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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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날들이 지나가고 어느새 일요일.

평소와 같이 도란도란한 아침 준비를 끝내고 장사를 시작한 로나는 계산대의 높은 의자에 앉아 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바탕 아침 손님들이 왕창 지나가고 한가한 오전.

로나는 위층에 가서 가벼운 소설책이라도 가져와야 하나 고민했다가 그만두었다.

아마 이제 곧 아실라가 올 시간이었으니 소설책을 볼 시간도 없으리라.

오늘은 도대체 어떤 이벤트가 펼쳐질지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로나는 계산대 위에 턱을 괴고 몸의 힘을 빼고 느리게 눈을 깜박거렸다.

나른하게 지나가는 시간에 조금만 방심하면 졸아 버릴 것 같던 그 시간, 온몸에 치렁치렁한 로브를 뒤집어쓴 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굴까지 로브로 푹 눌러쓴 이는 뭔가 가늠하는 것처럼 빵집을 두리번거렸다.

“안녕하세요.”

가끔 얼굴을 가린 귀족이나, 그들의 시종들이 오곤 했으므로 로나는 계산대에 기대었던 몸을 바르게 일으키며 적당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러나 로브를 쓴 이는 인사를 받을 줄 몰랐는지, 흠칫 놀라다니 고개만 까닥하고 진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진열대를 옮겨 다니면서 빵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뭐지.

도둑인가? 아니면 다른 빵집 주인의 염탐?

관찰하듯이 가게를 둘러보는 모습이 매우 어색해 보여서 오히려 의심이 싹텄다.

로나가 로브를 쓴 자를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자, 모나한이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마법사 같은데요.”

“마법사요?”

“네.”

그럼 도둑도 경쟁 상점도 아닐 테고, 마법사가 저렇게 수상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나?

“마법사는 원래 저런 모습이에요? 상당히 수상해 보이는데.”

“아뇨. 로브를 즐겨 입긴 하지만 저렇게 완전히 가리고 다니진 않는데요.”

“그럼 수상한 사람 맞죠?”

“음…… 아마도?”

로나와 모나한이 작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로브를 입은 사람은 벌써 진열대를 세 바퀴 정도 돈 후였다.

정말 수상한 모습이었는데, 들고 있던 쟁반이 텅 비어 있어서 더욱 그랬다.

로나는 마법사가 제 가게에 와서 수상한 짓을 할 만한 게 무엇이 있나 고민하다가, 갑자기 몰려오는 하품에 크게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방금까지 몰려오던 나른한 시간의 여파였다.

그녀는 졸음을 쫓으려는 듯 기지개를 한번 펴고는 마법사에게 주었던 관심을 거둬들였다.

어차피 눈치 빠른 뱀파이어가 상주하는 가게인데, 이상한 점이 있으면 자신보다 모나한이 먼저 알아차릴 것이다.

로나는 신경을 끄고, 아직 살짝 남은 졸음을 쫓으려 손을 주물럭거렸다.

수상한 사내는 진열대를 다섯 바퀴 즈음 돌고 나서야 드디어 쟁반을 들고 계산대 쪽으로 걸어왔다.

한참을 고민한 것과는 달리 쟁반 위에는 세 가지 빵만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결정 장애가 있는가 보지.

많이들 가지고 있는 병이지.

그냥 계산하러 온 걸 보니 옷차림과 행동만 수상할 뿐, 나쁜 마음으로 가게에 온 건 아닌 것 같았다.

진상을 부린 것도 아니었고, 그냥 빵집 안을 뱅뱅 돌기만 했으니.

로나가 사내에 대한 의심을 저 멀리 날려 버리고는, 그의 빵을 계산해 주려고 계산대의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빵집 문의 종이 ‘딸랑!’ 하고 울렸다.

“안녕하세요!”

평소보다 살짝 이른 시간에 빵집을 들른 아실라였다.

그녀는 언제나와 같은 밝은 목소리와 명랑한 표정으로 빵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주인공의 버프라도 있는 건지, 오후의 여름 햇살에 나른했던 빵집 분위기가 순식간에 화사해졌다.

