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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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눈앞에 고혹적으로 생긴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검은색 곱슬머리를 허리까지 풀고, 선홍색 눈동자를 한, 그야말로 고혹적인 뱀파이어 하면 딱 떠오르는 외모였다.

그녀는 자신을 납치해 온 것과는 다르게, 저에게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고 창밖만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 모나한이 쫓아왔는지 돌아보는 거겠지.

그리고 그는 우릴 놓친 모양이고.

로나는 창문 밖을 살펴보던 얼굴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여성을 보며 온몸을 긴장시켰다.

“안녕.”

“……안녕하세요.”

자신을 납치한 여자 뱀파이어는 얼굴 뿐만아니라 몸까지 완전히 돌리며 인사했다.

로나가 그 인사에 답했을 즈음에는 우아한 몸짓으로 벽에 기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였다.

안 그래도 고혹적인 몸매가 도드라지고, 긴 다리가 우아하게 뻗었다.

“난 모나한의 친구야.”

“……네.”

로나는 모나한의 친구라는 사람이 모나한에게서 자신을 납치해 도망치기까지 하냐는 질문이 올라왔지만 내뱉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완벽한 약자였으므로.

그녀가 로나를 데리고 온 곳은 한 허름한 창고 같은 곳이었다.

판타지의 많은 클리셰가 탄생할 것 같은 곳.

즉, 인기척 없고, 조용하고, 무언가 일어나도 늦게 발견될 거 같은 곳.

“혹시 제 피를 마시고 싶으신 건가요?”

“딱히 너한테 뭘 할 생각은 없는데.”

“그렇군요.”

로나는 그녀가 자신을 내려주자마자 후다닥 도망쳐 벽에 붙였던 몸을 살짝 떼었다.

로나의 말에 모틸라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내려왔다.

자신의 피를 마시고 싶냐는 물음은, 자신이 위험한 상황인지 알려는 것과 동시에, 그녀에게 자신이 모나한과 그녀의 종족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모나한이 자신의 정채를 밝힐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알리는 것이기도 했고.

모틸라도 그걸 눈치챈 것 같긴 했지만, 그녀는 그냥 눈썹을 까딱하고 넘겨 버렸다.

마치 그것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처럼.

로나는 그런 여자 뱀파이어의 눈썹 끝을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저한테 어떤 용건이 있으신 건가요?”

“글쎄. 궁금증?”

그녀는 로나에게 궁금한 게 있다는 말을 하면서도, 관심이 없다는 듯이 손톱 끝을 틱틱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자신보다는 손톱 끝이 살짝 갈라진 것이 더 신경 쓰인다는 몸짓이었고, 그녀의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몸짓이기도 했다.

그래서 로나는 그대로 서서 가방끈을 꾸욱 잡은 채, 그녀가 자신에게 할 말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톱 끝의 갈라진 부분을 잘라 버린 그녀가 로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모나한이 바보 같은 얼굴로 딱 붙어 있길래 맛있는 피를 가졌나 했는데, 너 별로 맛있는 냄새 안 나는데? 네 냄새는 마치 평민들이나 먹는 빵 같네.”

여자 뱀파이어는 모나한과 같은 선홍색 눈동자로 로나를 쳐다보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식은땀이 날 정도로 차갑기만 했다.

무심하기보다는 자신을 싫어하는 것에 가까운 모습이어서 로나는 조용히 눈치를 보며 침묵했다.

“난 모틸라야.”

“……로나, 예요.”

“흐응-”

그녀는 마치 무언가 가늠하듯이 몇 번이고 로나의 몸을 둘러보았다.

선홍색 눈동자가 발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했다.

“모나한하고 무슨 사이니?”

그리고 여자 뱀파이어, 모틸라는 아주 우아한 말투로 그렇게 물었다.

검은색의 머리가 사르륵 흘러내리고, 새하얗다 못해 창백한 볼에 달빛이 떨어지는 아주 고혹적인 고갯짓과 함께였다.

“……계약을 했어요. 그러니까, 주인과 하수인?”

로나의 말에 모틸라는 눈을 살짝 좁히더니 곧고 아름다운 손을 들어 검지로 로나를 가리켰다.

“네가 하수인?”

“아뇨. 제가 주인.”

“어머나.”

그녀는 마치 감탄하는 듯한 추임새를 넣었지만, 그녀의 입술 위로 올라가는 비죽거리는 웃음은 분명한 비웃음이었다.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그냥 마치- 연인 같이 행동하던걸?”

“……비슷하지 않을까요.”

“으음?”

“그런 감정이 서로 오가고 있는 사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랑 모나한이요.

로나는 평소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모틸라는 다시 한번 무언가 가늠하는 눈초리로 로나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붉은색 입술이 천천히 열리며 질문을 뱉었다.

