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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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모나한.”

“……모틸라.”

“얼굴이 환해 보이네. 주름 하나도 없고. 반짝반짝 빛나.”

어쩜. 피부도 좋아라.

모틸라가 비웃으며 중얼거렸다.

모나한이 계약의 흔적을 쫓아 막 골목길로 들어섰을 때, 그림자 아래서 모틸라가 인사를 건넸다.

진득하게 느껴지는 피 냄새.

인간의 달콤함도, 짐승의 짭조름한 냄새도 아닌.

녹슨 철과 비슷한 비릿하고 낮게 깔리는 피 냄새.

모나한은 숨을 길게 들이쉬며, 그 비릿한 냄새 사이에서 밀 빵의 향을 찾으려 애썼다.

그 향이 조금이라도 난다면, 로나가 다쳤다는 뜻이었으니.

그러나 모틸라에게서 나는 것은 동족의 역겨운 피 냄새뿐이었고, 그 말은 적어도 로나가 다치지는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는 아까보다는 아주 조금 여유 있어졌지만, 얼굴은 그대로 딱딱히 굳힌 채 모틸라를 보았다.

비릿한 피 냄새만을 풍기는 뱀파이어와 뱀파이어가 골목 그림자 아래 어두운 곳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로나는 어디 두고, 나를 찾아온 거지?”

“아, 그 머리 텅 빈 애 말이야?”

모틸라가 노래하는 듯이 말했다.

그것들은 그들이 아주 잘하는 것들이다.

노래하듯이, 유혹하듯이-.

“네 얼굴이 너무 바보 같아서, 얼마나 화려한 인간인가 했더니, 그냥 겁먹어서 덜덜 떨던데?”

“……너-”

“아- 무 짓도 안 했다고. 그냥 여기 어딘가, 저기 어딘가. 두고 왔을 뿐이야.”

모틸라가 장난스럽게 검지를 들고, 오른쪽 왼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모나한의 계약의 증표는 정확히 그녀의 등 뒤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건 모틸라의 검지는 완전히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그녀는 그 가증스러운 몸짓과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 그대로 빙글거리면서 물었다.

“오랫만에 봤는데, 좀 더 살갑게 대해 주는 게 어때?”

“그러길 바랐다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말았어야지.”

“흐으응……. 그냥 투정 좀 부린다고 넘아가 줄 수도 있잖아?”

“이상하네. 난 한 번도 그런 걸 받아 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모나한이 목소리에는 경멸이 가득했으나, 그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는 채였다.

누구라도 겁을 먹을 만큼의 진득한 살기와 위험한 분위기가 그의 몸 주위에 그득이며 기어 다니고 있었다.

“왜? 그 애한텐 아주 잘하고 있던 것 같던데. 표정이 아주 토 나올 정도던걸? 난 사랑에 빠졌어요오- 어쩌구, 저쩌구.”

“네가 무슨 상관이야.”

“상관해야지. 상관있잖아. 우린 무려 ‘동족’인데. 같은 실험실에서 자란 친구. 아니야?”

“글쎄. 그걸 ‘자랐다’라고 할 수 있나.”

“뭐, ‘버텼다’라고 해도 되고.”

그러나 모틸라는 모나한의 모습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장난치듯이 말을 이었다.

그녀는 이 대화가 매우 즐거운 것 같기도 했고, 반대로 매우 짜증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모나한의 등 뒤에선 여전히 시끌벅적한 축제의 소음과 웃는 소리와 축제의 등불이 화려하게 일렁이고 있었지만, 그들이 서 있는 골목의 어둠은 그저 내려앉아 진득하니 기어 다녔다.

그 어둠 안에 화려한 치마와 단정한 코트를 입은 이들은 그저 서 있는 것뿐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어둠과 섞여 있기도 했다.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마. 정말 그 애한테 아무 짓도 안 했어. 기껏해야 어깨 좀 만졌을 뿐이라고. 그보다는 그냥 조금 충고하러 왔을 뿐이야.”

“충고?”

“그 애를 동족으로 만들려면 그만두라고.”

“방금도 말했지만, 네가 무슨 상관이야.”

모나한이 짙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모틸라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말만 내뱉었다.

“설마 ‘뱀파이어로 만들면 제 힘이 반으로 줄어요!’같은 헛소리를 한 건 아니겠지.”

