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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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 지나 로나와 모나한의 휴일마저 지나가고 있었다.

로나는 모나한의 말처럼 아실라에 관한 관심을 모두 지워 버렸다.

그의 말처럼 일요일마다 빵집에서 이벤트가 일어나곤 했지만, 그 외의 요일에서 아실라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로나에게 전혀 상관없는 일들일 뿐이었다.

그냥 게임을 봤던 사람으로서 대충 무슨 일이 있었겠거니- 하고 가끔 생각할 뿐이었다.

로나는 눈앞에 뜬 상태창에 볼을 긁적이며 고민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상점 창 스킬을 레벨 업 하면서 새로운 한식이 탄생했다.

저번에 고추가 나왔을 때, 고추장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었지만, 현대에서 요리와 전혀 연관 없는 직업을 가졌던 도시 사람 로나는 고춧가루는 만들어도 고추장은 만들 수 없어 끙끙거렸었다.

요즈음도 한 번씩 시도해 보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실패하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먹어 본 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지 이게 그 맛인지, 요게 저 맛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기억은 희미해져 가는데, 그리움만 커져 가고 있달까?

그런 로나의 마음을 상태창도 알아준 걸까.

새로운 한식엔 ‘고추장’이 떡 하니 나와 있었다.

“으음…… 비빔밥?”

고추장 하면 마침 딱 생각나는 것이 비빔밥이어서, 로나는 오랜만에 흰밥에 나물이랑 계란 반숙, 고추장을 넣어 실컷 비벼 먹을까 고민하며 2층에서 내려왔다.

“잘 잤어요, 로나?”

“좋은 아침이에요, 모나한.”

자신보다 미리 1층으로 내려가 커피를 타 놓은 모나한 덕분에 1층에는 막 내린 커피 향이 뭉근히 흐르고 있었다.

로나는 모나한이 내미는 하얀 머그잔을 받아 들며, 따뜻한 커피를 홀짝거리며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고추장 말고 김치가 해금되면 안 되나?”

“네?”

“오늘 아침에 새로 상점 창이 해금됐더라고요.”

“새로운 한식 재료가 나왔나요.”

“네. 고추장요.”

“아, 그 만들려고 끙끙거렸던 그거요.”

모나한이 로나가 한동안 낑낑대며 만들려고 했던 정체불명의 빨간 소스를 떠올리면서 말했다.

그의 말에 로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한 손으로 커피를 호로록 마시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상점 창에서 빵 코인을 결제해 고추장을 꺼냈다.

고추장은 유리병에 그 새빨간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딱 봐도 매워 보여서 모나한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매워 보여요.”

“뭐, 매운맛을 내는 고추로 만든 거니까요.”

로나는 그 유리병을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대충 한구석에 두고는 커다란 양푼에 밥을 떴다.

“흠…… 양푼을 두 개 하는 게 좋으려나?”

“네?”

“이번에 먹을 한식은 보통 이렇게 커다란 양푼에 왕창 만들어서 다 같이 둘러 모여 숟가락으로 퍼서 먹거든요.”

“아하.”

“같이 먹어도 괜찮겠어요?”

“물론이죠!”

모나한은 오히려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다며, 이렇게 먹는 건 처음이라며 기뻐했다.

로나는 모나한의 눈웃음을 잠깐 보다가, 들고 있던 주걱으로 왠지 간지러움이 느껴진 가슴께를 꾹꾹 눌렀다.

“음…… 계란프라이 해 줄래요?”

“반숙이죠?”

“네.”

“저도 반숙 좋아해요. 우리 둘 다 반숙을 좋아하네요.”

“지금 공통점 찾았다고 좋아하는 거예요?”

“네. 아주요.”

모나한이 씨익 웃으며 말했고, 로나가 그 웃음을 보며 반사적으로 “뻔뻔한 놈…….” 이라고 중얼거리고 양푼에 나물들을 올려놓았다.

“고기도 올릴 생각인데…… 모나한 생고기 먹어요?”

“어…… 구워 주시면 안 될까요?”

“생고기 싫어해요? 그러고 보니 스테이크도 완전히 구운 것을 먹었죠.”

“피가 있으면 맛이 조금 이상해져요.”

“아하.”

“이 요리를 먹으면서 저 요리가 섞인 맛이랄까…….”

“고기 구워 줄게요.”

