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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폴먼 리앙 님!”
띠링-!
-축하합니다! ‘틸레아 분홍 꽃’의 마지막 남주인공을 만났습니다.
-<‘틸레아의 분홍 꽃’의 빵집 업적이 마지막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 ‘틸레아의 분홍 꽃’의 마지막 남주인공을 만났습니다. 관련 이벤트가 빵집에서 벌어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에게서 얻는 경험치와 빵 코인이 크게 상승합니다.>
그리고 재앙의 주둥아리가 훈훈함을 신나게 두들겨 팼다.
아실라가 리앙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는 내게 와 꽃이 아니라 남주가 되었다.
빌어먹을!
정상적이고 말이 잘 통하고 훈훈한 단골손님이었는데!
“세르빈 아실라 님. 오랜만이네요.”
“네에? 저희 3일 전에 학교에서 봤잖아요.”
“그런가요? 저한테는 오랜만인 느낌이라.”
아실라의 어장에는 중2병 물고기만 파닥거리는 줄 알았는데, 정상인 물고기도 파닥거렸나 보다.
로나는 동정과 거리감이 반쯤 섞인 눈빛으로 리앙을 쳐다보았다.
그래. 어린 시절에 불같은 사랑에 한 번쯤 휘둘리고, 나중에 이불 좀 열심히 차면 되겠지.
“헤헤헤. 그런가요? 전 이 집 단골이라 일요일 점심때마다 와요! 여기 빵이 정말 맛있거든요.”
“아. 그렇군요. 저도 자주 오곤 합니다만. 그동안 못 마주친 걸 보면 시간대가 좀 달랐나 봐요.”
“정말요!? 전 여기 슈크림 빵을 정말 좋아해요. 다른 빵도 좋지만, 여기 슈크림 빵은 안에 달콤하고 뽀얀 크림을 잔뜩 넣은 데다가, 겉은 살짝 바삭거려서 입 안에 넣으면 행복이 좌르륵 흐르는 느낌이에요! 기본적인 슈크림 빵도 좋지만, 저번 슈크림 빵은 안에 화이트초콜릿 조각들을 넣어서 또 다른 맛이었어요!”
“그렇군요. 저는 커피번을 제일 좋아합니다만, 오늘은 없더군요.”
“아아, 여긴 빵을 매번 다른 걸 만들어서 좋아하는 빵이 없기도 하죠. 하지만 전 그게 좋아요! 선물 상자를 여는 기분이에요!”
“……선물 상자.”
“네! 선물 상자요! 문을 열 때마다 두근거리죠!”
리앙은 아실라가 하는 선물 상자라는 말을 곱씹으며 로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선물 상자를 여는 기분을 느끼는 손님이 여기 있었다.
언제나 반쯤 둥실거리는 것 같은 귀여운 발걸음으로 학원 안을 신나게 돌아다니는 아실라.
밝은 얼굴로 행복을 뿌리고 다니는 그녀의 웃음소리와 세상을 환하게 만들어 주는 그녀의 긍정적인 말들은 평소에도 자신에게 많은 감명을 주곤 했다.
아실라는 세상을 환하게 만들어 주는 그녀 특유의 분위기를 뿜어내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선물 같은 빵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은 어떤 빵이 있을까, 그건 또 어떤 맛일까? 두근두근해요. 게다가 여기 사장님은 빵을 정말, 저엉말 잘 만들어서요! 어떤 빵이나 다 맛있으니까, 실망할 일도 없어서 더 좋죠! 최고예요!”
리앙은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이 생각했던 장사 신념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 빵집의 주인인 로나 씨의 말을 들으면서 얻었던 깨달음이 완전히 정착하는 느낌.
“그렇네요. 즐거운 빵집이군요.”
“맞아요! 즐거운 곳이죠!”
리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로나가 훌륭한 제빵 솜씨를 가진 만큼 훌륭한 장사 솜씨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리앙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로나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저런 정상적인 대화라니!?
아실라의 물고기가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단 말이야!?
저길 봐! 모나한도 뭔가 이상한데 안심된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고!
안심되긴 하는데,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몰라 묘하게 의심하는 아리송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던지려고 준비하고 있던 쟁반을 내려놓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지금!
로나와 모나한이 정상적이고 훈훈한 대화를 하는 아실라와 리앙을 보며 동공 지진을 일으키고 있을 때, 빵집의 문이 딸랑거리며 열리고 건장한 소년들이 우르르 빵집 안으로 들어왔다.
정상적인 대화가 싫었는지, 빵집 안을 다시 중2 중2 하게 만들어 줄 이들의 등장이었다.
“내 아기 토끼. 여기 있었군.”
“아실라 님, 찾아다녔습니다.”
“아실라! 또 이곳인가.”
로나는 자신의 빵집에 중2력이 모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한꺼번에 들이닥쳐 온 금발과 흑발과 연두색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형형색색의 머리카락이 모이니까 진짜 현실감 떨어진다.
원래 여기가 판타지 세계라서 머리카락 색이 신기한 게 많긴 했지만, 현실은 현실이라 갈색이나 탁한 금발이 많았다.
