파고들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바쁘니까, 응? 나에 대한 질문 같은 건 없애 버리라고. 꼬마 기사님.”

그리고, 공포에 물든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질란의 눈동자가 멍해지자, 모나한은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로나를 찾으러 움직였다.

로나처럼 온 인생을 사로잡으려는 것도 아니고, 의심을 없애는 것 정도에는 긴 문장도 필요하지 않았다.

모나한은 이젠 의심 없이 뒤를 따라오는 질란을 돌아보지도 않고, 어두운 방과 어두운 복도를 움직이고, 움직였다.

노예 상인이 아닌, 다른 이가 나올 때까지.

* * *

깜박.

잠깐 꺼졌던 전등이 다시 켜져서 아실라는 어둠 속에 있는 회색 머리카락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평소와 같은 표정이었는데, 빵집에서 보던 것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순수하고 부드럽고, 하지만 묘하게 기척이 없는 모습.

평화로워 보이는 그 모습에 아실라는 자신이 뒤로 물러나려 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환하게 얼굴을 밝히며 그에게 다가갔다.

빠르게 움직였던 다리는 그의 모습이 보일수록 점점 속도를 줄였고, 그가 전부 눈에 들어왔을 때는 그대로 멈춰 섰다.

“……모나한 씨?”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의 손은 한 사내의 목덜미를 잡고 있었다.

사내는 죽은 듯 축 늘어져, 모나한의 손아귀 힘에 의해 강제로 들려 있었다.

바닥을 향해 매달려 있는 사내의 입에서 뚝, 뚝, 하고 핏방울이 느리게 떨어지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그 붉은색이 선명했다.

“죽, 죽인-”

“아뇨.”

“……네?”

“안 죽었다고요. 그냥 조금-”

모나한이 데굴, 선홍색 눈동자를 굴렸다.

“조금 아파하실 뿐이에요.”

그리고 생긋- 웃었다.

깔끔하고, 가벼운 웃음이 그의 얼굴에 그리듯이 걸쳐졌다.

아실라는 그제야 모나한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 가벼운 웃음이 걸린 얼굴을 보고 있던 아실라의 눈이 천천히 아래를 향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그의 연갈색 코트에 진득하게 튀어 있는 핏자국.

묘하게 젖어 있는 바짓단.

신발 위에 후드득 떨어져 있는 피.

그 뒤로 먼지와 피가 섞여서 뭉개진 이상한 덩어리들과 새빨간 발자국.

인간의 몸에서 막 흘러나온 것이 분명한 선명한 붉은색.

아실라는 그 끔찍한 것들을 멍하니 보다가 다시 천천히 눈을 올려 모나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붉고 무서운 것들은 억지로 머리 한구석에 치워 버리고, 깨끗하고, 순수하고, 가볍고, 아름다운 얼굴만을 보았다.

그녀는 그 얼굴만 보며 지금까지 계속해 왔던, 당연한 것들을 했다.

아실라는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라서, 사랑받는 게 당연해서.

덜덜 떨리는 손을 꼭 쥐어, 겁먹지 않은 것처럼.

불안에 담긴 눈동자를 억지로 휘고, 입꼬리를 올려서.

예쁘고, 사랑스럽고, 애교 담긴 미소를 지어서.

“대단해요! 모나한 씨는 참 강하시군요!”

그러나 입꼬리는 부들거리고, 목소리는 떨렸기에.

“못 하겠네.”

“네, 네?”

“착한 척, 멋있는 척, 해를 입히지 않을 것처럼 구는 거. 옛날엔 참 잘했는데.”

“저, 저…… 구해 주시기 위해 오신 거죠? 그러니까,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

“신기하다니까. 진짜를 알아 버리면, 가짜는 빛이 바래 버리나? 아니면, 이젠 남을 유혹하기 싫어진 건가.”

“구해 주세요. 그러니까-”

저를.

아실라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가 자신을 구하러 온 게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남을 구하러 온 게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나는 세상 모두에게 사랑받아 마땅하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모나한 씨, 혼자 가지 마십시오!”

흠칫.

아실라는 누군가 모나한을 부르는 목소리에 생각하던 것을 그만두고 앞을 바라보았다.

많이 들었던 목소리라서 아실라는 겨우 덜덜 떨리는 몸을 멈출 수 있었다.

“질란, 질란 님-!”

“아실라 님! 여기 계셨군요. 다행입니다.”

“질란 님!”

저기, 뒤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요!

“절 구해 주세요.”

제가 그들을 위해 탈출하려고 했어요!

“저는, 저는-”

다들 겁에 질려서 덜덜 떨고 있어요!

“무서워요.”

날 착한 아이로 보는 시선이 아무도 없었어.

날 사랑스러운 아이로 보는 시선이 아무도 없었어.

날 구원자로 보는 시선, 존경하는 시선, 흠모하는 시선-.

저기선 아무도 절 그렇게 보지 않아요.

그러면 저는 도대체, 어떻게 행동해야 하죠?

아실라는 지금 상황이 무서운지,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무서운지 도저히 구별할 수가 없었다.

공포만이 드글거리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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