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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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는 자신이 축제에 가는데도 간식을 챙기려 하는 것이 자신의 직업병이 아닌가 잠시 고민했다.

결국에는 간식을 만들려 움찔거리려는 손을 겨우 내려놓고 가게 문을 닫았다.

간식은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모나한은 평소 입던 가게 유니폼은 벗고, 하얀 셔츠에 검은색 슬랙스 바지, 연갈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시골에서 살 땐 별 신경 쓰지 않았는데, 게임 속이라 옷들이 묘하게 현대적인 것은 좋은 점 같았다.

그는 가게 문 옆, 벽에 기댄 채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 지는 노을 아래 평소보다 붕붕 떠 보이는 회색 머리카락이 살짝 붉게 빛나고 있었다.

모나한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자신을 돌아보았을 땐, 그의 얼굴선을 타고 흐르는 빛, 휘어지는 눈가, 올라가는 입꼬리.

“제가 사 준 안경 썼네요.”

“음, 네.”

“귀여워요.”

“음…… 네.”

젠장. 이거 완전히 데이트잖아!

로나는 자신도 모르게 왠지 뾰로통한 얼굴을 한 채 모나한을 한 번 노려봤다가, 자신의 옷차림을 떠올렸다.

평소 모나한이 좋아하던 양 갈래로 쫑쫑 땋은 머리, 동그란 안경.

하얀 긴팔 상의에 두꺼운 옷감의 붉은 체크 무늬 A라인 긴 치마.

옆으로 메는 갈색 가방.

평소 잘 입지 않는 옷.

“데이트잖아…….”

“데이트죠.”

“그렇죠.”

데이트란 단어를 투덜거리는 듯이 내뱉은 로나는 몇 번을 우물쭈물하다가 모나한보다 앞서 걸어가 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이런 달달한 것들은 익숙하지 않았다.

이곳이 현실이라고 생각한 이후, 많은 감정들을 무덤덤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이후.

그녀의 감정이 이렇게 요동치는 일은 없었다.

빌어먹을 모나한.

전생에서부터 연애란 것이 어떤 것인지는 뻔히 알고 있었는데. 어떤 감정이고, 어떻게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었는데.

다스릴 수 있는 게 아니란 것도 정말…… 알고 있었는데.

“빌어먹을 모나한.”

“네?”

“빨리 오라고요. 걸음이 왜 그렇게 늦어요?”

“흠. 부끄러워하는 로나를 구경 중이었어요.”

“으윽.”

“뒤에서 흔들거리는 머리 귀엽네요.”

“저리 가요.”

“진짜요?”

“으윽-”

분명히 저 자식은 날 유혹하는 여우 같은 놈이었는데!

왜 갑자기 날 놀리는 거에 재미를 붙인 거지?

아니, 왜인지는 안다. 내 반응이 재미있기 때문이겠지!

“놀리지 말아요.”

“그럼 귀여워해도 돼요?”

“으으윽-”

로나는 요즘 왜 모나한의 앞에서 이렇게 부끄러워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진심이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그 많은 플러팅에 그리 무덤덤했던 이유는, 그것들이 모두 거짓인 걸 알고 있어서였고.

지금은 저 모든 게 진심인 걸 알아서.

“후우…… 좋아요.”

“네?”

“인정. 이건 데이트다. 저랑 모나한은 연애 중이다. 모나한은 절 좋아하고, 저도 모나한을 좋아한다.”

“어, 그렇죠?”

“지금부터 우린 데이트를 즐길 거고. 매우 꽁냥 거릴 거고, 열심히 붙어 다니고, 열심히 알콩달콩할 것이다!”

“……그렇게 말로 하니 부끄럽군요.”

“난 지금부터 연애할 것이다!”

오히려 뻔뻔해지면 부끄럽지 않다!

로나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모나한은 뭔가 예감한 얼굴로 망설이다가 로나에게 말을 걸었다.

“로나 씨, 제가 입 맞춰도 될까요?”

“네. 해도 돼요.”

“오…… 포옹하고 해도?”

“네. 하세요.”

“로나 씨, 오늘 옷 입은 거 아주 사랑스러워요. 보자마자 입 맞추고 싶었어요.”

“모나한도 오늘 아주 멋있어요. 코트가 잘 어울리는군요.”

그 말을 들은 모나한은 우선 로나의 허락을 받은 대로, 그녀를 품에 안고, 평소보다 살짝 붉은 입술에 키스하고 떨어지며 슬퍼했다.

“부끄러워하는 로나 씨가 끝났어!”

“네. 끝났어요.”

“가 버렸어! 사라졌어!”

“네. 가 버렸어요. 사라졌어요.”

그리고 모나한이 살아나며 말했다.

“그럼 이제 마음껏 스킨십해도 되는 거죠?”

“네. 하세요. 제가 싫어하지 않는다면.”

“로나 씨가 싫어하는 일을 할 리가. 싫다면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 바로 그만둘게요.”

“말하지 말라 해도 말할 거예요.”

“좋아요. 훌륭해요.”

“네. 저도 모나한 좋아요.”

