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그 후 모나한은 짜증 나게도 한참이나 헤실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렇다.
짜증 나게도.
“로나 씨.”
“1미터 이상 떨어져.”
“너무합니다! 저번 주부터 너무 절 경계하고 있잖습니까!”
“전 알았어요. 당신에겐 기회를 주면 안 돼.”
“그러지 말고요. 아무 짓도 안 할게요. 딱 손만 잡을게.”
“2미터 떨어져.”
“알았어, 알았어요. 손을 이렇게 다소곳이 하고 있을게요. 네?”
모나한은 가슴 앞에 두 손을 꼭 잡은 채, 눈썹 앞쪽을 살짝 올리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저거 또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표정 한다.
당근 뺏긴 토끼 같은 표정하고 있네.
“30cm. 그 이상 다가오면 화낼 거예요.”
로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모나한을 째려보며 말했다.
너의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경계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모나한은 로나의 가늘게 뜬 갈색 눈동자와 코끝에 찡그려져 있는 귀여운 주름을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흠. 그거 알아요, 로나 씨?”
“……뭘요?”
“이번 일주일 내내 저랑 닿기만 하면 얼굴이 빨개졌는데.”
“…….”
“지금은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네요.”
“저기 벽 보고 서 있어! 반성하고 있어!”
로나가 모나한을 째려보면서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던 얼굴을 완전히 새빨갛게 붉히며 소리쳤다.
입 한번 맞췄다고 기어오르는 놈!
“쳇.”
“그건 지금부터 반성의 벽이에요! 제가 반성하라고 하면 거기 가서 서 있어요!”
“흠, 뭐. 사랑스러운 로나 씨의 명령이라면.”
“네 주인의 명령이다!”
모나한은 장난기가 드글드글한 얼굴로 딱 얄미운 표정을 보여 주고는 벽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벽 앞에 섰을 때, 모나한이 로나가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로나 씨가 이대로 하루 종일 얼굴 새빨개서 장사 안 했으면 좋겠다아아-”
“네?”
“오늘 일요일이잖아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요일.”
모나한은 이제 일요일이 싫어질 지경이라고 중얼거렸다.
“우리 일요일을 휴일로 하면 안 됩니까?”
“주말 장사가 제일 잘되잖아요.”
“제가 하루치 이익금을 주머니에 살짝 넣어 드린다면?”
“아실라는 일요일에 문 닫으면 다른 날 올 것 같단 생각 안 드나요?”
“학원 다니잖아요.”
“그다음 주부터 토요일 날 오겠죠.”
“……제가 이틀 치 이익금을…….”
“안 받아요. 안 사요. 돌아가세요.”
어느새 벽 보는 것도 그만두고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한 모나한에게 로나가 다시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나한은 다시 입술을 조금 삐죽거리다가 벽으로 향했다.
“전 반성의 벽 싫어요.”
“반성의 벽요?”
마침 가게에 들어오던 남학생이 모나한의 투덜거림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그거 어린애들이 하는 거 아니에요? 모나한 씨가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사장님을 열심히 놀리다가 그만.”
“아하하. 두 분은 언제 봐도 사이좋으시네요.”
그 손님은 아실라와 같은 학원의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었다.
그는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과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었는데, 훤칠하게 큰 키에 묘하게 관록 있어 보이는 얼굴이 그를 소년보다는 청년에 가깝게 보이게 했다.
노안이라면 노안인데, 잘생긴 노안이랄까.
“뭐, 그런 편이죠. 오늘도 빵 종류 하나씩 다 사 가실 건가요?”
“하하. 여기 빵은 올 때마다 다른 종류로 계속 바뀌니까, 전부 사 먹어 보게 되네요.”
“일주일 단위로 종류를 정해 놓긴 하는데, 그날그날 당기는 게 있으면 그걸 만들곤 하거든요.”
남학생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고갯짓에 따라 곱슬머리가 통통 튀어 눈앞에서 흔들렸다.