그런데, 빵집 안에 무슨 노래방 미러볼이라도 켜 놨냐?
완전히 쨍한 색들만 모아서 전시 중이구만.
“큭……! 너희들이 왜 여기에!”
“전 아실라 님에게 할 말이 있어서 온 것뿐입니다.”
“나야말로 아실라에게 볼일이 있다!”
로나는 자신과 모나한을 병풍으로 세워 놓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는 이들을 멍하니 보았다.
뭘까, 저건.
저 때문에 싸우지 마세요?
“다들 저 때문에 싸우지 마세요!”
“워씨.”
“로나?”
자신이 멍하니 생각한 대사를 아실라가 그대로 외치자, 로나는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모나한이 소란을 틈타 로나 옆으로 왔다가, 로나의 행동에 흠칫 놀라 물었다.
“아니, 저 대사를 실제로 뱉을 줄이야…….”
“네?”
로나가 아실라의 대사에 충격을 받을 무렵, 아실라는 티격태격 싸우고 있는 세 사람 사이에 자신의 작은 몸을 욱여넣으며 외쳤다.
“이렇게 싸우시면 다시는 말 안 걸 거예요!”
“헉.”
“음.”
“큭.”
“정말…… 여러분은 만날 때마다 싸우시네요. 사이좋게 지내시면 안 돼요? 왜 매일 싸우시는지도 모르겠고…….”
너 때문이잖아. 너 때문.
“전 모두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세 분 모두 각자 훌륭하신 분들이시잖아요. 모두 다 멋지시고, 좋으신 분들인걸요…….”
아냐 아냐 아냐. 저 사람들이 친해지면 그야말로 파국이다.
아니, 물론 정치상으로는 친하게 지내야겠지.
근데 지금 저건 정치가 아니라 사랑이잖아?
친해질 수 있겠냐?
“모두 나중에 장차 나라를 이끄실 분들이신데…….”
아. 그랬지.
당신들이 나라 이끌지.
나 지금 장차 나라를 이끌게 될 이들의 중2병 시절을 보고 있는 거군.
“흠좀무.”
“네?”
“흠, 좀 무섭네요.”
“……로나 씨는 아실라가 들어오면 좀 이상한 말을 한단 말이죠.”
“왠지 현실감이 떨어져서 드립이 튀어나와요.”
“그렇군요. 전 현실감이 떨어지면 쟁반을 던지고 싶어지던데.”
“아, 그래서 쟁반을 들고 있었군요.”
로나는 모나한이 결국 내려놓지 못하고 들고 온 쟁반을 보며 말했다.
모나한은 마치 자신이 결전의 무기를 쥐고 있는 듯한 진중한 표정으로 쟁반을 들어 올렸다.
“못 버티면 투척할 겁니다. 마음 같아선 저들의 면상에 하나씩 던져 주고 싶네요. 그럴 능력도 있고요.”
“안 돼요. 참아요. 착하지?”
“할래요. 싫어요. 아뇨, 저 나쁜 아이인데요.”
로나가 모나한의 부들거리는 손에 들린 쟁반을 붙잡고 말리는 동안, 아실라의 어장 속 물고기들은 파닥거리며 지느러미로 서로를 치고 있었다.
“내가 먼저 왔으니, 아실라에게 내가 먼저 말하겠다.”
“아뇨. 제 볼일이 더 급합니다.”
“나야말로, 양보하기 싫다만?”
“아, 정말. 여러분!”
“……저 거기 껴야 합니까?”
그리고 물고기 중에 유일하게 정상인일지 모르는 리앙이 떨떠름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는 서로 싸우는 그들을 봤다가, 가게의 주인인 로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이 가게의 주인이자, 어른인 로나에게 기대를 하며 말을 걸었다.
“저어. 로나 씨. 이들을 좀 말려 주시면-?”
“네?”
로나가 방긋- 자본주의의 미소를 했다.
“여기 주인이시고 어른이시니까, 소란이 안 일어나도록 해 주시면-?”
“네?”
로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방긋- 웃었다.
“아니, 그…… 말릴 생각 없으시군요.”
“네. 싫어요.”
로나가 그대로 웃는 모습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앙은 ‘저게 어른의 처세술……!’ 같은 생각을 하며, 점점 목소리가 커지는 아실라네를 바라보다가 자신이라도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사명하에 소리쳤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음?”
“흠?”
“하?”
“네?”
리앙은 순식간에 집중되는 휘황찬란한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에 흠칫 굳었다가 말을 이었다.
“여긴 빵집이고, 이 안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것도 민폐이잖습니까. 여기 주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아실라 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방법. 그러니까, 아실라 님이 제일 좋아하는 빵을 고른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겁니다.”
“음…… 좋은 생각이군.”
“흠- 나쁘지 않군요.”
“하! 드디어 방법이 생겼나?”
“그거 괜찮네요! 좋은 방법이에요!”
리앙의 말에 다들 괜찮은 방법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하는 것을 보며, 모나한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로나에게 속삭였다.
“저 음, 흠, 큭, 하- 등등의 추임새 있잖아요.”
“네.”