“그를 사랑하니?”

“어, 아마도요.”

“아마도?”

“아직 사랑까진 가지 않았지만, 사랑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솔직하네.”

“전 지금 상황이 꽤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솔직한 편이 도움 되지 않을까요.”

“똑똑하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고개를 조금 갸웃거렸다.

마치 이해 안 돼는 생물을 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마치 로나를 시험하는 듯히 아슬아슬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그가 널 사랑한다고 생각해?”

“모나한이요?”

“응.”

“……그도 저와 비슷한 감정이겠죠. 전 사랑이란 게 한 번에 쏟아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천천히 적시면서 깊어지는 거죠.”

“너희는 깊어지는 중이다?”

“네.”

꾸욱.

로나는 왠지 모르게 몰려오는 불안에 잡고 있던 가방끈을 더욱 세게 쥐었다.

모나한과 자신이 비슷한 감정이라고 말하던 순간부터 모틸라의 표정이 더더욱 싸늘해졌기 때문이었다.

손에 힘을 너무 주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약간의 고통이 일었다.

그러나 그건 전혀 중요한게 아니었다.

로나는 자신이 얼마나 약한 생물인지 알고 있었다.

아무리 하루 종일 반죽을 해서 보통 평민 여자들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건 보통의 여자들과 비교했을 때였다.

이 세계에 있는 수많은 괴수, 이종족, 특이한 힘을 가진 이들과 비교하면 그녀는 최약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로나는 모틸라의 기분을 최대한 거스르지 않고 싶었다.

이왕이면 최대한 길게 대화를 나눠서 모나한이 자신을 찾으러 올 시간을 벌고 싶기도 했다.

로나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모틸라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밖의 축제 등이 일렁이면서 모틸라의 고혹적인 얼굴을 비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바람이 불고 있는지, 빛도 아른거리며 저 멀리 떠났다가 돌아왔다.

그 빛 아래에서 모틸라가 나른하게 턱을 괴었다.

“불멸의 상대와 사랑을 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예전에 모나한이 자신을 종속으로 삼으려고 했을 때, 그가 내었던 목소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진득하고 끈적한 것들이 뇌를 집어삼키고, 뭉개 버린다.

모나한도 그랬다.

빛과 어둠의 대비가 잘 어울리는 이들.

귀 옆에서 간질거리며 속삭이다가, 눈치채 보면 발밑에서부터 그득대며 집어삼키는 이들.

아름답고, 야하고, 달콤해 보이면서도 위험하여, 그리하여 유혹적인 것들.

“난 불가능하다고 여기거든. 너희야 그저 불태우면 되겠지만, 우린 타 버린 재를 끌어안고 울어야 하잖아?”

그녀는 마치 그런 적이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혹은, 그런 것들을 경멸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모나한이 설마 첫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수많은 세월을 살았는데, 어떻게 네가 첫 번째겠어.”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어서요.”

“그럼 생각해 봐야 할 거야. 모나한이 너를 정말 사랑한다면, 네가 죽은 후에 그가 어떻게 될지. 슬퍼하고 슬퍼해서 또다시 동굴 속에 파묻혀 오랜 잠을 잘까? 아니면 그냥 다 잊어버릴까? 지금까지 계속 그랬던 것처럼.”

어둠 아래 아른거리는 선홍색 눈동자가 느리게 깜박이고, 그만큼 우아한 손짓이 뒤따랐다.

단어 하나하나가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선명하고 섬뜩하게 울렸다.

“아니면, 그 모든 게 거짓으로 끝나나? 너한테는 해피 엔딩이었지만 사실은 비극이었던 거지. 그 사랑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잘각.

창고 바닥에 잡동사니가 발에 채여 비명을 질렀다.

모틸라는 제 발아래 망가지고, 깨지고, 부서지는 것들은 전부 무시한 채 그 우아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천천히, 하얗다 못해 창백한 팔이 올라와 로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이 선뜩하게 감싸 안고, 그 낮은 체온에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마주치는 선홍색 눈동자.

모나한과 달리 조금의 호감도 담기지 않은.

“설마 그가 널 뱀파이어로 만들어 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뻔뻔하고, 이기적이게-”

“……그런 생각 한 적 없어요. 전 그냥 현실을-”

“그 머리로 생각하는 게 뭐니? 똑똑한 줄 알았더니, 머리가 텅 비어 있었나?”