쟤는 맨날 등 뒤에 꽃을 피우고 다니더라.

웃으면 아주 활짝 피고 말이지.

로나는 잠이 완전히 달아나는 것을 느끼며, 아실라의 인사에 화답했다.

그리고 로브를 입은 사람이 아실라의 인사 소리를 듣자마자 몸을 90도로 꺾어 다시 진열대로 돌아갔다.

“아……!”

그 모습을 보자마자 로나의 머릿속에서 한 사람이 휙 스쳤다.

그러니까 또 다른 남주 후보 중 한 명.

아실라를 좋아하면서도 틱틱 대고 마는 츤데레 마법사.

-축하합니다! ‘틸레아 분홍 꽃’의 남주인공 중 한 명을 만났습니다.

-업적이 업그레이드됩니다.

-<‘틸레아의 분홍 꽃’의 빵집 업적이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 ‘틸레아의 분홍 꽃’의 남주인공을 만났습니다. 관련 이벤트가 빵집에서 벌어질 확률이 더욱 올라갑니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에게서 얻는 경험치와 빵 코인이 상승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업적 알림이 떠서 그가 로나가 생각한 츤데레 마법사가 맞다고 알려 주었다.

빵집에서 이벤트가 벌어질 확률이 올라간다니 이미 일요일마다 이벤트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젠 다른 날에도 일어날까 봐 무섭기까지 하다. 볼 때마다 맘에 안 드는 업그레이드였다.

로나는 푸른 상태창을 시야에서 치워 버리고는 아실라의 인사에 화답했다.

“오늘은 조금 일찍 오셨네요.”

“네! 여기가 잘 고쳐졌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보니까 라이언 님이 잘 고치셨나 봐요! 티도 안 나요!”

어쩜 저렇게 모든 말에 느낌표가 들어가는 걸까.

텐션 높은 아이일세.

“리모델링했다고 생각하려고요.”

“정말 리모델링한 거 같아요! 아앗! 이럴 게 아니지! 빨리 빵을 왕창 사야겠어요! 일주일 내내 먹고 싶어서 배 속이 꼬르륵거렸다구요!”

“네에. 원하시는 거 고르세요.”

“네!”

아실라가 통통거리는 걸음으로 진열대를 향해 걸어갔다.

그 걸음걸이를 따라서 분홍색 머리카락이 몽실거리면서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로브를 쓴 이와는 전혀 다르게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손놀림으로 쟁반을 가득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거 맛있겠다! 꺄아! 향기도 좋아! 아앗! 이건 처음 보는 빵!”라는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빵집 안을 밝게 울렸다.

그리고 그런 아실라의 움직임에 따라 로브를 입은 자의 시선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아마 자신이 짝사랑하는 소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는 모양이지.

그는 아실라의 사랑스럽고 밝은 모습에 푹 빠져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지, 빵이 세 개 올려진 쟁반을 그대로 꼭 쥔 채, 아실라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모든 빵을 하나씩 쟁반에 담는 아실라가 그와 점점 가까워졌지만, 아실라를 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던 그는 그녀가 그렇게 다가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면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녀의 모습이 마치 꿈같아서 움직일 생각조차 못 했거나.

어쨌든 마침내 아실라가 그와 한 발자국 남기고 멈춰 섰고, 당연하게도 소녀는 그를 발견해 내었다.

“앗! 니켈스 님!”

“흣!”

“니켈스 님 맞으시죠!?”

로브에 완벽히 가려진 얼굴을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아실라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니켈스는 자신을 알아본 것에 놀란 것인지, 아니면 아실라가 너무 가까워서 놀란 건지 작은 신음 소리를 내며 어깨를 ‘흠칫!’ 떨었다.

하긴, 아실라의 샤랄라한 얼굴이 저렇게 반짝반짝 빛나면서 쳐다보면 놀랄 만도 하지.

로나는 자신도 매번 아실라가 빵집을 방문할 때 놀라곤 한다고 중얼거렸다.

그녀가 아실라를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소녀의 사랑스러운 외모는 인정하고 있었다.