그는 그 앞머리가 신경 쓰였는지 가벼운 손놀림으로 뒤로 넘겨 버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햇볕에 잘 익은 동그란 이마가 보였다가 다시 내려오는 앞머리에 가려지곤 했다.
몇 번이나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아 그게 그의 습관인 듯했다.
학생의 이름은 폴먼 리앙.
그는 여러 번 가게를 들락날락한 빵집의 단골 중 한 명이었다.
틸레아 학원 학생에 큰 키, 잘생긴 외모에 로나는 그가 게임의 남주 후보 중 한 명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는 한 번도 아실라와 마주친 적이 없었다.
애초에 일요일 날 온 적은 더더욱 적었고.
그를 남주 후보로 의심한 이유 중의 하나는 아직 마주치지 못한 상인 남주 후보가 리앙와 똑같은 갈색 머리에 초록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어서였다.
그러나 그건 이 세계에서 아주 흔한 조합이기도 했다.
여길 봐도 갈색 머리, 저길 봐도 초록색 눈동자가 왕창 있어서 로나는 저 손님이 상인 남주인지, 아니면 다른 손님 중 한 명이 상인 남주인지 헷갈렸다.
애초에 귀족이나 부유한 이들이 다니는 학원인 만큼, 어느 정도 외모를 꾸미는 이들이 많았고, 그 말은 빵집을 들르는 학생들 중에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남주 후보들은 넘사벽 외모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네 명의 남주 중 상인 남주는 그 외모가 가장 떨어진다고 알고 있었다.
그는 외모보다는 특유의 능글맞음과 여유로운 분위기로 팬층을 확보하는 타입이었으므로.
업적창이라도 뜨면 그가 남주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겠는데, 자신이 확신이 없어서 그런가 그가 아실라랑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가, 업적창은 뜨지 않았다.
갈색 머리와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남학생을 보면 ‘상인 남주! 저 녀석 상인 남주!’라고 속으로 외치기도 몇 번.
로나는 이내 상인 남주를 찾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래도 학생들 중에 가장 상인 남주 같은 학생은 폴먼 리앙이었지만, 그는 다른 남주들과 뚜렷하게 다른 점이 있어 로나를 더욱 헷갈리게 했다.
그가 다른 남주들과 다른 점이라면, 바로 정상적인 대화!
그렇다.
폴먼 리앙은 로나와 정상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두둥!
뭐 이런 걸로 의심하냐고 묻기에는 다른 남주들이 지금까지 보여 준 행동들이 있었다.
아기 토끼, 연약한 토끼, 이런 서민들이나 먹는 음식- 같은 대사를 실시간으로 보게 한 그들의 엄청난 행동들.
그에 반해 리앙은 아주 평범하고 친화력 있는 손님이었다.
게다가 그는 일요일이 아니라 다른 요일에 불쑥불쑥 나타나 모든 빵을 종류별로 하나씩 사 가는 큰 손님이기도 했다.
“여기 커피번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거든요. 근데 오늘은 없네요.”
“미리 말씀해 주시면 구워 드리기도 해요. 다음에 언제 올지 말해 주시면 그날은 커피번을 구워 놓을게요.”
“음…… 다음 주 수요일 즈음에 올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여기 쪽지 드릴 테니까, 이름이랑 사실 개수, 종류 좀 적어 주세요.”
“네?”
“커피번 같은 건 막 만든 게 맛있잖아요. 아침에 만들어 놓으면 아침 식사용으로 다 사 가서 없어지기도 해서요. 인기 상품은 몇 개 남겨 놓아야 하거든요.”
“……인기 상품들을 주메뉴로 해서 파는 게 낫지 않나요?”
리앙은 로나의 말을 듣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매일 새로운 종류를 만드는 것보다, 주로 팔리는 종류 몇 가지를 정해 놓는 게 편하잖아요. 손님들도 원하는 빵을 쉽게 먹을 수 있고요. 이런 것들은 매일 만들고, 한 서너 가지만 특별한 걸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이렇게 종류를 매번 바꾸면 남는 빵들도 있을 테고, 그것들은 아깝게 버려야 하잖아요.”