“그건 네가 잘하는 말이겠지.”

“우리가 잘하는 말이지.”

모나한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

로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사실 그건 많은 뱀파이어들이 하는 거짓말이었다.

먼 옛날, 사랑하는 누군가를 뱀파이어로 만든 자가 했던 거짓말이 그들 사이에서 떠돌아다니다가 정착해 버린.

뻔한 거짓말이라고 비웃던 자들도 결국엔 모두 입에 담았던.

“솔직히 말하지 그래? 우리의 힘이 반으로 주는 건, 뱀파이어의 피가 반으로 주는 거고, 수명이 반으로 주는 거라고. 쉽게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이야.”

“쉽게 말하는군. 너야말로 그런 말을 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던가? 나야 아직 아무도 뱀파이어로 만들지 않았다지만, 너는? 이미 꽤 많은 인간을 뱀파이어로 만든 거로 아는데.”

“닥쳐!”

“오.”

그것이 그녀의 트리거 중 하나였는지, 모틸라가 방금까지의 여유 있던 모습을 던져 버리고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그 모습에 모나한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녀를 비웃었다.

회색 머리카락 사이에서 빛나는 선홍색 눈동자가 비웃음과 경멸을 담은 채 휘었다.

“자신이 해 보고 후회해서 충고하는 건가 봐? 해 보니 사랑이 아니던가?”

“그래. 그래서 하는 소리야!”

모틸라는 쇳소리를 한 번 더 내뱉고는, 모나한의 비웃음에 이를 까드득 깨물었다.

그러고는 겨우겨우 입술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의 피는 모든 이종족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피였어. 마녀와 여러 고위 족의 피들이 가장 많이, 가장 완벽하게 조합된 생명체.”

겨우 지어낸 유혹적인 목소리는 꽤나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건 조급함을 숨기려 억지로 끌어낸 가면에 지나지 않았다.

가면은 쉽게 벗겨졌고, 모틸라는 거의 소리 지르는 것과 비슷하게 말했다.

“우린 그 피가 옅어졌을 때 죽어. 이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그러니 우린 피가 옅어지는 걸 최대한 피해야 해! 그런데 그 여자에게 피를 나눠 주겠다고? 그렇게 행동했던 많은 뱀파이어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몰라? 우린 식욕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야! 사랑 같은 어리석은 감정이 아니라!”

마지막 말을 뱉을 때 즈음엔 모틸라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과 애원이 뒤섞여 울렸다.

그녀는 더 이상 동족을 잃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모나한은 그것들을 들으며 지금까지 사라졌던, 혹은 죽어 버린 동족들을 떠올렸다.

짙은 피 냄새와 동족 혐오에 싫어하면서도, 결국엔 동질감에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제는 몇 명 남아 있지도 않은 이들.

그들이 죽는 이유는 병사도 타살도 아니었다.

언제나 그들은 사랑으로 죽었다.

인간은 지독하게 유한했고, 불타올랐고, 달려 나갔다.

한때 인간이었다가, 실험체였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듯했다.

다들 그렇게 불을 사랑했다가, 재를 싫어했다가, 영생으로 만들고는 죽었다.

어찌 다들 그렇게 똑같은 이들만 모아 놓았는지.

외롭고, 외로워서, 상처 입은 것들만 모아서 영생을 주었는지.

“사랑이라는 헛소리 하지 말자. 그런 욕망으로 넘실대는 감정 따위, 식욕 앞에서 사그라들겠지. 나도 알아. 다른 모든 종족을 통틀어 인간을 볼 때 가장 사랑에 빠지기 쉽지. 왜냐하면, 그들은 마치 불 같거든! 우리와 다르게 한정된 시간 속에서 타오르는 그들을 보면 사랑에 빠지곤 하지! 내 시간 또한 그들처럼 빨라지는 걸 원해서!”

지금까지 계속, 그렇지 않았냐고.

네가 사랑했던 사람들, 너가 원했던 시간들, 네가 원했던 것들은 모두 강렬하고, 불타오르고, 뜨거웠지만.

“하지만 모나한. 그건 필멸을 사랑하는 거야! 불을 사랑하는 거라고! 그녀가 뱀파이어가 되는 순간 사랑은 재처럼 사그라들어 버릴 거다!”

결국엔 재가 되어 남은 건 그을음밖에 없었노라고.