“감사합니다-”

모나한이 장난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로나가 잘난척하는 표정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서로 키득거리며 웃고는, 화구 앞에 붙어 서서 한 명은 계란프라이를, 한 명은 고기를 구웠다.

둘은 커다란 양푼에 흰밥과 나물, 고기와 고추장을 넣고, 맨 위에 예쁘게 만들어진 계란프라이를 올렸다.

“원래 비빔밥은 바닥에서 먹는 게 정석인데.”

“그럼 바닥에 앉을까요?”

로나의 말에 모나한이 망설이지 않고 부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자기가 해 보고 싶다면서 로나의 손에 있던 숟가락 두 개를 가져가 다리 사이에 양푼을 두고 비빔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고추장 조금만 넣은 거죠? 너무 매우면 로나도 못 먹잖아요.”

“음……. 네. 조금 넣었어요.”

“좋아요.”

“……그렇네요.”

로나는 왠지 멍하니 모나한이 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빵집의 부엌.

인덕션이나 가스 불이 나오는 것이 아닌, 마법 화구.

냉장고가 아닌 마법 냉동 상자.

전기 오븐이 아닌, 마법 오븐.

이리저리 둘러보면 부엌 안에는 한가득, 전생이 아니라 현생의 마법으로 움직이는 것들이 한가득 쌓여 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게 사용하는 그것들.

그런 자신의 부엌에서, 전생에 전혀 없을 외모의 남자가 있다.

회색 머리, 선홍색 눈동자, 신관 같은 외모에 퇴폐미 한 방울.

토끼 같은 얼굴로 하는 여우짓.

거기다 인간도 아닌 뱀파이어.

전생의 자신도, 현생의 자신도 절대로 엮이리라 생각하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 판타지 부엌의 바닥에 앉아서, 다리 사이에 양품을 끼고, 양손에 숟가락 두 개를 쥔 채로 비빔밥을 비비고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고, 완전히 이상한 광경.

“좋네요.”

“네?”

“모나한 비빔밥 잘 비빈다구요.”

“그렇죠? 제가 이런 건 또 잘하죠!”

모나한이 로나의 말에 의아하다는 듯이 그녀를 올려다보자, 로나는 웃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모나한을 칭찬하고는, 그의 앞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빤히 그가 비빔밥을 비비는 것을 바라보았다.

“제가 금방 비벼 줄게요. 같이 맛있게 먹어요. 이거 냄새도 맛있게 올라오네.”

“색도 괜찮죠?”

“네. 빨간색이 이렇게 식욕을 불러일으킬 줄이야.”

“모나한 한국인 다 됐네요?”

“후후후. 대한 이세계인입니다, 제가.”

“대한 뱀파이어네요.”

로나는 키득거리며 모나한이 건네는 숟가락을 받았다.

그 안에는 전생에 즐겨 먹었던 비빔밥이 붉은 자태를 뽐내며 한가득 올려져 있었다.

로나는 그 숟가락을 입 안으로 넣으며, 자신과 똑같이 비빔밥으로 볼을 부풀리며 비빔밥을 먹는 모나한을 바라보았다.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찾을 수 없던 자신의 자리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로나는 이 이상한 것들이 전부 마음에 들어서 웃으면서 입을 오물거렸다.

* * *

언제나 그랬듯, 일요일 외의 시간들은 평화롭고 평온하게 흘러갔다.

아침의 일로 로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서, 가게가 끝나고 내일을 위해 발효시켜 놓아야 할 빵 반죽을 만들고 있을 때도 콧노래를 작게 부르고 있었다.

그런 로나를 흐뭇한 얼굴로 구경하고 있던 모나한이 달콤한 얼굴로 다가와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그러고는 여우같이 살랑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로나, 곧 축제가 있는 거 알고 있죠?”

“그럼요. 상점가 대표가 얼마나 떠들고 다니던지. 학원 축제와 함께 온 도시가 축제 분위기라면서요. 이때가 커다란 대목이라고 말씀하시던데.”

“설마 그날도 장사할 건 아니죠?”

“네?”

“장사하지 말고 저랑 놀러 가요. 큰 축제라서 맛있는 것도, 볼만한 것도 많이 나온다던데.”

“음, 좋아요. 어차피 장사할 생각 없었어요. 물론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날이긴 한데, 준비해야 할 것도 많더라고요. 노점상 예약에, 상점 퍼레이드, 뽑기, 대회…… 생각만 해도 힘들어요. 축제 날은 저희도 놀기로 해요. 그래서, 축제가 무슨 요일이죠?”