“……이제 제가 부끄러워할 차례인가요?”

“맘대로 해요. 전 이제 뻔뻔한 로나가 되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자요.”

로나가 손을 불쑥 내밀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손잡고 싶어요. 손잡아요. 손 내놔요.”

그 단호함에 모나한이 살짝 붉어진 볼을 하고 다소곳이 손을 내밀었다.

“난 주인님이 리드할 때마다 너무 떨리더라.”

“훗.”

로나가 멋있게 입꼬리를 올리고 모나한을 이끌고 걸었다.

웃고 있는 로나의 뒤로, 웃고 있는 모나한이 졸졸 따라 걸었다.

등 뒤에서 노을이 천천히 가라앉고, 가로등이 하나하나 켜지고 있었다.

* * *

저녁 즈음에 간 축제는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거리 가득 사람들이 있어 어쩌면 답답하게 느껴질 공기도 밤이 되어 슬슬 싸늘해지자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여기저기서 풍겨 오는 양념의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한 냄새들과 호객 행위를 하려 소리치는 상인들, 웃는 사람들과 어린아이들의 목소리.

모나한과 로나는 저녁밥 대신 축제의 먹거리들을 입에 넣으며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이거 맛있네요. 이름이 뭐라 그랬죠?”

“포포노 빵요. 옥수수 가루에 꿀을 넣고 동그랗게 구운 거죠.”

“안에 옥수수도 넣었나 봐요. 씹히는 게 괜찮네.”

로나가 모나한이 들고 있는 종이봉투에서 따끈따끈한 포포노 빵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입에 하나, 모나한의 입에 하나 넣어 주었다.

두 사람은 가게에서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손을 꼭 잡은 채였다.

로나는 잠시 손에 땀이 차는 것을 걱정했지만, 모나한이 뱀파이어이기 때문일까.

그의 체온은 상당히 차가운 편이었고, 땀도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모나한이 땀나는 거 본 적 없네요. 뱀파이어는 땀 안 흘리나요?”

“저도 흘립니다. 다만 보통 사람보다 체력도 좋고, 힘도 좋고, 체온도 낮으니까 땀이 잘 안 흐르긴 하죠.”

“아하.”

로나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곤 마지막 포포노 빵을 모나한의 입에 넣어 주었다.

지금까지 축제에 가면 여러 가지 음식들을 먹어 보고 싶어도, 남는 음식들이 아까워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옆에 큰 위장을 가진 사람이 있으니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오. 저쪽에서 마른 오징어를 굽는 냄새가 나네요.”

“오징어! 오랜만이다. 여긴 내륙이라 먹기 힘들잖아요.”

“말린 거다 보니 여기까지 들어왔나 보네요. 하나 먹을까요?”

“맥주도 한 잔 사요. 구운 마른오징어에 맥주 한 잔!”

“좋아요.”

둘은 양손에 맥주 한 잔씩을 들고 오징어를 오물거리며 다시 길을 걸었다.

“노래 대회입니다! 상품은 무려 토틸렛 스위트 상점 무료 이용권!”

저 멀리서 호객꾼이 노래 대회를 한다고 소리치는 것이 둘의 귀에 들려왔다.

축제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로나와 모나한의 발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토틸렛 스위트 상점이라면 거기죠? 고급 디저트 전문.”

“아, 맞아요. 한번 가 보고 싶었는데.”

“그래요? 그럼 참가해 볼래요?”

“아뇨.”

로나는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저 음치예요.”

“오…… 콧노래는 잘 부르잖아요.”

“……제가요?”

“기분 좋을 땐 부르시던데. 아침에 씻을 때라든가.”

“그걸 들었어요?”

“제 귀가 밝은걸요. 아침에 그걸 들으면 저도 기분이 좋아지죠. 아무튼, 콧노래를 잘 부르는 만큼 노래도 잘하실 것 같은데.”

“음…… 제 맘대로 작게 부르는 건 그럭저럭 부르는데, 크게 부르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음이 안 맞아요. 모나한은 노래 잘해요?”

“전 예전에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있어서요. 음, 제가 대회 나가서 무료 이용권을 따올까요?”

“아뇨.”

로나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단 표정을 하고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모나한은 잠깐 그녀가 부끄러워하나 고민했다가, 이런 것에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로나의 성격을 떠올리곤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다.

로나는 그 의문에 찬 얼굴을 마주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저거, 아실라 참가.”

“아, 여기서 빨리 떠나기로 하죠.”

“어차피 군중 속에 있어서 아실라도 모를걸요? 그리고 우리한테 신경 쓸 수 있는 이벤트도 아니고요.”

“무슨 이벤트이길래요?”

“아실라가 1등을 할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르지만, 악녀의 비리로 인해 2등을 하는? 그래서 슬퍼하다가 납치 감금당하는 이벤트.”

“악녀요?”

“아실라가 주인공이잖아요. 그러니까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녀도 있는 거죠.”

“……중2병의 악녀…….”

“뭐였더라? 완전 진한 금발에 여자아이 일러스트를 봤던 것 같은데.”

