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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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앙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그랬지. 중간만 가라.

그는 중간을 못 갔다.

“왜 도망치려 하는 거지, 리앙.”

“아니, 저는 아실라 님께 볼일이 없습니다.”

“그걸 믿을 것 같습니까? 여기가 아실라 님이 좋아하는 빵집인 걸 알고 온 거잖습니까.”

“아뇨. 여긴 저도 좋아하는 빵집입니다. 여기서 아실라 님과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그럼 너는 아실라를 싫어한다는 말인가.”

“네!? 아뇨! 아뇨. 안 싫어하죠. 싫어하지 않아요.”

“그럼 좋아하는군.”

“아니,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죠?”

“너도 이 빌어먹을 것들과 똑같은 놈이었군. 비겁하게 승부에서 도망칠 참인가!”

“네에!? 저는 그냥 방법을 말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말한 방법이니, 당신이 책임지십시오.”

환장하겠네.

좋아하는 마음도 사라지겠다!

리앙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 쉬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이럴 수가!

말이 하나도 안 통한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하면 되잖아요.”

“하-! 드디어 말귀를 알아먹는군.”

“진작에 한다고 했으면 좋지 않습니까.”

뭐라는 거냐, 이놈들.

한 나라의 왕자와 공작가의 후계자, 마탑의 후계자라는 놈들의 뇌 상태가 이상한데.

이 나라 괜찮은 거 맞아?

나 다른 나라로 망명해야 하는 거 아냐?

“저…… 잘은 모르겠지만. 리앙 님도 제가 좋아하는 빵을 찾아 주시는 건가요? 기대돼요!”

아니, 당신은 말려야죠.

당신이 원인이잖아.

리앙이 아실라를 원망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가 멈칫, 몸을 정지했다.

분홍색 머리카락을 사르르 흩날리고, 하늘색 눈동자를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아실라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사람.

계산적인 자신에게 인생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려 줄 것 같은 여자.

“헤헤헤. 승리한 사람이 저랑 데이트하는 거예요! 자, 시작!”

웃음으로 휘어진 눈가가 살짝 붉은색이라, 리앙은 왠지 모를 감정이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 그랬다.

이 아실라라는 소녀는, 차가운 계산으로 돌아가는 머리를 멈추게 했다.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해맑은 웃음으로.

언제나 정확함과 분석으로 세상을 보고, 가장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자신을 흔드는 사람.

감정에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는 자신을 폭풍처럼 휘감아 버리곤 하는, 그리하여 그녀의 옆에 갔을 때야, 폭풍의 눈처럼 잔잔히 가라앉혀 주는 사람.

리앙은 그 사랑스러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뛰쳐나가듯이 빵집 안에서 각자 흩어지는 남자들을 뒤늦게야 눈치채고 따라갔다.

처음에는 싸움을 멈추기 위해서 행동했지만, 이젠 저 소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진다.

자신의 뒤에서 아실라가 “파이팅!” 하며 맑은 목소리로 응원하는 게 들린다.

아름답고, 예쁘고, 청량하고, 사랑스러운.

그야말로 세상의 가장 귀중한 것들만 모아 놓은 듯한 목소리.

리앙은 그 목소리를 들을수록 이상하게 멍해지는 머리로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왠지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움직여, 빵들을 이것저것 쳐다보다가 슈크림 빵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분명히 아실라가 슈크림 빵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으니, 저게 좋아하는 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아실라는 여기 오는 게 선물 상자를 여는 느낌이라고 했다.

올 때마다 새로운 빵이 있어서 기대된다고.

그럼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빵은 오늘 새로 만들어진 빵이 아닐까?

“하! 이건 내가 챙기지!”

“아…….”

리앙이 슈크림 빵 앞에서 머뭇거리자, 어느새 튀어나온 프리먼이 슈크림 빵을 낚아채 갔다.

리앙은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다른 빵으로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사랑에 눈 돌아간 자들이 아실라 앞에 빵을 한 가지씩 진상한 후였다.

리앙은 자신만이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는 걱정과 함께, 아실라가 좋아하는 빵이 뭔지 고르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원에서 몇 번 인사할 뿐이고, 제대로 이야기조차 못 하고 멀리서 바라만 봤었던 벌일까.