“토요일과 일요일요.”

모나한이 걸려들었다는 표정을 한 채,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드디어 일요일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이 왔네요. 설마 게임에서 ‘빵집은 노점상을 했다’ 그런 거 없죠? 그런 거 있어도 난 놀 거다. 논다고 했다.”

“없었어요.”

“아싸! 그럼 드디어 그 분홍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는군요. 신나네요.”

“후, 모나한. 잘 생각해 봐요. ‘학원 축제’, ‘축제 대회’.”

“그게 왜요?”

“여주인공의 재능을 뽐낼 최고의 이벤트잖아요.”

“……설마.”

“분명 대회에 나오고, 축제 때 학원 밖에서 몰래 돌아다닐걸요.”

모나한이 로나의 말에 한껏 좌절한 얼굴로 “아실라 너무 싫다…….”라고 작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고개를 번쩍 들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로나를 바라보았다.

“열심히 피해 다니죠. 전 잘 피할 수 있어요.”

“데이트를 할 생각이 가득하군요?”

“뭐, 로나 씨가 싫다면 어쩔 수 없죠. 전 집에서 하는 데이트도 좋아해요. 물고, 빨고, 핥아도 된다면야.”

“뭔 소리래. 안 되는데요.”

“그럼 나가야겠네요. 어쩔 수 없죠.”

“뭐지, 내가 진 것 같은 이 분위기?”

“맞아요. 로나 씨가 졌어요. 벌칙으로 저랑 데이트해야 해요.”

“오. 이럴 수가. 예상도 못 한 벌칙이에요.”

“흠. 아쉽게도 봐줄 생각이 없네요.”

“그렇군요. 어쩔 수 없죠. 모나한이랑 데이트할 수밖에.”

“좋아요.”

모나한의 이겼다는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얕게 웃었는데, 웃음소리에 장난기가 자글거리며 섞여 나왔다.

“데이트 기대되네요. 산으로 소풍 간 적은 많았지만, 로나 씨랑 축제에 간 건 처음이잖아요.”

“사람이 많을 텐데 배고프진 않겠어요?”

“괜찮아요. 로나 씨가 만든 빵이 더 맛있는 걸 아는걸요. 게다가 어쩌면 로나 씨한테 집중해서 배고픈지도 모를 수 있어요.”

“되게 진지하게 말하네요.”

“진지한데요. 로나 씨만 있으면 배부른 느낌이거든요. 다만 로나 씨가 없으면 배고파질 수 있어요.”

“그래요? 그럼 어떡하죠?”

“정답을 알면서 억지로 물어보는 장난기 아주 좋아요.”

“푸흠. 알았어요. 옆에 꼭 붙어 있을게요.”

“역시 알고 있었잖아요!”

“푸흐흐.”

로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모나한을 반죽 앞으로 끌어들였다.

“로나?”

“손 씻었죠?”

“어, 네.”

모나한이 의아하단 얼굴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로나는 모나한의 청결을 한번 신경 쓸 뿐이었다.

처음 둘이 빵집을 열었을 때, 로나는 자신에게 부엌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경계심이 얕아졌을 때, 그녀는 부엌에 들어와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안에서 그녀가 밤낮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밀가루를 반죽하는 것을 보았다.

모나한은 그녀의 땀이 안쓰러워, 자신이 반죽하겠다고 말했었다.

제가 힘이 더 세니까, 힘이 필요한 일은 자신에게 맡기라고.

그러나 그녀는 ‘다음에요. 언젠가는’ 같은 말을 붙이며 그가 돕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빵을 진열하는 것도, 포장도, 청소나 계산 같은 다른 일들은 아무 미련 없이 모나한에게 넘겨 버리던 로나는 부엌에서만큼은 그에게 그 무엇도 넘겨주지 않았다.

그건 마치 당연히 그녀가 해야 하는 일들 같았다.

그래서 모나한은 어느새인가 그녀를 위해 커피나 차를 타고 제빵이 끝나기를 기다릴지언정, 그녀의 옆에서 말을 걸며 재롱을 피울지언정, 자신이 대신해서 빵을 만들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녀가 제빵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만큼, 모나한도 그녀의 영역을 존중하며 물러섰다.

그런 로나가 처음으로 그녀의 자리를 모나한에게 허락해 주었다.

그는 로나의 거칠고 울퉁불퉁한 손이 반죽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다가, 로나가 비켜 준 자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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