로나가 이제는 거의 생각조차 나지 않는 게임 일러스트를 기억해 내려고 낑낑거렸다.

금발……. 금과 같은 금발……. 돈 많고 권력 있고 하지만 몰락하는 금발…….

“금발밖에 기억 안 나네요.”

“이 세상에 금발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죠?”

“딱 황금을 녹여 놓은 듯한 금발이란 것만 기억나요.”

“흠…… 우리랑 상관있나요?”

“아니요.”

“그럼 신경 쓸 필요 없겠네요.”

모나한이 귀찮다고 대충 넘어가자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위를 살짝 돌아보다가 말했다.

“근데 여기는 학원 도시인 만큼 치안도 좋고, 이것도 학원 축제인 만큼 많은 경비들이 있는데, 납치가 가능합니까?”

그에게는 다른 단어보다 납치라는 단어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축제를 기회로 삼고 납치하기 위해 노예 상인들이 왔다는 내용일걸요? 그 기사님인 질란과 관련된 에피소드인데, 우승하지 못해서 슬퍼하는 아실라를 대회 관계자가 착오가 있는 것 같다며 부르고, 아실라는 졸졸졸 따라가다가 납치.”

“의심없이 따라갈 것 같기는 하네요. ‘세상은 착해요!’라는 타입이니까.”

“뭐. 납치되어 봤자 알아서 잘 탈출하고, 기사에게 말하고 노예 상인들을 척살! 대충 그런 이벤트죠.”

“……괜히 주위의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위험할 거라는 생각 안 듭니까?”

“많이 휘말리겠죠.”

“……로나 씨 저한테서 절대 떨어지면 안 돼요.”

“네네. 지금 손 꼭 잡고 있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주위에서 크게 터지는 듯한 함성에 모나한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많은 인파 속에 있어 안 그래도 시끄러웠던 소리들이 모나한의 예민한 청각을 아프게 했다.

그는 미간을 움찔 찌푸렸다.

“괜찮아요?”

“음, 저 귀가 예민해서요. 조금 깜짝 놀랐어요.”

“그럼, 사람이 없는 곳으로 좀 갈까요?”

로나가 그렇게 말하며 모나한의 귀를 감싸 쥐었다.

예민한 청각에 이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그래도 걱정되어 나온 몸짓이었다.

모나한은 그 다정함에 살짝 웃었다가, 사람들이 좀 적은 곳으로 가자고 말하려던 찰나 주위에서 다시 한번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

“예쁘다!!”

방금 전보다 커다랗게 들리는 소리에 모나한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모나한은 인파 속에서 누군가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것과 동시에 로나의 손이 제 귀에서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불길한 느낌에 그가 급히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로나는 사라진 뒤였다.

* * *

모나한은 이 냄새를 잘 알고 있었다.

달콤함이나 고소함, 짭조름한 음식의 향이 아닌 비릿한 녹슨 철 냄새.

마녀는 키메라들을 통제하기 위해 유일하게 자신들의 피에만 그들의 감각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했다.

그리고 마녀의 피가 섞인 몇몇 키메라들 또한 음식 냄새로 가득한 세상에서 지독한 쇠 비릿내를 내게 되었다.

망가져 버린 미각과 후각이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몇 안 돼는 이들.

동족.

그래서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건 불문율 같은 거였다.

비슷한 이들이기에 더욱 지키는 암묵적인 규칙.

다른 사람과 있으면, 알은척하지 말 것.

다른 사람과 있으면, 그저 지나갈 것.

절대, 끼어들지, 말 것.

다른 생물의 냄새였다면, 누군지 순식간에 구별해 냈겠지만, 동족의 향이란 그냥 피 냄새일 뿐이라서, 누구인지 구별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모나한은 도망가는 그림자를 따라 가까스로 몸을 움직였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골목을 돌고, 지붕을 몇 개씩이나 넘었지만, 빌어먹을 저 새끼는 어찌나 빠른지.

모나한은 결국 로나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그림자의 끝자락을 보았다.

검은 색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달리는 몸동작, 자신을 피하는 방법.

아주 익숙하고, 익숙한 것들.

저와 같은 실험실에서 태어난 동족.

모틸라.

“손끝 하나 다쳐 있기만 해 봐.”

모나한의 낮은 목소리가 그르렁거리며 골목 그림자 아래로 울렸다.

동족이든 뭐든, 아는 사이든 뭐든, 목을- 뽑아 버리겠어.

모나한은 제 목에 손톱을 대고 지긋이 눌렀다.

뱀파이어의 피가 뚝뚝 떨어지다가, 다시 즈윽- 느리게 목선을 타고 중력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그 피는 천천히 모나한의 목선을 타고 주위를 돌다가, 종속의 문신을 그려 내었다.

음산하고 광기 어린 붉은빛이 넘실거리며 어두운 골목길을 붉히고, 모나한의 창백한 목, 턱선, 속눈썹 끝까지 붉고 붉게 물들였다.

그 붉은빛 사이로, 선홍색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났다.

제 주인이 어디있는지, 그는 언제나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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