아니면, 그녀에 대한 마음을 멋대로 계산하고 피하려 했던 결과일까.

리앙은 평소에 좀 더 그녀에게 가까웠으면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빈손으로 아실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빈손을 프리먼과 질란, 니켈스가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설마 빈손은 아니겠지.”

“아무것도 골라 오지 않았다는 그런 한심한 소리를 할 거면, 그냥 구석으로 사라지십시오.”

“그렇게 명예도 없는 작자는 아니겠지.”

“제게 상관하지 마시고, 여러분이나 잘 골랐는지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리앙이 능글거리며 비웃자 셋은 혀를 한 번 차며 고개를 돌려 아실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잘생긴 얼굴과 가장 자신 있는 각도로 그녀에게 들고 있는 빵을 내밀었다.

“내 아기 토끼. 그대가 슈크림 빵을 먹던 그날을 기억해. 입가에 묻혔던 크림이 얼마나 귀엽던지- 가장 좋아하는 빵은 당연히 슈크림 빵이겠지?”

“아실라 님께서 불한당에게 쫓기던 와중에도 절대 놓지 않았던 쪽지가 있었죠. 그 쪽지에 적혀 있던 것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과 파이 꼭 먹을 거야’ 아실라 님처럼 귀여운 글씨체로 적혀 있었습니다. 가장 좋아하시는 빵은 이 사과 파이시죠?”

“저번에 이 빵집에서 너를 만났을 때, 너의 쟁반에 빵이 한가득 쌓여 있었지. 난 너를 기억하는 만큼 그 빵의 종류 하나하나도 기억할 수 있어. 하지만 그중에 가장 많은 개수로 쌓여 있던 빵은, 이 버터 쿠키다! 그러므로 아실라, 네가 가장 좋아하는 빵은 버터 쿠키다.”

그 모습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며, 아실라는 눈을 반짝거렸다.

“와, 모두 좋아하는 빵들이에요. ……그런데, 리앙 님. 리앙 님은 아무것도 없나요?”

그러다가 리앙이 빈손인 것을 보며 조금 슬프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내려간 눈꼬리와 살짝 울망거리는 눈동자를 보며, 리앙은 가슴이 아파짐을 느꼈다.

계산으로만 점철된 뇌와 달리 마음이 움직이는 느낌에, 리앙은 안심하라는 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실라 님이 가장 좋아하는 건 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네?”

“하? 그녀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아실라가 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가.”

“아뇨. 아실라 님은 분명히 빵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무슨…….”

“가장 좋아하시는 건. 바로 이 빵집이죠.”

“아앗!”

아실라가 생각지도 못한 답에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하늘색의 눈동자가 반짝이며 깜빡인다.

“하지만 이 빵집을 사 드릴 순 없으니, 저는 이 빵집 안의 모든 빵을 답으로 하겠습니다.”

“큭, 그런-!”

“……예상외군요.”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다.”

“대단해요! 저도 생각도 못 했어요! 아하하! 리앙 님이 맞아요! 저는 빵을 정말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이 빵집 자체예요! 전, 이 빵집이 너무너무 좋아요!”

까르륵. 아실라의 웃는 목소리가 아름답게 울렸다.

리앙은 그 귀여운 모습과 예쁜 얼굴과 사랑스러운 몸놀림과 아름다운 목소리를 보고, 듣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황홀하다는 눈빛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도.

“정답이죠?”

“네! 정답이에요! 리앙 님이 저랑 데이트해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로나와 모나한 또한 그것들을 모두 본다.

처음에는 조금이라도 현실 같았던 장면들이 갈수록 작위적으로 되어 가는 것을.

모나한은 이젠 익숙하다는 듯이 신경을 꺼 버리는 모습이었지만, 로나는 살짝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게임 속 이벤트라지만 뭔가 갈수록 어색해지지 않는가?

무언가 어긋난 것처럼.

묘한 불쾌감이 척추 끝을 훑고 지나갔다.

* * *

아실라와 남주들이 모든 빵을 결제하고 사라진 후, 모나한과 로나는 학원으로 보내기 위한 빵을 주섬주섬 포장했다.

양이 너무 많아서 그들 손으로는 들고 갈 수 없어, 포장해서 보내 주기로 한 것이었다.