유혹이 아닌 비명으로 가득한 목소리를 들으며 모나한은 멍하니 떠올렸다.

로나의 전에, 그전에 사랑했던 모든 이들.

어떤 여인은 불처럼 타올랐고, 어떤 여인은 거세게 움직였었지.

어느 누구도 평범하지 않았었다.

불행한 과거를 잊으려 하다 그러지 못했던 것처럼.

그런 것들을 없애고, 무너트리던 이들에게 사랑에 빠졌다.

달콤한 향수 냄새, 무거운 화장, 화려한 옷들 사이에서 완벽하게 웃다가도 그것들을 무너트리고 크게 웃는 얼굴들에 사랑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 재가 되어 떠나갔다.

자신은 한 번도 그들에게 영생을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가 버릴 거니까.

영생을 주어도, 영원을 주어도.

더 큰 목표를 찾아서. 더 큰불을 찾아서 가 버릴 거니까.

모나한은 이미 예전에, 아주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것없고, 상처 입고, 비명 지르고, 애원하고, 외로운지.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을 거야.”

“뭐?”

그는 마치 어떠한 진리나 예언을 읊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난 그녀가 불 같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언제나 그랬지. 그녀는 한 번도 거세게 타오른 적이 없어. 로나는 햇빛 같은 사람이야. 불타오르는 게 아니라 달아오르지. 언제나.”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난 한 번도 그녀와의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 적이 없어. 느릿하고 온화하게 흘러. 오히려 식욕에 지배되었던 그 영원한 시간보다도 더 길게 느껴질 정도야. 하지만 신기하게도 지루하지도 숨 막히지도 않아.”

그건 모틸라에게 말하는 게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담아.

그 목소리는 방금 전까지의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도, 이죽거림을 담은 목소리도 아니었다.

짙게 가라앉은 목소리도 아니고, 비명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히, 조용히, 평화롭게 흘러나왔다.

“너…….”

“난 그게 좋아. 그것을 사랑해. 그 시간을 사랑한다고. 로나의 옆에 있는 게 좋아. 하루하루 비슷하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들. 새벽 공기에 일어나서 움직이는 소리. 반죽을 움켜쥐고, 밀대로 밀고. 오븐이 달아오르지.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을 맴돌기 시작하면 커피를 타는 거야.”

지금까지 로나와 함께했던, 그 많은 시간들, 대화들. 웃음들.

그에게 로나는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똑같이. 진열대를 한가득 채우고, 가게 문을 열어. 손님이 들어오고, 그녀는 카운터에서 웃지. 나는 테이블을 치울 거야.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가게 안에서 바쁘게 움직일 거라고.”

그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줄 것만 같은 사람이었고.

“한 번씩은 그녀의 옆에 가서 이야기하고, 웃고, 장난치다가 하루가 끝나. 손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가서 키득거리면서 씻고, 이불 안으로 들어갈 거야. 하루가 끝나지. 평온하고, 평화롭게.”

“무슨,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랑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리하여 그녀는 언제나 평화와, 평온이었으므로.

“피와 쾌락, 식욕과 가면 속에서 파묻혀 살던 시간들이 있지. 더 자극적인 것들만 찾아서 미친 듯이 떠돌다가 갑자기 끔찍해지면 동굴이나 지하 깊숙이 파고들어 잠자던 과거가 있어. 마치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는 듯이 반복하고 반복했지. 처음을 지우려고 발버둥 쳤어. 길바닥에서 기어가던 날들과 실험실에서 비명 지르던 날들을 보상받는 것처럼. 난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만 찾아서 떠돌아다녔어. 너의 말대로 불타는 이들만을 찾아 떠돌던 시절도 있었지.”

모나한은 어둠 속에 모틸라를 두고 뒷걸음질 쳤다.

어둠이 물러나고 축제 등불이 머리 위에서 반짝일 때까지.

제 얼굴과 몸을 비추어 주위가 환해질 때까지.

“하지만 이제 알아. 그건 내게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해. 내가 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거였어.”

그는 온몸에 빛이 가득한 채로 말했다. 단단히 서서. 단단한 얼굴로.

그리고 끝내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휘고.

그 웃는 표정이 햇살에 달아오른 나무, 오븐에 막 구워지는 밀 빵, 갈색 머리와 갈색 눈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끝내주는 빵을 만드는 여자와 꼭 닮아 있었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갔다.

그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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