“하나하나 있으면 괜찮은데, 모이니까 최악이네요.”
“그러게요. 꼭 저렇게 붙여야 하는 걸까요.”
“그리고 묘하게 작위적이어서 더 기분 나쁩니다. 연극 같아요.”
“비슷하죠. 게임이잖아요.”
로나는 모나한의 잔뜩 찌푸려진 미간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이미 아실라를 보고 충격을 먹었던 그날, 그리고 모나한이 위로를 해 주었던 그날 밤부터.
로나는 모든 걸 내려놓은 현자와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었다.
특히 이벤트가 터지는 일요일에는 더더욱.
“저희가 무슨 뿌연 배경들인 것처럼 굴잖아요.”
“그렇네요. 이 뒤에서 무슨 짓을 하든 저들은 신경도 쓰지 않으니까, 더 배경인 거 같기도 하고.”
“우리가 막 사실은 가만히 서 있는 거로 보인다든가.”
“자기들만의 세계에 푹 빠져서 여긴 신경도 안 쓰니까요.”
그러나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모나한은 갈수록 일요일의 이벤트가 싫어지기만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불만이 가득 서린 얼굴로 투덜거렸다.
“정말 로나 씨 말대로, 일요일마다 현실 감각이 뚝 떨어져요.”
“그래도 저랑 같이 현실 감각 떨어지는 사람 생기니까…… 전 솔직히 좀 괜찮네요.”
그런 모나한을 로나가 살짝 올려다보며 말했다.
모나한이 아실라네를 째려보고 있던 눈을 돌려, 갈색 머리카락 사이에서 빼꼼히 반짝이는 로나의 눈동자와 마주치고는 심장 부근을 부여잡았다.
“지금 꼬시는 거죠!?”
“네?”
“하…… 로나 씨 스킬이 점점 늘어가고 있어요. 솔직히 말해요. 그 상태창 어쩌구에 유혹 스킬도 있죠?”
“어…… 뭐어. 생겼을 수도 있죠.”
로나가 모나한의 말에 눈에 당황을 담은 채 몇 번 깜박이다가 대답했다.
“하. 생긴 게 틀림없으니까 확인해 봐요. 그것 좀 끄고 삽시다, 네? 하루하루 심장 떨려서 죽겠네.”
“모나한의 유혹 스킬은 점점 버터를 바르네요.”
“괜찮아요. 가염 버터라서 느끼하지만은 않으니까. 게다가 로나 씨는 빵이니까 최고의 궁합이네요.”
“그렇게 되나요?”
“네. 그렇게 되네요.”
모나한이 뻔뻔하고 예쁘게 찡긋거리면서 웃었다.
로나는 그 얼굴을 보고 뾰로통한 표정을 했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에게 했던 말대로, 현실 감각이 없는 이 상황에 같이 있을 수 있는 그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버티지 못했을지도 몰라.
버텼더라도 어딘가 망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도망쳤을 수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괜찮았다. 정말로 괜찮았다.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있고, 같이 싫어해 주는 사람이 있다.
로나는 이상하게, 가장 현실 감각 없는 이 상황에서, 처음으로 외롭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 처음으로.
외로움이란 텅 빈 공간 같은 것이다. 주인도 없고, 가끔 다녀가는 사람만 있어서, 비어 버린 곳이 더 티 나고 마는.
로나는 처음으로, 꽉 찬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그곳에 주인이 생겼다.
“괜찮네요.”
“네?”
“토끼 얼굴 여우, 뱀파이어, 종복, 안경 덕후, 가염 버터.”
“어…….”
“괜찮다구요. 모나한이요.”
“……좋은 거죠?”
모나한이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 당황한 얼굴을 보며, 로나가 웃으며 답했다.
“네. 좋은 거예요.”
모나한이 언젠가 묘사했던 것처럼.
태양 빛에 달아오른 나무, 오븐에서 막 구워진 밀 빵 같은 웃음.
행복이란 것들이 따듯하게 일렁이는.
모나한은 손을 들어 그 웃음 한 조각을 건드렸다.
손끝에 따스한 볼의 온도와, 올라간 입꼬리, 솜털.
“당신, 분명히 유혹 스킬 있어요.”
“지금 두근거려요?”
모나한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올랐다가, 내려갔다.
어떻게 이것들을 말로 표현할 수 있지?
뱉으면 가벼워질까 봐 무섭고, 또 너무 무거울까 봐 망설이는데.
로나는 대답 없는 모나한의 일렁이는 눈동자를 보았다.
선홍색 눈동자가 어떠한 감정으로 흔들리는지.
이내, 감겨 버리는 눈꺼풀 사이로, 얼마나 깊게 가라앉았는지.
“위험한가 보죠?”
“……네.”
아주요.
모나한이 속삭였다.
“물러날까요?”
로나가 부드럽게 말했다.
난 이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아요. 위험한 것도 알고요.
거리를 두기 아주 힘든 거라서,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요.
“그러지 말아요.”
“네.”
“맞아요. 위험해요. 그래도, 그러진 말아요.”
“네.”
“물러나진 마세요.”
네.
로나가 답했다.
조금 웃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