하루 장사를 완료해 주셨는데, 배달 정도야.

“그 정상적으로 보이던 리앙 님도 결국 남주 중 한 명이었네요.”

“아, 그러게요.”

“이젠 그냥 익숙해져서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래요?”

“그냥 짜증만 날 뿐이죠. 얼른 지나가길 기다리는 마음이랄까. 그보다, 로나.”

“그래요?”

“……로나.”

모나한이 멍하니 기계적으로 빵을 포장하며 단조로운 대답을 반복하는 로나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로나가 깜짝 놀라며 모나한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어요?”

“……아뇨.”

“로나?”

“……음. 아실라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

“……네?”

로나는 멍하니 생각하던 걸 다시 반복했다.

아실라는 게임 여주인공인 만큼 남주들이 상처받고,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상황에 마법처럼 나타나 그들을 위로한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그들의 심금을 울리고, 그들은 결국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둔한 아실라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긍정적이고 밝게 남들을 구원하면서 사는 착한 소녀다.

“하지만 방금은 조금 뭔가 이상해서요. 뭐랄까……. ‘난 착해요. 그러니 당신들이 날 사랑하는 건 당연해요’라는 느낌이라.”

“그런가요?”

“그렇다고 원작처럼 흘러가지 않는 건 아니니까…… 묘하게 작위적인 것만 다르고.”

“예전부터 작위적이지 않았나요? 플러팅도 오글거리고.”

“아, 그건 그랬죠.”

“솔직히 말할게요. 전 관심 없어요. 그들이 무얼 하든, 어떻게 되든.”

모나한은 마지막 빵 포장지를 접으며 배달용 상자에 빠른 속도로 빵들을 넣으며 말했다.

매우 무심하고, 정말로 관심 없다는 목소리였다.

“우리에게 피해만 오지 않으면 돼요. 정확히는 로나 씨에게 피해가 오지 않으면요.”

“음.”

“제게 오는 피해는 알아서 잘 막을 수 있어요. 전 강하니까요.”

“그래요?”

“빈말이 아니라요. 저 진짜 강해요. 괜히 오래 살아남은 게 아니라고요.”

모나한이 마지막 상자의 덮개를 닫으며 진지한 얼굴로 로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로나 씨는 아니죠. 당신은 약해요.”

“……그렇죠.”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에요. 당신은 전투력이 없을 뿐이잖아요. 대신 다른 장점이 아주 많죠. 제빵 실력, 야무진 손끝, 오븐 온도를 맞추는 능력, 빠른 눈치, 귀여운 눈동자, 귀여운 머리카락, 안경이 잘 어울리고-”

“중간부터 이상한 게 섞여 있지만, 네. 제가 전투력은 없죠.”

“이상하지 않아요. 제가 전투력이 많으니까 상관없어요. 전 로나 씨 옆에 언제나 있을 거고, 제가 로나 씨의 전투력인 거죠.”

“흠, 저 최강인가요?”

“네. 최강이에요. 아무튼, 제 말은, 걱정하지 말란 뜻이에요.”

모나한이 로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당신에게 어울리는 고민은 오늘 뭘 만들까예요. 아니면 오늘은 모나한과 어떻게 연애를 할까이고요.”

그는 부드럽게 웃었다.

“당신을 지키는 건 제 일이에요. 알겠죠?”

“……네. 고마워요.”

“별말씀을. 제 기쁨인걸요.”

* * *

아실라는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의 주위에서 살랑거리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호감 한 조각이라도 얻기 위해 움직이는 이들.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마을에서 가장 귀여운 남자아이.

마을에서 가장 잘생긴 오빠.

마을에서 가장 친절한 누군가.

가장 부자인, 가장 요리를 잘하는, 가장 인기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있고, 자신은 그걸 치유할 수 있었다.

그건 그녀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

길을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누군가가 상처받는 일이다.

길을 가다가 큰 소리가 나는 일이 있으면, 그건 누군가의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다.

그럼 다가가서 말하면 된다.

착하고, 친절하고, 따뜻한 말들.

누군가의 감정이 흔들리는 걸 눈치채는 건 아주 쉽다.

그걸 치유하는 말을 뱉는 것은 더 쉽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러니 그녀가 사랑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원하는 이는, 모두 자신에게 구원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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