리앙은 그런 말들을 하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로나의 눈동자에 “물론 여기 빵은 전부 맛있긴 하지만…….”이라며 덧붙였다.
“제가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서요…… 장사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게 습관이랄까.”
볼을 긁적이면서 말하는 것이 정말 반사적으로 나온 말인 듯싶었다.
로나는 그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모든 종류의 빵을 하나씩 전부 고른 리앙의 쟁반 위 빵을 하나하나 포장하며 입을 열었다.
“알아요. 그게 더 이익이 많을 거란 건.”
“네? 그런데 왜-”
“이게 더 좋으니까요.”
“음…….”
“이익만 보고 장사했다면 그렇게 했겠죠. 매일매일 똑같은 메뉴를 골라 만들면, 편하죠. 이 빵집을 하기 전에 다른 지역에서 했던 빵집은 그렇게 했어요.”
로나는 종이봉투에 빵들을 집어넣었다.
매일 다르게 만들어지는 빵들이다.
매일 다른 레시피로, 다른 재료로, 다른 방법으로.
“근데 그러면 정말 ‘일’이 되더라고요. 매일 똑같은 빵에 매일 똑같은 가격, 똑같은 모양……. 습관처럼 계량하고 반죽하고 굽고. 아주 지루하죠.”
“지루하다…….”
“전 아마 평생 빵을 만들 텐데, 그 일이 지루하기만 하다면 금세 질리겠죠. 그냥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할 거예요. 그러기 싫었거든요.”
그녀는 빵빵한 종이봉투를 리앙의 품 안 가득 안겨 주었다.
살짝 벌어진 갈색 종이봉투 사이에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맛있어 보이는 갈색들이 모여 있는 모습.
동글동글하고 뽀얀 갈색, 반들거리는 갈색, 맛있어 보이는 갈색이 가득.
“평생 할 일은 이익만 보곤 못해요. 재미가 있어야죠. 직접 장사해 봤어요?”
“……아뇨?”
“그렇죠? 정말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면 재미있게 하세요. 손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여기 올 때 무슨 기분이 들어요? 오늘은 도대체 어떤 빵이 있을까, 이건 또 무슨 맛일까. 기대되지 않나요?”
“……기대돼요.”
“저 문을 여는 순간 선물 상자를 여는 기분이 되는 거죠. 구경하는 재미도 있을 거고요. 먹는 재미도 있죠. 저 빵 아주 잘 만들어요. 취향은 탈 수 있지만, 맛없는 빵은 없을 거예요. 그렇죠?”
“……네.”
“그럼 여기는 재미있고 맛있는 빵집이네요.”
로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남는 빵이 많지도 않아요. 가끔은 많이 남기도 하는데, 그런 날은 저기 뒤에 반성의 벽에 서 있는 남자 있죠?”
“아하하. 모나한 씨요?”
“네. 모나한이 엄청나게 좋아해요. 모나한 위장이 아마 이만할걸요?”
로나가 팔을 활짝 벌리며 모나한의 위장 크기를 묘사했다.
“빵이 많이 남는 날은 모나한이 제일 좋아하는 날이죠.”
로나의 키득거리는 얼굴과 로나의 말을 듣고 벽을 본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나한의 모습을 번갈아 보던 리앙이 멍하니 대답했다.
“즐겁게 하는 장사라…… 생각도 못 했어요.”
“너무 깊게 귀담아듣지는 마세요. 그냥 개인 장사꾼이 하는 말이니까.”
“아뇨.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됐어요. 빵이나 맛있게 먹어요.”
역시 이런 정상적인 소년이 아실라의 물고기일 리가 없어.
로나가 그렇게 생각하며 리앙과의 인사를 훈훈하게 마무리를 할 즈음이었다.
딸랑- 하고 빵집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분홍색 머리카락이 동실거리며 들어왔다.
만악의 근원, 아실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