아실라는 정말로 딱 여주인공의 묘사에 어울리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그건 절대 익숙해지지 않고 언제나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였다.

아실라가 빵집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문밖에서 들어오는 새하얀 햇살은 마치 후광 같았고, 햇빛에 반짝이는 분홍색 머리카락은 별빛 이펙트라도 쏘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마주치면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지는 하늘색 눈은 사랑스럽고, 뽀얀 분홍색 볼은 콕 찔러 보고 싶고, 살굿빛 입술 사이로 웃으면 보이는 새하얀 작은 치아는 그야말로 요정 같았다.

밝게 통통 튀는 걸음걸이, 맑고 귀여운 목소리, 어여쁜 행동과 표정…….

자기가 만약 현실적인 성격이 아니거나, 전생에 연예인에게 단련되지 않았었다면.

여기가 게임 속이라고 알아차리지 못했다거나, 모나한이 있지 않았더라면.

자신도 아실라를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녀를 보면 용서하다 못해 모든 것을 퍼 주고 있을 것이다.

원래 게임의 빵집 주인처럼 말이지.

로나는 게임 속 일러스트에서 나온 얼굴조차 제대로 묘사되지 않은 빵집 주인을 잠깐 떠올렸다.

언제나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답게 묘사되는 아실라와 구석에 조그맣게 배경으로 그려지던 빵집 주인.

그녀 또한 언제나 아실라의 외모를 찬양하며 감탄하곤 했었다.

그래. 그런 얼굴이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이면 파괴력이 강하지.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면, 아주 안 넘어가고는 못 배길 것이다.

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니켈스 님도 이 빵집에 오시는군요!”

아실라는 이미 로브 안의 사내가 니켈스인 걸 확신했는지 그 밝은 얼굴과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빵집이에요! 이곳 빵을 먹으면 하루가 행복해지죠! 빵을 고르고 계셨네요!”

아실라는 니켈스를 빵집에서 본 것을 반가워하며, 그의 쟁반이 거의 비어 있는 것을 눈치챘다.

“아직 빵을 고르시는 중이신가 봐요! 제가 추천드려도 될까요? 추천하고 싶은 건 이거랑, 이거랑…… 아아, 다 맛있어서 고를 수가 없네!”

“아냐!”

그녀는 니켈스의 대답을 듣지 않고 안 그래도 별로 남지 않은 거리를 훅 좁히며, 빵을 추천하려고 했다.

니켈스는 그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에 당황했는지 뒤로 훌쩍 물러나며 소리쳤다.

그가 놀라며 뒤로 물러나는 움직임에 따라 로브가 펄럭거렸고, 모자가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사이로 감춰져 있던 연두색 머리카락이 사르륵 튀어나왔다.

“오…….”

“오…….”

로나와 모나한은 어느새 구경꾼 모드로 접어들어 마침내 드러난 니켈스의 외모를 보며 감탄했다.

얇은 연두색 머리카락은 가볍게 하늘거리고, 그 사이로 진한 보라색 눈동자가 당황을 담아 흔들렸다.

당황한 표정과는 다르게 얼굴의 피부는 붉은 기 하나 없었지만, 얼굴보다는 귀가 빨개지는 타입인지, 연두색 머리카락 사이의 그의 귀만은 새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여러모로 날카롭고 예민해 보이는 섬세한 외모였지만, 당황한 얼굴은 묘하게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얼굴이기도 했다.

역시 남주 후보답게 어딜 봐도 빠지지 않는 외모였다.

왕자님이나 기사님과는 또다른 학자 타입의 미남.

그들보다 좀 더 소년미가 있으면서도 날카로움이 돋보이는군.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하는 마법사답게 햇빛을 보지 못해 창백한 피부가 병약해 보여 왠지 먹을 것을 챙겨 주고 싶게 만드는 외모랄까?

언제나 찌푸려져 있는 미간을 검지로 톡톡 문질러 펴 주고 싶은 매력이 있는 얼굴이랄까.

날카로운 눈꼬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 진한 보라색 눈동자는 묘한 색으로 빛나 왠지 한번 울려 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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