“전 지금을 생각할 뿐이에요. 미래에 있을 슬픔, 불안, 아픔. 그런 걸 고민해 봤자 현재에도 똑같이 불안할 뿐이잖아요. 그럼 그냥 현실을 즐길-”

“우스운 소리를 하는구나? 그 텅 빈 머리로 생각을 하렴. 네가 하는 게 사랑일지, 힘에 대한 집착일지, 불멸을 살고 싶어 하는 이기심이 아닌가. 그가 너를 사랑하는 게 진실인가, 그냥 연극이고, 연기가 아닌가.”

비웃음이 가득 담긴 선홍색 눈동자에 잔뜩 겁먹은 제 얼굴이 비친다.

신뢰와 사랑을 깎아 먹고, 의심과 불안을 심으려 속삭인다.

달콤하고 유혹적인 목소리가 붉디붉은 입술 사이에서 넘실거렸다.

모틸라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웃었다.

아름다운 얼굴이 짙게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내려 로나의 귓가에 입술을 대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야지.”

그리고 몸을 떼며 속삭인다.

멍청하게 믿지만 말고.

모틸라는 그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로나의 어깨를 툭툭 털었다.

먼지라도 있는 듯이. 격려라도 하는 듯이.

“알겠지?”

꼭 그래야 한다는 듯이.

* * *

모틸라는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이 볼일의 전부였다는 듯 말을 마치고는 훅 하고 사라졌다.

사실 자신보다는 모나한에게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보다 모나한과 떨어트려 놓는 게 주된 이유였다는 것처럼 굴기도 했고.

자신과 대화하는 내내 무심하고 싸늘한 모습을 보여 주며, 오히려 창문 밖에 더 신경을 썼으니.

로나는 모틸라가 사라진 창문을 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고혹적이던 뱀파이어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녀가 내뱉은 진득한 말들이 녹아 버린 설탕처럼 귓가에 붙어 있었다.

로나는 그 말들을 떼어 버리려는 것처럼 두 손을 귓가로 올려 문질렀다.

그러다가 불과 몇 분 전 자신의 두 손으로 모나한의 귀를 막아 주었던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전에 손을 잡고 했던 모든 것들.

나누었던 대화, 흘렀던 목소리, 잡고 있던 손.

모나한의 차가운 체온과 자신의 뜨거운 체온이 만나 같아졌던 순간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언젠가 한 번쯤은 결말을 생각해 보곤 하는 것이다.

우리의 끝은 어떻게 될까.

그녀의 말대로 당신은 슬픔에 겨워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들어가, 깊은 잠에 빠질까?

다 잊어버릴 때까지?

아니면, 이 모든 게 거짓이라서, 내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대가 연기를 잘하거나.

혹은, 내가 사랑에 빠져 눈이 멀어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그러나 나에게서 나올 음식들에, 내가 죽을 때까지 연기하는 건가.

“그럼 그게 진실이지 뭐야.”

어차피 내가 알지 못하는 거짓이라면 진실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모나한이 슬퍼한다고?”

그렇게 슬프면 자기가 도망가겠지.

내가 죽어 버리는 게 무서우면 나를 뱀파이어로 만들거나, 아니면 떠나가거나.

모틸라의 말대로 머릿속이 생각으로 엉키어, 범람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 무슨 상관이야. 내가 나중에 슬퍼하든, 후회하든. 그가 나중에 슬퍼하든, 후회하든.”

그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로나는 과거, 혼자 가게를 이끌던 시절 배웠던 것이 있었다.

생각은 도움이 안 된다.

과거, 생각에 파묻혀서 살던 시절이 있다.

혹은, 그러나, 혹시나.

의심과 불안으로 점철되었던 시간들.

희망과 좌절을 반복하며, 내일, 모레, 미래를 기다리던 나날들.

이젠 알고 있다. 아주 처절하게 배웠다.

그런 것들은 조금도 도움 되지 않는다.

나는 현재를 살아가고, 생각보단 행동이 도움이 된다.

“하, 무슨 상관이야. 난 그냥 가서 물어볼 거야. 날 사랑해요? 뱀파이어로 만들 거예요? 아니면 그냥 떠날 거예요.”

로나는 모나한의 입을 생각했다.

거기서 뱉어질 말들.

그러다가 그냥 고개를 저어 모두 흩어 버렸다.

“난 내일도 가게를 열 거야. 빵을 반죽할 거고, 구울 거야.”

언제나 그랬듯이.

“그걸 팔고, 먹고, 잘 거야. 그리도 다음 날 또 시작하는 거지.”

언제나 그럴 것이다.

로나는 먼지 쌓인 상자 위에서 일어났다.

어둠과 빛이 아른거리는 창문을 등지고 낡은 나무 문을 본다.

손을 들고, 문을 연다.

그녀는 달리지도, 뛰지도 않지만, 언제나 걸어 나갔다.

먼지 쌓인 바닥 위로 눈물이 몇 방울 떨어졌지만,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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